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은 도덕교육과 친구가 될 수 있나
[인권교육, 날다] 간신히 지뢰밭 건너고 휴~

결국 실패했다. 도덕교과연구회 소속 교사로부터 인권교육을 의뢰받아 찾아간 자리. 인근 지역 도덕교사 서른 명 정도가 모인단다. 고민과 실천이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한때 동료들과 도덕교육 폐지까지 주장하기도 했었던 터라 도덕교사와의 만남은 편하지 않다. 이것저것 고민하며 교육 시나리오를 짜갔지만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다. 수많은 교사들과 교육을 해보았지만 이렇게 힘든 교육은 처음이다. 이 글은 그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었던 긴장과 실패담에 대한 고백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줄줄이 지뢰밭

애초 요청된 교육 주제는 ‘도덕교육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권교육 교수방법’이었다. 현 7차 교육과정에서도 인권에 관한 내용이 일부 도덕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지만 8차 교육과정에서는 내용이 더 확대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인권교육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게 섭외한 교사의 얘기였다. ‘흐음, 어느 정도 관심 있는 도덕교사들이 모이니 쟁점을 붙여보면 재미난 자리가 되겠군.’ 약간의 기대를 안고 교육장소로 잡힌 한 중학교 건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여학생 두 사람이 현관 앞에 마주보고 서서 배꼽을 잡고 허리를 숙인다. “아, 네…안녕하세요?” 교육장 앞에 가니 접수대에도 두 여학생이 서서 손님을 맞고 있다.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니 연구회에 소속된 담임교사가 부탁한 거란다. ‘교사들 행사에 왜 학생들이 왜 시다를 하는 거지?’ 시작 시간이 10분 지나도 절반밖에 자리가 차지 않는다. 섭외 교사가 학교마다 행사가 많아 참석률이 저조한 거라고 양해를 구하지만, 뭔가 이 자리의 성격이 뭘까 찜찜해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이 학교 교장이 들어왔다. 진행을 맡은 교사가 국민의례를 시작하겠다고 한다. 헉!! 모두들 가슴에 손을 올리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행한다. 교장의 의례적인 인사말이 끝나자 교육을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진다.

초등학생들이 90도 인사를 하는 장면

예절교육을 받고 있는 초등학생들. 윗사람에 대한 예절과 인간에 대한 예의는 다르지 않을까. [사진 출처: 서울중등교육청]

난데없는 국민의례에다 교장의 등장까지 끝나고 나니 장내 분위기가 엄숙하다 못해 엄청 가라앉아 있다. ‘미리 이런 절차가 있을 걸 예상했더라면 하지 말아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을 텐데….’ 그래도 이 몇 가지 장면이 오늘의 좋은 수업 재료가 되지 싶었다. 예절교육, 애국애족교육은 사실 도덕교육의 중심들이 아닌가.

찢어진 날개 달기 – 좀처럼 열리지 않는 마음

먼저 가라앉은 분위기를 좀 띄어보려고 인사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교실이 워낙 좁아 활동적인 놀이를 하긴 힘들어 집게손가락을 마주대면서 ET처럼 인사 나누기를 해보았다. 약간 웃음꽃이 피는가 싶더니 자리에 돌아가 앉자마자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한다. 같은 모둠에 앉은 교사들과 인사도 제대로 건네지 않는다. ‘흑흑 이 분위기를 어찌하면 좋아.’

인권교육을 받은 적 있는지 물어봤더니 거의 없다고 한다. 인권에 대해 평소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인권에 어느 정도 친숙한지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자전거를 그려놓고 앞바퀴에는 인권에 있는 것, 뒷바퀴에는 인권에 없는 것을 적어보게끔 했다. 인권에 있는 것으로는 다양성, 배려, 자유, 존중 등이, 인권에 없는 것으로는 차별, 불평등, 무시 등이 나왔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가치들이 거의 나오지 않은 걸 보니 인권에 대한 기본 이해가 상당히 부족한 모양이다.

허우적허우적 날갯짓 – 침묵의 긴장, 삐딱한 시선의 긴장

세계인권선언 전문(全文)을 함께 살펴보면서 인권의 기본 의미와 원칙을 정리해보고 난 뒤, 모둠별로 사례를 주고 분석을 주문했다. 주어진 사례에서 일반적으로 도덕교육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과 인권의 눈으로 바라볼 때 문제가 되는 지점이 어떻게 다른지를 찾아보면서 차이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

도덕교육은 인성교육, 예의/예절교육, 민주시민교육, 애국애족교육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덕교과서가 예뻐라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위한 개인이다.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출발하여 가족․이웃을 공경(효, 예절)하고 법질서 확립과 사회발전에 기여(근면성실한 민주시민)하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충, 애국애족)할 줄 아는 사람. 이러한 도덕교육의 기본 구도부터 인권과 긴장을 자아내고 있다. 반면 위아래로 나뉜 수직적 질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한계나 폭력성에는 침묵하고, 양보할 수 없는 개인의 존엄이나 불복종행동이 지닌 가치도 좀체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래서 위계, 예의, 질서, 준법, 다수결 등과 관련해서 교사들에게 가까운 쟁점 사례를 던져줬다. 최근 고3 학생회장이 조회에 나오지 않는 고2 후배를 때려 숨지게 한 강릉의 한 고등학교 사례, 교사의 몽둥이를 붙잡고 체벌을 제지했다가 학생이 보복조치로 퇴학당한 사례, 1996년 동티모르를 점령한 인도네시아로 수출되는 전투기에 숨어들어가 가정용 망치로 무기 부분을 부순 영국 ‘희망의 씨앗’ 소속 여성들 사례, 이년 전 한 학교에서 학생회 주도로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하면서 두발제한 규정을 그대로 남겨둔 사례 등이 포함됐다.

