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세월호 생존자들 이야기, 외면하지 마세요
[<다시 봄>을 읽다⑤] 청소년 인권과 민주주의의 보따리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에서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다시 봄이 올 거예요>(창비, 2016, 아래 ‘다시 봄’)을 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봄>에 담긴 10대들의 목소리를 좀 더 깊이 듣고 새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 <오마이뉴스>에 ‘<다시 봄>을 읽다’라는 제목으로 여섯 차례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다섯 번째 글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양동훈 님이 보내주셨습니다.

‘교육’이라는 형태로 사람들을 만나지만, 자기 언어를 빼앗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게 가장 소중한 배움이라 여기며 이곳저곳을 떠돌며 삽니다. 지역에서 여러 여성들과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읽고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그들에게도, 어른․어머니․교사․노동자로서의 적대적 모순이 중층적으로 얽히고설켜 <다시 봄> 읽기의 어떤 어려움, 두려움을 낳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의 청소년들은 그깟 어른․어머니․교사․노동자 되기를 거부하거나 아예 거부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그 자리에서 끄르지 못한, 충분히 나눌 수 없던 이야기보따리를 조심스레 풀어보려 합니다.

우울증적 ‘합체’ = “네가 나야”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책 표지

▲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책 표지 ⓒ 창비

음… 외람되지만 첫사랑과의 이별을 떠올려 보세요. 아니면 사랑했던 사람을 상실한 경험을 떠올리셔도 돼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냈을 때의 그 아픔과 상실감, 무력한 자신에 대한 치 떨리는 배신감… ‘어떻게 나를 버리고 가냐’는 분함과 미움… 불면과 우울… 그래도 시간은 가고 어느덧 “그러니까 잘 가라”라는 애도가 조금씩 이뤄지고 다시… 꾸역꾸역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만 떠나가도 그렇게 아픈데, 만약 한꺼번에 몇 명씩, 아니 수십, 수백 명이 전혀 알 수 없는 이유로 떠나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애도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을 맞아 ‘애도의 불가능성’이라는 공감과 연대의 몸짓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애도 불가능’이라는 슬픔과 외면으로만 멀어지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혹시 ‘착한’ 당신이 ‘세월호’에 대해 그저 슬퍼하기만 한다면 그건 외면을 위한 몸짓일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 지금, 생존자와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하여튼 살아남은 누군가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거나, 누군가는 ‘히딱히딱’ 웃으면서 오히려 불편해하는 상대를 배려해 주거나 아니면 자신을 배려하거나, 또 누군가는 살기 위해 감각을 최소화해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거나, 누군가는 온 몸의 물기란 물기가 모두 눈과 코로 빠져나와 바싹 말라버리거나, 누군가는 원통함과 분노로 까무룩 까무러치거나 온 몸을 던져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각자의 아픔을 서로 다르게 겪고 있음에도 살아남은 생존학생과 형제자매에게 어떤 감정의 교집합이 형성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막상 꿈에 나타나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아 꿈조차 꿀 수 없고, 너무 미안해서 분향소에 있는 ‘너’를 볼 수 없고, 원통해서 애도가 안 되고.

하지만 시간이란 게 뭔지 두 번의 봄이 지났다고 조금은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떠난 이를 자기 가슴에 합체(incorporation)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는 떠나간 친구가 남겨놓은 미소를 슬쩍 자기 얼굴에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친구의 말투를 흉내 내서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형제자매 대신 몸과 마음이 자라기도 하고.

이렇게 서로의 가슴에 ‘너’를 품고 있기에, 서로가 다르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닮을 수밖에 없다는 것. 처음엔 떠나간 ‘너’를 내 안에 합체하고 “네가 나야”라고 조용히 속삭였지만, 이제는 같은 ‘너’를 친구로, 형제로, 자매로 품고 있는 현실의 또 다른 ‘너’들에게 “네가 나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있어 좋았던 이들.

슬픔으로 연대가 가능함을 몸으로 깨달은 이들. ‘너’와의 마주침으로서만 내가 변할 수 있음을 깨우친 이들. 학교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나’라는 게 외따로 있을 수 없으며, ‘나’만의 이익이라는 말이 아예 성립될 수 없음을 고통을 통해 배운 이들. 내 안에 ‘네’가 있기에 ‘행복할수록 눈물이 나고 슬플수록 남을 존중한다’는 말을 되새기는 이들.

그러니 당신도 이제는 ‘잊지 않겠다’라고 말할 수 없고 ‘잊지 못하겠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느덧 당신도 다시 봄이 오면 “네가 나야”라고 고백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럼 ‘생존학생’과 형제자매들의 언어를 좀 더 꼼꼼히 들어보도록 할까요? 각오 단단히 해 두세요. 한 방에 훅 갈지도 모릅니다.

