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빈곤’ 앞에 멈추는 권리?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가볍고도 자연스런 인사가 되는 시대에, 그나마 어떤 이들에게 마음의 위안이라도 됐던 ‘가난은 죄가 아니야~ 단지, 불편할 뿐이야’ 같은 말은 일찌감치 그 유효기간을 넘겼다. 건강도, 먹고 자는 문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멈추도록 하는 ‘빈곤’, 그래서 빈곤은 인간 삶에 치명적인 것으로 이야기 되곤 한다. 빈곤의 문제를 인권의 눈으로 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일상에서 빈곤은 ‘권리’보다 ‘동정과 시혜’의 옷을 입고 있다.

날개달기

“니네 집 몇 평이야?”라는 질문이 자연스러운 초등학교 교실에서 빈곤의 모습은 더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학교 현장에서 빈곤한 상황에 놓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만나는 교사는 때때로 마음이 무거워지고, 때로는 불편해지고, 그리고 화도 난다. 특히 빈곤이 개개인의 학생이 떠 안아야할 문제로, 개별 교사가 ‘되는 만큼’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을 때 여전히 ‘편견’과 ‘동정’의 시선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빈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좀처럼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꽁꽁 싸여 있는 ‘빈곤의 이야기’를 학교 현장을 배경으로 펼쳐봤다. 지난 2월, 들이 준비한 ‘교원 인권감수성향상 심화워크숍’의 한 꼭지는 빈곤 학생에 대한 지원이 학생의 ‘당당한 권리’ 인식될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더불어 날개짓 1

우선, 말풍선을 꿈틀이 수만큼 준비해 나눠준다. 꿈틀이들은 학교/교사가 빈곤 가정의 학생을 대하는 태도나 말을 생각해 보도록 한다. 특히 ‘나를’ 불편하고 발끈하게 만들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도록 한다. 꿈틀이 스스로의 경험이어도 관계없지만, 다양하고 솔직한 답변을 위해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로 일단은 요청한다. 어떤 말이 있는지 예를 들어 제시할 수도 있다. “쟤는 내가 서류작업(수급자 지원) 하느라 힘들었는데, 핸드폰은 최신형 가지고 다니네.”
꿈틀이들의 말풍선을 한 곳에 붙이고, 몇몇 말풍선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본다.

나를 뜨악하게 했던 말들

나를 뜨악하게 했던 말!말!말!

– 급식 지원 받으면서 핸드폰 요금은 어떻게 내냐?
– 너 리어카 끌면서 살래? 공부 안하면 그렇게 살아야 해!
– 수련회, 외부활동 참가를 아이들이 먼저 요구할 때 불쾌하게 반응하는 교사 “저런 건 알토랑 같이 챙기더라?”
– 그 아이 아버지한테 전화 안 왔어. 유명하잖아. 구구절절 혹하게 해서 지원받는 거~
– 서류가 안 갖춰져서 보호자와 한참 통화 후에 끊었는데, 고맙다는 말도 할 줄 몰라
– 학생들이 뭐 사달라고 할 때 : “이이구 거지 근성”
– 학비, 식비 미납자 명단을 교실에 그냥 붙여놓는 경우
– 가난한데 외고는 어떻게 갈 수 있어?
– 어휴 엄마가 신경도 안 쓰나봐
– 학교 수업료는 계속 밀리면서 최신 해리포터는 사서 읽네.
– 이 동네는 중식 지원이 왜 이리 많아
– 숙제 안 해 왔을 때: “니네 집에 컴퓨터도 없니?”
– 너 그렇게 해서 부모처럼 살래?
– 신이 준 목숨을 자기 마음대로 끊다니 못됐다. : 반 아이의 부모가 빈곤 때문에 자살했는데, 기독교인 교사가 무책임하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얘기한 경우
– 못 사는 형편에 애는 왜 그리 많이 낳았어?
– 시설에 있어서 그렇구나, 엄마가 없어서 그래
– 돈이 어디서 나서 군것질을 하지?
– 걔 신은 운동화 봤어? 메이커더라
– 동네가 후져서 애들이 그렇지 뭐
– 감사마음 가지도록 편지 쓰라고 해. “눈물 나게 써봐”
– “공짜라서 잔반이 많아” : 공짜 급식을 아낄 줄 모른다며 말하는 교사
– 별 걸 다 해달라고 해. 부모는 도대체 왜 있어. 내가 엄마야?
– “우리 반에는 가난한 00동네 애들은 없더라.”며 다행이라고 좋아하는 교사

