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란 ‘섞이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계삼,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녹색평론사) 발간

사람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과 유대가 파괴된 사회. 그 파괴된 사회의 흔적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내면을 점령하고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교육현장.

그 교육현장에서 헛된 유토피아가 아닌 교육의 희망을 다시 엮어내기 위해, 땀과 숨결을 돌려놓기 위해 뒤척이고 있는 교사 이계삼의 글이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이계삼의 글을 보면,
아니 이계삼이 벗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살아있는 인간’을 벗으로 초대하는 유대의 힘을,
아픔에 대한 번뜩이는 감수성을,
“쓰러질 듯하면서도 쉽게 쓰러지지 않을 굳센 기품과 제각기 뻗은 잗다란 가치 마지막까지 뻗어가는 비틀림”을 가진 나무처럼, 이 사회를 살아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저력을 발견해내는 지성을,
가까이에서 깊이 느끼게 됩니다.

인권교육이
사람의 존귀함을 바탕으로 자유의 유대를 엮어내고자 하는 것이기에,
자연에 대한 겸손함까지 기꺼이 끌어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잊어버린 것들을 되살림으로써 교육과 사회의 바탕을 다시 쓰고자 하는 것이기에,
그 고민을 끌어안고 뒤척이는 이 분의 존재가, 이 분의 글이 참으로 반갑고 고맙습니다.

함께 읽어보자고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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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혼없는 사회의 교육

[차례]

책머리에

1부
다들 고향이 있지 않습니까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상처의 의미
교육과 비폭력
흙의 신앙, 인간의 교육
가난과 교육
모난 돌의 외로움
미국을 닮지 말아야 할 이유
가치의 허무주의, 아이들의 애국주의
전교조를 위한 변명
그저, 양심 한자락
니들이 더 걱정이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2부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다시 생각하는 전태일
전쟁, 일상, 세상의 슬픔
평택 대추리에서
망각, 자기도취, 미래에 대한 폭력
김현종과 박래군
우산, 팬지 그리고 로또
삼성, 이건희 그리고 김성환
2006년 2월생
선생님의 퇴임식
밀양 상설시장통에서
젊음과 늙음
똑똑이들의 나라
이 땅 마지막 한 사람이었던 분
인간 박상호 씨 부부
잡담의 제국
추일서정(秋日抒情)
이명박 시대를 맞이하는 마음
자연(自然)의 삶, 고통의 의미
“이건 내 나라가 아니야”
평형감각을 되찾기 위하여
용산, 졸업식

[책 속에서]

–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우정’이며, 교육은 그저 땀이자 숨결이고 사랑일 뿐, 그 정신의 가난함 외에 어떤 완숙한 물적 조건도 부차적이며, 오히려 해악이다.”

– 아이들은 태생적으로 모둠살이에서 가장 큰 자유와 행복을 느낀다. 그것은 아이들이 육체와 정신을 온통 상하게 하는 이 혼곤한 나날 속에서도 아직은 가난한 마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고, 삶의 의미 앞에서 방황하면서도 인생의 그 어떤 시점보다 우정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 우리의 교육은 17~18세 무렵이면 사람살이의 이이츨 알고 살림살이의 기초를 터득함으로써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게 했던 저 전통사회의 교육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람살이의 이치가 되건, 살림의 기본이 되건 지금 우리 교육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 “그 시절, 아이들의 방황과 노동에는 무언가 스스로와 정직하게 대면케 하는 자기성찰의 힘이 있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친구’와 ‘골방’, 그리고 온전히 스스로에게만 열려있는 ‘무위의 시간’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땀과 숨결의 나눔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그 많은 무정형.비정형의 시공간에서 ‘선물’처럼 찾아와 한 존재를 정신적으로 두들겨 키웠던 ‘만남’과 배움’의 의미는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다.”

– “아이들이 이 교육체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배움이란 부정과 저항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미친 놀음’을 부정하고, 저항으로 분출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마지 않는다. (…)바라건대, 부모와 교사가 제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똑바로 쳐다보고, 그 순간 다가오는 죄의식과 책임감으로 각성할 수 있기를. 만약, 진정한 배움의 자리를 꿈꾸는 자라면, 점점 늘어만가는 가나한 아이들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누구도 보듬어주려 하지 않았던 그들을 품어 안아주기를…”

– “그러나 ‘상처’는 그 단어조차 낯선 것이 되어간다. 나는 늘 이런 질문에 시달린다. ‘상처’를 다루지 않고서, 지금 우리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벌이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라는. 지금도 이 땅에는 내가 만났던 그 녀석과, 녀석의 친구 B와, 그들의 수없는 친구, 선배, 후배, 동년배들이 알 수 없는 상처를 안고서, 알 수 없는 인생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 “저는 여러분들이 ‘청소년 인권’을 교육운동 진영이 제기하는 의제의 하나로 국한해서 생각지 않기를 바랍니다. ‘청소년 인권’은 아이들 일상의 전체, 그리고 교육의 일반원리와 맞닿은 매우 보편적인 의제입니다.”

– “교육이란 ‘섞이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교실에는 할 수만 있다면 온갖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내 존재에 찍힌 가난과 열등의 낙인이, 부유함과 우월의 표지가 실은 별것 아님을, ‘나는 그저 나일 뿐’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때서야 그는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

– “잃어버린 것을 잊어버리면, 결국 되찾아야 할 것이 사라져 버린다. (..) 그 시절에도 추방과 방황, 상실의 드라마는 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지금처럼 광폭하게 질주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순환되었고, 그 순환의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은 되돌려지고, 용서되었다. 그러므로 고통은 ‘연극’이었다. (..) 그러나 이 시대 방황과 추방, 상실은 냉혹한 ‘실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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