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돌면서 이 생각 저 생각
게임으로 풀어낸 사회권 인권교육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입시와 조금은 떨어져 있고 재량활동 등 교육과정에서 그나마 시간을 짜낼 수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인권교육을 꿈꾸기도 하고 인권교육을 하기도 한다. 물론 학교에서 인권교육하기 힘든 이유는 몹시 다양하고 많지만 말이다(인권을 통한 교육도 이루어지기 힘들고 인권을 위한 공간도 아닌 곳에서 인권교육을 한다는 건 웬만한 각오 없인 힘드나니!). 하지만 이마저도, 학교 통째로 재량활동을 정하는 등 점점 꽉 짜이는 교육과정 때문에 시간 내기 힘든데다가, 요즘엔 초딩들도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느라 피곤에 쩔어 틈만 나면 쉬고 싶어 하고 놀고 싶어 해 따로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할 엄두를 못 낸다. 그저 일상에서 인권의 가치를 어떻게 녹일까만 고민 고민하던 참에, 사회 교과서에서 ‘인권’을 만난 건 정말 반가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왜 이렇게 불쌍해 보여요?” 인권에 관한 교과서 삽화를 보고 아이들이 대뜸 한 말이다. 하나같이 불쌍한 표정으로 도움을 찾는 장애인과 노숙인에게 던지는 동정과 시혜가 ‘인권’인가? 장애인뿐 아니라 누구나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노숙인을 포함한 누구나 살만한 집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인권에 대한 오해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키울 수 있는 교과서를 덮고, 오랜만에 〈인권교육 날다〉를 뒤적거렸다.

날개 달기 : 동네 한 바퀴, 다 같이 도는 방법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는 사회권 범주에 포함되는 구체적 권리 내용을 알고, 그것들이 국가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임을 깨닫는 게임 프로그램이다. 내용이 낯설어 끼리끼리 동시에 게임하기는 무리일 듯하다. 크게 두 팀으로 나누어 다 같이 게임을 해야겠다. 한 팀에 열네 명, 한 번씩 주사위 던지기에는 게임이 너무 늘어질 테니 짝꿍끼리 하나가 되어 한명은 주사위를 던지고 다른 한명은 쪽지를 뽑도록 하자. 같이 상의해서 해결해보라고 하자. 침을 한번 꼴딱 삼킨다.

우선 놀이판을 텔레비전 화면에 띄우고 인권나무를 칠판에 붙였다. 각 팀은 한 짝꿍씩 번갈아 (1부터 3까지만 이용하는) 주사위를 던질 기회를 준다.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수만큼 말을 이동한다. 도착한 칸의 지시어에 따라 열매 쪽지 또는 이야기 쪽지를 뽑는다(이야기 쪽지에는 어떠한 상황이 적혀 있어 그때 필요한 권리를 무엇일까 찾는 것이고 열매 쪽지는 다음의 권리가 특히 누구에게 더 필요한지 추측해보는 것이다). 뽑은 쪽지를 큰 소리로 읽은 다음, 주사위를 던진 짝꿍들이 우선, 해결방법이나 해당하는 사람을 찾아 ‘인권 잎사귀’에 적는다. 다 적었으면 적은 내용을 큰 소리로 읽고 인권나무에 붙인다. 이때 내용을 덧붙일 수 있는데, 상대 팀이 먼저 덧붙였을 경우 그 내용이 모두가 끄덕이는 좋은 의견이라면 주사위를 한 번 더 던질 기회를 주거나 인권나무에 붙이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글자로 쓰인 책 말고도 점자나 소리, 그림으로도 책을 만들어야 해요’라는 열매 쪽지에 대하여 (시각 또는 청각) 장애인을 찾았을 때, 상대 팀에서 글자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더욱 필요한 권리라며 덧붙였다면 주사위를 한 번 더 던지거나 인권나무에 자기 팀 ‘인권 잎사귀’를 늘릴 수 있다. 나중에 인권나무에 팀마다 ‘인권 잎사귀’가 얼마나 열렸는지 살피고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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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날갯짓 : ‘내’가 들어있는 인권교육은 힘이 세다

