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진’에서 살아남는 법
마음을 얻는 것의 중요함을 되새긴 공업교과 교사 연수

오들오들 떨었다. 연수가 있을 학교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교육을 가며 이렇게 긴장해본 게 얼마만이던가. 이 감정의 핵심이 설렘이면 참으로 좋으련만, 설렘이 아닌 두려움이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심장이 쿵덕쿵덕 뛴다. 오늘은 상처받는 날이겠구나,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러나 좀처럼 떨리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교육을 진행한 건 8월이었지만, 교육 의뢰가 들어온 건 어느 봄날이었던 것 같다. 눈앞에 놓인 여러 가지 일정들이 있으니, 석 달 뒤의 교육을 앞서 고민할 겨를은 없었다. 의뢰 전화를 받은 개굴의 전언을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변형해 들었던 것도 같다. 나는 학생인권에 관심을 가진 교사들이 모여 있는 연수에서 『인권, 교문을 넘다』 저자와의 간담회를 한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개굴이 알고 있는 교사 분의 추천이라고도 생각했었는데. 막상 교육을 준비하려 연락을 해보니 섭외 교사 분이 개굴의 지인도 아닐뿐더러, 이 연수는 그저 교과 연수였고, 한 사립 공업 고등학교의 50대 이상의 남교사 분들이 대부분 참여한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인권, 교문을 넘다』는 어느 정도 학생인권 담론에 익숙한 분들조차 ‘불편함’을 호소했던 책인데. 게다가 전문계 고등학교 교사 분들의 경우 학생 지도에 있어 더욱 보수적이라고 들었는데. 덧붙여 50대 이상의 ‘관록 있는’ 남교사 분들이 언뜻 보기에 20대로 보이는 ‘앳된’ 여성 강사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기라도 할 것인가 말이다! 그래도, 뭔가 관심이 있으시니, 쏟아져 나온 책들 중에 이 책을 고르신 건 아닐까 하여, 섭외 교사 분께 (내가 진행할 교육) 전 날 이루어진 참여자 자체 독서 토론 결과를 여쭈었다. 음… 아주 격한 토론이 이루어졌다고. 이런 책이 어디 있냐고 성을 내시며, 강사 오는 날만 기다리고 있겠다는 분도 있었단다. 음…음…음ㅠㅠ

교육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 두려움의 실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 공업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대략의 정서를 물어봤다. 실험이나 실습 때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한 경계가 심하다보니 아무래도 학교 분위기를 더 잡으려는 경향이 있다, 교과 전문성이 강조되다보니 학생 인권 등 교과 밖 의제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교사를 별로 본 적이 없다 등등 친구도 함께 한숨을 쉬며 교육의 어려움에 공감해주었다. 두려움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이야기를 건네야 할지는 조금 더 윤곽이 잡혀왔다. ‘적진’에 홀로 뛰어드는 이름 없는 병사가 된 것 마냥 심지어 비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구분하려 애썼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 잘 전하고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은 실패담이 아닌 나름 성공담이다.

위치를 선점하기

“○○선생님, 앞자리에 앉으셔야죠. 그래야 강사 분께 많이 얘기 하죠.” 강의실 안에 들어와 있는 나를 보자 한 참여자 분이 살짝 비꼬는 목소리로 전쟁을 예고하신다. 마음은 떨렸지만 살포시 웃음을 띠우며 나 역시 “이 교육에서는 말씀 많이 나눠주시는 것이 좋아요. 앞 쪽으로 와주세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강사와 참여자 사이에 긴장이 빤히 흐르는데, 그것이 없는 것 마냥 이야기를 건네는 게 더욱 어색할 것 같아 이를 인정하고 교육의 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내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고백하는 한 편, 우리가 나눌 이야기가 어떤 역사적 맥락 위에 서있는 것인지 말씀 드렸다.

