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 좀 들어봐] 용산국민법정, 나는 기억할 것이다
청소년들이 바라본 용산국민법정 이야기

나의 마음을 담아 외쳐본다 “용산, 진실의 꽃으로 살아나라!”

김조은

10월 18일 오후, 나는 조금은 들뜬 마음을 안고 ‘용산참사 국민법정’을 방청하기 위해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제일 먼저 맞아준 것은 경찰차와 경찰관들이었다. 국민법정에 참석하는 것이 무슨 죄라도 되는 것처럼 곳곳에 경찰들이 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기대를 안고 나는 법정으로 들어갔다. 법정에 들어가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법정이 열릴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나로서는 처음 경험해보는 법정의 모습이 참 신기했다. 그리고 법정 준비를 위해 땀을 흘린 여러 준비위원 분들의 모습과, 용산참사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소장을 보며 마음이 찌릿찌릿했다. 우리 사회에 약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닫고 눈을 감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용산국민법정을 세운 기소장들

용산국민법정을 세운 기소장들

곧 45명의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석한 가운데, 당시 경찰청장인 김석기와 이명박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 등을 피고인으로 한 국민법정이 시작되었다. 법정이 시작되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여러 증인들과 증거를 토대로 양측의 변호사들은 각자의 논리를 펼쳤고, 증거와 진술들이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방청석에서는 안타까움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내가 뉴스에서만 접해왔던 단순 결과와는 다른 용산참사의 진실이 속속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치열하고 정교한 공방전은 경찰에 대한 기소와 검찰에 대한 기소,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소 등으로 진행되었고, 공방전을 모두 지켜본 시민 배심원들의 판결이 내려졌다.

경찰의 폭행과 가혹행위죄, 살인 및 상해죄 유죄. 검찰청장의 수사방해죄 및 증거은닉죄 유죄. 이명박 정부의 살인, 상해 교사죄 유죄. 무작위로 선출된 시민들이 객관적으로 내린 판단의 결과였다. 시민들의 결정에는 그 어떠한 압력도 행사되지 않았으며, 피고 측의 변호도 실제 검찰의 주장과 비교해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결국 시민들의 이성적인, 합리적인 판단이 철거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배심원단과 같은 결정을 내렸으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 자리에는 온건한 이성이 있었으며, 정의가 있었다.

나는 이날,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란 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은 피어나는 희망의 꽃을 또 한 번 짓밟았다. 10월 28일, 용산사건 재판부가 철거민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는 기사를 보며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철거민들이 당연히 무죄 선고를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머리에 이상이 있던 것일까. 판사들의 지성이 너무도 고매해서 나의 상식과는 통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결문을 읽으며 나의 혼란은 분개로 변했다.

그들의 판결은 단지 검찰 측의 주장을 되풀이 한 것에 불과했다. 그들의 판결에는 상식도, 합리적 이성도, 헌법 정신도, 법의 원칙도 없었다. 불확실한 정황이라면 약자의 편에 서야 할 재판부는 스스로 눈을 감고 정부의 앞잡이가 되었다. 스스로 정의를 구현해 낼 자신들의 권한을 져버린 것이다. 빼앗긴 나의 희망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우리사회에 희망은 사라진 것일까. 이 사회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희망일지라도, 나는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이 있음을 믿는다. 왜냐하면 내가 국민법정에서 보았던 수많은 희망의 씨앗들, 바로 희망을 묻어두지 않고 현실로 바꾸려는 수많은 ‘우리’들이 여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국민법정을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코미디’라고 조소어린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반문하고 싶다. 법적 효력이 없어도, 깨어있는 이성으로 약자의 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이 어째서 코미디냐고, 시민과 약자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은 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 재판부의 모습이야말로 슬프고도 허무한 진짜 코미디가 아니냐고 말이다.

민중의 지팡이라고? No! 민중의 몽둥이지!

김승연

참사(慘史) : 비참한 일, 비참한 사건

용산 참사 국민법정에 가던 날, 갈 때는 놀러가는 기분으로 갔지만 올 때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용산 참사 국민법정에 갔다 온 이후 나는 성장에의 공포를 느꼈다. 성장하면 어른이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인정 없는 사회’ 그리고 철저하게 ‘힘의 원리’로만 움직이는 사회에 살게 될 것이라 예견했기 때문이었다. 아득한 부모님 품을 떠나면 파란 하늘과 푸른 초원의 달콤한 낙원에서 자유로운 새가 되어 날아다닐 생각을 하며 꿈에 부풀었던 내게 용산 참사의 진상은 약육강식의 세계를 통째로 보여주었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 밟는 자와 밟히는 자.

나는 용산을, 그리고 용산 참사를 어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쯤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용산 참사는 먼 동네에서 일어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언제든지 우리의 삶에 뛰어들 수 있고, 언젠가 한번쯤 모습은 다르겠지만 사회인이라면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방관하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의견이 다른 사람, 자신의 이권 창출 과정에 방해되는 사람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일을 당연시하는 일은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

용산국민법정에서 증언하는 철거민

용산국민법정에서 증언하는 철거민

용산참사 국민법정에 참관하여 진상을 알기 전 내가 알던 사실은 진상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부 보수언론들에 의해 알려진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동일한 내용이다. “용산 참사는 철거민들이 화염병 등을 던지며 나가기 싫다고 시위하다가 그들의 실수로 불이 번져 사상자가 나온 것이며, 진압 과정에 약간의 폭력이 있었지만 그것은 거친 철거민을 진압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

하지만 용산참사의 진상은 이랬다. “용산 참사는 엄동설한에 자신의 집에서 살 권리를 잃은 철거민이 자신의 살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망루를 세운다. 이들을 겨냥한 것은 용역들의 폭력과 경찰의 물대포, 그리고 특공대원들의 무자비한 진압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시민을 위한 공권력에 보호받지 못한 서러움. 그들은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공권력에 잔인하게 짓밟히며 동료 다섯을 잃고 수감된다.”

