‘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법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인문학 잡지 <나다wom움> 편집부와의 만남

‘아…망할 것 같은데ㅋㅋㅋ’

‘들’ 활동회원이자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인 쩡열이 내게 일찌감치 교육 의뢰를 했을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보인 반응이 이랬다. 청소년들을 만나 인권교육을 한 경험은 상당히 많지만, 그 중 가장 ‘흑역사’로 부를만한 교육은 의외로 청소년 활동가들과의 만남이었다. 이미 청소년 인권을 몸소 실천하고 있거나,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무엇을 매개로 말을 걸어야 할지 잡아내는 게 늘 쉽지 않았다. 미묘하게 미끄러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개운치 않은 그 느낌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그이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게 큰 실수였던 것 같다. 왜 지금 이 시기에 교육을 원하는지, 교육을 통해 풀어내고 싶은 활동에서의 갈증이 무엇인지를 상세히 묻고, 그에 부합하게 꼼꼼히 준비해야만 나와 그이들이 서로 교감하는 소통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다움>은 교육공동체 나다에서 ‘아무나 볼 수 있는’ 인문학 잡지를 표방하며 만들고 있는 재미난 계간지다. 나다의 인문학 수업 등을 통해 인연을 맺은 청소년들이 편집부를 구성해 직접 잡지를 기획하고, 글을 쓰고,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 인권’이라는 단어가 글 속에 꼭 박혀 있지 않아도 삶 속에서 길어낸 필자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다보면 자연스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위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교육을 의뢰했던 쩡열을 만나 현재 <나다움>의 운영 상황을 상세히 듣고, 어떤 교육이 필요할지 가늠하는 시간을 가졌다. 청소년인권 관련 행사들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지속적인 인권활동을 해본 구성원은 거의 없다는 것, 일상에서 느끼는 불만과 분노를 포착할 수 있는 언어를 더 깊게 벼리고 싶다는 것, 페미니즘(걸 페미니즘)과 관련된 화두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싶다는 것 등이 주요 고려 사항으로 꼽혔다.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쩡열은 혹은 <나다움> 구성원들은 그이들의 잡지가 보다 선명하고 까칠해지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쩡열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지금 현재 어떤 위치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내 머릿속에 명확히 그려지진 않았다. 그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고 싶어서 ‘그동안 잡지에 실린 글 중 본인의 생각이 가장 잘 담겨있거나, 가장 아끼는 글을 하나씩 골라 달라’고 부탁했다. 쩡열이 모아서 보내준 11편의 글을 받아서 읽어보는데, 마치 11명이 내게 보내온 편지를 읽는 느낌이었다. 그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그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들이 샘솟았고, 비로소 교육을 준비할 수 있는 출발선에 설 수 있었다. 총 3시간의 교육시간 중 2시간은 <우리는 왜 청소년인권을 말하는가>에 대하여, 마지막 1시간은 <페미니즘과 만난 청소년 인권>으로 구성했다. 이 글에서는 전자를 중심으로 교육을 소개하려 한다.

청소년 인권, 그대들과 나의 마음이 모이는 곳

나를 포함해 10명의 사람이 모였다. 지금은 비청소년인 이미 친분 있는 3명의 얼굴을 마주하니 긴장이 스르륵 풀렸다. 글로는 만났지만, 얼굴을 처음 맞대는 청소년 분들과도 소개 겸 인사를 간단히 나눴다. 내가 이곳에 들르게 된 맥락, 인권을 나누고 싶은 마음 등을 여는 이야기로 먼저 전했다.

