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학생의 행복도는 급감하는가
<한국 아동의 삶의 질 3차년도 연구발표회>에 다녀와서

지난 8월 12일, 세이브더칠드런이 주최한 <한국 아동의 삶의 질 3차년도 연구발표회>가 있었습니다. 1부 행사는 한국 아동의 삶의 질에 관한 지표 조사 연구 발표가 있었고요(이날 조사에서 활용된 지표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가 필요해 보였습니다만). 2부 행사는 ‘왜 중학생이 되면 행복도가 급격히 떨어지는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실제 지표 조사에서 중학생이 되면 행복도가 급감한다는 것이 밝혀졌거든요.

 

발표회 장면

여러 발표문과 토론문 중 중2 학생의 토론문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요. 현실에 대한 분석적 묘사가 뛰어난데다 아름답고도 슬프기도 한 글이었습니다. 중학생의 삶을 펼쳐놓은 이 글의 몇몇 문구만으로도 중학생이 되자마자 왜 행복감이 급락하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 흔히 무섭다고 말하는 중2들은 정작 행복하지 않은 아이러니

– 어린이는 아닌데,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어디에 속해 있는지가 불분명한

–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

– 단 한문제라도 틀리지 않으려고 토요일, 일요일까지 수학 학원을 서너 개씩 다니는 이 친구들이 행복을 생각할 겨를이 과연 있을까요?

– ‘생기부 인생’

– “제일 덜 급하고 점수화 되지 않을 일들이 가장 먼저 저희들의 인생에서 지워집니다. 어쩌면 행복은 지워진 일들 속에 있었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 진로와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고민’

– “저희들에게 중2병을 안겨준 것은 우리 사회 모두가 중학생의 행복에 관심을 갖지 않고 방관하고만 있었던 것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학생은 경쟁교육체제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국제중 학생이기도 한데, 이분의 이야기를 따라 듣노라면 경쟁교육체제에서는 성적으로는 승자와 패자가 갈릴지라도 그 누구도 자기 인생의 ‘승자’/주인이 될 수는 없음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됩니다.

 

학습시간 총량제, 학원 휴일 휴무제, 석차 배분율 폐지와 고교평준화 등 구체적인 제도 마련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모아져야 되겠고요. 무엇보다 학생들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위치와 자신의 삶을 겁박하는 현실에 대해 소리 높여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이 마련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은 토론문의 전문입니다.

 

전체 조사결과 자료집과 발표회 자료집은 첨부파일을 참고하세요.

====================================================================

 

  1. Save the Children; 한국 아동의 삶의 질 연구발표회 발표문

 

안녕하세요, 저는 청심국제중학교 2학년 위지오 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입학함과 동시에 행복도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를 듣게 되었습니다. 같은 청소년으로써,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러분 모두 중2병에 대해 알고 계시죠? 어른들께서는 중2병에 걸린 저희가 말도 안듣고 제 멋대로이며 반항심 가득한 아이들이라고 흔히 말을 하십니다.

심지어, 북한조차 중2가 무서워서 공격을 못하고 있다는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무서운 중학생들은 스스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고민하고 있었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바로 그 중2 입니다.

저도 행복하냐는 질문에 불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닌 것 같다고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중학생이 되면서 대체 무슨 일을 겪길래 이렇게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 일까요?

1.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저는, 굉장히 애매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어린이는 아닌데,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어디에 속해 있는지가 불분명한 사람 말입니다. 어린이 옷을 입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어른 옷을 입으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합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이 우리들을 더 성장한 인격체로 대우해 주고, 결정권을 스스로에게 맡기는 일도 늘어났지만, 아직 나는 완전한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미숙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지기가 어렵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행복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배경에는 어린이의 세계에서 방금 벗어나 아직 어른이 되지는 못한 청소년들의 불안과 혼란스러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

2.

벚꽃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요즘 중학생들은 벚꽃의 꽃말을 ‘중간고사’라고 합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재미있다며 웃었지만, 생각해 보면 참 슬픈 말이기도 합니다.

중학교에 와서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는 원인은 단연 학업적인 부분입니다.

