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길
서울시 교육청 어린이도서관 인권교육

여름방학을 맞아 서울시 교육청에서 초등학교 4,5,6학년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 요청이 왔다. 이 교육이 기존의 초등학생 인권교육과 색다른 점은 선정된 도서에 기반 하여 인권교육을 진행한다는 것, 어린이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방학 중 프로그램이니만큼 관심 있는 친구들의 자발적(?)참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참여자들의 관심보다는 부모님의 관심이 이끄는 경우가 많았지만^^‘; 교육의 길잡이로 삼은 책은 바로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발행한『나도 권리가 있어!』와 『우리가 바꿀 수 있어』이다. 이 책들은 어린이를 주 독자층으로 하여 초등학생들이 주변에서 겪을 법한 여러 가지 인권의 문제를 만화와 실례를 통해 풀어내고 있어서 참여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공감할 수 있다. 각각의 책에서는 다양한 권리들을 다루고 있는데 교육시간은 각 권당 2시간, 어디에서 출발하면 좋을까?

우선 첫 번째 시간은 『나도 권리가 있어!』중 차이와 차별을 키워드로 일상에서 불평부당하게 대우받았던 경험들을 되돌아보고 이를 권리의 언어로 재구성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간은 민주주의, 참여를 키워드로 『우리가 바꿀 수 있어』라고 외치며 참여자들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보는 시간으로 구성했다. 2차시 교육을 한 세트로 2회 진행하면서 기조는 유지하되 앞선 교육을 조금씩 수정 보완해 나갔다.

나도 권리가 있어!

불특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집하면 대개 아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신청하거나 혼자 오게 된다. 그만큼 뻘쭘하면서 그룹이 형성되는 분위기가 되기 때문에 교육에 앞서 서로간의 어색함과 긴장을 해소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첫 시간의 몸풀기 마음열기에 충분한 시간을 배정한 이유이다. 그런데 스무 명 가량일거라 예상한 참여자는 여섯 명 남짓이었다. 준비한 프로그램이 십여 명은 넘어야 그래도 진행에 재미와 활력이 생길만한 것이었기에 교육시작에 앞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참여자가 적은 만큼 도란도란 자기를 소개하고 서로를 알아보기로 했다. 자신의 얼굴이나 자기가 좋아하거나 자신있는 신체부위, 혹은 특별한 경험이나 사연이 숨어있는 부분을 그린 후 그 이야기와 함께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어색한 시간, 자기소개를 엄청 쑥쓰러워하는 참여자를 위해 ‘패스’의 기회를 부여했더니 모든 이들이 그 기회를 적극(?) 활용했다. 참여를 강제할 수 없기에 마련한 장치가 분주히 작동할 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패스가 반복될수록 모두들 조금씩 긴장하는 듯하다. 단순히 멋쩍어서가 아니라 교육을 만들어가는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임이 느껴지기 때문 아닐까.어린이 권리카드어린이 권리카드
아이러니하게도 ‘패스’라고 하며 날리는 어색한 표정과 웃음이 긴장된 공기를 누그러뜨렸다. 그렇게 천천히 교육 안으로 한 발 들어서 보았다. 우선『나도 권리가 있어』의 ‘1장. 차별받지 않을 권리: 나와 다르다고 차별해선 안되요.’를 바탕으로 나이, 피부색, 장애 등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기준에 대해 살펴본 후 이를 일상에 대입해 본다. 나이가 많거나/적어서, 외모나 피부색 때문에 내가 경험한 비슷한 일들은 없는지 그럴 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떠올려 볼 것을 주문했다. ‘엄마 심부름할 때 동생도 같이 도왔으면 좋겠다.’, ‘우리 반에는 책읽기 숙제가 있다. 그런데 매일매일 해야 된다. 사촌동생 집에 2박3일 놀러가려고 하는데 놀러가서도 숙제를 해야 될 판이다.’, ‘학교에서 자리를 정할 때 키 번호나 출석번호로 앉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생님, 방학숙제는 많은데 방학은 짧아요. ㅠ.ㅠ’, ‘내가 알아서 할테니 그냥 내비둬.’ 다른 학년, 다른 학교, 다른 지역에서 왔지만 참여자들의 경험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열 가지의 빛이 발할진대 무엇이 이렇게 비슷한 풍경을 자아내는 걸까? 으레 그러하다고 여겨지는 상황, 싫지만 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솔직한 내 마음을 표현하면서 마냥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는 가능성의 문을 두드려 본다. 참여자들이 적은 사람 실루엣의 종이를 이어 놓으니 서로를 향한 공감의 인증샷 같아 마음이 조금은 든든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바꿀 수 있어!

