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우리의 언어를 찾아서
시각장애인을 만나다

현피, 버로우, 버카충, ㄱㄱ, ㄷㄷㄷ, ㅎㄷㄷ
카톡 혹은 가끔 들르는 트위터에서 그리고 각종 댓글에서 만나는 이런 용어들은 내게 해석불가다. 온라인 게임도 SNS도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 나로서는 게임에서 유래한 ‘신조어’들을 이해하기까지 온라인 게임의 내용과 구조, 운영 전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설명이 접해도 ‘뭐래 -_-’;’, 내지는 ‘왜?’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 혹은 불만이 이어지곤 한다. 그럼에도 너무 후진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바람으로 가끔 검색창에 넣어본다. ‘10대 신조어’

시각장애인인권교육열심히 문제지와 시름한 결과 나는 아무래도 인터넷이나 유행과는 담쌓고 사는 시조새(0개~4개)급니다. 같은 인터넷 유저인 줄 알았는데 내가 쓰는 ‘인터넷’과 다른 이들이 쓰는 ‘인터넷’은 또 다른 세계였다.

우리가 동시대를 살아간대 해도 각자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은 다른 감각으로 새겨진다. 때로 그 ‘다름’을 가로지르기 위해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정보를 검색, 수집하면서 이해라기보다는 인식을 위한 노력을 해본다. 그렇게 열린 틈으로 비단 용어의 이해뿐만 아니라 어떤 행위와 가치 등 우리를 가르지르는 차이들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나마 이런 노력들이 가능한 건 ‘시조새’와 파릇한 ‘신입생’(위 테스트 만점자) 사이에 어떤 공유지가 있기 때문이다. 격이 다른 인터넷 유저일지라도 인터넷을 통해 서로를 넘나들 수 있는 가능성, 서로가 향유하고 있는 공통의 감각들. 만일 그런 공통의 토대가 아주 미미하거나, 혹은 서로가 삶에 대한 이해가 부재하다면 어디서부터 말걸기를 시작해야 할까?

인권교육의 문은 놀이를 활용한 뭄풀기 마음열기 그리고 우리가 모두 일상에서 쉽게 접했을 법한 TV나 광고의 이미지들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열곤 한다. 혹은 통념에 기반한 문장 혹은 질문들을 곱씹으며 우리가 놓치고 간과해왔던 메시지들을 찾으며 ‘아하~’ 이심전심하는 분위기를 잡아본다. 이미지나 동영상, 우린의 절친 PPT로 메시지 전달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다양한 질문과 이야기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이 시각장애인들과의 첫 교육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경감시켜 주었다. 한 공간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면 공간 내 위계나 부당하고 차별적인 규칙 등이 일상이 된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우리가 할 법한 이야기들을 몇 개 준비했다. “이번에 우리 방에 현식이가 새로 들어왔어요. 이 친구는 아주 기본이 됐어요. 신입답게 우리를 형님으로 아주 깍듯하게 대하고 담배심부름도 잘해줘요. 오랜만에 괜찮은 애가 들어와서 제가 막내를 면하고 편해졌다니까요.” 이야기에 혹시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떤 느낌일지를 살피면서 관계를 규정하는 위계와 이런 것들이 어떻게 우리 일상에서 작용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참여자들이 좋아하는 음식, 여향가고 싶은 해외 도시 등을 물어 끝말잇기로 분위기를 업 하자.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하며 루트와 함께 교육장소로 향했다.

