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만6천원, 이 돈으로 어찌 살꼬?!
[인권교육 날다] 영양만점 밥상을 꿈꾸는 ‘최저임금 밥상’

“우리나라 최저생계비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최저생계를 보장할 수 없다는 거지.”
“오~ 그럼 최저임금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뼈 빠지게 일해도 최저생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거지. ‘가난의 덫에 걸린 근면 성실’을 합법화하는 장치라고나 할까?”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올해 새롭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시급 4천원. 여전히 한 끼 밥값도 채 되지 않는 액수이다. 월급으로 환산해 봐도 주 40시간(지난해 7월부터 2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이면 83만6천원, 주 44시간이면 90만4천원밖에 안 나온다. 지난해에 비해 6.1%가 올랐다지만, 7~8%씩 치솟고 있는 생활물가에 견줘보면 턱없는 인상폭이다. 200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최저임금이나 그에도 못 미치는 초저임금을 받은 노동자가 전체 경제활동인구 열 명 중 한 명꼴이었다. OECD 국가 중 노동빈곤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도 바로 한국이란다.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임금 격차를 줄인다는 최저임금의 도입 취지는 온데간데없다.

문제투성이 최저임금제도가 굳건히 유지되는 데에는 최저임금으로 산다는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한 얕은 사회적 공감대도 한몫하고 있다. 여성이니까, 나이가 많으니까, 나이가 적으니까, 수준이 낮은 일이니까 등등 저임금을 당연시하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써주는 게 어디냐’는 식으로 저임 조건을 그대로 수용해버리는 이들도 많다. 최저임금 현실화라는 요구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해야 하는 과정인가를 읽어내고 공감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바로 그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바로 ‘최저임금밥상’ 프로그램이다.

날개 달기 – 랄랄라~ 소박하지만 든든한 생활밥상 차리기

지난 1월 부산지역 교사들이 모인 노동인권교육 연수 자리. 모둠별로 하나의 가족을 떠올려보고 그 가족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항목들을 밥상 위에 차려보도록 했다. 부러 정해주지도 않았는데 맞벌이하는 부부 가구, 여성 가장이 어머니와 자녀를 부양하는 가구, 장애아동이 있는 4인 가구, 부부와 자녀 둘로 구성된 4인 가구, 비혼여성 1인 가구 등 다양한 가족들이 등장했다. 활동을 하다 보니 참여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최소 생계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최저임금으로 꾸린 밥상
“일주일에 한 번은 맛있는 음식 좀 해먹자. 아님 사먹든지.”
“한 달에 한 번 문화생활은 해야지. 뮤지컬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 한 편이라도.”
“적어도 두 달에 한번은 바깥바람 쐐줘야 빡센 일상을 견디지. 어디 여행을 갈라치면 10~20만원은 기본으로 깨지니까 한 달에 적어도 이 정도는 쓰는 셈이고…….”
“혼자 살려면 주거비 부담이 제일 커. 제대로 된 방 한 칸 얻으려면 전세 6~7천 넘는 건 기본인데, 모아둔 돈 3천만원 있다고 치고 직장에서 2천만원 대출받았다 쳐도 월세를 끼지 않고는 괜찮은 방 구하기 힘들어. 월세 내야지, 대출이자 내야지, 원금까지 같이 갚으려면 주거비가 적어도 80만원은 들겠네.”

최저임금 밥상 발표 사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차려진 밥상을 살펴보니 한 달 생활비가 2백만원을 훨씬 웃돈다. 한 가족이 제시한 최고액수는 574만원. 한껏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는데 식비, 의복비, 교통비, 주거비, 각종 생활요금에다 교육비, 의료비, 문화비, 보험료, 저축, 경조사비, 약간의 여행비까지 기본적인 것들을 꼼꼼 챙기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가장 적은 생활비를 제시한 비혼여성 1인가구의 생활비도 237만원. 그러고보면 부양가족만 셋을 둔 여성가장이나 장애아동을 둔 가족의 생활비가 두 배 가까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더불어 날갯짓 – 최저임금 생활은 아슬아슬 외줄타기

이번에는 참여자들에게 고통스런 작업을 주문했다. 모든 가족이 현재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최저임금 액수(83만6천원)에 맞춰 한 달을 살아야 한다고 가정하고 밥상을 조정해 보도록 했다. 첫 활동에서 활짝 피었던 얼굴들이 이내 어둑어둑해진다. ‘이 정도는 기본이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빼고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니 우울해지는 건 당연한 일. 이렇게 생각만 해봐도 낯빛이 어두워지고 입안이 까끌까끌한데 실제 이 돈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사람들 심정은 오죽할까, 절로 마음이 쓰인다.

