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인(in)걸] 여성 + 청소년 정치까지 몇 km?
여성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이야기

대규모 촛불집회의 불을 당겼던 ‘촛불소녀’는 과연 청소녀들의 정치적 권리에도 불을 당겼을까? 글쎄. 작년 여름, 촛불소녀 아이콘의 엄청난 유행 속에서 촛불소녀 소리가 듣기 싫어 ‘촛불소녀이길 거부한다’ 라는 제목의 글까지 쓴 적 있던 나로서는 그 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이 말 밖엔 할 수가 없다. 촛불소녀는 그 때에나 지금에나 촛불 정치의 액세서리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어리고 연약한) 촛불소녀로서 어른들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집회 참여를 유도하는 것까지,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촛불소녀는 성인들의 집회를 활성화하는 이미지 아이콘으로 소비되었을지언정, 아쉽게도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끌어내지는 못 했다.

정치까지 몇 킬로미터?

촛불집회 초반에 여성 청소년들의 참여가 ‘소녀’ 이미지로 부각되어 화제에 오르는 걸 보면서, 이 사회가 여성 청소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란 언제나 ‘소녀 이미지’ 를 소비하는 형태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청소년, 여성,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소녀까지, ‘여성 청소년을 구성하는 정체성’들은 하나같이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정확히는 청소년도 여성도 소녀도 정치와 멀어질 것을 요구받는 존재들이다. 청소년으로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통로가 제도적으로 막혀있다. 20세 이상인 사람만이 선거권을 갖는 사회에서 청소년은 사실상 시민이 아닌 존재다. 거기에 더해, 남자들이 정치하는 문화 속에서 여성은 정치와 권력에 대한 구조적 무관심을 갖게 만든다. 소녀는 말할 것도 없다. 소녀는 그저, TV속 소녀시대처럼 깨끗하고 어여쁘고 순수하면 된다. 여성 청소년들은 직․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정치에서 ‘배제’된다.

그 결과일까? 여성 청소년들의 일상은 성인, 남성, 기타 등등 씨들 위주로 구성된 사회 구조 및 문화에 지배당한다. 대학 가면 풀어준다는 말에 학교에 자유를 반납하고, 1교시 아침부터 은근슬쩍 어깨를 만지는 남선생의 손길에 참을 인(忍) 자를 백만 번쯤 새기고, 쉬는 시간이 되면 ‘소녀시대 짱’을 외치는 미디어의 닦달을 상기하며 비비크림을 찍어 바른다.

진절머리가 나는 등교의무, 선생 직함 단 변태들의 만행, 강박이 된 외모 꾸미기 등등. 살맛 안 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은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원래가 이렇게 생겨먹은 세상, 이미 태어나버린 걸 뭐 어쩌겠어. 살려면 대충대충 맞춰 살아야지.’ 근데 이게 착각이었다.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세상이란 없다. 원래 그런 거라 여겼던 많은 것들은 실은 정치적 결과물이다. 위에 예로 든 여성 청소년의 일상 역시, 성인 남성 기타 등등 씨들이 각기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권력 따위를 깊이깊이 반영한 정치적 결과물인 것이다.

영화 <하나와 앨리스> 의 한 장면.' 깨끗하게, 순수하게, 어여쁘게! '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소녀’ 이미지

영화 <하나와 앨리스> 의 한 장면.’ 깨끗하게, 순수하게, 어여쁘게! ‘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소녀’ 이미지

여성 청소년 부르기, ‘청소년’ 혹은 ‘소녀’

여성 청소년, 청소녀 같은 말들은 아직까진 낯선 단어다. 그동안은 뭉뚱그려 청소년으로 불리거나 소녀로 불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본다. 전자가 청소년 관련 담론 안에 젠더문제를 의식하는 목소리가 미미했음을 뜻한다면, 후자는 여성 청소년의 존재를 인정하기보다는 사회의 환상과 요구에 맞춘 여성 청소년의 상인 ‘소녀’만이 난무함을 말해준다.

여성주의팀 활동을 하면서 보편적일 거라 생각했던 학생인권 분야도 실은 남성 청소년 중심의 의제로 이루어졌다는 걸 알았다. 두발규제나 체벌은 상대적으로 남성 청소년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더 큰 사안이고, 남성 청소년들이 주로 주도하는 의제였다. ‘청소년’이라는 단일한 키워드에만 머물기엔 같은 두발규제 문제라도 성별에 따른 억압의 형태와 수위가 달라지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과 욕구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여성 청소년의 독자적인 목소리는 필요해진다.

‘소녀’와 관련해서 여성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자기주장과 정치가 필요하다고 자주 느낀다. 난 ‘소녀’로 불리는 게 좀 띠껍다. ’소녀‘는 여성 청소년들을 지칭하는 단순 호칭이라기보다 10대 여성들을 몇 가지 이미지 안에 가두는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얘기를 직접 하지 않으면, 결국 ’소녀‘처럼 대상화되어 특정 틀 안에 맞춰지길 요구받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 않을까? 정치적 권리가 없다는 건, 기득권이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로 구성되고 운영되는 사회에서 그 사회가 강제하는 틀에 맞춰서 잠자코 살아야가야 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뒷머리를 바리깡으로 밀린 남학생. 여자는 긴 머리, 남자는 짧은 머리의 공식이 성립된 사회에서 남학생은 여학생에 비해 조금만 더 머리가 길어도 쉽게, 훨씬 깐깐한 규제를 받는다.

뒷머리를 바리깡으로 밀린 남학생. 여자는 긴 머리, 남자는 짧은 머리의 공식이 성립된 사회에서 남학생은 여학생에 비해 조금만 더 머리가 길어도 쉽게, 훨씬 깐깐한 규제를 받는다.

우리 정치하자!

자기 삶을 외부에서 강제하려할 때 이를 거부하려는 것 혹은, 내가 원하는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순간, 인간은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는 게 아닐까? 가령, 소녀 이미지에 대한 거부를 글로 말로 열심히 표현하고 다닌다든가, 학교 내 변태교사들을 응징하기 위해 익명성이 보장되는 ‘여학생들의 징계위원회’ 만들기를 주장한다든가.

정치는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식과 언어로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익숙한 것들이나 좋아하는 것들에서 정치를 찾아도 될 테고…. 요즘은 팬클럽에서도 꽤 멋진 정치가 일어나는 듯싶다. 특히나 소속사 측에 대항해 동방신기 팬클럽에서 진행하고 있는 개념 찬 움직임은 팬덤의 정치적 영향력에 관한 생각을 안 할 수 없게 만든다. 또 교실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끼리끼리의 수다에도 정치의 가능성은 숨어있다. 선생 뒷담을 까거나, 비리 가득한 학교 욕을 하거나, 그런 수다판은 가장 자연스런 형태로 분노가 자라나는 곳이다. 그러니 모르는 일이다. 이런 수다가 발전해 훗날 어떤 사고(?)를 칠 수 있을 지. 훗~.

팬클럽이든, 수다와 뒷담이든, 기존의 정치에 얽매지 않는 정치스럽지 않은 정치하기! ‘여성청소년들의 정치‘로써 자유분방하게 즐겁게 진실하게 무엇이든 할 수 있길! 세상에 맞춰 사는 건 그동안 많이 해왔지 않은가. 이젠 세상을 우리에게 맞춰 볼 차례다.

*글쓴이: 엠건(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팀 활동가)
*출    처: 인권오름 제 170 호 [기사입력] 2009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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