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자동네 초등학교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8월말,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로 인권특강을 다녀왔다.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찾아가는 인권교실’ 가운데 하나였다.

나에게 이 동네는 대한민국 기득권과 입시교육의 상징 정도로 여겨져서 참여자인 초등학생들의 삶에 대한 관심도 ‘아무리 부모가 부유한들 자식들의 삶이 만만치는 않겠지’ 정도의 연민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교육청에 인권수업 신청까지 할 정도면 뭐 숨기고 싶은 문제는 많지 않은 학교인가 보다 싶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섣부른 짐작이었다.

유명 학원가를 지나 골목을 도는 순간, 다소 지어진 지 오래되어 보이는 학교건물이 나타났다. 올해 유난히도 지독했던 여름 열기가 가시지 않은 그날, 초록색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 땡볕 아래 학생들이 체육수업을 하고 있었다. 공차기 연습을 시키는 교사는 선탠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고 학생들은 오전이지만 뜨겁기 그지없는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학교로 수업을 가면 제일 먼저 화장실을 들르는 습관이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쓰는 화장실을 보면 이 학교가 학생을 대하는 자세의 흔적이 보인다고 할까. 부자동네에 자리잡은 학교 화장실이라기엔 무척이나 좁고 낙후돼 있었다. 요즘 학생들 체격을 보면 한 몸 밀어 넣기도 좁아보였고,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지 한쪽 변기는 막혀 있었다.

담임교사는 반장을 일으켜 세우더니 ‘차렷 경례’를 내게 시키더니, 외부에서 오신 선생님이니까 조용히 잘 집중하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교실을 나가셨다. 예상치 못한 경례에 당황스러웠지만, 나도 배꼽인사를 같이 하며 학생들과 첫 인사를 나누었다. 초반에 준비해간 퀴즈와 동영상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순조로운 시작이었다. 수업 시작 전 다녀와본 화장실 얘기를 슬쩍 건네보자 학생들의 반응이 점점 끌어오르기 시작했다.

“저희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시설 개선 공사가 뭔지 아세요? 교장실 리모델링. 그것도 두 번이나.”
– 헐. 선생님들은 같은 화장실 써요?
“아뇨. 선생님들 화장실엔 비데까지 있어요.”
– 냉방은 잘 되나요?
“아뇨. 더워요. 교무실은 가면 추울 정도로 에어컨이 빵빵해요.”

2013년 서울시 어린이․청소년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난 뒤 구성된 ‘1기 서울시 어린이․청소년 참여위원회 초등특위’가 발표한 선언문의 내용에서 새치기, 반말, 강제심부름 등을 금지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던 사례를 소개하자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10여 명의 이야기가 빗발치자, 이야기를 좀더 정돈해서 들어보기로 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주고 포스티잇에 각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서 붙여달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정성껏 써서 붙여주었다.

칠판에 활동포스트잇 붙인 모습

 

“~한 말만 안 들어도 나는 좀 더 행복해질 것 같다.”

• “니 친구는 벌써 고1 과정 하는데, 너는 이것도 못하니?” “다른 애들은 다 선행하는데 넌 어쩌려고 그러니?” “점수가 이게 뭐야?” (비교)
• “숙제 먼저 해.” “학원 숙제 했니?” “머리 아프면 약 먹고 학원 가.” (학원 스트레스)
• “특목고 자사고 준비해.”
• “너 전학 가면 정말 편하고 좋겠다” “너 그럼 전학 보내줄게.”
• “왜 이렇게 못하니?” “커서 뭐 될려고 그러니?”
•“왜 저래?”
• “조용히 해.”
• 어른들이 애가 어쩌구저쩌구 하는 말 다 싫다
• 키가 작다고 놀리는 말

 

 

“우리 학교 홈페이지에 대나무숲이 생기면 ~한 글이 엄청 올라올 것 같다.”

• 교장 선생님이 필요한 데 예산 안 쓴다. 특히 화장실부터 고쳐라.• 샘들이 우리 말을 잘 안들어준다. 자기들 하고 싶은 얘기만 한다.
• 언어폭력이 심하다. 애들 앞에서 대놓고 한다.
• 차별, 편애가 심하다
• 강제심부름 없애달라.
• 쉬는 시간까지 간섭한다. 못 놀게 하고 화장실만 다녀오라고 한다
• 추억 쌓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스트레스가 심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학원에 대한 압박은 예상을 훨씬 초월해 있었다. 벌써 고1 선행학습을 하는 6학년이 있다는 얘기도 놀라웠지만, 그 얘기로 자녀를 압박하는 부모가 있다는 것도 놀랍기 그지없었다. 부자 동네에 위치한 공립초등학교라면, 부모의 경제적 배경을 의식해 학교나 교사가 학생을 함부로 대하는 일은 많지 않을 거란 생각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 체벌도 있어요?
“지시봉으로 막 찔러요. “야 조용.” 이러시면서 책상 옆을 자로 탁탁 치는데 그것도 너무 무서워요.”
“얼마 전엔 등짝을 딱 때린 일도 있었어요.”

