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여덟 살이 주인공이 되는 세상을 꿈꾸다

앨리스는 흰 토끼를 따라 커다란 토끼굴 속으로 쏙 들어갔어요.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일찍이 150여 년 전에 루이스 캐롤은 말했다. “사랑하는 앨리스야. 네가 사는 이 세상은 미치광이 같은 어른들로 가득한 ‘이상한 나라’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책 언니가 첫 번째 책으로 택했던 것은 순전히 캐롤의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학 오타쿠 아저씨의 난해한 언어유희와 한물간 유머로 가득한 요 따위 책을 뭐 하러 골랐겠는가. 나날이 노화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어른(꼰대)이 띠꺼운 책언니1인 엠건에게 있어, 본인도 난생 처음 제대로 읽어 본 ‘앨리스’는 파면 팔수록 더 원더풀해지는 책이었다. 원더랜드! 그것은 시궁창 같은 현실의 다른 이름이렷다. 책언니의 첫 번째 테마는 그리하여 ‘인문학 토끼굴’이 되었다.

올해 2월 시작된 ‘여덟 살 인문학 책 읽어주는 언니’ 를 통해 우리는 ‘아이들의 세상’ 이라는 토끼굴에 뛰어들었다. 세 달이라는 시간을 겪으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여덟 살 인간들을 조금은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여덟 살을 잘 만나는 방법이란 게 도대체 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잘 못 한다. 좀 많이 어설프다. ‘인문학 토끼굴’이긴 한데 공부를 많이 안 해서 인문학도 잘 모르고, 그렇다고 애들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재미있게 해주지도 못 한다. 이 말이 맞는 건지, 이 프로그램이 맞는 건지, 애들이 대충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며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줄기차게 멘붕하고 있다. 6회로 짜인 매뉴얼을 기본 세 번, 네 번씩은 뜯어고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소개할 ‘지각대장 존’ 역시 그렇게 하루 전날, 이전에 짜둔 것들을 다 엎고 새로 만들어낸 것이다. 다음에 또 바뀔지 모른다. 불안정한 프로그램이라는 소리다. 그래도 ‘책언니’의 방향과 가장 맞닿아 있는 것 같은 텍스트는 아무래도 존인 듯해서 (포켓몬스터의 지우 버전) “너로 정했다.”

지각대장 존 동화책 표지
존은 사자를 정말로 만났을까?

책언니를 준비하면서, 나는 정말이지 난감했다. 애초에 그림책을 모르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우리 엄마가 사준 건 위인전 전집이었다. 앨리스와 피노키오를 빼면, 우리가 이번에 고른 그림책은 ‘종이봉지공주’, ‘고함쟁이 엄마’, ‘지각대장 존’ 의 세 권이다. 다들 그림책계에서 알아주는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애들 만나서 물어보면, 안 읽어본 애들이 거의 없다. 나는 어릴 때 뭘 했는지 모르겠다.

유명한 만큼 이 책들을 읽는 정형화된 방식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 정형성은 “겉모습보다는 마음이 중요한 거야.” 등의 교훈 조를 띄고 있고, 책언니에서는 그것들과는 다른 색깔과 맥락으로 텍스트를 읽어내고 싶었다.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 은 매일 지각을 하는 한 아이와 선생님에 관한 얘기다. 아이는 아침마다 악어나 사자를 만나느라 지각을 하게 되고, 선생님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면서 아이에게 벌을 준다. 마지막 장면, 고릴라에게 붙들린 선생님의 구조요청에다 대고 ‘우리 마을에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하고 무시하고 지나가는 존의 모습이 통쾌함을 안겨주는 원더풀한 동화다. ‘존’에서 처음 주제를 잡았던 건 ‘아이들의 상상세계, 권위, 금기(하면 안 되는 것들)’의 세 가지 키워드였다. 진행하면서 후자를 덜어내고 전자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성미산 학교에서 처음 만난 여덟 살 애들이랑 ‘존’을 읽을 때 그런 대화를 했었다. “존은 사자를 진짜로 만났을까?” “반은 진짜고, 반은 가짜야. 사자는 만났는데, 바지는 나뭇가지에 걸려서 찢어진 거야.” 여덟 살 애들은 존이 만난 사자와 악어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저 짐작만 했던 ‘상상 세계’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우리가 생각한 이 책의 핵심이 뒤바뀌었다. 애초에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 아이들을 무시하는 선생의 권위주의였고, 이를 주제로 내가 믿는 것들을 부정당한 경험들을 나눠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존’에서 작가가 다루는 것이 비단 이런 수동적인 차원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은 ‘이 마을에 고릴라 따위는 없다’며 선생을 지나쳤지만, 실제로는 고릴라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존은 여전히 고릴라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다만 어른들이 자신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를 했을 뿐이다.

존의 프로그램: 세상을 다르게 본 사람들, 마이 로망 스쿨

‘지각대장 존’은 크게 2가지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세상을 다르게 본 사람들’ 에 관한 이야기다. 피피티(프레젠테이션, PPT)를 보면서 수다를 떠는데, 준비한 이미지들이 워낙 신기해서 시선은 일단 끌 수 있다. 빛으로 흐려진 고흐의 그림, 꿈을 꾸는 것처럼 세상을 보는 달리의 그림처럼 같은 사물을 규칙 바깥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사람들을 보여주고, 책 내용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존은 사자를 만났을까?”를 물어보는 흐름이다. 두 번째 프로그램의 이름은 ‘마이 로망 스쿨’ 이다. 존이 다니는 저딴 학교 말고 우리가 다니고 싶은 학교를 우리가 만들어보자는 식으로 애들을 부추긴다. 그러면 이야기 지겹다고, 빨리 밖에 나가서 놀자고 책언니 팔을 흔들어대던 애들이 다시 귀가 쫑긋한다. 학교 만들기에는 5가지 미션이 있다.