“이제 곧 개학인데, 개학이 기다려지시나요? 저도 잠깐 교사를 한 적이 있었지만, 휴일이 시작되는 금요일만 기다렸습니다. 교사가 되어 학교로 돌아갔지만, 학교생활이 쉽지 않았어요. 내가 왜 그랬을까를 고민하다 지금은 이렇게 교사나 학생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건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 지금 엄청 떨고 있는데요.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이 저와, 그리고 제가 함께 쓴 책에 반감을 많이 갖고 계시다고 미리 들었어요. 토론 내용도 미리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요, 쌤들. 여성의 투표권이 받아들여진 것이 언제인 줄 아시나요? 불과 150년 전이었습니다. 지금은 여성이 대통령도 하지만,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한 최초의 여성은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노예해방은 어떤가요. 많은 흑인들이 재판도 받지 못하고, 사적인 린치를 당해 죽어갔습니다. 일제 때 독립과 해방을 외치면 고문에 시달려야 했고요. 누구에게나 인권이 있다는 말이 당연하듯 쓰이지만, 저는 이 말을 싫어해요. 그런 적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다만, 인권의 무대에 기어오르려 안간힘을 쓴 사람의 역사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보다 교육 방식이 낫다고 이야기되는 북유럽의 나라들.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바꿔내는 데 80년 넘게 걸렸다고 하잖아요. 프랑스에는 지금 ‘두발자유’라는 말이 아예 없지요. 규제가 없는 것이 당연하니, 두발자유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고, 이미 60년대에 두발이나 복장 문제를 청소년들이 제기하고 바꿔낸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남아있는 문서들 보면, 요즘 등장하고 있는 우리 학생인권조례랑 되게 비슷해요. 이런 이야기 불편할 수 있습니다. 익숙한 것을 건드리기 때문에 당연히 불편하지요. 그러나 제가 앞서 이야기한 역사들이 그러한 것처럼 극단적이거나 편향적이거나 어이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오늘 선생님들을 ‘불편함’으로 초대하려고 해요. 불편하지만,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치만, 불편함을 제가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너무 불편해서 몸과 마음이 아파지려 하시는 분 있으면 학생들처럼 언제든 ‘양호실 찬스’ 쓰셔요. 자발성 없는 교육은 병만 키우니까요.”

몇몇 분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몇몇 분들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신다. 어쨌든 처음에 나를 마주하셨던 그 표정들은 아니시다. 이 자리가 ‘교사들을 까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역사적 흐름의 한 점에 위치한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 이 분들의 긴장을 조금은 완화시키는 효과를 낸 것 같다. ‘저 사람 뭐지?’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불편하고, 듣기 힘들면 강의실 밖으로 나가도 된다니. 이 부분에 공감한 분들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슬며시 미소 지으신 분들의 얼굴은 따로 기억도 해두었다. 이 험난한 교육의 여정에서 어느 순간 나를 도와주실 잠재성을 가진 분들이시니까!

공통의 감정 발견하기

공업교과교사연수
참여자에 따라 교육의 목표는 달라지게 마련이고, 이날 교육의 목표는 ‘쟁점’을 충분히 다루는 것이 아니었다. 쟁점의 목록을 나열하고, 논리를 벼르는 순간 정말 ‘전쟁’이 될 수 있으며, 이런 순간 ‘참여자 다수 VS 강사’의 대격전이 오가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최소한의 목표치로서 이 분들의 ‘마음은 얻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교육이 끝난 후, 논리가 남는 것이 아니라 우호적인 마음이 남길 기대했다. 프로그램 설계도 이에 맞춰서 참여자들이 충분히 이야기를 토해낼 수 있도록 배치했다. 감정과 경험의 언어가 이 시간을 채울 수 있도록.

