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인권, 묘하게 다르면서 닮은 두 교육이 만나다
- 교육공동체 나다와 공동 기획한 ‘인권을 삼킨 아이’ 5회기 인문학 특강

교육공동체 ‘나다’와 인권교육센터 ‘들’은 친하다. (그냥 내 느낌일 수도 있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청소년 인권의 언저리를 함께 맴돌아 왔고, ‘나다’가 합정역 인근에 둥지를 틀고 있을 때는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이 ‘나다’의 사무실에서 일과 생활을 도모하기도 했었다. ‘나다’의 상근자 중 두 명이 강화도로 이사 간 이후로는 순무, 무말랭이, 새우 등 그네들의 손때가 묻은 식재료들을 챙겨 보내주기도 한다. 가끔 서로의 얼굴을 볼 때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건강과 근황을 챙기며 다독인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이래저래 서로를 애틋하게 챙겨오던 두 단체가 요즘 유행하는 ‘콜라보레이션’을 하게 된 건 ‘나다’의 적극적 제안의 힘이 컸다.

인문학이라는 통로로 청소년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온 ‘나다’는 일상 강좌와 방학 특강을 10년 넘게 꾸리고 있다. 인문학 토론 수업의 형태로, 청소년들이 학교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운 질문들을 나누며, 서로의 삶이 나아질 수 있는 길을 찾아왔던 것. 이렇듯 오랜 세월 쌓아온 교육 내용과 방법론을 다시금 돌아보고자 한다는 의지를 전해왔고, 그 하나의 길로 ‘들’과의 협력 강좌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간 ‘나다’와 여러 교류가 있었지만, 강좌를 함께 꾸려본 경험은 없었기 때문에, 나 역시 ‘나다’의 방식이 궁금했다. ‘나다’ 활동가인 엠건, ‘들’ 활동가인 개굴과 내가 만나 1차 논의를 진행했다. 개괄적인 흐름과 꼭지를 잡은 후, 구체적 교육 기획과 역할 분담을 하기 위해 2번의 만남을 더 가졌다. 마지막 기획회의는 강화도에 있는 변과 정크의 집에서 진행했는데, 기획보다는 먹는 데 더 시간을 썼다는 함정이ㅋㅋㅋ 근거는 묘연하지만, 서로에 대한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기획을 마무리 한 후 본 강좌에 들어갔다.

두 단체가 함께 기획한 강좌 이름은 “인권을 삼킨 아이”였다. 1월 13일부터 1월 17일까지 하루 2시간 30분씩 5회기로 진행했다. 각 꼭지의 흐름은 다음의 표를 참고해 주시면 되겠다.인문학과인권교육 일정표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 속으로

첫 강은 강좌를 통해 모인 참여자, 진행자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친해지는 시간으로 시작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놀이를 겸했는데, 나다 강좌에 이미 한 번 이상 와봤던 분들이 많아서 라포를 형성하는 데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여러 강좌들의 도입부 성격도 있었던 터라 학교를 배경으로 한 시대별 영화들(70년대~현재)을 보면서 간단한 모둠활동을 하고, 입트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무작위로 영화를 보여주고, 시대순으로 영화를 재배치하는 것이 모둠의 과제였다. 말죽거리 잔혹사(70년대 후반)는 학교가 군대와 가장 흡사한 형태를 띠던 시절을 잘 보여주었고, 여고괴담(90년대 중후반)은 청소년들 사이의 적대화와 배타적 폭력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기의 영화였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와 현재의 학교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학생을 대하는 태도와 교육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는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권은 어디로부터 오나?