사소한 말이라도 공개된 장소에서 자유롭게 하기는 썩 쉽지 않다. 그래서 두 번째 시간은 놀이를 통해 좀 더 긴장과 무거움을 덜어보았다. ‘쌍둥이 꽃이 피었습니다.’놀이를 하다 보니 마음도 입도 가벼워졌다. 두 번째 시간은 『우리가 바꿀 수 있어』라는 주제인 만큼 하나의 문제를 제시하고 참여자들이 직접 논의하고 결정하는 시간이다. 기획 당시에는 초등학교에서 있을 수 있는 운동장을 고학년 우선으로 사용하는 문제나 일기장 검사에 대한 논의를 학급 운영회의 형식으로 하려고 했는데 참여자들이 각기 다른 학교에서 오다보니 사정이 모두 달랐다. 일기를 매일 쓰고 검사를 맡는 학교도 있는 반면, 주 2회만 쓰면 되는데 벌을 받는 경우 매일 써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가상의 상황을 설정했다. 우선 전래동화 속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가상의 마을을 만들었다. 마을 주민은 7명의 자녀와 함께 단칸방에 살고 있는 흥부, 고래등같은 기와집에 만석꾼인 놀부, 남의 집 살이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며 미래를 위한 저축같은 건 꿈도 못 꾸는 향단이, 양반가에 태어나 먹고살 걱정없이 공부에만 몰두하는 몽룡이, 부모님 없이 이주해 와 살 곳이 없는 헨젤과 그레텔 등 참여자들도 익숙할 법한 인물들이다. 만약 이들이 사는 마을에 쌀 100섬이 생긴다면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가 참여자들에게 던져진 문제다. 애초 기획은 참여자들이 곧 이 마을의 주민이라는 가정이 있었는데 감정이입이 되지않아 마을주민과 나 사이 그 어디쯤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처음부터 전체 논의를 할 경우의 위험성에 대비하여 우선 개인별로 분배작업을 한 후 함께 공유했다. 그리고 이걸 나누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즉 참여자들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논의해서 정해보자고 주문했다. 두 번째 시간이라 그런지 참여자들은 스스럼없이 칠판 앞으로 나와서 각자가 정한 내용들을 어떻게 조율할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우리가 바꿀 수 있어

쌀 100섬을 어떻게 나누는 지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포인트는 구성원들의 논의과정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결정을 만들었나? 자유롭게 논의에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나?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논의에 참여하거나 이야기하기 힘들게 만들었나? 하는 점들을 점검해 보았다. ‘다른 친구들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아서 힘들었다.’, ‘나는 의견을 내는데 내 의견을 반영해 주지 않더라.’, ‘누구는 이상한 말만 한다.’거나 특별히 내 문제로 여겨지지 않아서 논의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참여자까지. 논의과정 전체를 참여자들의 느낌과 질문을 통해 되돌아보았다. 이러한 경험이 인권교육을 이 공간을 넘어 일상으로 연결시키는 힘이 될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참여와 논의의 과정에서 짚어야 할 좌표들을 일상생활로 옮겨 보았다. 내가 지켜야 하는 규칙이나 규율 가운데 바꾸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무엇을 왜 바꾸고 싶은지, 내가 속한 곳(가족, 학교, 학원 등)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내 의견은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떤 순간순간 가슴에 ‘내 말 좀 들어봐.’ 혹은 ‘왜 안되지?’라는 생각들이 움틀 가능성을 품는다면, 거기서 또 다른 가능성의 길은 언제든 열릴 게다.

교육을 마치며 참여자들은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라는 소감을 남겨줬다. 어린이, 청소년은 여전히 충분히 말하고 응답할/받을 기회와 장소를 가지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면서 잠시나마 그 공기를 만나게 하는 통로가 된 것 같아 다행이다. 이 교육을 기회로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젖히길 바라본다.

⁍ 정리 ‖ 묘랑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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