파워포인트 화면에 감정 단어들을 제시하고 ‘학교는 ○○이다.’를 채워보기로 했다. 다른 교사들이 있는 상태에서는 자기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으시는 교사 분들이 많기 때문에, 익명성을 보장해 간단히 쓰는 활동들을 배치했다. 쓱싹쓱싹. 종이를 빼곡하게 채워나가신다. “학교는 지긋지긋하다. 왜냐하면… 반복된 일과와 성과도출의 책임감 때문에. 그러나 학생들과 함께 할 때는 즐겁다.”, “학교는 불안하다. 지도, 상담, 면담할 때 과거에 없던 행동들이 없어야 하는데….”, “학교는 우울하다. 교육활동의 제약, 관리자 등등…”, “학교는 막막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인 것 같은 힘겨운 보람 없는 일상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학교는 편안하다. 방학 중일 때.”, “나에게 학교는 안쓰럽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무기력하고, 지루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는 고맙다. 학생들이 10년 뒤에 짜잔하고 연락할 때.”

하나씩 읽어 나가는데, 다들 적극 공감하신다. 학교생활을 하며 느끼는 이 보통의 마음들을 나누기 시작하니 뭔가 강의실 안에 공감대가 형성된다. 끄덕끄덕. 비슷한 활동을 학생들이 했던 예, 다른 학교 교사들이 했던 예들을 보여드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학생과 교사들이 학교생활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이 공통점. 뒤이어 간단하게 ‘학교’라는 장소에 대한 사유를 슬라이드를 보며 잠시 나눴다.

첫 번째 쉬는 시간. 처음에 날을 세웠던 게 내심 미안하셨는지 몇몇 선생님들께서 애써 간식을 챙겨주신다. 그리고는 관심을 보이신다. 무슨 과목 가르치셨냐, 우리는 공업 쪽이어서 말하고 글 쓰는 거 잘 못한다, 우리가 그냥 낙서처럼 끼적인 건데 선생님한테는 그게 분석하는 강의 자료로 쓰이는 게 신기하다 등등 쉬는 시간에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 역시 한결 편안한 마음이 되어 다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경험을 성찰의 재료로 삼기

공업교사연수이어서 나눈 대화의 주제는 “교직생활의 파노라마”였다. 젊은 교사 분들도 몇 분 계셨지만,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15~20년 정도 교직생활을 하신 분들이었다.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반추해 학생들의 삶의 변화와 교육 불가능의 심화를 경험적으로 도출해보고 싶었다. 더불어 교권의 문제를 ‘교사 VS 학생’ 구도를 넘어서 더 넓고 깊게 생각해보기 위해 관리자, 동료 교사와의 관계까지 포괄해 경험을 적어 보기로 했다. ‘교사가 되길 잘했다’고 느꼈던 순간 (노란색), ‘교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느낄 만큼 바닥을 쳤던 기억 (파란색)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나 역시 이 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딱 보기에도 노란색 종이보다는 파란색 종이가 훨씬 많이 나왔다. 어떤 분은 노란색 종이에 ‘교사가 되길 잘했다고 느낄 때는 별로 없다. 현재까지는.’ 이라고 적어주시기도 했다. ‘교사가 되길 잘했다’는 기억은 대부분 학생들과의 관계로 다뤄졌다. ‘부적응 학생이 나를 만나 달라졌을 때’, ‘일탈했던 학생들이 성공한 다음 학교로 다시 찾아왔을 때’와 같은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학교는 어떤 학생들을 자랑스러워하는지 부적응과 일탈의 의미를 되묻기도 하고, 학생들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계기, 예전에는 먹혔으나 지금은 절대로 먹히지 않는 방식 등을 서로 이야기했다. 파란색 종이에는 ‘타당하지도 합당하지도 않은 학교 정책 및 교육 정책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을 때’, ‘학교에서 부당하게 또는 능력 밖의 업무를 요구할 때’, ‘올바른 요구를 관리자가 무시하고 지나쳐버릴 때’ 등처럼 교육 시스템 전반 혹은 관리자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가장 많이 나왔다. ‘우리 집 아이들이 아픈데 기관에 밀어 넣고 출근해야 할 때’,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든데 학교 애들이나 집에 애들도 날 힘들고 지치게 할 때’와 같이 여성이자 동시에 교사로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한 쪽지도 있었다. 학부모의 몰상식한 협박이나, 학생을 지도하다 의도치 않게 상황이 악화되어 ‘엉망진창’이 돼버릴 때의 힘겨움도 등장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느껴질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핵심적인 질문들을 나누고 생각의 물꼬를 다른 방식으로 터보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이야기를 유심히 듣는데 집중하던 한 분이 “그런데, 학교가 늘 혼란스럽기만 할 수는 없지 않나. 화학에서 엔트로피라는 개념이 있는데, 무질서를 질서로 만들려면 힘이 필요하고, 말하자면 그게 교사의 역할이지 않나?”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이 분의 질문을 바탕으로 질서와 통제의 연관성, 새로운 질서를 다시 만들어가는 데 수반되는 혼란에 대한 긍정, 옛날의 질서를 되풀이하는 방식으로는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선택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해볼 수 있었다. 교육 시간을 30분 남겨둔 상태에서, 교육 속에 온전히 잠겨 한껏 집중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뿐만 아니라 강의실이 어떤 에너지로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 쉬는 시간. 한 분이 다가오시더니 자기 고백을 시작하신다. 우리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군대처럼 학교생활을 했다고. 그래서 늘 굳어있는 상태로 살다보니 유연해지질 않는다고. 오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고. 이 분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나 역시 흔들린다. 오늘의 시간이 아주 헛되지는 않았구나.