너무도 다양하게 쏟아지는 편견을 확인하며 한숨과 탄식이 이어지기도 한다. 말풍선의 태도와 말을 통해 드러난 빈곤과 복지에 대한 시선은 ‘빈곤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그에 대한 지원과 복지는 감사’하라는 것이다. 복지는 빈곤을 겨우 벗어날 수 있는 정도이면 되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과분한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는’ 시혜라는 속내를 말풍선 뒤에서 발견하게 된다. 복지가 인권으로 인식되기 위해 넘어야할 고개를 본격적으로 마주하는 순간인 셈이다.

더불어 날개짓 2

이어서, 모둠별로 복지정책과 프로그램을 직접 짜보는 시간을 갖는다. 기초 수급 가정과 학생의 구체적 사례를 가지고, 어떤 정책과 프로그램이 있어야하는지 논의하며 권리로서의 복지의 관점을 살펴보는 기회를 갖는다. 학비지원, 무료급식, 가족 상담, 직업체험, 통합교육체험활동 등 복지정책과 프로그램의 예시를 카드로 준비해 모둠별로 나눠준다. 카드의 내용은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 다양하게 준비하지만, 표시는 하지 않는다. 꿈틀이가 논의를 거쳐 선택하도록 하고, 돋움이는 꿈틀이가 어떤 관점에 따라 정책과 프로그램을 구성했는지 따져보고, 발표과정에서 복지의 관점을 살피도록 한다.

“기본적인 지원 필수인데, 학생의 욕구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보는 게 중요하다. 자칫 학생이 대상화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욕구를 찾아갈 수 있도록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성실성이 부족하다고 지원을 그냥 끊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는 학생이 컨테이너에 살았다. 힘들게 생활했는데 중3때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가면서 굉장히 안정된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때 아빠가 교도소에 가게 됐는데, 주거가 없었다면 이 아이가 고등학교를 안정적으로 졸업했을까 싶다. 친척들도 이 아이를 배려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기본은 안정된 주거공간과 안정된 관계라고 본다.”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학교에 떨어지면 학교 측에서는 아이들을 긁어모아서 진행한다. 기본적으로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학교에 배치돼 아이들 개개인에게 맞게 프로그램이 운영되어야 한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동반자살까지 시도한 아이가 있었는데, 우연히 연극반에 들었다가 잘 맞아서 지금도 뮤지컬 배우를 하고 있다. 이 아이의 경우에는 뮤지컬을 배울 수 있는 지원이 절실한 것이다. 학생 개인마다 필요한 게 건강, 공부 등 다양할 텐데 그것에 맞춰서 지원해 줘야 한다. 또 자존감이 낮고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상담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교육이 필요하다. 지원을 많이 받았는데도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구조가 공고하게 되고 있다. 비정규직이 없어져야겠지만, 어쨌든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챙겨야 할 권리들을 교육하는 게 필요하다.”

일회성/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 물적 지원뿐 아니라 정서적 심리적 안정과 성장을 위한 지원, 일괄적 처리가 아니라 개별 맞춤형 복지의 기준은 구체적 복지의 그림 속에서 자연스레 건져지는 기준이다. 학습을 지원하면 공부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처럼 지원을 하면 뭔가 결과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기존의 시각을 벗어나 그 자체가 삶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는 권리로 인정되는 교육복지의 관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복지권을 정리한 꾸러미

고르고 골라 복지세트

머리를 맞대며

빈곤을 주제로 한 인권교육 프로그램은 많은 고민과 생각의 갈래를 만들어 낸다. 빈곤이 발생시키는 개인 삶의 어려움은 너무나 많아서, 무엇과 무엇은 관련이 있고 어떤 것은 온전히 다른 문제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빈곤은 막연하고 광범위한 문제로, 무엇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이야기가 돼버리기도 한다. ‘빈곤이 인간 삶의 총체적 박탈을 가져오는 문제니까, 복지는 당연한 권리’라는 주장이 선언을 넘어서 근거를 만들고, 또 실현의 과정이 되는 인권교육이 더 많이 필요하다.

  • 고은채(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46 호 [기사입력] 2009년 04월 01일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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