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이게 무슨 ‘일’이야?
청소년 인문학, 노동인권을 고민하다

최근 청소년 인문학 아카데미에서 노동인권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두어 차례 있었다. 교육에 참여한 중고등학생들은 아르바이트 경험도 없고 단기간 내에 아르바이트를 할 예정인 이들이 아니어서 청소년노동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의 교육과는 다른 내용을 준비해야 했다. 내 이야기도 아니고, 또래의 청소년들이 흔히 겪는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라……. 청소년들에게는 다소 멀게 느껴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면 좋을까. 부모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개방할 것 같지 않고, 노동자들의 힘겨운 현실을 줄창 늘어놓고 노동인권이 중요하다는 얘기만 하고 돌아오고 싶지도 않은데… ‘나는 노동자가 안 될 건데요?’ ‘왜 우리가 그 이야기를 알아야 해요?’ 이런 의문을 가진 청소년들도 당연히 있을 텐데, 노동과 자기 삶이 연결된 지점을 어떻게 발견하도록 도울 것인가. 그렇게 고민은 시작됐다.

날개 달기 – 좋은 직업이란 무엇일까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는 문구를 내세운 한 음료광고 장면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는 문구를 내세운 한 음료광고 장면

먼저 생각 트기를 위해 광고의 한 장면을 보여주며 ‘매일 떡이 되어 퇴근하는 직업’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질문을 던져 보았더니 다들 질색을 하며 고개를 절래 흔든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좋은 직업이란 무엇인지 다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어느 정도 돈은 벌 수 있어야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요.”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요.” “휴가 같은 게 많으면 좋겠어요.” “쉽게 잘리지 않는 직업이요.” “정규직이요.” “너무 힘들지 않은 일이요.”

대답을 해준 청소년들에게 다가가 얼마 정도의 돈을 벌고 싶은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보람을 느끼려면 어떤 게 필요할지 등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대개 청소년들의 바람은 소박했다. 그러나 이 소박한 바람이 현실에서는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에 가깝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채 그나마 조건 좋은 직업을 택하는 우울한 삶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직업의 조건이 누군가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거나 특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오늘의 주제인 노동인권’이라고 안내하며 본격적인 교육에 들어갔다.

더불어 날갯짓 1 – 으랏차차, 노동자의 권리를 상상해봐

이어서 으랏차차 당당한 노동을 위해 노동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인권을 구체적으로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냥 찾아보라고 하면 너무 단조롭게 나올 것 같아 ‘여러분들이 나중에 직업을 가졌을 때 매일 떡이 되어 출퇴근하지 않는 삶, 일회용품처럼 버려지지 않는 삶, 비굴하게 내 마음을 숨기지 않는 삶, 오늘 하루 어땠는지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는 삶’을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권리가 무엇일지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청소년노동인권
사람답게 존중받으며 일할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처럼 다른 모든 권리들을 포괄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준 이들도 있고, 최저임금/ 노동시간 제한/ 초과수당 지급/ 휴식 보장/ 산재보상 등 노동법에 보장돼 있는 권리들을 찾아준 이들도 있었다. 흥미로운 답변으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등장했다.

• 몸이 아플 때 ‘미안해하지 않고’ 쉴 권리
• 남들 밥 먹을 때 나도 밥 챙겨 먹을 권리
• 눈치 보지 않고 일할 권리 (상사 퇴근할 때까지 눈치 보다 나도 늦게 퇴근한다ㅠㅠ)
• 나가고 싶을 때 나갈 권리 (일을 그만둘 권리)
• 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권리
• 비정규직 고용 안 된다
• 상사에게 대들 권리

청소년들이 찾아준 권리들 중 흥미로운 것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이런 권리들이 보장되려면 어떤 뒷받침이 필요할지를 함께 찾아보았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직접 만나본 혹은 간접적으로 접한 노동자들의 사연을 덧붙이다 보니, 청소년들의 바람과 노동의 현실이 자연스럽게 만났다.