스물여덟 명의 꿈틀이와 한 명의 돋움 – 학교에서 인권교육하기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 늘 나오는 얘기가, 인권교육을 진행하는 사람에 비해 참여자들이 턱없이 많다는 거다. 역시나 이번에도 혼자 진행하느라 진땀을 쏙 뺐다. 한 팀에게 주사위를 던지고 지시어에 따라 쪽지를 뽑아 읽고 잎사귀에 쓰라 한다. 모두들 한 번씩 해볼라치면, 상대 팀도 얼른 주사위를 던지고 쪽지를 읽어 어떤 상황을 뽑았는지 공유하고 우선 잎사귀에 쓰도록 한다. 그 사이 아까 팀이 다 썼다 하면 발표하게 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등의 적절한 질문을 던진 다음 덧붙일 내용이 없냐고 묻는다. 이야기가 끝나면 칠판에 붙어있는 인권나무에 잎사귀를 붙이게 하고, 그 팀의 또 다른 짝꿍들에게 주사위를 던지게 한다. 두 팀이 계속 번갈아 ‘제대로’ 게임할 수 있도록 돋움은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이 와중에,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사회권에 대해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

물론, 돋움 혼자 인권교육하기에 벅찬 상황은 있다. 하지만 벅차다는 판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인권교육을 정말 혼자 해나가는 것이라 생각하는 건 아닌가? 예단(豫斷)으로 생긴 두려움은 아닌가?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재미없어 보이는 (게다가 느리고 부산스럽기까지 한) 놀이를 꿈틀이들은 퍽 즐거워했다, 끝까지. 솔직히 의외였다. 이야기 쪽지와 열매 쪽지에 담긴 내용이 꿈틀이들에게 절절히 와 닿은 것이다. 수영선수가 꿈인데 수영장이 비싸서 갈 수가 없다는, 아빠가 직장을 잃어 앞으로 어떻게 사나 엄마는 한숨만 쉰다는, 무료로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어야 한다는, 돈이 없어도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권 범주의 내용들이 꿈틀이들 삶의 진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다들 할 말이 많은지 이야기 쪽지에 담긴 상황에 대해 맞장구치며, 자기가 아는 이야기인지 겪은 이야기인지 술술술 풀어낸다. 가난하거나 장애를 가지거나 어린 것이 나쁜 게 아니라 반인권적 사회 구조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감지하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니 프로그램이 길어져도 (놀랍게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다양한 인권침해 상황에 대하여, 정말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궁금해 하며 불만을 뱉어낸다. 그러면서 같은 목소리 내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한다. 놀이이면서 상담이기도 한 인권교육은 그렇게 자기를 토닥이게 하고, 자기와 꼭 닮은 상처나 경험을 가진 옆 사람을 껴안게 한다.

 

인권 잎사귀에 적힌 인권침해상황들

꿈틀이들이 적은 인권 잎사귀. 어떠한 인권침해 상황일지 추측해보실래요?

돋움, 꿈틀이와 더불어 거듭나려면

요런 거 몰랐지? 듣도 보도 못한 게임을 통해 사회권을 알려 주마, 고 신이 났었나보다. 인권교육 프로그램 중사회권을 주제로 한 활동은 별로 없어 새로운 것을 맛본다는 생각이었나 보다. 그런데 꿈틀이들은 이미 자기의 경험 속에서 사회권의 내용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맛본다기보다 나의 일상을 낯설게 물어보는 시간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번 활동에서 나는, 내가 알려주는 위치에 있고 이끌어야 한다며 프로그램을 준비한 것 같다. 돋움으로서 교육을 준비할 때 종종 빠지기 쉬운 오류이자 오만이다. 인권교육은 이를 여지없이 허문다. 특히 사회권을 담은 인권교육은, 누가 알려줘서 풀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누며 북돋우는 것이기에 더불어 배운다는 게 이런 거지 싶다. 음,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괭이눈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130 호 [기사입력] 2008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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