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인권, 연극의 만남
시민인권연극제 단원들과 함께 만든 뜨거운 장면들

“등이 말을 하고 있어요.”
지난 7월말 시민인권연극제 시민단원들과 함께한 인권교육 시간이었습니다. 한 폭력사건의 이모저모를 살피면서 사건의 발생을 도운 전조(前兆) 장면을 찾아 상황극으로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한 모둠에서 만든 가족장면에 꾸부정한 자세로 등장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대사는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그 짧은 순간, 아버지의 꾸부정한 등이 그 분이 짊어진 세상의 무게, 한숨, 아이에 대한 미안함, 서툰 사랑 등 온갖 이야기와 감정을 교실 전체에 펼쳐놓았습니다.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휘어감은 등. 그 등을 보며 굳이 ‘말’이 아니어도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교육의 ‘언어’는 많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민인권연극제-인.연’은 문화예술단체와 인권단체들이 힘을 모아 올해 처음 열리는 행사입니다. 10월말부터 11월 중순까지 여러 작품이 대학로 곳곳에서 오를 예정인데요. 기존 연극집단이나 인권단체가 준비한 작품도 있고, 시민단원으로 모집된 분들이 직접 만드는 작품도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연극제 집행위원회에서는 시민단원들이 작품을 만들기 전 인권에 관한 시야를 고를 수 있도록 다섯 차례의 교육을 ‘들’에 요청하였는데, 한낱과 개굴 두 사람이 맡아 진행했습니다.연극으로 인권을 얘기하는 인권연극제

첫 교육에서는 어떤 마음으로 인권연극제에 시민단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인권 의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나눈 다음, 인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 어떤 감수성과 자세를 요하는지 정리해보았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차별을 어떻게 말하고 낱낱의 차별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교육에서는 ‘기억하기, 말하기, 연결하기’를 주제로 구체적인 인권사건들을 들여다보았는데요, 시민단원들이 연극제에 올릴 대본을 구상하고 장면을 만드는 데 좀더 실질적 도움을 드리고자 ‘농도 80%’의 연극 형식으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터지기 전 얼마나 많은 징후들이 응축되고 있는지, 주변의 반응들이 어떻게 큰 사건의 발생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살펴 전조(前兆) 장면을 만들어보는 시간도 있었고요.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외려 ‘피해자’에게 혐의와 책임을 덮어씌우면서 어떻게 자기를 정당화하는지를 찾아 장면을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가운데 자리에 앉은 피해자에게 주변을 둘러싼 이들이 취하는 자세와 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피해자들이 어떤 고립과 고통의 자리에 내쳐져 있는지를 살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는 [노동], [은밀한 차별], [대놓고 차별] 등의 의제별로 참여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건이나 개인적 경험담을 모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각각의 사건이나 경험을 마주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나 빠지기 쉬운 함정을 함께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후련한 뒷풀이 자리도 마련되었더랬어요.

연극이라고 하면 잘 짜인 대본과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 화려한 무대장치 등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인권연극이라면 아주 특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전문배우가 아닐지라도, 무대가 화려하지 않더라도 삶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 무대와 객석을 뜨겁게 오가는 자리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연극을 만드는데 ‘들’의 인권교육이 작은 기여라도 되었음 하는 바람입니다.

* 덧붙임: 아, 살짝 부끄럽긴 하지만… 이번 인권연극제에 저도 ‘포이에시스 토론연극 클럽’의 한 사람으로 작품을 올립니다^^;; 비교의식과 차별에 관한 우리들의 이중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 초대장이 나오면 나눌게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ㅋㅋ

⁍ 정리 ‖ 경내(개굴)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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