모둠별 토론 시간을 주었지만, 여섯 모둠 중 두 개 정도만 이야기를 시작할 뿐 상당수는 자료에 코를 박고 있다. 안 되겠다 싶어 하나씩 함께 짚어가며 살펴보기로 한다. 의견을 물어봐도 대부분은 묵묵부답. 몇 분 교사만이 입을 뗀다.

교사의 폭력 장면
A교사: 폭력을 쓴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 후배가 가만있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겠죠. 또 학교에서 학생회장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지웠던 것 아닐까요?
나: 그러게요. 그나저나 후배들 잡아 조회에 참석하게끔 하는 일이 과연 학생회가 할 일인가요? 학생회장은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요? 후배를 때려도 된다는 생각은 왜 하게 된 걸까요? 이 학교 학생들이 폭력 추방 거리 시위를 하는데 1,2학년만 하더군요. 수능 부담도 있었겠지만 3학년이 참여하지 않은 건 이 문제를 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3학년과 후배들 사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을 가능성을 말해주지요. 단지 폭력은 안 된다는 말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인권의 관점으로 볼 때 핵심은 선후배 사이의 위계가 중심으로 떠오르지요.

B교사: 사랑의 매라는 말도 있고 학생이 교사에게 그런 행동을 한다면 대부분 선생님들은 무례하다고 느낄 것 같아요.
나: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 학생이 잡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요? 폭력을 중단시키기 위한 힘의 행사를 예의 없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연대 방어, 인권 옹호에 해당하는 행동일 수 있지요.

무기반대운동, 운동장 두발검사 장면 등
C교사: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전투기를 부쉈다면 정당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현행법을 위반한 것만은 분명한 듯합니다.
나: 네, 그 여성들의 행동은 폭력에 대한 비폭력 불복종 행동이었어요. 인권의 관점에서는 준법이 아니라 폭력적 법에 대한 불복종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사건에서 영국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었어요. 때론 법원도 실정법보다 인권의 가치가 더 중요함을 인정하곤 합니다.

D교사: 두발자유가 옳기는 옳지요. 주어진 사례에서 학생들이 두발규정을 없애지 않은 게 주변 학교들을 고려해서였는데요, 제가 지난번 있던 학교에서도 두발 규정을 없앴더니 날라리 학교로 찍히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기피하는 거죠. 교장 선생님은 모든 탓을 두발자유에 돌리구요. 그러다 보니 두발규정이 다시 부활했어요. 실제로 그런 어려움이 있더군요.
나: 실제로 그렇게 일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개별 학교 차원에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실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 중요한 것이지요.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는 두발규정을 정할 때 학생, 학부모, 교사 3자의 의견을 고루 수렴하라고 얘기합니다. 이 학교는 학생회에서 그 권한을 주었으니 더 낫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왜 내 머리모양을 학생회가 정해?” 학생회가 규정을 정한다 해도 두발제한의 불가피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인권침해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기대한 것보다 인권의 관점에서 문제의 요지를 콕 짚어낸 교사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교육 진행자의 말만 자꾸만 길어진다. 준비해간 추가 사례들을 소개하며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쏟아내도 마음 한 편이 갑갑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이야기들이 활발한 토론을 통해 교사들 스스로 찾아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 꾹 다문 입보다는 차라리 도덕교육의 정당성을 목소리 높여 외친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마음을 맞대어 – 실패의 원인은 의무, 그 속에 해답이

참여 교사들의 반응이 착착 달라붙질 않으니 준비해간 교육 내용을 3분의 2도 진행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마무리할 시간이다. 힘든 마음에 예정에 없던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교육받으러 오신 순간부터 지금까지 불만이었던 점이 있으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잠시 갖기로 하죠.” 여전히 묵묵부답. “여기 다들 억지로 오셨나 봐요. 주위 분들한테 관심도 없으시고…….” 그러자 교사들 몇몇이 우리 마음을 어찌 알았냐는 얼굴로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첫 교감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자세히 물어 보니 교과연구회가 교육청 차원에서 억지로 구성해 놓은 조직이고, 오늘 이 자리도 일방적으로 정해져 오게 된 거란다. 아, 그랬구나. 이 힘겨웠던 두 시간 교육의 원인은 결국 ‘의무’였던 셈이다. 처음부터 그 마음을 알아봐줬더라면 오늘 교육은 덜 힘들었을까.

의무로 강요되는 도덕이 사람을 힘겹게 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는 데 다다르자 아차 싶어 하는 교사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한다. 언제 꺼내놓을까 눈치 보던 이야기로 교육을 마무리한다. “저도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학생들이 모신 손님도 아닌데 제가 인사를 받을 이유가 없었지요. 교사들 행사인데 학생들은 왜 ‘봉사’를 하고 있는 걸까요? 아까 느닷없이 시작됐던 국민의례는 국민보다는 사람이길 선택한 사람의 양심, 국경을 넘어서는 인권의 가치와 함께 갈 수 있을까요? 그걸 고민하도록 만드는 게 인권교육입니다.”
[인권오름 126호 / 배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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