중학교 성적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반영이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 부모님들께서도 성적 압박을 더 많이 주시고 저를 성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더 빈번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학교에 비해 학업 스트레스가 너무나 커졌습니다. 또한, 나 스스로가 잘하고 싶다는 부담감도 외부 압박만큼 스트레스에 한 몫을 합니다. 내 인생에서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 것 인지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점, 2점, 심지어는 소숫점 차이로도 갈리는 등수와 내신 등급 탓에 한 문제가 소중하고 그 어떤 시험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지필고사는 물론, 모든 과목을 틈틈히 수행평가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평가받아야 하기에, 우리의 중학 생활은 결코 행복할 여유가 없습니다.

제 친구 중에는 방학 때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수학만 공부하는 텐 투 텐 수학 혹은 몰입수학학원을 다니는 친구도 있고, 또 어떤 친구는 고등학교 2학년 수학 선행 학원을 다니는 동시에 부족한 단원 복습학원을 따로 다니고, 학교내신 시험대비 학원을 동시에 다니는 친구도 있습니다. 단 한문제라도 틀리지 않으려고 토요일,일요일까지 수학 학원을 서너개씩 다니는 이 친구들이 행복을 생각할 겨를이 과연 있을까요?

3.

중학생 부터는 생활기록부에 잘 기록되기 위한 생기부 인생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입학과 동시에 저희의 생기부에는 시험 성적은 물론, 읽은 책 목록과 독후감, 동아리활동 등 학교에서 했던 모든 일들이 세세하게 기록이 됩니다. 1년에 20시간 이상 봉사활동도 의무적으로 해서 시간을 채우고 기록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생기부가 고등학교 진학시 나의 능력과 수준, 노력, 재능, 관심, 인성 등을 평가하는 자료로 쓰인다는 것 입니다.

많은 중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자사고, 특목고는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좋고, 리더십도 뛰어나고, 수준 높은 독서도 많이 하고, 봉사 활동도 많이 하는 학생을 원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학생이 되기 위해서 생기부에 기록할 수 있는 수많은 활동에 참여하고 독서 기록을 남기고 일종의 스펙을 쌓아 내가 그런 학생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합니다.

생기부 인생을 사는 우리들은 절대적으로 자유시간이 부족합니다. 항상 무엇인가 해야할 일이 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일 덜 급하고 점수화 되지 않을 일들이 가장 먼저 저희들의 인생에서 지워집니다. 어쩌면 행복은 지워진 일들 속에 있었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4.

우리 중학생들에겐 친구 문제도 학업 스트레스 만큼이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심각한 요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중학교는 친구 관계가 한꺼번에 새로고침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특히 여학생들은 함께 밥먹고 늘 함께 다니는 친구 그룹을 형성하는데 온 힘을 씁니다. 어떤 이유로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못하게 되는 아이들은 소외되기 십상입니다. 그 학생에게 중학교 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친구를 만들어 어떤 그룹에 속하려고 노력하고, 서로서로 신경전을 벌입니다. 외모로든 성격으로든 친구들에게 호감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애쓰는 우리들은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행복과 불행을 겪기도 합니다.

5.

마지막으로 우리를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미래에 대한 걱정입니다.

고등학교 입시,대학 입시에 실패하여 결국은 실패한 인생이 될까봐 저 또한 지금도 걱정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중학교때 자칫 실수로 성적이 떨어지면 돌이킬 수도 없다고 합니다. 내 미래의 행복과 불행이 현재의 나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두렵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많은 중학생들이 그런 두려움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문과 학생들의 취업이 어렵다고 지금부터 강제로 이과가 되어야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중학생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진로와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고민이 우리 중학생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까지 중학생들의 행복을 위협하는 여러가지 문제를 저와 제 주변 친구들이 느껴왔던 점을 중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어쩌면 저희들에게 중2병을 안겨준 것은 우리 사회 모두가 중학생의 행복에 관심을 갖지 않고 방관하고만 있었던 것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과 같은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와 교육제도 속에서 이 문제에 대해 누구도 정확한 해답을 내릴 수 없다는 것,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조사가 단지 문제점을 발견하는 데서 주목하고 끝나버린다면, 우리나라의 중학생들은 아마 계속 행복에서 더욱 더 멀어질 것입니다.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조금이나마 우리의 청소년들이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사회의 분위기가 변해가고 여러가지 해결책들이 제시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텔레그램 채널구독

인권교육센터 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들의 최신 소식을 가장 빠르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