쿵짝쿵짝… 노래방 음악이 강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미리 와 있던 참여자들이 둥그렇게 의자를 둘러 앉아 순서대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의자 밑에는 신발을 담은 비닐봉지가 놓여있었다. ‘여기는 이 분들의 생활시설인데 왜 신발을 신발장에 두지 않고 각자의 신발을 담아가지고 계실까?’ 뭔가 참여자에 대한 이해에 실수가 있었음을 감지한 순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참여자 수는 사전에 확인했던 것보다 많은 30여 명에 이르렀고 예상했던 것보다 공간 안에서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다.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이동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여섯 명이 그룹을 이루어 진행하려던 끝말잇기는 못하겠구나.’ 어떻게 시작해얄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예정보다 많은 참여자를 보면서 다같이 진행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난감함이 밀려왔다. 일단은 노래를 좋아하시는 듯하니 각자 좋아하는 혹은 사연 있는 노래와 함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렸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18번을 소개하면서 몇 구절을 불러주기도 하면서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자기소개 후 강당이 넓은 만큼 부족한대로 두 팀으로 나누어 양쪽 끝으로 모일 것을 요청드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모둠을 나누는 일은 더 난감했다. 시설종사자 두어 명이 도왔지만 내가 기대하는만큼 능숙능란하게 이동을 유도하지 못했다. 신참의 종사자이기 때문인지 이런 일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마음속에 궁금증만 남을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모둠을 나누고 이야기를 이어 가려니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타자로의 전환 방식이 문제였다. 한 사람의 이야기 끝에 다음 사람이 자연스럽게 받아 이어가지지 않을 때 보통은 참여자의 표정을 살핀 후 이야기를 이어줄 법한 참여자를 택해 눈빛과 표정으로 발언을 요청하곤 했다. 이름을 호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서로에게 의견을 물을지 난감해하다 발언을 요청드릴 때 참여자의 무릎을 터치해도 되겠는지 물었다. 참여자들의 동의를 얻어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낯선 이의 불시의 접촉이 어떻게 다가왔을지… 교육을 마치고서야 내가 가능한 방법을 들이민 건 아닌지 뒤늦은 책망이 들었다.

참여자들의 삶의 결이 다른 만큼 경험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시설 밖으로의 외출이 잦았던 분들은 식당에서, 지하철에서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한 듯했던 일들,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의 부조리함을 조금씩 꺼내놓았다. 그러던 중 50대를 넘어 중도장애로 시력을 잃은 분이 다른 분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어조와 언변으로 분위기를 장악했다. 다른 이들이 느끼는 분노와 억울함에 대한 토로를 불평불만쯤으로 여기며 자신이 살아온 ‘정상’적 남자로서의 삶을 강조했다. 남자라면 능력을 키워 취직하고 가족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그 분에게 보통 사람들의 무시와 연민은 일반적 사회생활의 능력(?)을 잃은 이가 감당해야할 몫이었고 그러하기에 자신을 돌봐주는 시설은 고마운 곳이었다. 자신의 처지와 본분을 잊은 채 무언가를 바라거나 억울해하는 것은 몰염치하다는 듯한 발언에 다른 참여자들은 차츰 입을 다물었다.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다. 분명 문제적이고 차별적인 발언임에도 다른 참여자들을 압도한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나치게 당당하고 확신에 가득했던 그 분의 태도가 한국사회에서 시각장애인으로서의 나의 위치를 다시금 환기시켰을지도 모르겠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 분의 이야기가 더 자신이 서 있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경험이 다른 참여자들의 언어를 무질렀을지도 모른다. 피로감이 몰려온 듯 한 참여자가 말했다. ‘이런다고 뭐가 바뀌기는 해요?’ 오히려 냉소가 공감을 이끌어냈다. 무수히 경험하고 반복된 일들을 내가 ‘차별’로 재의미화한다고 해도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 또한 무수히 경험했다고. 여러 번 말해 봤지만 우리의 말은 이렇게 현실앞에서 갈 곳을 잃었다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벽에 둘러싸여 있는지, 그 벽에 얼마나 세게 받치고 피 흘렸는지 확인하는 것 같아 무력감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벽에 구멍을 내기 위해서는 공연한 헛발질이 쌓이고 쌓여야 함을, 더디고 소소하지만 분명히 변화도 일고 있음을 나 스스로도 무력함과 가능성을 오가며 소개했다.

말은 일반적인 그리고 훌륭한 소통의 도구다. 그러나 그 말이 서로에게 가닿기 위해서는 평등한 관계와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맥락 속에서 살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각자의 몸에 어떻게 아로새겨져 있는지 알기 위해 어쩌면 지금 이분들과 내 사이에는 번역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만나고 듣고, 그들의 언어 그대로 입력하는 마음이.

⁍ 정리 ‖ 묘랑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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