말줄임표 속의 무저갱, 그러나 희망의 작은 틈

경사가 심해서 올라갈 수 있는 힘이… 힘이 딸리는 순간 그냥 내려가요. 그럼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요. …… 그 아이까지 같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있었는데 어른들이 말렸어요. “안 된다. 너 혼자 올라가라.” 어른 말을 믿고 올라가서, 소방 호스를 기둥에다 묶었어요. 그럼 사람들이 올라올 때 덜 위험할 것 같아서… 그걸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은 어른들이었어요. …… 근데 그 남자애는 자판기 뒤쪽에 있고 저를 계속 보고 있고… ‘여기가 지옥일까. 이게 할 짓인가 이게…’ 끝까지 살린다. 살리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어른들 몫까지…(79-80쪽)

저 말줄임표(…)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어른들이 짓이겨놓은 무저갱? 하지만 오히려 저 말줄임표 속에는 숭고한 타자에 대한 윤리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요? 두 주먹을 꼭 쥐고 온 몸을 떨면서 ‘죽은 언어’를 토해내는 구술자로서 ‘생존 학생’도, 그 이야기에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탐욕을 들이대지 않는 기록자도, 모두 애써 어떤 윤리적 태도를 굳게 지켜가고 있는 듯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읽었어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안아드리는 거였어요.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를 안았어요. 어머니를 안았고. 누나는 뭐 쑥스럽다고 “왔냐” 그러면서 악수하고. 누나, 엄마한테 미안하더라구요. 나 혼자 나왔다는 미안함…(86쪽)

18년이라는 평생 동안 폭력을 휘둘러온 아버지를 먼저 안아주는 아이… 청소년인 그대에게는 집이, 가족이, 가정이 세월호였던 거구나. 겨우 세월호에서 살아나왔는데 다시 세월호로 돌아갈 수 없었던 거였구나. 그렇게 힘들게 생환했으면서도 엄마와 누나, 친구들에게 나 혼자 나왔다는 미안함을 갖는구나. 그대라는 사람은.

손이 벌벌 떨려서 종이를 뚫어져라 봤어요. ‘잘못을 했으니까 죽어야 마땅하다?’ 그 사람(세월호 선장)이 아무리 죽을 짓을 했더라도 내가 이 사람을 죽여야 되겠다고 사인하는 게 너무 두려워서…(87쪽)

당신이라면 사인할 수 있을까요? 증오가 아니라 슬픔과 고통도 뭉치면 더 강해지지 않을까 질문하는 이 생존 청년에게 ‘(선장은) 잘못을 했으니까 죽어 마땅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인권이 무엇인지, 더 큰 구조에서 볼 게 무엇인지 눈을 뜬 이 사람에게요. 차라리 나 자신을 미워하더라도(자기 처벌) 모든 사람, 모든 어른을 미워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이 사람에게요.

나는 ‘학생, 자식’만이 아니라 ‘당사자’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은 말을 못하잖아요.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332쪽)

아, 우리는 공부가 우선이 아니구나. 우리 인생에서 지금은 공부나 대학이 먼저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인 거구나.(309-310쪽)

무엇보다 사고 나고 어른들한테 되게 실망을 많이 했을 때, 어른들 만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게… 교실존치 문제도 그래요. 저희 의견을 듣긴 들어요. 그럼 반영하는 거냐? 그것도 아니래요. 그럴 거면 왜…(311쪽)

또 오해라구요? 다 듣고 있다구요? 뻥치시네. 말만 하면 기․승․전․공부면서… 그리고 자기 어렸을 적에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어른들은 왜 청소년들의 건강은 전혀 걱정하지 않으시나요? 또, 들어주는 척 생색내지 마세요. 이제 안 속는다니까요. 대화라는 말로 시작하고 나서 명령과 지적질로 끝내는 그 초지일관… 지겨워요.

정말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 그런 생각은 들지만 현실에선 다들 경쟁을 하고 있는데 저 혼자 뒤쳐지면 안 그래도 불투명한 미래가 아예 보이지 않을까봐 그냥 참고. 결국에는 그 무리에 속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10대라는 말 자체가 너무 힘든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10대는 생각이 들어설 때고 주체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나이인데 그 나이에 묶여서 공부를 하고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게 힘듦 그 자체인 거 같아요. 추억을 쌓아야 하고 어쩌면 공부보다도 인간성 그런 걸 중요시해야 할 거 같은데, 우리나라는 성공이 중요하고 학생이니까 공부가 중요하고…(96쪽)

우리가 생각보다 많이 알고, 알아서 할 수도 있는 나이인데, 자기들이 해라 해라 하는 틀에 맞추라고 하면서, 너희는 그것밖에 못한다 하는 그런 느낌…?(134쪽)

사고 있고 나서 후배들 만나러 단원고에도 가고 같이 얘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학교가 하나도 안 달라지는 거예요. 애들은 ‘가만히 있어라’ 이런 게 더 심해진다고 얘기하고(154쪽)

이미 삶의 틀, 생각의 틀을 강제해놓고서도 아직도 뭐가 잘못인지 알고 싶지 않지요?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른다’고요? 아니요. 자유에는 책임이 아니라 권리가 뒤따라요. 권리를 빼앗고는 웬 자유 타령? 대한민국의 학교는, 대한민국의 교육은 현재의 세월호입니다.

