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와 인권의 불완전한 동행을 넘어서려면….
- 사회복지사 교육에서 사회복지의 인권적 실천을 교육하려 할 때 넘어야 할 것

설렘과 떨림 : 사회복지와 인권의 만남이 시작되다

최근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교육은 사회복지사에 대한 보수교육이다. 작년부터 하게 되어 올해에도 계속되며 외부교육 나가는 중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작년은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에 인권교육이 의무로 들어온 거의 첫해였다. 의무교육으로 진행되다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아, 지겨운 교육시간’이란 지루한 표정이 얼굴 가득하거나 ‘그래서 어쩌라구요, 이용인에게 더 잘하라는 교육 아닌가요? 우리도 힘들어 죽겠는데…’라는 짜증섞인 표정을 주로 마주하곤 했다.
무리도 아니다. 사회복지가 여전히 사회가 베푸는 시혜이며, 복지의 대상을 매우 비루한 삶을 사는 존재로 여기는 사회풍토 속에서 이 일을 업을 삼은 사람들의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우리는 이미 익히 알고 있다. 복지현장을 보는 시선이 이렇게 낮으니 복지사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경우가 많고 오직 서비스를 제공하는 감정노동자로서 여겨지곤 한다. 물론 복지사는 다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용인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무조건 양보하고 참아야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이용인의 입장에서는 ‘갑’처럼 시혜를 베푸는 윗분 같은 위치로 있기도 하다. 어떠하든 이들의 조건이 최근 몇 년 사이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열악한 지점이 많다는 데에서 첫 떨림의 만남을 복지사 자신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장으로 열어갔다.승무원 교육같은 ‘굿(good)서비스’ 교육일거라 여기고 왔다가 사회복지사 자신의 일하며 힘든 점을 말하고 공감하는 것을 바탕으로 인권의 의미와 원칙을 이야기할 때 교육이 일방적인 것이 되기보다 인권을 새롭게 보는 감수성을 되찾은 시간이 되었다. 또 직업 성향상 봉사와 희생을 요구받아 온 복지사들에게 내 인권을 이야기하며 다른 존재들의 인권을 함께 고민하고 공통점을 발견해가는 과정은 인권이 보편적 권리여야 함을 되새겨봄과 동시에 그럼에도 더욱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거부감을 좀 털어내고 느끼고 받아드릴 수 있게 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물론 모든 교육이 이처럼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권과 사회복지의 만남에 물코를 터가는데 이런 시도가 갖는 의미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고민의 시작 : 사회복지와 인권이 한 단계 더 나가는데 넘어야 할 난제

“2012. 사회복지와 인권이 셀레는 만남을 시작하다.
2013. 사회복지가 이제 인권과 손잡고 한 차원을 더 내딛다.”

역사기록에는 연표라는 것이 있다. 인권과 만난 사회복지의 연표에 무엇이 어떻게 기록될까 생각하며 한번 연표식으로 정리해봤다.
여전히 새롭게 인권을 접하는 분은 올해도 꾸준하게 있어서 작년 교육을 바탕으로 약간의 수정과 보완을 통해 진행했다면, 작년에 교육 통해 어느 정도 인권의 감수성으로 사회복지를 고민한 분들과 어떤 교육을 풀어가야 할까. 인권이 멈추어지는 것이 아니듯, 인권교육도 더 높고 넓은 인권의 지평을 열기위해 고민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 기본적인 인권교육을 받은 분들과 나누어볼 이야기로 사회복지 현장의 사례를 인권적으로 바라보고 해결방안을 고민해보는 자리를 가졌다. 물론 이 교육은 작년 교육에서 포함되어 있었지만, 사례 토론을 해보며 여러 한계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일테면 사례토론을 시도하는 것은 그 상황을 인권의 눈으로 다시 살펴보고 이를 통해 해결방안을 고민하기 위함인데, “이렇게 해결하면 되는 거죠”와 같이 해결책 중심으로만 축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본질적으로 사회복지의 열악한 구조적 상황에서 해결될 방법은 없지 않느냐는 무기력한 반응과 체념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실의 벽은 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장벽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더 생각해볼 지점이 많지만, 이럴 땐 교육시간이 부족하여 머리맞대고 풀어보지도 못한 경우도 많다. 물론 시간이 더 있다고 가능한 것일까하는 의문이 남기도 한다. 인권 감수성이 한차례 교육으로 풍부해지기란 마치 입술이 말랐을 때 임시방편으로 혀끝의 침으로 휘리릭 훑고 더 이상 마르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일테니.