2강은 ‘내 몸이 전쟁터’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을 찾는 것부터 시작했다. ‘내 몸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여성들의 삶 속 모순이 여성주의를 낳았듯, 청소년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청소년주의’가 태동할만한 다양한 장면들이 숨어있다. ‘화장실에 가는 순간에도 왜 청소년은 허락을 받아야 하나’, ‘졸려서 자는 데 왜 뒤통수를 맞아야 하는가’ 등등 온갖 부조리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곳이 학교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 뒤에는 ‘학생은 아직 사람이 아니다. 고로 인권이 유예된다.’는 케케묵은 궤변이 우두커니 서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그 인권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인권의 뿌리로 무엇을 주장할 때, 우리는 유예 없는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2강은 나다가 야심차게 준비한 ‘디펜스 게임’의 형식으로 진행했다. 디펜스 게임이란 가상의 적으로부터 내 진지를 지켜내고, 상대방의 진지를 무너뜨리는 게임을 말한다. 참여자들은 인권을 가능하게 만드는 4가지 가상의 근거들 중 한 가지를 택한다. 자연, 법, 나(개인), 우리(공동체)가 선택 가능한 팀(기지)이다. ‘인권, 그 최고의 뿌리’를 가려내기 위한 ‘뿌리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고 가정하고, 각 기지에서는 미리 진행자가 제공한 기본 정보를 바탕으로 타워(우리 편의 핵심 주장)와 약점(자기 입장의 약점을 파악하고 방어하기)을 미리 생각해둔다. 그런 후 각 기지별로 돌아가며 주장의 근거들을 점검하며 맞대응 토론을 진행한다. 게임 방식으로 토론을 진행하니, 본인들의 기지를 지키기 위한 논리적 비약도 상당히 등장했다. 그러나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 이를 테면 왜 ‘자연권(신)’이 인권의 역사에서 그 한계를 명확히 드러낼 수밖에 없었는지 토론을 통해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 중심의 인권 담론이 오히려 인간의 우열을 가르게 되었다는 것,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전제하는 ‘나’ 중심의 인권은 권력의 문제를 등한시하기 때문에 권익다툼(예: 재산권)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 돈과 정보를 독점한 사람들이 만든 ‘법’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것이 도리어 ‘인권’이었다는 점 등을 짚어나갔다. 시간이 부족해 급 마무리 된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더불어 이 4가지의 근거가 학생/청소년인권의 현실과 연결될 때 어떤 식으로 변주되어 등장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뤘다면 더욱 강좌 목표에 부합하게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꼭꼭 숨은 폭력을 찾아라

3강은 눈에 보이는 폭력(가시적 폭력)과 숨어있는 폭력(비가시적 폭력)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학생 간 폭력만을 학교폭력으로 문제 삼는 지금의 구도를 벗어나 폭력의 숙주로서의 학교 문화를 파헤치는 시간이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폭력, 학생과 학생 사이의 폭력, 학교라는 구조 자체가 낳는 폭력 등을 살필 수 있는 장면을 역할극으로 구성해 진행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폭력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지, 폭력의 연쇄는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를 살피며 우리 몸에 어느새 밴 폭력의 감각들을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인간계의 ‘명왕성’은 어떻게 탄생하나

4강은 인권의 근거가 ‘우리’라고 하지만, ‘우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가 되고 싶지 않은 ‘너’들의 존재를 어떻게 마주할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차별과 배제의 선이 어떤 식으로 학생들의 삶 속에 그려져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참여 활동 2가지를 배치했다.

차별과 배제의 선첫 번째 활동은 ‘인기나 매력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발견하기 위해 ‘학교에서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눈에 띄는 학생 찾기’ 9칸 빙고 놀이를 진행했다. 모둠별로 9칸 빙고를 채우고, 놀이를 진행하며, 각 모둠에서 찾은 항목들을 칠판에 모두 모아 적었다. 지각하는 학생, 잘 생기고 예쁜 학생, 학생회장, 전교1등, 관심 받고 싶어하는 학생, 왕따, 지적 장애 학생, 스포츠 만능 등 30여 가지 항목이 등장했다. 적어 놓은 항목들을 다시 칠판에 그린 4분면에 배치해보는 작업을 했다. 가로축은 학교가 좋아하는 정도, 세로축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정도를 표시하는 것이다. 큰 이견 없이 좌표축에 어떤 학생의 존재를 표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가름의 기준이 사회적으로 형성됨을 보여준다. 또한 인기 있는 존재들은 한 가지 속성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쁘고 잘생기고 공부까지 잘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더불어 학교에서 혼나거나, 뭔가 부족해보일 때만 눈에 띄는 학생들 역시 그 ‘부정적’ 속성을 여러 가지 결합해 가지고 있다. 장애와 가난을 동시에 겪고 있는 학생들, 공부를 못하면서 지각을 줄곧 하는 학생들의 존재를 떠올려보았다. 그렇다면 아예 좌표축에 등장조차 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어떠할까. 학교에서 그/녀들의 삶은 있는 듯, 없는 듯 부유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여운을 품은 채 두 번째 활동에 들어갔다. 조금 더 관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나의 태양계라는 제목의 활동

