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자녀의 인권과 만나다
서울장애인부모회 상담역량강화 교육을 다녀와서

장애인부모회에서 장애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 요청이 왔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가 자신이 장애 자녀와 살아오며 힘든 경험을 해왔기에 비슷한 경험 속에 있는 부모에게 상담을 하며 서로 동변상련의 마음을 나누고 힘주고 힘도 받는 것을 대략 목표로 삼는 강의 요청이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와 무엇부터 나눌까?

우선 상담을 위해선 상담자의 인권감수성이 확장되어야 상대를 이해하고 인권의 관점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기에 인권감수성을 확장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론 자녀를 장애에 가두지 않고 독립적으로 키울 수 있도록 상담을 통해 돕기 위해서는 ‘장애인권+아동인권’의 관점을 좀 더 풍부히 고민해보는 자리를 갖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큰 틀의 주제에서 보면 그동안 장애인 부모회에서 해왔던 교육주제가 이것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그러나 이번엔 ‘상담역량’이란 목표가 부각되니 어떤 내용으로 교육을 풀어갈지 고민이 되었다. 일단 상담을 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와 대면할 정도의 힘과 치유의 시간을 얻는 것이 인권감수성에서 더욱 중요하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또한 완전히 극복할 순 없다 해도 장애 자녀에 대한 자신의 불안의 정체를 파악하고 넘어서기 위해 시선을 확장할 때, 비로서 다른 장애인부모를 만나 힘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 속에서 어떻게 이 분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또 불안으로부터 조금이나마 탈피하게 할 질문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장애 자녀의 인권과 만나다

첫시간은 장애 자녀를 둔 부모로서 사회, 주변, 가족, 그리고 무엇보다 장애 자녀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 지친 부분이 많기에 자신의 인권과 만나는 시간을 먼저 가졌다. “000이 없으면 내 삶은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000이 있으면 내 삶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의 질문을 통해 자기 삶의 무게를 드러낸 이야기를 서로 공감하며 자신들의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한주 뒤 이어진 교육은 ‘장애 자녀의 인권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장애인권+아동인권’의 주제이되, 장애 자녀를 독립적 주체 바라보기 어렵게 하는 자신들의 불안은 정당한지 먼저 대면하는 시간으로부터 시작했다. 질문은 “나는 내 자녀가 000한 역량을 반드시 갖추었으면 좋겠다”, “내 자녀의 장래를 생각할 때 000할까 불안하다”라는 질문을 주고 두 개 혹은 가장 쓰고 싶은 것 하나를 골라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도록 했다. 그런데 정리하며 읽어보면 사실은 둘의 내용이 훤히 비치는 종이의 앞뒷장같은 것들이 많았다. 일테면 “000한 역량”에서 ‘자립적으로 살’, ‘남에게 속지 않을’, ‘사회생활을 할’, ‘경제적 역량’ 등이 나왔다면, 반대로 “00할까 불안”이라는 내용에서는 ‘남에게 속을까봐’, ‘사회생활을 못할까봐’, ‘돌보는 사람이 없이 살아갈까봐’가 나왔다. 다시 말해 그러한 역량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들이 터져나왔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읽어갈 때 대부분 서로 공감하는 분위기였고, 우선 먼저 그대로 서로의 불안을 인정해주는 시간으로 가져갔다.

이어서 동일한 이 질문을 비장애 장녀를 대상으로 바꾸어 써내도록 요청드렸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충분히 예상 가능하리라. 놀랍지 않게 거의 동일한 내용이 나왔다. 좀 다르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는 것. 일테면 장애자녀가 사회생활을 못할까봐 걱정이라면 비장애자녀가 직업을 얻지 못할까봐 염려한다는 것. 여전히 대상을 바꾸어도 불안과 염려를 멈출 수 없는 부모인 내 마음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불안이 작동하는 내용이나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통해 발견해보고자 한 것은 아동인권과 장애인권의 연관성을 살펴보면서 두 집단을 교차하며 역사적으로 작동했던 유사한 차별 기제를 보기 위함이었다. 장애가 있기에 걱정이 증가된 것이라는 부모의 주장이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다 해도, 역시 아동/청소년에 대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불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통해서 ‘소수자는 불안전’하다는 관념으로부터 동일한 반응지점이 발화되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사회가 차별의 테두리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걸러내려 할 때 대상에 따라 경중은 있으나 차별적 상황과 지위에 놓일까에 불안은 어떤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로 생겨나는 것이란 점이었다. 따라서 우리들 불안은 ‘장애 자녀’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기에 ‘복없는 내’탓도 걷어내야할 것이란 점을 인권의 관점에서 짚어보았다.