아래와 같은 사례를 주고 토론을 했을 경우, 이 사연 속에서 인권적인 문제의 지점을 찾아서 고민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사회복지 사례토론
주로 나오는 의견은 ‘5시 식사시간은 아무리 복지사의 퇴근도 중요하지만 인권침해니 문제이다’, ‘5시 식사시간을 어쩔 수 없다면 적어도 간식을 지급하던지 매점을 두어 이용케 하던지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이 경우도 종사자의 인권은 침해될 우려가 있으니 사회복지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중증장애인을 캠프기간 동안 병원에 두는 것은 문제라며 종사자의 여름휴가를 다른 때로 바꾸거나 해야한다며 스스로 복지사가 양보하는 것이 인권적 해결책이라 내놓기도 한다.
현실의 셋팅을 그대로 두고, 현재의 관점을 유지하며 해결책을 찾으려니 인권적인 것이 도로 복지사의 양보와 희생이거나 이용인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 동일한 사례를 인권의 가치를 다루는 교육에서 다룰 때는 그래도 좀 고민의 깊이가 나아가기도 했다. 가치어로 “민주주의, 양보, 참여, 배려, 보호” 등이 주어졌을 때는 적어도 해결책을 고민할 땐 스스르 넘어가기도 했던 문제를 눈여겨보게 된다. 시설운영위원회에 참여하지만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것에서 이용인과 종사자간의 권력관계를 문제시 삼아보고, 단순히 종사자의 휴가를 조정해서 중증장애인의 캠프참여로 해결책을 찾던 것에서 보호라는 방식이 갖는 자기결정과 선택권 배제의 문제를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참여자들이 도달하는 종착역은 비슷하다. 해결을 위해 넘어야 할 난제가 많다는 것. 그래서 사회복지를 인권적으로 풀어가는 것은 여전히 딜레마에 갇혔다는 것. 과연 그런가?

톺아보기 : 사회복지의 인권적 실천이 봉착하는 딜레마의 실체

사회복지 현장의 문제를 인권적으로 바라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해보기 위해 그럼 무엇을 교육에 담아야 할까. 교육에 담을 내용을 고민하던 차에 늘 한걸음 더 나가려면 앞을 가로막는 ‘딜레마’라는 생각, 그래서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항변이 넘어서야 할 핵심 과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분명 딜레마적 상황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각 시설들이 인권사례관리에서 내놓은 ‘딜레마’에 봉착한다는 어려움의 호소를 말그대로 받아드리기엔 찜찜하다. 위의 사례토론의 예에서 보듯 토론 후 내놓은 해결책도, 해결책 다음 수순으로 ‘현실의 벽이 높아 그게 해결되겠느냐’는 반응도 마찬가지로 그렇다 맞짱구치기엔 불편하다.

최근에 「이용자 인권 딜레마 사례 분석」 2012, [인권지킴이단 운영방안 및 이용자 상황점검을 위한 지표개발 연구] 보고서 중 3장의 글.
(사회복지연구소, 장혜경)이란 글을 보다 찜찜함의 정체를 좀 시원하게 풀어놓은 대목을 발견했다.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서’ 대리행동하게 되는데, 이러한 대리행동이 억압적 실천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당사자들이 아닌 실무자들이 제기하는 인권 딜레마 상황들은 많은 경우 장애인의 인권 자체에 대한 딜레마라기보다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취해야 하는 행위가 어느 수준까지 사회적 재가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실무자들이 제기하는 상황은 대부분 획일적인 구성과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성은 다수의 입장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기준이나 적응행위를 기준으로 두고 이것에 미치지 못하는 장애인의 행위들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려이다.”

그래서 딜레마를 이야기할 때 ‘어쩔 수 없다’가 따라붙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넘어서야 할까. 사회복지의 인권적 실천을 모색할 때 사례토론은 여전히 문제에 깊숙이 들어가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유효한 방법론이란 점은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듯 한계적인 지점은 그다지 많지 않은 (기껏해야 2회 정도의)교육기회와 (2-3시간정도 진행되는)짧은 교육시간에 담보하기란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는 아니어야 한다는 고민이 교육하는 들 활동가들 내부에 공유지점이다.
이런 고민을 나누며 우리가 찾아낸 길은 사례를 통해 인권적 실천을 고민해갈 때 사고의 단계를 구분해 놓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다. 일테면 사례토론의 결론으로 참여자들이 곧장 ‘그럼 어쩌라구요? 집단생활인데..’ 또는 ‘간식 주면 되는 거지’라고 쉽게 해결책을 말해버리지 않도록 질문을 촘촘하게 잘 던져보자는 것이다. 촘촘한 질문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문제가 장애인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 장애인 당사자 개인의 입장성(개인의 시설 안에서의 서사 살피기)

둘째, 사람은 어떨 때 그러한 행위를 하게 되는가?
; 장애의 문제가 아닌 보편의 문제인 것은 없는지.