나를 ‘태양’이라고 했을 때, 나의 태양계를 그려보는 활동이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상당히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 참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을 만큼 이 공간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태양에서 가까운 순서로 단짝/적절히 친하게 지내며 같이 그룹을 형성하는 애/나랑 상관없었으면 하는 애/우리 반에 없었으면 하는 애를 떠올려보기로 했다. 각자 적어보는 시간을 가진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관계의 역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를 테면, 단짝으로 주로 꼽히는 애들의 핵심적인 특징은 ‘쿨함’이다. 나의 태양계에서 명왕성 쯤 위치하는 애들의 특징은 ‘눈치 없음, 달라붙음’ 등이다. 누가 관계 맺기에 쿨할 수 있을까. 성격을 바꿔서라도 이 반에, 이 그룹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길 요구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렇다면 나는 타인에게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명왕성이 태양계로부터 퇴출 되었듯, 인간계로 부터 ‘탈락’한다는 것은 어떠한 공포일까. 다소 묵직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은 후, 기준 자체에 맞서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짤막한 강연을 진행했다. 기준과 등급 자체에 맞설 때, 이 정글 같은 세계의 룰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을 테니까.

인권 소화불량 원인 탐구

마지막 강좌는 우리 몸과 마음에 밴 습관들을 돌아보며, 인권을 소화시키기 위해 넘어서야 할 마음의 장벽들을 되짚는 시간이었다. “인권이 중요한 건 알겠어. 하지만…”뒤에 이어 붙일 수 있는 생각들을 유형화해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인권 소화불량 원인탐구

모둠별로 2가지씩을 나눠 갖고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 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무엇일지, 그런데 이런 소화불량을 겪다보면 결국 어떻게 살게 될지, 인권을 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찾아보는 활동을 했다. 다음 활동을 이어갈 만한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꼼꼼하게 논의를 이어갔다. ‘더부룩함’을 토론했던 모둠에서는 더부룩함을 해결할 ‘바늘’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 바늘은 청소년들 사이의 공감, 나와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의 소중함 등으로 연결됐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에 비추어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자그마한 행동/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강좌를 마무리했다. 시간 부족으로 부당한 인권침해에 맞서보는 역할극을 실행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거센 화학반응을 기대해

5일 간의 강좌 흐름을 쭉 훑고 나니, 우리가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그만큼 목표가 빼곡했고, 늘 시간 부족에 허덕이기도 했다. 문답식 토론은 진행자가 흐름을 조율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쉽다. 질문을 던지고 흐름을 이끄는 역할이 주로 진행자에게 맡겨지기 때문이다. 강좌에 참여 활동을 비중 있게 활용하는 경우, 참여자들의 반응에 따라 여러 변수가 탄생한다. 이번 강좌에 참여한 분들은 자기표현이 활발한 축에 속하는 분들이 많았고, 논리적인 작업을 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아니었다. 그만큼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중요한 논점을 많이 던지셨다. 장소 사용의 제약으로 뭔가 후다닥 끝낼 수밖에 없어 진행 팀 모두 아쉬워했다.

‘나다’와 ‘들’의 협력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개인적으로 별점 평가를 해보자면.. ★★★★ 요렇게?ㅎㅎ 큰 무리나 삐걱거림 없이 5강의 흐름이 연결됐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서로가 그간 교육을 매개로 던져온 이야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이지 않을까. 물론 참여자에게 A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그것에 가닿도록 도움닫기 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우아하게 포장된 세계의 이면을 날카롭게 들춰내는 충격형/반전형 질문을 ‘나다’가 적재적소에 잘 던진다면, ‘들’은 좀더 ‘품어가는’ 느낌이라고 ‘나다’의 한 활동가가 평하기도 했다. 아마도 만나는 참여자의 특성과 세팅된 교육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빚어진 차이가 아닐까 싶다. 인권 침해자와 옹호자, 그 어느 경계에 서있는 이들(교사, 부모 등등)을 많이 만나온 ‘들’은 충격형/반전형 질문을 던졌다가 엄청난 태클을 받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ㅎㅎ ‘나다’와 ‘들’은 서로의 장점이 다르기에 서로에게 더 끌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강좌가 ‘나다’가 3번, ‘들’이 2번 진행하는 식의 물리적 결합에 가까웠다면, 앞으로는 좀 더 거센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강좌를 만들어 봐도 좋을 것 같다. (평가 때도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ㅋ) 각자의 자리에서 꼼지락거리다 곧 다시 만납시다!

†정리 |한낱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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