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거리에는 바람이 분다
- 오래된 운동조직에서 소통과 조직문화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다는 것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중에서

그대는 내가 아니다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은 가까이 하고 싶은 상대일수록 더욱 어긋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더라도 나의 소통방식 때문이든, 각자 살아온 경험에 따른 기억때문이든, 내가 가진 가치관에 따른 벽 때문이든. 많은 경우 소통에의 시도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정작 중요한 마음은 언어의 벽에 막혀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와 당신의 거리는 늘 안타깝고 멀기만 하다. 힘든 일이다. 다시 힘을 내는 일도, 그 과정을 겪어내는 일도.

여기 오래된 조직이 있다. 어려운 결정 속에서도 간절하고 활기찬 희망으로 시작했을. 그리고 용기로 충만했을. 그렇게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들’에 문을 두드렸다.

희망이었던 조직에서는 꿈을 꿀 수 없고, 어떤 꿈을 꾸어야 할지조차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가 함께라고 믿었던 꿈이 같은 것이었는지 조차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불신이 쌓여가고 이제 서로를 외면하고만 싶다. 함께 할 것이라 굳게 손잡았던 이들은 각자 상처를 끌어안고 개인적인 소망으로 함께 하고자 했던 꿈에 대한 절망을 대신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하지만 그래도 시도하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

우리는 이들의 고민을 어떻게 함께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교육 첫날, 내 삶의 서사 : 당신과 나의 거리를 알아가기

먼저, 추억의 놀이로 몸과 마음을 충분히 열어갈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특히 내 삶 속에서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장면으로 만들고 그 장면을 사진을 찍어 남기는 작업까지. 다행히 추억의 놀이와 자연스럽게 연결해 진행한 이 프로그램으로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기에 좋았던 것 같다.

오후에 진행했던 ‘인생 곡선’ 프로그램은 종이에 내 삶에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 해당하는 지점을 찍고 선으로 연결한 후 기억을 살려 자신의 삶을 동료들에게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기억법대로 서사화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 그 속에서 위로 받고 공감 받는다는 것. 그것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분명 자신을 긍정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데 필요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별것 아닌 것처럼 한쪽으로 치워지는 경험들을 내내 해야만 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삶의 서사를 통해 비록 나와 같은 모양이 아닐지라도 삶에 대한 고통과 상처, 기쁨, 희망, 절망, 기대 같은 감정들을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각자 삶에 대한 대처방식이 비록 다를지라도, 또 그이에게 남긴 것이 다를지라도 각자의 그 경험들이 아마도 남겼었을 것을 이해함으로써 나와 내 동료 간의 거리를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해까지 힘들다면 그 거리를 인식할 수 있기를. 왜냐하면 소통은 나와 당신이 다르고 우리는 얼마간의 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교육 두 번째 날, 의사소통하기 :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소통하는 방법 연구하기

당신과 나의 거리를 인정하게 되면 소통의 필요가 생긴다.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우리는 소통의 어려움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비행기와 관제탑’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서로간의 소통을 위해서는 각자의 위치에서 설명할 수 있는 바를 최대한 말로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고 상대방의 말에 의문이 생겼을 때 “왜?” 혹은 “어떻게?” 혹은 “얼마나?” 등등의 질문을 적절히 해 내는 것 또한 필요함을 알아가는데 좋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민주적조직문화를 위한 의사소통방법

또한 의사소통의 장면들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읽어내는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잘못된 의사소통(제멋대로형, 버럭형, 민폐형, 후벼파기형 등)과 잘된 의사소통의 장면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못된 의사소통방식에서 각자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는지 이어지는 점심시간까지 기억을 더듬거나 유형들을 분석하는 모습들이었다.