진상규명은 저희가 했어야 되는데… 저희가 학생이고 그러다 보니까 부모님이 대신하는 거였지. 그 일은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126쪽)

물론 부모님들은 저희가 더 힘들까봐 걱정하셔서 일들을 부모님 선에서 끝내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지금도 힘든데 더 힘들지 않길 바라니까. 하지만 나중에는 저희가 할 꺼 아니에요. 저희가 직접 가서 해야 되는 일이면 해야 되는 것 같아요. 당사자인 저희가 직접 얘기하는 게 그 영향이 크니까 더 나을 수도 있죠.(192쪽)

제가 이 사건을 겪은 거고 진상규명도 다 친구들 일이잖아요. 제 일이고 친구들 일이잖아요. 친구가 죽었는데 저희는 이유도 모르고,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고 너무 이상한 게 많아요. 이거에 대해 밝히는 건 당연히 저랑 관련되어 있잖아요. 당연히 진상규명하는데 같이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오래 걸리더라도…(239쪽)

꺼내기 몹시 어려운 이야기지만 솔직히 말해서 세월호 참사의 ‘당사자’는 누구일까요? 희생자와 생존자일까요? 아니면 유가족 또는 ‘생존 학생’의 부모와 형제자매일까요? ‘생존 학생’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며, 가해자는 더더욱 아니며(살아나온 거는 우연이고 ‘나만 살아야지’ 이렇게 나온 게 아니니까. 258쪽), 생존자로서 참사의 당사자이며 해결의 주체가 아닐까요?

설령 부모라 하더라도 그 권리를 결코 ‘대리’할 수는 없으며, ‘피지배자들의 해방은 오직 그들 자신에 의해 쟁취될 수 있다’는 말처럼 세월호 참사는 당사자의 싸움에서부터 오롯이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모님은 연대의 주체가 될 수는 있어도, 당사자의 권리마저 가져갈 수는 없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유가족으로서 부모가 권리를 갖는다면, 유가족으로서 형제자매가 권리를 갖는 것 역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부모님의 피맺힌 심정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어떻게 한 자식은 세월호에 두고, 나머지 자식은 세월호 없는 곳에 둘 수 있을까요? 부디 형제자매들의 권리를 살펴주세요.

지금 (내게는) 나라가 적인데 나를 지킨다고 이러고 있으니…(279쪽)

그래서 어떤 형제는 애도의 과정을 밟지도 못한 채, 아니 유가족으로서 정당한 분노마저 표출하지 못한 채, 그 상황에서 부모님의 뜻에 따라 부모님을 위해 바로 군대에 가야하지 않았을까요?

부모는 또는 유가족 부모는 언제나 옳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는 이 땅 그 어느 곳에도 무염(無染)의 ‘신성 가족’이란 없다는 사실을, 심지어 피 흘려 싸우는 유가족 부모라고 하더라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용기 있게 밝히고 있어요. 부디 가만히 있지 않으려는 이 작은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격려해 주세요.

어쨌든 손에 쥔 것을 놓아야지 또 새로운 걸 쥘 수 있잖아요. 쥐고 있는 게 썩어 문드러져 가는데 계속 쥐고 있어봤자… 또 새로운 걸 집으면 돼.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그랬더니 미련이 없는 거예요. 정말 새로운 사람을 많이 알게 되었고, 많이 배웠고, 그게 달라진 거예요. 제가 이후에 뭐가 더 달라졌냐 하면 더 넓은 걸 보게 된 거죠.(328-329쪽)

여기저기 다니면서 몸소 겪으며 어떤 식으로 되는지 알아가자는 마음으로 계속 활동했어요. 유가족이라고 해도 세월호에 대해서 다 알지는 못하니깐. 어린 나이이기도 했고. 그때 아픔을 잘 견뎌서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296쪽)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면서도, 어쩌다 어른인 우리는 여전히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만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요? 권력이 쥐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싸워야만, 이미 쥐고 있는 것들을 놓아야만,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니들이 뭘 알아? 내(새끼) 일은 내가 제일 잘 안다’라는 다급함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었던 건 아닐까요?