그대로 믿고 있던 내가 참 순진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용산참사 국민법정에 갔다 온 후 경험담을 풀어놓으며 몇몇 친구들에게 얘기하자 예외 없이 모두가 예전의 나와 같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어리석은 것인가? 사실 가까이서 접하는 뉴스가 그렇게 말하니 우리는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가까스로 어리석음을 피한 내가 법정 참관기를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자 모두 입을 모아 ‘피고인(국민법정에 세워진 피고인)이 유죄’라고 말했다.

용산 참사는 피고인(국민법정의 피고인, 즉 이명박, 오세훈 등 이런 힘센 분들!)측이 참사(慙死:치욕을 견디기 어려워 죽으려고 함)해야 할 사건이다. 서민의 인권은 공권력에 의해 무시당했으며, 공권력이 중요한 건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이해관계일 뿐이라는 것, 반성해야 한다.

용산 참사 국민 법정에서 나는 참 많이 울었다. 강제진압의 부당성을 밝히는 증거자료에서 그리고 증인의 말 속에서 그들의 고통을 감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아직도 가끔 생각하면 눈가를 뜨겁게 하는 말이 있는데, 그건 첫 번째 증인이 “공권력은 시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시민입니다”라고 했던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전에 나의 삶의 멘토이신 정주연 선생님께서 한 기사의 제목을 언급하시며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시민의 발을 묶은 시위대’, 이 기사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이 뭐지?” 우리들은 모두 갸우뚱했다. “시위대도 시민 아니에요?” 이 당연한 대답처럼 용산의 시민들은 시위대이기 이전에 시민이다. 그것도 자신의 주장을 외치는 참 시민이었다.

용산 참사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슴으로 공권력이 정한 시민의 아웃라인에 선 나는 계속 기억할 것이다, 오늘의 서러움을.

[끄덕끄덕 맞장구] 국민법정, 그 반대편의 끝에서 진실을 외면한 대한민국 법정

참관기를 보다 내 눈시울마저 붉어졌어. 비록 국민법정 이후 대한민국 법정은 21세기 들어 가장 야만적인 판결을 내렸고, 분노를 넘어 기가 막히지만 그래도 법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모두 깨닫고 있는 진실이 시퍼렇고, 분노하는 우리가 있어서 마음도 뜨거워졌어.

이제 대한민국 ‘학교’가 가르쳐준 진실은 진실이 아니고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 아니야. ‘생존권’이라는 엄연한 헌법적 권리는 쓰레기통에 처박혔지. 10월 28일 열린 용산철거민 선고공판에서, 사법부는 왜곡편파수사를 일삼은 검찰의 손을 그대로 들어주었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한양석)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 혐의뿐만 아니라 검찰의 모든 기소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여 용산 철거민들에게 유죄를 선고했거든.

국민법정에서 봐서 알겠지만, 용산참사가 화염병에 의한 발화라고 보기 어렵고, 1월 19일 당시 용산의 상황이 특공대를 투입할만한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진실을 그저 외면해버리기에 급급했지. 결국 사건 발생 후 벌써 10개월이 넘어가지만 “경찰 무죄! 철거민 유죄!”라는 검찰의 짜맞추기가 대한민국 법정에서 빛을 발하고 말았어. 사법부는 철저히 개발세력과 경찰, 정치검찰의 입장만 들어주었을 뿐, 철거민들의 입장에는 귀를 닫아버렸지. 사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낯설지 않은 일이지. 그래도 지난 10여년 상식을 조금 찾아가는 듯하던 사법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시금 악몽이 되풀이되기 시작했어.

증거가 입증되지 않으면 유죄판결이 불가능한데도 사법부는 발화지점, 원인, 화재 책임자에 대해 특정하지 못한 검찰의 엉터리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락가락하는 특공대원의 진술에만 의존해 발화원인이 철거민들이 망루에서 던진 화염병 탓이라고 단정지었대. 더욱 가관인 것은 누가 던졌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모두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9명 모두에게 죄가 있다고 주장했대. 재개발 문제는 재판부에서 판단할 사항이 아니라면서도 용산재개발 과정에서 조합과 용역에 대한 철거민의 업무방해죄를 인정했고, 조합의 소유로 되어 있는 건조물에 침입한 죄를 인정한다고 하는 등 이치에도 맞지 않는 판결 아닌 주장도 펼쳤대. 아, 이 대목에서 비슷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니? 얼마 전 헌재의 미디어법 관련 판결 말이야. 입법권은 헌재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던가, 뭐 이런.

하지만 우리 부패한 개발공화국 사법부에 분노하되 지치지는 말자. 그러면 힘이 없거든. 여전히 진실은 살아있어.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진실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겠지. 유가족과 대책위는 항소심을 통해 다시금 법정에서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거래. 11월 15일이면 용산참사가 난지 300일이야. 그래서 지금 용산참사 300일, 300人 일인시위가 시작되었대. 또 바로 지금 이 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에서 용산참사로 드러난 ‘재개발정책’의 문제가 유엔 사회권 규약에 적절한 이행인가 아닌가 여부가 심사되고 있을 거야.

글에 담긴 분노를 놓지 말고, 그날 국민법정에서 보았다고 한 희망을 잊지 말고, 더하여 우리가 그것에 희망을 보태고 힘을 보탤 때, 진실의 꽃이 피어나리라 믿어. 우리 함께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 루트(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글쓴이:김조은 님은 명덕외고 2학년, 김승연 님은 정의여고 2학년
*출    처: 인권오름 제 178 호 [기사입력] 2009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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