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보자 폴짝] 닮은 꼴 이야기
멧돼지 사냥과 사형제 부활

“카악, 퉤! 악마 같은 놈들, 싹 쓸어버려야지. 더 이상은 용서할 수 없어!”

오늘로 나흘째. 갈대숲을 헤치고 멧돼지 가족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이 씨 아저씨는 가래침을 뱉으며 말합니다.

2주일 전, 앵비 마을에서 멧돼지 문제를 두고 토론이 있었어요.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어! 아침에 일어나서, 밭에 가보면 온통 멧돼지 발자국이야!”
“맞아요! 이거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지, 이러다가는 가뜩이나 안 되는 농사, 완전 거덜나겠어!”
“아니, 한 두 번이면 참겠지만, 이놈들은 더 이상 사람하고 같이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야. 숫자도 너무 늘어났고, 죽이는 수밖에 더 있어?”

“잠깐만요, 정 씨 할아버지. 할아버지 화난 마음은 알겠는데. 그래도 죽이자고 하는 건 너무 한 거 같아요.”
“그래요. 방법을 찾아보면, 숫자를 조절하는 방법도 있을 거고. 그렇게 다 죽여 버리면, 오히려 숲에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요.”
“그라재. 살자고 내려오는 것들을.. 그러면 쓰나. 얼매나 산에 먹을 것이 없으면 이리 내려와 뒤집어 놓고 가겠수? 차라리 먹을 걸 좀 올려 보내는 게 어뗘? 숲에서 가져온 게 한그득이니, 이제는 좀 돌려줘야지.”

“아니, 할머니! 지금 할머니 집이 산에서 좀 떨어져 있다고, 너무 남 일처럼 말하는 거 아니에요? 할머니 밭이 이렇게 망가졌으면 그렇게 멧돼지 편을 들겠냐구요! 섭섭해요 정말.”
“지난주에 유씨네도 크게 털렸더라고. 유 씨가 속 터져 하는 걸 보니까 나도 그냥 심장이 터질 것 같더라고. 유 씨 마음도 달래고, 푸닥거리도 할라면 이 괴물같은 놈들 다 죽여버려야지. 죽어도 싼 놈들 같으니라구!”
“이제 진짜 남 일이 아니에요. 언제 우리 집까지 내려올지 알 수 없다구요. 밤마다 벌벌 떨면서 살 수는 없어요.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멧돼지들마저 이러니 원…”

“문제가 있다는 건, 저도 공감해요. 그치만, 원인을 멧돼지에게서만 찾을 수는 없어요. 요즘 이 주변이 온통 개발 분위기라 산은 점점 깎여 들어가고, 우리도 점점 산 근처로 농지를 옮기고 있잖아요. 앞으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해결해버리면…”
“같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지. 멧돼지 두어 마리 잡는다고 절대로 해결 안 된데이. 그래봐야 배고픈 짐승들은 계속 내려오게 되어 있어. 그 때마다 다 죽이삘건가?”
“그리고 우리가 힘든 게 멧돼지 때문만은 아니잖아요. 맨날 우리 힘들다고 할 때 정부는 나몰라라 하면서… 멧돼지 때문에 힘들다고 하니까 멧돼지만 싹 죽이라고 하고.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 멧돼지는 아니라구요. 저는 오히려 멧돼지랑 제 신세랑 비슷한 거 같아요. 언제든 없앨 수 있는 존재라는 게 서글프네요.”

“아이고, 착한 사람들은 여기 죄다 모였네! 그렇게 멧돼지랑 살고 싶으면 멧돼지 소굴로 들어가 버리지!”
“아니면, 멧돼지 한 마리 잡아와서 순하게 길들여 보시지! 그럼 내가 걔네들하고 같이 살 수 있을지 고민해 볼테니.”

멧돼지 사냥과 사형제도
결국 마을 회관에 모였던 사람들 대부분의 찬성으로 멧돼지 사냥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부에서 보내주는 전문 사냥꾼들과 마을 남자들이 힘을 모아 멧돼지를 잡아 죽이기로 한 거죠. 전국에서 가장 먼저 멧돼지 사냥이 시작되자 유명한 방송사 기자들도 많이 내려왔습니다. 앞 다투어 멧돼지와 마을 사람들이 벌이는 사투를 보도했습니다. 영악한 멧돼지 가족이 사냥이 금지된 숲으로 이동하고 있으니, 사냥 금지 구역을 해제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마을 곳곳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기도 했지요. 멧돼지가 내려오는 경로를 추적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마을 사람들은 이젠 도둑놈들도 카메라가 무서워 마을 근처엔 얼씬도 못할 거라며 좋아합니다. 마을의 도둑놈이란 ‘여름에 수박 서리하는 희영이’, ‘최씨 담배 몰래 피운 김씨’ 라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로.