1. 우리 학교의 이름 짓기
-> 내가 만든 이름으로 정하자고 한 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2. 역할 정하기
-> 여기서부터 재밌어진다.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하고 싶은 역할을 하자고 했더니, 다섯 명 있던 애들이 전부 선생님 역할로 몰렸다. 책언니 두 명은 학생이 되었다. 애들은 자기들끼리 교장, 교감까지 나눴다.
3. 하고 싶은 수업 10개 정하기
-> 춤, 노래, 낮잠, 소풍, 요리, 또 뭐가 나왔더라.
4. 하루 시간표 만들기
-> 1교시 책 읽어주기, 2교시 달리기, 3교시 강남스타일 춤 배우기, 4교시 요리(간식으로 있던 칠레포도를 마저 먹었다)의 순서로 진행 됐다.
5. 우리 학교 다니기 (1교시 당 5분씩, 20분 동안 4교시를 체험한다)
-> 애들이 생각보다 뭔가를 가르쳐주는 일을 굉장히 좋아했다. 덕분에 박치였던 나는 강남스타일의 박자감을 제대로 마스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달리기를 잘하려면 다리를 이렇게! 이렇게! 찢어야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모두들 선생 역할을 한다는 사실 자체로 재밌어했고, 자기가 교장이라면서 다른 아이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선생들 관리를 하는 남자애도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반전은 마무리에 있는데, 그렇게 재밌게 놀던 애들이 프로그램을 끝내고 “이런 학교가 있으면 다닐 거야?” 라고 물어봤더니 싫다고 대답했다. 이유인 즉, “이런 게 무슨 학교야”, 우리가 만든 건 학교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이 있다. 거인은 한 번씩 눈을 깜빡일 때마다 백가지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마을에 내려온 거인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보는 백 가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사람들은 거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거인은 “그런 건 세상에 없어” 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하나씩, 하나씩 제 눈을 감게 되고, 그에게는 결국 보통의 사람들처럼 두 개의 눈만이 남게 된다. 첫 번째 프로그램과 두 번째 프로그램 사이, 최종 마무리 시간에 애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다.

일곱 살, 나는 산타를 믿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졸린 눈을 비비며 배게 위에 투명글씨로 “산타할아버지, 저는 이런 선물을 받고 싶어요.” 정성스럽게 써놓고 자고는 했었다. 산타가 없다는 건 그 당시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산타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베개에 편지를 써놓고 자야만 했다. 왜? 산타가 왔다가 그냥 가버리면 안 되니까. 여덟 살의 시선이란, 대충 이런 식인 것 같다. 말은 안 되지만 본인에게는 절실한 수많은 진심들.

여덟 살(아동)의 ‘다름’이란 건 어떤 영역일까? 초등학교 3,4학년만 되도 애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어른이 된다. ‘사회의 상징체계에 진입하기 이전의 존재‘ 라는 가정으로 여덟 살을 소환했지만, 그 아이들도 자기들 맘대로 노는 곳은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늦은 걸까. 애초에 ’다른 존재‘가 다르게 남을 수 없는 게 사회인걸까. 우리가 요즘 만나는 애들은 몇 개의 눈을 가지고 있을까?

 

여덟살들과 동화로 교육하기

아이들과 책을 읽는 모습

 

피노키오는 사람이 아니다

‘지각대장 존’은 어른들의 세계를 가르치는 동화가 아니라 아이들의 시선을 따르는 동화다. 동화들을 여러 권 찾아보면서 전자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동은 ‘사회적 약자’ 의 대표적인 표지이지만, 정치적인 의미에서 소수자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아동의 시선은 흔히 ‘동심’이라는 이름 아래 낭만적으로 치장되어 수용된다. 그것은 ‘아직 뭘 모르는’ 아이들의 귀여운 환상일 뿐이고, 이성적인 세계관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삭제 당한다. 별로 어려운 얘기는 아니다.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그건 다 어린애 장난 같은 헛소리니까. 피노키오는 파란요정의 인정을 받아 인형에서 진짜 아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아니다.

인문학이나 인권이나 일단은 비슷한 거라고 여기고 하고 있다. 여덟살 인문학은 ‘아동’이라는 약자를 만나는 일이자, 그 만남을 통해 여덟살의 편이 되는 일이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그들 일상의 억압과 부조리를 밝혀내고, 발언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이만 쓰고 내일 있을 책언니를 준비하러 가야겠다.

* ‘책 읽어주는 언니‘는 교육공동체 나다 에서 올해 첫 발을 뗀 새로운 프로젝트입니다. 기존에 진행되었던 청소년 위주 강좌에서 폭을 넓히며,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여덟 살 아이들과 동화책을 매개로 한 인문학 수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20대 초반 두 언니가 ’책 언니‘가 되어 수도권 방방공공을 떠돌며 여덟 살 친구들을 만나고 있답니다!

-글쓴이: 엠건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

– 출처: 인권오름 제 346 호 [기사입력] 2013년 05월 21일 23: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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