“월세, 대출이자부터 줄여야 해. 출퇴근 시간 늘어나고 마을버스 타고 다니더라도 전세방 빼서 변두리로 이사부터 가야겠네!”
“네 식구 먹고 살 기본 생활비도 안 나오는데 저축은 무슨!! 애들이 다니던 학원도 끊고 알바까지 나서야 할 지경이야.”
“도시락 싸서 다니고 오들오들 떨어도 보일러 아껴 쓰고 핸드폰도 오는 전화만 받고…….”
“애 낳을 생각부터 접고 더 빡세게 잔업 특근 돌입!”
“명절에 부모님 용돈이라도 조금은 쥐어드리고 경조사도 챙겨야 하는데, 이러다 인간관계 모조리 파탄 나겠네.”
“병원 두 번 갈 거 한 번 가고 한 번 갈 거 참고……. 나중이야 어찌 됐든 먹고 살기 바쁜데 병원 다닐 여유가 어디 있어?”

최저임금 밥상 발표 사진
풍성했던 밥상이 쪼글쪼글 궁핍해지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면서 최저임금제도가 ‘최저생활’조차 보장할 수 없다는 게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는 어찌 버텨내더라도 내일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불안한 생활, 가족 중에 누가 큰 병이라도 얻으면 모두가 폭삭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생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길 없다는 절망……. 최저임금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미래를 반납하고 위태로운 외줄을 타는 일과 마찬가지라는 공감대가 어느새 형성됐다.

4인 이하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12.4%(35만4천명)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 지난해 실태조사에서 청소년노동자 가운데 절반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사실, 최저임금보다 적게 줘도 된다고 아예 법으로 정해놓은 노동자(수습기간, 감시단속직, 장애인 등)도 상당수라는 사실을 소개해주자, 다들 신경이 곧추선다. 지난해 11월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이 대표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악안이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고 감액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이자, 모두들 뒷걸음질 치는 인권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

머리를 맞대어 – 밥상이 기우뚱 하지 않으려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 생활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여러 가치가 부딪힐 경우 어떻게 조정할지 난감해질 때가 있다. 자가용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동차를 소유하는 건 반생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이들 학원비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교육을 반대하는 사람이, 휴대전화를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부딪히게 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어떤 삶을 택할지에 대한 논의도 소중하지만 자칫 그 논의에만 빠져 허우적대다 애초 목표했던 작업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활동은 일반적인 삶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고, 부딪혔던 가치와 관련해서는 후속 활동으로 옮겨 이야기꽃을 피워보면 어떨까.

한 교사는 ‘인간다운 생활’이라는 말을 쓰게 되면 현재 그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우려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는 상처가 되면 어쩌나 염려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이미 생활 속에서 느끼고 있는 중요한 삶의 문제일 텐데, 염려된다고 마냥 비껴갈 수만은 없지 않을까. 어쩌면 빈곤문제와 직면하기를 두려워하는 건 청소년이 아니라 교사 자신일지도 모른다. 문제를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위험한 게 아니라 그 문제를 잘못 대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 가난한 삶을 ‘비인간적 삶’으로 낙인찍거나 가난한 사람을 ‘불우이웃’ 대하듯 동정적인 시선으로 다룬다면 자칫 위험하다. 하지만 현행 최저임금제도의 문제점을 통해 ‘존엄한 삶에 대한 자기 안의 열망’과 ‘가난을 빚어내는 구조’를 바라보도록 한다면 조금은 그 염려를 덜 수 있을 것이다.

[인권오름 138호/ 배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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