참여자와 진행자가 모여 앉아있는 모습

강의 장면입니다
이어서 1999년(17년 전) 중고등학생복지회가 발행했던 신문을 보며, 그 때 던졌던 주장이 지금 청소년들이 던지는 주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살폈다. “학생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학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청소년은 스스로 권리를 행하는 주체다”는 문장이 낯설지 않다. 우리가 혹은 사회가 여전히 멈춰서 있는 지점, 결국엔 넘어서야 할 견고한 생각의 뿌리들을 차근차근 짚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교육 준비 단계에서 이이들이 미리 꼽아줬던 글들의 대부분이 본인들의 삶을 바탕으로 학교의 속살을 파헤치거나, 가난(빈곤)을 대하는 사회의 방식을 비판하는 주제로 분류가 가능했다. 학교와 빈곤,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함께 이야기해 볼 사례 2가지를 가져갔다. ‘문제적 인간 소환하기’ 방식(미주1)으로 주류적 사고와 논리를 추출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지거나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야 할지 이야기 나눴다. 더불어 이이들이 보내줬던 글들 중 사례 탐구에 도움이 되는 구절들을 발췌해 이를 중심으로 짤막한 강연을 덧붙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무리한 흡연 단속(부당한 소지품 검사, 학생을 향한 모욕 등)으로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청소년의 사례를 토론한 후, ‘학교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나?’라는 질문을 나누기 위해 유하의 시 ‘학교에서 배운 것’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눴다. 학교가 무지와 무감각을 강요하고, 무기력의 악순환을 심화시킨다는 시의 내용은 <나다움>에 실린 박씨의 글 ‘가까이 하기에는 보이질 않아’의 구절들과 상통한다.

 

⚫ (세월호 사건 얼마 안지나) 시험기간이 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해졌다. (…) 이런 나에게 엄마는 요즘 청소년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기사를 읽었다며 넌지시 ‘넌 슬피지도 않니?’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억울했다. 나라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학교에서의 일상은) 세상과 단절될 수밖에 없다. (…) 서로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다들 새로 무언가를 알아야 한단 것을 싫어한다.

⚫ 세상일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 무관심하단 건 참 편한 거다. 걱정거리가 줄어든다. 하지만 점점, 점점 아래층으로 세상으로 내려가기가 싫다. (…) 세상과 분리된 나와 너와 우리는 어디에 있으면 좋을까.
– 박씨, ‘가까이하기에는 보이질 않아’

학교가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힘으로써 ‘차이’와 ‘개인’을 지우고 있다는 것, 명백한 폭력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결과적으로 사소한 일인 듯 치부함으로써 학교가 폭력적 관행들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등은 성현 님의 증언을 통해 생생히 드러났다.

 

⚫ 교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좀 어이가 없었다.(…) 교복을 입지 않으면 학생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모습에 얼마나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는지를 다시금 알게 해주었다.

⚫ 모두가 볼 수 있는 뻥 뚫려 있는 운동장에서 바지를 내리고 옷을 갈아입게 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상황을 보고 있던 몇몇 애들이 체육교사의 만행에 합세해서 웃으며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매우 많은 폭력이 행해지지만) 그러나 항상 웃음으로 끝이 난다. (…) 모든 상황을 웃음으로 넘겨버리는 학교가 역겨웠다.
– 성현, ‘학교 때려쳤당’

 

청소년 인권의 기본 원칙들을 점검하는 정리 강연 때도 마찬가지로 이이들의 글을 징검다리 삼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청소년인권, 나이주의, 보호주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보다 이이들의 글 곳곳에 숨어 웅크리고 있는 개념들을 포착하고 끄집어내 되돌려주는 것이 교육적으로 훨씬 더 의미 있었다. 어떤 글들 속에는 인권을 만난 후 혹은 대안적인 관계들을 만난 후 흔들리고 있는 마음의 조각들이 떠다니기도 했다.

 

⚫ ‘대학거부’라는 걸 인생의 큰일인 양 말하는 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자꾸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대학생을 향한 부러움과 열등감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 시간은 꽤 오래 지속됐다. 10대에는 나의 자유가 그들의 부러움이었지만, 대학 안에서 바깥을 부러워할 일은 없어 보였다.
– 쩡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 나도 평범하게 그렇게 학원도 다니고 사는 동네도 비슷하고 초등학교도 거의 다 알만한 학교에 다녔으면 더 많은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게 쉽지 않았을까. (…) 꼭 학원에 가고 싶었던 건 아니다. 단지 남들 다 가는 학원이 어떤 곳일지 궁금했고 조금 부럽기도 했던 거다.
– 미선, ‘항상 부럽지만 부담스러운 학원’

 

