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잃어버린 끈을 찾아서
천안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인권교육

※ 글을 쓰면서 교육참여자 특성에 따른 고민들을 이야기하다보니 계속 노인, 장애인 당사자로 집단정체성으로 표기하게 되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불편한 표현이라 여기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해 이렇게 머무른 점 양해바랍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전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권교육 진행할 때 주요하게 체크하는 것 중 하나가 교육참여자 특성이다. 참여자들이 인권교육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부터 인권교육에 참여하게 된 동기, 현재 종사하는 일과의 관련성, 이전에 인권교육을 접해본 경험은 있는지 등에 따라 인권교육의 목표와 진행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라는 동일한 집단처럼 일컬어지는 경우에도 저학년과 고학년을 함께 인권교육으로 초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같은 사회복지사라 하더라도 일하는 곳이 생활시설인지 이용시설인지에 따라 참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과 고민이 다르다. 무엇보다 인권교육이 참여자들의 경험과 현재 발딛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더욱 참여자 특성을 꼼꼼하게 확인하게 된다.

교육참여자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나?

지난 4월 천안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으로부터 노인, 장애인 인권교육 요청이 왔다. 시민모임은 천안지역의 15개 복지단체와 함께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를 구성, 사회복지사업 및 관련 정책을 점검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의 회원과 재가서비스를 받고 있는 노인 당사자분들을 함께 교육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일단은 어렵겠다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너무나 다른 조건의 사람들이라는 판단에분반을 요청했는데 담당자는 ‘사회적 약자로서 처하신 상황이 그렇게 다르지 않아요.’라고 했다. 노인 당사자에 대한 교육경험이 많지 않은데다가 더구나 인권교육경험이 전혀 없는 어르신들이라니 일단 어떻게 ‘인권’의 문을 열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거기 이런저런 활동경험이 있는 장애인 당사자가 함께 한다고? 불가능하다고 마음을 먹는 차에 다른 활동가 역시 ‘장애인, 노인은 우리사회 소수자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주니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나 싶었다. 나의 얇은 귀가 팔랑거렸다. 너무 쉽게 포기하려 한 것 같다는 반성(?), 연대나 타인에 대한 이해가 교육의 현장에서 차이를 넘어선 공감과 이해로 확인할 수 있다면 아니 지금까지 내 삶에 없었던 존재가 성큼 내 안으로 들어온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다.

천안복지세상 인권교육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기

마음 한켠의 불안을 어루만지며 교육장으로 들어섰다. 같은 단체에서 온 분들끼리 홍해처럼 갈라져 앉아계셨다. 어르신들은 두 모둠으로 나뉘어있던 책상을 한 모둠으로 만들었고 장애당사자분들은 두 모둠으로 나누어 앉은 상태였다. 일단은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기소개를 해보도록 했다. 누구누구 엄마, 무슨무슨 댁으로 불려왔던 분들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도 쑥스러워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교육’의 공간에 초대되는 경험도 거의 없었던 탓에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이야기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같은 단체에서 오신 분들의 소개에는 관심을 보이는 듯했지만 다른 단체 분들의 소개로 넘어가면 서로에게 소홀해진다. 서비스에 의해 프로그램화된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하나의 프로그램일 뿐 말을 걸어볼 타인도 되지 못했다.

교육이 2회에 걸쳐 진행되는 만큼 일단 첫 번째 교육시간의 목표는 인권을 부담없이, 편하게! 였다. 그래서 두 번째 시간은 ‘아, 내 이야기구나. 우리네 사람살이구나’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와 내 삶을 슬쩍 다르게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르신들도 관심을 가지실만한 이야기인 ‘심청전’ 어린이 그림책 버전을 PPT로 준비해서 나름 구연동화처럼 읽었다. “그런데 왜 심청이는 동냥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심청이가 사람대접 받으면서 살라면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시각장애인이 살기에 불편함이 없는 세상이었어도 심청이가 자신의 생명까지 던져야 했을까요? 만일 심청이가 여자가 아니라 사내아이였어도 재물이 되었을까요?” 이야기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장애인 당사자분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반해 어르신들은 생경한 표정이었다. 다만 지극한 효심을 가진 심청이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에 조금 흥미를 보이셨다. 심청이가 사내아이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에는 무릎을 치시며 동의를 표해주시기도 했다. 그림책으로 입트기를 한 후 심청이의 힘든 삶처럼 일상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크고 작은 일들로 이어갔다.

“버스가 저 멀리 서 가지고는 타려고 가면 그냥 가버려. 인제 늙었다고 안태워줄라고 그러지”
“버스가 인도에서 멀리 섰을 때 휠체어 이용자들은 접근하기 힘들고, 타려고 하면 그냥 가버리기도 해요. 사실 저상버스도 거의 없어서 이용하기 쉽지도 않아요.”
두 참여자 그룹 간 연결고리가 만들어진 듯했다. 차별상황이 특정 그룹이나 집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임을, 어디서 이런 유사한 경험들이 연유하는지 서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려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여자라서 남자형제에 비해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혹은 신체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유로 비생산적인 사람으로 취급받는 현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일을 하고 싶어도 능력을 의심받는 상황들이 닿을 듯 이어지다 밀어내곤 했다. 당연하게 여기거나 혹은 억울하다고 생각했더라도 쉽게 부술 수 없었던 그 질서들은 분노보다는 ‘그땐 다 그랬어’로 흡수되었다. 반면 장애인 당사자분들은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요구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어르신들은 조금씩 입을 닫기도 했다. ‘이제 뭐 우리야…’라는 체념이 이어지기도 했다.

‘인권교육의 목표는 자력강화인데…’ 이번 교육만큼 교육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진행하곤 하는 ‘인권교육의 원칙과 방법’을 되새긴 적도 없는 것 같다. 자력강화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자신을 보듬어 안을 수 있을 만큼의 힘 혹은 ‘그래도 말야~’라며 깊숙이 감춰졌던 나만의 무엇을 만날 수 있어야 하는 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아니 최소한 그래도 참여자들에게 ‘별 이상한’ 시간은 아니었겠지 라는 생각들로 내 머리는 한동안 롤러코스터를 탔다. 지나고보면 서로 다른 존재로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가 썩 나쁘지는 않았던거 같다. 다만 먼저 손 내밀 용기 혹은 말을 건넬 계기, 아니면 이미 이어져 있지만 잃어버린 우리 사이의 끝을 찾는데 우리 모두 서투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 | 묘랑(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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