대화적 대화의 가능성

마무리 강연을 앞두고, 다른 연수 과목들은 다 30분씩 일찍 끝내줬다며 한 분이 웃으며 농을 치신다. 옆에 계신 분이 그래도 재밌으니까 조금 더 이야기 들을 수 있다며 나를 거들어 주신다. 또 다른 한 분은 졸음이 온다고 세수를 하고 오겠다하시고. 아니, 이 무슨 훈훈한 풍경이란 말인가! 감격이 밀려온다. 그리고는 비로소 내가 가져온 이야기들의 일부를 이 분들께 전한다. 이러한 진지함을 나누게 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들’ 상임활동을 시작하고 초반에는 어딜 가든 싸움을 붙이려 노력했던 것 같다. 뭐, 무턱대고 들이댔다기보다는, 나름 체계성 있는 근거들로 참여자들을 설득하려 노력했고, 그러지 못한 날은 뭔가 내가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아닐까 자책하기도 했다. 교육 경험이 쌓일수록 느는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인 것 같다. 인권교육은 교육가의 자세로서 늘 말하기보다 듣기를 강조해왔고, 어떻게 들을 것인가가 프로그램 설계의 핵심을 이루기도 한다. 그런데, 말이 쉽지, 잘 듣는다는 것이 참 녹록치가 않다. 리처드 세넷은 『투게더』의 서론에서 “관찰하지 않는 사람은 이야기를 잘할 수 없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청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좋은 청자는 누군가의 발언만이 아니라 침묵까지 파악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더 협동적이며 더 대화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길이라고. 그러나 여기에만 멈춰서도 안 된다. 교육가가 참여자들에게 지나치게 동일시하고, 자아를 지나치게 깨트리면, 그것은 ‘힐링’의 화법에만 그치게 된다. ‘그래요…힘들지요?…우쭈쭈…’ 하는 것이 인권교육의 역할은 아닐 테니까. 관찰과 호기심, 그러나 적절한 긴장. 좋은 대화 혹은 좋은 교육이 있다면, 이 세 가지의 변주를 충실히 해내는 것이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3시간 정도의 연수로 참여자 분들이 얼마나 다른 학교생활을 하게 되실지 알 수 없다. 다만 ‘학생인권’이라는 말이 등장할 때 부르르 치를 떨기보다는, ‘그래, 연수 때 이런 얘기도 했지.’ 라며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기를. 너무 착한 마음인가, 싶기도 하지만. 마음을 얻는 것이 모든 운동의 시작은 아닐까.
†정리 | 한낱(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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