– 강제심부름은 뭘 말하는 거예요?
“1일교사라고 칠판에 이름을 써놔요. 이름 적힌 대로 선생님 심부름 하는 거예요.”

“담임이 ‘네가 전학가면 정말 편하겠다.’고 그래요. 그 말이 제일 듣기 싫어요.”
– 그런 말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싫으면 담임선생님이 전학 가면 좋겠다는 생각.”
– 선생님은 왜 그런 이야기를 하실까요?
“선생님은 공부만 하고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애들만 원하는 것 같아요. 그런 애들만 모여있는 곳으로 차라리 선생님이 갔으면 좋겠어요.”

– 선생님한테 그러지 마시라고 하면 어떨까요? 혼자 하면 힘들지만 여럿이 함께 얘기하면 좀 달라질지도 모르잖아요?
“안 돼요. 안 들으세요.”
– 전교어린이회 같은 곳 통해서 화장실 고쳐달라고 건의해본 적 있어요?
“안 돼요. 안 들어줘요. 열리긴 하는데 선생님이 정해준 얘기만 하는 곳이에요.”

– 학생인권조례라는 거, 들어본 적 있어요?
“아니요.” “아 들어보긴 했는데…” (다수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 학생인권조례에 어쩌구저쩌구. 중학교에 가서도 어쩌구저쩌구….
“그래도 학교는 안 바뀌어요.”
“우리가 신고하면 교육청에서 나와서 해결해줘요?”
– 아… 꼭 나오는 건 아니고, 또 당장 바뀐다고 약속드릴 수는 없지만…

답을 하는 내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그럼에도 예전 같으면 많았던 문제들이 조금씩 나아져 왔던 사례들을 소개하며 교육을 끝맺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싶었는지, 학생들은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전화번호를 열심히 기록하고 내 명함까지 알뜰히 챙겨갔다.

학생들이 구긴 포스트잇학생들이 작성한 포스트잇

가장 놀라웠던 건, 수업이 끝난 뒤의 풍경이었다. 컴퓨터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자꾸만 칠판에 붙은 포스트잇을 빨리 떼라고 재촉을 했다. “예. 제가 잘 챙겨갈게요. 잠시만요.” 근데 복도쪽 망을 보던 한 어린이가 “담임 온다.” 한 마디를 하자, 학생들 여럿이 순식간에 교실 앞으로 뛰어나와 포스티잇을 마구잡이로 떼서 내게 건네주었다. “담임선생님이 보시면 우리 죽어요.”

“마리아 스콜로도프스카, 스타니슬라스 오거스투스 포니아토프스키에 대해 말해보거라.”
식민지 폴란드의 교실에서 자국어로 된 자국의 역사 교과서를 공부하다 러시아 장학관이 찾아오자 타다닥 읽던 책을 숨기고선 러시아 역사에 대해 읊던 마리아(훗날 ‘퀴리부인’)의 어릴 적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주 오래전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실린, 길고 낯선 이름이 빼곡했던 이야기의 첫 문장이 아직도 생생한 건, 그 장면에 담긴 긴장감이 내 학창시절의 어떤 모습과 사뭇 닮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2016년 여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서울의 어느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런 풍경을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2011년 봄은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운동으로 내 생애 가장 밀도높은 시간을 보낸 때였다. 서울시민 1%의 지지도 받지 못한 학생인권이라는 오명을 남기진 않겠다는 오기도 컸지만, 주민발의로 제정된 조례라면 학교의 변화를 더 성큼 앞당길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그런 의미에서 학생인권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문서지만, 그럼에도 학교 현장에 정착하기까지에는 더 많은 수고로움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조례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조금은 더 인간적인 학교를 만들 수 있겠지. 적어도 이 6학년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나섰다. 중고등학생 중심의 학생인권운동이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더 확대될 필요가 있겠다는 각오와 함께.

 

⁍ 정리 ‖ 개굴(배경내)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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