–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두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 사직서요.
– 그렇죠. 사직서는 내가 고용주의 소유물은 아님을, 당신이 나의 인신까지 속박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도구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사직서를 던지고 싶을 때 당당하게 던지려면 뭔가가 필요해요.
= 돈이요.
– 네. 실업기간을 버틸 수 있는 자원이 있어야 그만둘 용기도 실행에 옮길 수 있겠죠. 그래서 만들어진 게 실업수당 제도인데요. 그런데 현재 법에서는 스스로 그만두면 수당을 받을 수 없도록 돼 있어요. 굶어죽기 싫으면 직장이 아무리 싫어도 참고 일하라는 거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그럼 상사한테 욕해서 잘리면 되죠.
–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애초에 그만두고 싶을 때 당당하게 걸어 나오겠다는 나의 포부는 완전히 찌그러들 수밖에 없겠죠.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따지지 말고 실업기간 중 다음 직업을 찾을 때까지 실업수당이 제공된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법에 보장된 권리를 넘어 우리가 더 많은 권리를 상상하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부각됐다. 현재 법에 보장된 권리들도 예전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여겨졌을 테니까. 이어 청소년 아르바이트, 이마트 보수공사 중 사망 사고,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 등 청소년들에게 비교적 가까운 사건들을 중심으로 인권의 시선으로 일터를 바라보면 어떤 사연들이 새롭게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는지를 함께 나눴다.

청소년노동인권
더불어 날갯짓 2 – 학습노동자, 학교에서는 안녕한가

교육 후반부에는 학교와 노동의 연결 지점을 함께 살펴보고자 했다. 교사나 학교 비정규직의 노동 이야기를 다룰 수도 있겠지만, ‘학교에서 노동과 관련한 어떤 태도를 배우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찾아준 노동자들의 권리를 학교에서는 제대로 누리고 계십니까? 여러분도 학습이라는 노동을 하고 계신데, 노동자들과 다른 점은 보상을 받는 게 아니라 아예 돈을 내면서 노동을 한다는 것이잖아요?”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다들 재미있는 질문이라고 여겼던지 이내 학교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근로시간은 법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왜 학습시간을 규제하는 법은 없느냐(물론 근로기준법이 잘 지켜지진 않지만), 학교에서는 다쳐도 왜 보상을 해주지 않느냐(산재보상은 노동자의 책임 여부를 따지지 않지만, 학교안전공제제도는 사고 책임자에게 치료비를 요구한다), 야간노동이 국제암연구소에서는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고 소개해주니 그럼 왜 야간학습과 학원 심야영업은 내버려 두느냐, 왜 우리는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느냐…….

이토록 무권리 상태에서의 교육에 익숙해지다 보면 무권리 상태의 노동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연습하게 되는 셈 아닌가, 생명을 좀먹는 과로사회는 사실상 학교에서 시작되고 있는 셈 아닌가. 게다가 학교에서는 해병대캠프로 대표되듯 극기와 복종이 훈련을 통해 장려되고, 자신을 파괴하는 중노동이 성실과 최선으로 장려되고, 의미도 없이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을 갖추어야 살아남는다는 원리를 학습시키고 있지 않는가. 대학입시를 향해 잔혹한 하루와 미래를 견뎌야 하는 고달픔은 연예인 연습생이나 프로게이머 훈련생과 같은 열정노동자들의 현실과도 잇닿아 있지 않은가. 이렇게 학교의 현재를 들여다보다 보니, 학생인권의 문제는 노동인권의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머리를 맞대어 – 질문하는 힘, 거절하는 힘, 연대하는 힘

얼마 전, 알바노조는 법에 보장된 권리 보장을 요구하다 해고당한 이가현 씨를 대리하여 사업주와 단체협약을 맺고 가현 씨의 복직을 얻어낸 바 있다. 가현 씨는 “아르바이트는 싼 맛에 어린 맛에 마음대로 부려먹는 존재가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현 씨는 자기가 놓인 상황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부당한 대접을 거절했으며 누구와 연대해야 할지를 알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가현 씨와 알바노조가 내딛은 첫걸음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사했다. 안타깝게도 가현 씨의 용기는 학교교육을 통해서는 좀체 길러지지 않는 힘이다. 학교가 배반한 노동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그래서 더더욱 교실 안팎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학습되어야 한다.

*배경내(상임활동가)

[출처] 인권오름 제 370 호 [기사입력] 2013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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