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다양함이 더욱 빛나는 순간
장애와 장애,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다

인권교육을 하러 가는 순간까지 어떤 프로그램을 할 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몇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갸우뚱~!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미리 교육장에 가 보지 않아 주변 환경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 꿈틀이가 돋움이에게 익숙하지 않은 대상일 때 교육장을 들어서는 순간까지 이런 갈등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그때그때 돋움이의 순발력만 있으면 교육을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을까?

날개 달기 – ‘장애/비장애’ 사이에서 보지 못한 차이

대학생으로 구성된 ‘장애민중연대현장활동’의 하나로 인권교육을 진행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런데 교육에 참여하는 꿈틀이가 지체 장애를 가진 이부터 시각, 청각 장애 그리고 비장애인까지 다양해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한 가지 유형의 장애가 아니라 여러 가지 유형의 장애를 가진 이들이 한 공간에 있을 때 여차하면 의도하지 않게 누군가를 소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고 기존 프로그램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인권교육 또한 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차이만을 봤을 뿐 장애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에 대해 세심하게 보지 못했던 게 당장 교육을 앞두고 그대로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발뺌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최대한 이러저런 상황을 고려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그래도 빈자리가 있다면 부족함을 인정하고, 꿈틀이와 돋움이가 서로 그 자리를 채우며 함께 만들어 가는 교육이 인권교육이지 않은가. 그래, 부딪혀 보자.

더불어 날갯짓 – 구분 짓기가 아닌 함께 어울리기 위한 차이

인권교육의 애피타이저, 몸풀기 맘열기! 이때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전체 교육에서 꿈틀이도, 돋움이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까지 몸풀기 맘열기가 너무 비장애인 중심이었다는 거~!!!! 지체 장애인을 고려하면, 시각 장애인은 참여할 수가 없고, 시각 장애인에게 적절한 방법이 청각 장애인에게는 재미가 없고…. 장애를 가진 분들과 함께 연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이에게 SOS를 요청, 함께 머리를 맞대니 몇 가지 방법이 나왔다.

그런데 처음 요청과는 달리 아예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를 가진 꿈틀이는 없어서 시각 장애를 고려하지 않고 교육을 진행했다. 먼저 10여 명씩 동그랗게 서서 옆 사람 손을 잡고 그 상태에서 풍선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띄우는 놀이를 했다. 시작할 때는 풍선을 한 개만 띄우다가 차차 풍선을 늘려 동시에 여러 개를 띄운다. 이 때 옆 사람의 손을 절대로 놓지 않도록 한다. 처음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꿈틀이와 다른 꿈틀이들의 높이가 달라 조금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자 휠체어를 이용하는 꿈틀이는 손보다는 다리를 들어 풍선을 띄우기도 하고, 휠체어 높이에 맞게 다른 꿈틀이가 앉아서 놀이에 참여하면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하나, 둘 찾아간다.

장애/비장애 청소년이 함께한 놀이
이어서 두 명씩 짝을 지어 함께 춤을 추는데, 한 꿈틀이는 눈을 감고 나머지 한 꿈틀이는 눈을 뜬 상태에서 서로 손을 맞잡거나 다른 방법으로 움직임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한 다음 자유롭게 놀면 된다. 음악에 맞춰 서로 자유롭게 공간을 돌아다니며 춤도 추고 움직이기도 하지만 말을 하지 않고 느낌으로만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한다. 번갈아 가며 역할을 바꿔서 해 본다.