멧돼지 소동이 벌어진지 1년이 지났어요. 멧돼지는 사라졌지만,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별로 나아진 게 없습니다. 여전히 농사철이 되면 힘이 들고, 수확한 물건을 팔 때가 오면 한숨이 커집니다. 가끔 옆 마을 사람들과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가뭄 때가 되면, 물이 부족한데, 옆 마을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물을 가둬놓기 때문에 우리 마을이 더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오는 욕이 있어요. “저런, 멧돼지 같은 놈들! 천벌을 받을 놈들 같으니라고!”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어요. 마을 아이들의 일상도 조금 변했습니다. 엄마한테 혼이 난 찬이는 들 고양이 한 마리를 묶어 놓고는 피가 날 때까지 발로 찹니다. “너는 죽어도 싸! 돌아다니면서 쓰레기나 주워 먹는 주제에!” 갸르릉 거리는 고양이의 신음 소리가 찬이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멧돼지 사냥이 끝난 뒤, 마을 사람들 모두 정말 중요한 것들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괴물같이 보이는 것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와 닮은 구석이 있다는 걸. 결국 그 못난 괴물을 낳은 것도 우리라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우리가 부대끼는 이 모든 생명들에게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그리고 누구에게도 생명을 죽일 권리는 없다는 것을.

[글쓴이의 길고긴 덧말]

대한민국은 사실상 사형 폐지국입니다. 그간 사형 선고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10년 넘게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2007년에 사실상 사형 폐지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사형 집행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형제 부활’ 이지요.

멧돼지 사냥과 사형제 부활 사이에는 분명 다른 맥락이 있습니다. 생태계 파괴의 문제와 범죄의 문제를 완전히 동일한 선상에서 논할 수는 없으니까요. 생태계 파괴로 인해 삶터를 잃게 된 멧돼지의 습격과 죄책감 없이 여러 명의 여성을 살해한 범죄자를 같은 잣대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멧돼지의 ‘생계형’ 습격과 달리 소위 ‘극악하다’고 여겨지는 범죄들은 생계형 범죄가 아닌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제가 환경부가 발표한 <도심출현 야생 멧돼지 관리 대책>을 보며 사형제를 떠올렸던 이유는 그 문제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괴물 같은 놈들은 다 죽여야 한다, 억울하게 피해 입은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 앞으로 또 누가 피해를 입을지 모르니 미리 예방해야 한다.’를 주요 논거로 많은 사람들이 멧돼지 사냥과 사형제 부활에 찬성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범죄자를 ‘악마다, 괴물이다’라고 외치는 순간, 우리는 ‘악마’를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환상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범죄가 일어나는 근본적 환경, 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성범죄를 예로 든다면, 여성이나 아동이 폭력에 취약한 현실) 범죄는 계속됩니다. 범죄자 한두 명을 죽인다고 해서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또한 약자가 발생하는 환경을 만든 것은 범죄자 한두 명이 아니라 이 사회를 살고 있는 구성원 모두입니다. ‘악마 사냥’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면죄부를 줄지언정 책임 있는 문제 해결과는 멀어지게 합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사형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근거 없는 논리입니다. 피해자 가족들의 상당수가 살인범의 사형을 막아달라는 탄원을 법원에 제출합니다. 그 후,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얻었으며, 저주하고 미워하던 시기보다 훨씬 행복해졌다고 말합니다. 사형이 집행된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고통이 덜어지거나 피해가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와 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정신적 · 제도적 지원을 통해 그들을 안정시켜 사회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것입니다.(인권오름 77호- 사형, 없어도 산다 참조) 저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말하며 무시무시한 댓글을 다는 네티즌들을 보며, ‘이들은 정말 피해자를 걱정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과연 이들은 용산 참사처럼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도 이렇게 매서운 분노를 뿜어낼까요? 오히려 침묵하지 않을까요? ‘국가에 대항하는 것은 겁이 나지만, 이미 잡힌 살인마를 욕하는 건 겁나지 않는다.’ 저는 이런 비겁한 심리를 읽게 됩니다. 권력 앞에 무릎 꿇는 심리에 기대 국가는 사형제를 악용하기도 합니다. ‘인혁당 재권위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아무리 재심해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한들,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국가가 악용하지 않는다 해도, 언제든 오판의 가능성은 남아있습니다.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범죄 억지력’이라는 것은 이미 1988년 유엔이 ‘사형제도와 살인율과의 관계 연구’(2002년 업데이트)를 통해 “사형제도의 존치 여부가 살인범죄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사형이 살인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으며, 실제로 사형이 두려워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연쇄살인범도 없습니다. 많은 범죄학자들은 최고형을 높이는 것보다, 검거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프레시안 090211- ‘사형부활’이 ‘사이코 패스’ 때문이라고? 참조)

이 모든 논거들에 앞서 가장 중요한 건, 누구에게도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간 사람은 인간으로 살길 포기한 거다. 그런 사람의 권리까지 존중할 수는 없다.’ 는 강력한 논리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걸까요?

*글쓴이: 한낱(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출    처: 인권오름 제 182 호 [기사입력] 2009년 12월 09일

 

텔레그램 채널구독

인권교육센터 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들의 최신 소식을 가장 빠르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