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위한 리허설, 토론연극의 세계 속으로

토론연극(forum Theatre)은 브라질의 아우구스또 보알이 시도한 연극 실험 가운데 하나로, 연극이라는 가상현실 속에서 문제적, 갈등적 상황의 변화를 연습해보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종종 굴복했던 일이지만, 가상현실이라는 안전한 무대 속에서 변화를 시도해 봄으로써 새로운 지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연극방식이지요. ‘Forum Theatre’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답을 알려주는 연극이 아니라 관객을 대화와 토론의 장으로 초대하는 연극이기에 다양한 지혜가 교환되는 장이 됩니다.

토론연극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토론연극의 지향과 실험 방식이 현실의 변화를 시도하는 인권교육에 접목해 응용할 여지가 많다는 생각을 했더랬어요. 그렇지만, 막상 인권교육을 해오는 동안 실제로 실험해보지는 못했어요. 충분한 연습 없이 함부로 시도하기는 어려운 방법론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다 지난해 가을, 벼르고 벼르던 토론연극 집중 워크숍에 다녀올 기회를 가졌고, 그 워크숍에서 배운 내용을 들 식구들과 나누는 워크숍을 가졌습니다. 배운 내용을 잘 정리해서 나눌 수 있을까, 두근두근 쪼그라든 마음으로 2월초 워크숍을 열었는데, 들 식구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고 열정적으로 참여해 주었어요.

토론연극 워크샵
토론연극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진행돼요. 준비된 문제적 장면을 보여주면, 이를 지켜보던 관객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상황 속으로 들어와 직접 배우로서 변화를 시도해보는 거지요. 준비된 장면은 변화를 시도해보고 싶도록 ‘잘 구성되어 볼 만한 것’이어야겠지요. 이때 조커(Joker)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데요. 조커는 관객이 무대로 나올 수 있도록 안내하고, 관객의 실험이 끝나고 나면 새롭게 발견된 점이나 어려웠던 점이 있었는지, 어떤 내적 변화가 있었는지를 점검해주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있다 할아버지에게 혼찌검을 당하는 20대 여성의 사례를 가져가 직접 실험해 보았어요. 몇 가지 실험이 이어지면서 할아버지의 노여움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상황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다음에는 다루고 싶은 주제의식에 맞게 장면을 구성하고, 효과적으로 장면을 시각화하는 방법도 연습해 보았습니다. 한 예로, 학생간 괴롭힘을 주제로 한 교실 장면을 구성할 때 괴롭힘당하는 학생의 자리를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공간과 관객의 반응이 상당히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었답니다.

이렇게 워크숍을 하고 나니 정리도 되고 조커로서의 진행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 커졌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조커가 관객의 반응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실험 자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조커로서의 훈련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조커가 무대로 들어와 실험을 전개한 관객의 이야기에 공감적으로 경청하면서도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한 측면을 알아차리도록 돕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거든요.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으니 자꾸 경험해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3월 열린 ‘생명력있고 매력적인 조직문화 워크숍’에서 다시 한 번 토론연극을 적용해 보았어요. 참 겁대가리 없죠?ㅎㅎ 단체 내부의 비민주적 운영 방식을 보여주는 장면을 연출해서 참여자들이 변화를 시도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는데요. 참여자들은 회의실의 공간 배치를 바꾸는 작업에서부터 비민주적 상황에 순응하고 있는 배우들의 역할을 바꿔보는 다양한 실험을 전개해 주었습니다. 실험이 거듭될수록 조직 내 민주주의가 단지 ‘문제적 대표’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를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토론연극을 경험해 보니 인권교육을 진행하는 교육가로서의 자세도 새롭게 점검해보게 되었습니다. 인권교육에서는 인권교육가가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고, 2~3시간 정도의 수업에서 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정리 강연 시간에 교육가가 자신의 생각을 일방향적으로 전달하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토론연극에서 조커는 참여자가 상황 안에서 질문을 ‘발견’하도록 돕는 역할을 주로 하고, 참여자가 시도한 실험 이상의 변화나 질문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참여형 인권교육이 참여+강연을 기본 꼴로 한다면, 토론연극은 참여+발견된 것의 정리를 기본 꼴로 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래서 인권교육보다 토론연극이 훨씬 더 참여자 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인권교육을 토론연극처럼 진행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러나 인권교육 안에서도 참여자들이 현실의 변화를 위한 리허설을 경험해볼 수 있는 시간을 늘여가야겠다, 참여자가 정해진 답에 도달하도록 기대하지 않으면서 삶에 대한 더 많은 질문을 안고 돌아갈 수 있도록 ‘발견’을 촉진하는 교육가로서의 훈련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토론연극 워크숍의 가장 큰 수확이 인권교육가로서의 자기 점검이 아니었나 싶어지네요.
이 정도의 나눔으로는 토론연극이 대체 뭐 어떻게 한다는 건가 싶으시죠? 직접 경험해보시기를 강추합니다:)
⁍ 정리 ‖ 경내(개굴)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