이 날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화를 잘 내는 방법’이었다. 나를 화나게 하고 욱하게 하는 장면들을 각자 적어보게 하고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어떻게 하면 화를 잘 낼 수 있는지,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도 화를 잘 내는 방법(그러니까 지속가능한 관계를 위한 화내는 방법)은 무엇인지, 자칫 자신만을 피해자화 시켜왔던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것들을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리며 이야기와 상황극을 통해 알아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개인의 상처를 밝히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보니 진행자의 역량이 많이 필요했다. 혹은 개인의 역량을 높이고 향상함으로써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님에도 흔히들 그렇게 풀어내기 쉬운데 교육 중에 잘못된 대처법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자칫 장난처럼 피해가려는 참여자가 있다면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문제들로 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좋았을텐데 대안을 고민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한다는 것이 책을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교육 세 번째 날, 민주적인 조직문화 살피기

나는 내가 속한 조직에게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을까? 내가 우리 조직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면은 어떤 점일까? 다른 동료들도 내가 생각하는 바와 비슷할까? 다를까? ‘조직은 곧 사람이고, 기억이고, 문화다’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조직의 민주적 조직문화를 체크하는 체크리스트는 무엇일까? 흥미로웠던 것은 체크리스트를 정리하면서 확인했는데 참여자들은 자신의 조직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 체크리스트를 통해 우리는 조직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바꾸지 못했을까에 대한 고민에 더 빠져들었던 것 같다. 해결방법을 몰라서일까? 대안이 없다고 포기했기 때문일까?

마지막 프로그램은 민주적인 회의진행법을 직접 체험하기였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조건 칭찬하기’이다. 먼저 2분의 시간을 주고 옆의 동료의 장점을 찾아 서로 5가지 이상을 말하게 했다. 그런데 2분 동안 찾아내는 모둠은 없었다. 2분동안이 안된다면 3분, 5분… 이런식으로 모두가 칭찬을 5가지씩 찾아 말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회의진행법으로 넘어갔는데, 그렇게 한 이유가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회의에서 내 생각과 다른 점, (내 입장에서 봤을 때)상대방의 단점을 먼저 떠올리게 되면 회의가 경직되고 쉽게 벽을 쌓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먼저 칭찬을 통해 마음이 넉넉해진다면 비판적인 이야기에도 편하게 마음과 귀를 열고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벽을 쌓지 않고 시작하기.

‘실제 회의 문화 경험하기’를 통해서는 회의를 통해 서로 어떻게 비껴가고 미끄러지는지 오해가 생기고 쌓이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행자는 주제를 내고, 정리해서 모아내고, 모아낸 주제를 다루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의견도 배제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라 결정하지 않고, 합의를 할 수 없을 때 우선순위를 고르는 각자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과정 자체조차도 회의라는 것을 강조한다. 회의는 결론을 내기 위해서 하기도 하지만 결론을 내기 위한 과정을 협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한 개의 주제를 골라서 결론을 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바를 더 잘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 누구의 의견도 그냥 넘어가는 방식으로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것. 결과를 빨리 도출하는 것보다 결과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

대안은 없다. 우리가 열심히 찾아나서지 않는다면.

비극적인 소통, 다르게 적힌 추억…그럼에도, 바람은 여러 방향으로 분다.

나의 경험과 나의 상처를 비록 동료들이라 할지라도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마음에 상처가 그득하고, 또 다른 동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이미 알고 있다면 같은 경험을 교육이란 이름으로 다시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는 않다. 너무 오랫동안 상처가 쌓여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어진 사람에게 지속가능한 소통이라거나 화 잘 내는 방법이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마음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듯이 이 조직에서 상처받았다고 해서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받았다고 해서 소통을, 소통하기를, 조직하기를 멈추기는 어렵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어디서건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서건 더불어 도모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들을 제외하고도 소통이라거나 민주적인 조직문화라거나 하는 것은 다른 교육도 그렇지만 그 교육의 결과를 확인하기 쉽지 않아 더욱 어렵다.

그래서, 또 다시 그럼에도, 나는 이번 교육이 의미 있다는 생각이다. 직장에서 직무교육으로 받게 되는 같은 주제의 교육은 그야말로 직장에 잘 적응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교육일 뿐 인권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권교육의 영역은 지금보다 더 넓고 풍부해 질 수 있다. 또 그래야만 하고.

바람이 열두 방향으로 더욱 활발하게 분다. 바람은 불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시원해진다.

†정리 | 양미(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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