인권교육에서 하려는 것은 일방적으로 저평가된 삶의 이야기들을 다른 언어로 재해석해 각자의 삶의 독자성과 소중함을 느끼도록 돕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목표로 내 불안의 정체와 만나며 저평가된 장애 자녀의 삶의 독자성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면,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봐온 존재들을 성숙의 마당으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이제껏 내가 자녀에게 바라는 바를 말했다면(이것은 교육에서만 아니라 대체로 살아오며 굳어져온 방식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번엔 아이들(특히 장애를 가진 자녀)이 나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없을지 생각해보라는 요청을 드렸다. 생각의 확장을 위해서 엑시트버스의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한 것을 보여드리고, 또 올해 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못다한 이야기>라는 장애 가족의 이야기를 전해드렸다. 엑시트버스 청소년 이야기를 통해서 자녀들이 ‘아직 미숙한’ 존재인 것이 아니라 ‘이미’ 성숙한 존재임을 떠올릴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냈다. 가족에게 장애인 부양의 책임을 미루는 이 사회에서 ‘내가 동생을 책임져야 할 것 같다’고 다짐하고 있는 누나의 걱정을 무색하게 오히려 누나를 걱정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장애를 가진 동생의 스토리를 통해 제목의 <못다한 이야기>는 과연 ‘누가’ 못다한 이야기인지 생각해보자고 제안을 드렸다.

이 요청을 한 후 참여자 여러 분들 사이에서 민망한 웃음소리가 나오거나 당황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그 민망함은 자신을 향하는 것이 역력해보였다. 웃음의 의미를 묻자 더욱 더 민망해하시며 “아, 이런 질문을 받고보니 내 아이도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라고 말하신다. 또 어떤 분들은 실제로 장애 자녀로부터 이른바 ‘잔소리’를 들었지만 그동안은 그것을 철부지의 말로 여겼다며 당황해 하신다. 적어내신 내용들은 이런 것이었다. “엄마도 제발 엄마 인생을 사세요, 저만 신경쓰지말고”, “엄마 건강도 좀 챙겨”, “잔소리 좀 그만해”, “내가 이런 것은 엄마탓이 아니예요”. 나온 이야기들은 짐작 가능한 말들이었다. 새롭지는 않았지만 교육에 참여한 부모님들이 평소엔 훅 넘겨버렸던 자녀들의 말을 다시 곰곰이 새겨보는 시간이 중요했다. 그리고 생각없는 말이 아니라 나도 자녀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는 생각, 그 말이 너무 중요한 말들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천천히 함께 해나가기

마지막으로 장애인권+아동인권을 주제로 정리강연을 진행하였다. 소수성은 구성되는 것, 소수자는 무력하다는 관념이 얼마나 소수자를 깊숙히 무력감 속에 빠뜨리게 되는지, 안전을 이유로 보호한다지만 보호가 무력한 존재라는 생각과 만날 때 통제와 억압으로 화하게 됨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덧붙여 자신의 책임이라는 무게와 결별하기엔 현실의 큰 변화가 요구되지만, 적어도 관점에서부터 복지가 권리이자 인권임을 이야기함으로써 ‘내 책임’이라는 생각에 갇혀 불안과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 사이를 오가는 ‘나’와 서서히 결별해 가보자고 제안드렸다.

장애인 가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대략 두가지로 정리된다. “얼마나 힘들겠냐”는 동정이 시선. 이 경우 장애인 당사자의 존재 가치는 없다. 다른 또 하나의 시선은 “왜 그렇게 가족이란 굴레로 함께 묶어서 생각해? 너야말로 장애인을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는 것 아니야”라는 질책. 장애인 가족도 장애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불편을 계속 감수해야하는 장애인을 바로 옆에서 보니 ‘불안’이라는 감정까지 더해져 편견은 더욱 공고할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독립적 존재’로 대하라는 질책은 가족이란 이유로 지나친 보호주의를 발현해서 자립과 독립을 막고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을 침해할 수 있음에 경종이 된다. 하지만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장치의 미흡함 속에서 자신을 장애인인 가족과 분리시킬 수 없는 삶의 무게까지 살피지 않고 ‘복지’에게 책임을 묻자거나 복지가 인권이라는 주장은 허망할 수 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데, 대안이 없는데, 나더러 어떻게 다른 선택을 하라는 것인가’. 이런 질문이 나오진 않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참여자들 속에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되었다. 교육가인 나조차도 장애를 가진 오빠가 있다보니 비숫한 생각이 많이 든다는 공감과 함께 이 불안감을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건 “우리가 함께 그런 생각을 시작하고, 또 꾸준히 함께 가고, 앞으로 만나 상담할 분들과도 나누며 같이 가는 것”이 아닐까 말씀을 드렸더니 고개를 끄떡이는 분들이 많았다. 교육가가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비슷한 고민을 해오며 드리는 말씀이라 생각하시니 뱉기 좋은 말의 성찬으로만 느끼시진 않았던 모양이다.참여자들 마음속에 있는 모든 불안이 해소된 건 아니었겠지만, 그 불안조차 사회적으로 해석하고 도전한다면 의미 있는 것임을 참여자들이 느끼고 내 인권, 그리고 내 자녀의 인권과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함께 해 나가게 되길 바랄 뿐이다. 이 분들이 앞으로 상담을 통해 만날 분들과도 그런 고민을 나누어가길 더불어 바랄 뿐이다.
⁍ 정리 ‖ 정주연(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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