이때 청각 장애를 가진 꿈틀이는 음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꿈틀이가 손을 마주 잡고 움직임으로 먼저 리듬을 전달하도록 했다. 또 휠체어를 이용하는 꿈틀이는 다른 꿈틀이와 마주 서서 손을 잡을 경우 휠체어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휠체어 뒤를 잡고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눈을 감은 상태에서 휠체어 뒤를 잡고 움직일 때 너무 가까이 있으면 바퀴에 다칠 수도 있어 휠체어 뒤에 끈을 묶은 후 그 끈을 잡고 춤을 추도록 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꿈틀이가 눈을 감을 경우에는 다른 꿈틀이가 휠체어를 조정하거나 뒤에서 수동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드디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출 시간~! 춤을 잘 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한정된 공간이라고 할지라도 눈을 감고 있을 때 한없이 넓어지는 공간을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몸이 주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돋음이는 꿈틀이가 처음에는 조금씩 움직이다가 서로 편안한 상태가 되면 몸을 좀 더 크게 움직이도록 안내한다.

장애/비장애 청소년이 함께 한 놀이2
눈을 감고 있는 한 꿈틀이는 엉덩이를 뒤로 쑥 뺀 채 엉거주‘춤’을 춘다. 다른 이를 의식하며 전봇대마냥 뻣뻣하게 서 있는 꿈틀이도 여럿~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반으로 나눠 춤을 췄는데, 휠체어를 탄 꿈틀이가 크게 손을 흔들며 리듬을 타기 시작하며 춤을 추자 보고 있던 꿈틀이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놀이기구 타는 거 같았어요.”
“다른 사람 눈치 보느라 즐길 마음의 여유가 안 생겨서 다시 했는데요, 눈을 감으니까 맘이 좀 더 편해지고 주위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장애/비장애인이) 같이 할 수 있는 놀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춤도 누구나 같이 할 수 있어서 신선했어요.”
서로의 차이를 구분 지어 따로 하는 놀이가 아니라 장애 유형에 따라 놀이 방식을 다르게 선택해 하나의 놀이를 모두 어울리면서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꿈틀이들은 즐거워했다.

더불어 날갯짓 – 서로를 풍성하게 만드는 차이

인권이 무엇인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알아보기 위해 인권포스터 만들기(<인권오름> 102호 참조)를 했다. 모둠 활동을 할 때에는 수화통역을 하거나 노트북을 준비해 문자통역을 하면서 자유롭게 논의가 오갈 수 있었다.

한 모둠은 ‘말괄량이 삐삐’를 ‘정보에 접근할 권리’로 연결해 발표했다. 삐삐가 왜 정보접근권일까? 잠시 머리를 굴려보지만 영 모르겠다. “삐삐가 있다는 건 알지만 텔레비전에서 하는 드라마에서 자막이 나오지 않아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삐삐 성격이 어떤지, 어떤 사람인지 아무것도 몰라요.” 나에게 삐삐는 그저 자유로움을 나타내는 대명사였는데, 청각 장애를 가진 꿈틀이를 통해 바라본 삐삐는 인권의 현실에서 소외당하는 이들의 삶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머리를 맞대어 – 인권교육이 주는 가슴 벅찬 순간

인권교육이 끝난 후 씨앗이 그려진 그림카드를 나눠주고 이번 교육에 대한 소감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다양한 장애를 가진 꿈틀이와 인권교육을 하는 게 처음이라 많이 떨렸고, 또 혹시나 준비한 프로그램이 맞지 않아 누군가의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였을까. 평소 다른 교육에서 들었던 소감보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즐거웠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진행을 잘 했다는 칭찬이어서가 아니라 꿈틀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차이가 공존하면서 오히려 서로를 더 풍성하게,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경험에서 오는 가슴 벅참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에 참여한 이들 중 청각 장애를 가진 꿈틀이들은 대부분 구화를 할 수 있었고, 지체 장애인 또한 말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기에 좀 더 수월하게 교육을 진행할 수 있었으리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처음 만나는 꿈틀이라 하더라도 ‘함께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버리는 것, 그리고 오히려 교육에 참여하는 꿈틀이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을 미리 만나서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 이는 서로의 차이를 봐야 하는 이유가 서로를 밀쳐내기 위함이 아니라 더불어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장애민중연대활동 교육을 하면서 다시금 새길 수 있었다.

 

[영원/ 인권오름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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