셋째, 종사자 자신의 가치관 성찰하기
; 발생한 상황이 문제인가, 종사자 자신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문제를 그렇게 보게 하는가

넷째, 해결책을 모색한다면 누구와 함께 어떤 틀로 논의할 것인가
; 종사자와 이용인의 1:1 대화를 인권적인 해결방안에 넣긴 애매함. 마치 학생이 상담실에 불려간 상황을 오버랩 시킨다. 그렇다면 대화는 그 상황에 얽힌 다양한 주체들과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일테면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 언급되는 다른 이용인, 그 상황을 본 또 다른 이용인 등등.
; 구조적 차원의 논의로서 재구성되어야 할 환경은 무엇인가.

“나만의 세계를 존중받아야 해!”
▶ 사생활, 사적공간, 사적관계를 존중받을 권리
이 카드를 내밀고 싶은 순간은?

인권과 사회복지
적용과 과제 : 사고의 단계를 높이려는 촘촘한 질문으로도 넘을 수 없는 과제

나름 촘촘하게 짠 논의 구조를 가지고 실제 교육에 적용해봤다. 이 교육은 대부분 처음 교육 받는 사회복지사가 많았는데, 다행이 오전에 함께 교육을 진행한 배경내가 심도깊은 인권감수성 교육을 진행하였다. 권리카드를 주고 복지사와 이용인의 입장에서 이 카드를 내밀고 싶은 순간을 이야기할 때 자신들이 경험한 반인권적 현실이 아주 깊이있는 내용까지 나왔을 뿐 아니라, 이용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정말 인권감수성 풍부한 내용들이 많이 나왔다(위의 사진). 복지사들 스스로 풀어낸 자기 경험, 이용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권의 의미와 차별의 문제를 이야기해갈 때 그 교육장에 흐르는 분위기는 오전 몸풀기 시간에 아무리 풀어도 어색했던 것과 달리 훈훈해지는 기운이 감돌았다. 인간의 감각이 얼마나 사회적인가에 대해 자신들의 감각을 돌아보는 참여자도 있었고, 인간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인권의 출발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공감하는 분위기도 역력했으며, 인권은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언어라는 이야기를 할 때 모두는 아니지만 여러 참여자의 눈빛과 고개짓에서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한 분위기도 감돌았다.

그러나 오후에 진행된 사회복지 현장에서 인권적 실천을 모색해보기 위한 사례토론은 오전의 교육이 무색한 것이었다. 인권을 생각하며 맞서야 한다던 분들이 막상 이용인의 문제를 볼 때 다시금 문제적 존재, 변화되거나 치료되어야할 존재로 규정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에만 몰두했다. 위의 사고의 단계를 주고 문제를 살펴볼 것은 과제로 주었지만, 이것은 시간상의 여유도 없다보니 거의 이야기 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시간이 많아졌다고 더 잘 될 것인지는 너무도 의문스럽다. 이런 회의적 생각이 들게 한 것은 사고의 일단계로 던져준 질문인 “이 문제가 장애인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 시설 안에서의 서사 살피기”부터가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적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주변의 소리에 민감해서 소리를 낸 주변인을 폭행한 사례의 경우 폭력적 행동은 정신적 문제라는 식으로만 문제를 볼 뿐 당사자의 입장에서 왜 그랬을까 짐작하는 참여자는 거의 드물었다. 사고의 단계를 주고 토론을 진행하려해도 자신들이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종사자라는 직업상의 본능이 더 빨리 발동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토론의 단계를 높이며 촘촘히 하는 것만으로 더 채워야 할 것들이 필요하다. 무엇일까.

며칠 전 <사회복지 인권실천 더하기 나누기>(사회복지 인권실천 네트워크 주최)라는 워크샵에 다녀왔다. 이곳에서는 실제 인권실천을 고민하며 사례를 해결했던 복지관 몇 곳의 사례를 보며 이것이 인권실천으로 적절한 것이었나 다시금 참여자들이 숙고하여 토론해보는 자리를 가졌다. 나름 인권적인 고민 끝에 이용인의 입장을 최대한 받아들여 해결하려했던 사례들이었음에도, 다시금 대두되거나 남겨진 문제점은 사회복지사들의 가치관이 사회적 통념의 틀에 갇혔을 때 이용인을 위한 최선의 이익이라는 해결책이 그들의 인식의 한계에 다시 갇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또 다시 더 무엇이 필요한가 고민하게 되었다.
인권교육에서 이를 위한 뾰족한 묘안이 있을 수 있을까. 묘안을 찾을 순 없다. 다만 인권감수성은 일회성 교육으로 높아지길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인권의 눈으로 구조를 바라보고, 구조적 비판을 담아 사회가 나에게 심어준 감각을 깨우는 것을 반복하고 또 반복할 때 조금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인권감수성의 또다른 업그레이드 방법론과 내용을 고민해가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사회복지와 인권의 만남, 그 인권적 변화를 주도할 주체는 사회복지사다. 따라서 이들이 인권교육이 던져준 문제의식과 새롭게 깨어난 인권의 감각을 자신의 감각으로 체화하는 경험의 시간을 느긋이 기다려보는 것도!
†정리 | 루트(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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