인권활동가로 살고 있는 나 역시 지금까지 마음의 줄타기를 하고 산다. 대안적인 선택을 했지만 쉽사리 가시지 않는 마음 한 편의 불안, 머릿속으로는 무엇이 부당한 것인지 알고 있지만 주류적 기준에 부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때때로 부럽기도 하다. 이 줄타기는 아마 평생 우리를 따라다닐 거라고 솔직한 나의 마음을 그이들에게 전했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기준의 성취 여부에 따라 한 사람의 매력과 존재감이 결정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친척 모임을 달가워하지 않고, 가급적 가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를 그저 온전히 ‘나’로 바라보는 동료와 친구들이 훨씬 더 ‘가족’처럼 느껴진다. 불안도, (부끄러운) 부러움도 혼자서 극복하려하면 도리어 엎어질 가능성이 큰 것 같다. 중요한 건 ‘나’와 ‘너’를 그저 사람으로 환대하는 좋은 친구들 곁에 오래오래 머무는 것. 그러면서 친구들과 함께 우리네 삶을 배반하지 않는 지향과 근거들을 켜켜이 쌓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 우리를 보고 ‘쟤네 뭐지?’ 곁눈질 해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욱 좋다. 함께 할 친구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거니까. 글쓰기가 매번 쉽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나다움>이 유지되는 힘도 여기에 있을 거라고 슬며시 말을 보탰다.

청소년 활동가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컷<나다움>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잡지의 이름이 그것을 보여준다. 여성과 남성의 권력관계를 뒤집은 가상의 세계를 그려낸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서는 인간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남성man’이 아닌 ‘여성wom’을 사용한다. (미러링의 시초!) 중심과 주변을 뒤집어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잡지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포부 속에 이미 페미니즘의 결이 묻어있다.

▲ 인간의 기준이 남성(어른)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풍경들 ▲ 입장성과 권력에 대한 통찰을 담는 페미니즘 ▲ 여성과 청소년을 공통적으로 옥죄는 미성숙과 보호주의의 굴레 등을 주제로 그림이나 사진, 장면을 보고 대화하며 생각을 확장하는 시간을 가졌다.(미주2) 이어서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2006~2012)가 여성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고, ‘걸 페미니즘’ 활동을 했던 맥락과 대략의 활동상을 소개했다. ▲ 여성주의적 사유를 바탕으로 청소년 인권의 담론을 보다 풍성하게 형성 (학교를 중심으로 한 학생인권 뿐만 아니라 가족 이슈 등에도 접근, 학교의 성역할 강요 등 학생인권의 근거도 확장) ▲ 걸 페미니즘, 여성 청소년 의제 발굴 (학생 집단 내부의 차이에 주목) ▲ 여교사들과의 연대 (학교의 페미니즘적 전환) 등을 실제 활동했던 모습들과 당시의 고민을 전하는 방식으로 브리핑 했다.

감수성이 있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기 때문에 감수성이 생기는 것이다

빼곡하게 3시간 30분 정도가 흘렀고, 교육을 마무리하며 소감과 궁금한 점 등을 간단히 나눴다. 던져진 질문들 중에 간단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부족해 충실히 못 다룬 질문들이 있어 아쉬움도 남는다. ‘세상살이는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어떻게 하며 좋을까?’ 라는 요지의 질문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도 했다. 자기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조차 허용하지 않는 사회를 탓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무뎌진 감각을 탓하며 왜 굴욕을 감수하냐고, 왜 분노하지 않냐고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만약 인권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내가 만약 글을 쓰고 있지 않다면 나 또한 세상의 흐름에 나를 맞춰가는 쪽에 훨씬 더 익숙해졌을 것이다. 감수성이 있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기 때문에 감수성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감수성(감각)은 본래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에 가까울 것 같다. 앓고, 부대끼고, 흔들리면서도 온몸에 새겨나가는 것.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사람들이 맞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통로를 여는 것이 중요하겠다. <나다움>의 글들이 사람들에게 특히 청소년들에게 이 통로를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통로를 통해 빠끔히 고개 들고 인사할 또 다른 존재를 마주할 때까지 쓰고, 또 쓰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주 1:  진행 방식이 궁금하신 분들은 ‘들’ 홈페이지에서 <‘문제적 인간’이 찾아왔다> 글을 검색해보세요.

미주 2: 청소년 인권과 페미니즘의 연결고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들’ 홈페이지에서 <청소년과 여성은 어떤 처지를 공유하고 있나?>를 검색해 보세요.

 

⁍ 정리 ‖ 한낱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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