근데 모인 우리끼리 낸다고 이게 형제자매 모두의 성명서는 아닌 거잖아요. 그래서 연락망을 다 동원해서 접촉을 한 거죠. 그런데 부모님들은 그리 반기지 않으셨어요. 저희가 뭘 나선다는 것 자체가 걱정되셨던 거예요. 형제자매들 얼굴이 나오는 게, 이미 아이를 하나 잃었는데 아이를 하나 더 잃는 기분이 드신 거예요.(330쪽)

우리 형제자매들끼리 얘기했어요. 416협의회 같은 곳처럼 대표가 있으면 안 된다. 시간이 흘러도… 아무튼 지금은 아닌 거예요. 시행령 성명서를 낼 때는 제가 주로 했었죠. 이번 교실존치 문제는 다른 형제자매가 주가 되어서 기자회견도 했고요. 또 다음에 어떤 문제가 터지면 그때는 다른 형제자매를 주축으로 하는, 그런 식으로 가려구요. 전체의 얘기가 되어야지, 소수에 집중되고 결정이 되면 안 되는 거죠. 형제자매는 너무 상황도 다르고, 다른 생각도 너무 많아요. 부모님들은 어느 정도 비슷해요. 일하다가 그만두셨고, 활동하시거나 아니시거나. 우리는 나이도 제각각이고 상황이 너무 다르니까 하나의 얘기가 될 수 없는 거예요. 제가 얘기하는 게 형제자매 전체의 얘기가 될 수 없는 거예요. 부모님들은 그게 가능할지 몰라도. 그래서 저희는 대표를 두지 않기로 결정했어요.(332-333쪽)

대표를 뽑는 게 대의(代議) 불충분할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세월호를 통해 뼈저리게 겪은 것처럼, 대의 불가능한 무도한 세력이 모두의 대표가 되었을 때 정치가 어떻게 실종되는 지를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대의제 바깥에 버려져서 ‘대의되지 못한 존재들’인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들과 똑같이 대표를 뽑아야만 하는가를 묻고 있을 뿐입니다. ‘생존 학생’과 형제자매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전혀 새로운 걸 손에 쥐고 싸우려 하는 건 아닐까요? 원래 민주주의의 어원이 ‘대표 없음, 중심 없음'(Anarchos)인 걸 경험과 상상력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것은 아닐까요?

‘엄마아빠의 동료가 되어 진실에 다가가겠다.’…… 높으신 분들, 종편방송들은 이렇게 괴롭히면 언젠간 우리 부모님들이 보상금 받고 떨어져나갈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동료’라고 한 것은 이게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었어요. 정치권의 임기는 몇 년이지만 세월호 형제자매라는 이름의 임기는 죽을 때까지니까.(333쪽)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는 직접 행동을 가리키지 않을까요? 그 힘이 깨지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의 적대와 모순을 질서와 위계에 따라 슬쩍 봉합하지 않고, 슬픔을 공유하는 동료로서 함께 어깨를 걸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동료로서…(암튼 책임져야 할 것들… 니들 큰일 났다. 종신 임기다. 우리도 그 동료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또 다르게 읽어보세요

이 책은 어떻게 채굴하느냐에 따라 아주 다른 광물을 내어놓는 다채로운 광산에 비유할 수 있어요. 각자 자기 필요에 따라 다르게 읽을 수 있지만 이런 방법으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또 다른 방법을 찾은 분들은 주저 말고 작가단에 연락 주셔도 좋겠지요.^^

1. 생존자와 유가족에게 상처주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방법

하루가 멀다 하고 참사를 쏟아내는 참사공화국에서, 어떡하면 생존자나 유가족에게 상처 또는 혐오발화를 던지지 않고 대화할 수 있을까요? 어떡하면 타자에 대한 윤리를 견지하면서 배제된 이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요? 책 곳곳에 ‘생존 학생’과 형제자매들이 알려주는 ‘꿀팁’이 숨겨져 있어요. 이왕이면 괜찮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지요? “단원고 가까워요?” 같은 숭고한 표현에서부터 ‘그냥 들어준다’는 가장 어려운 방법까지 보물찾기를 즐겨보세요.

2. ‘성별’에 따른 서사의 차이가 있는지 비교하며 읽어보세요.

한 명의 ‘성인 남성’이자 남성 젠더 질서 속 ‘현재적 가해자’인 제게는 안타까운 부분이 있는데요. 구술의 과정에서 생존 남학생․형제들이 생존 여학생․자매들보다는 비교적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거나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한국사회의 젠더질서가 여전히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다시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데, 이런 차이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 양동훈(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 <오마이뉴스> 1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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