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 좀 들어봐] “에이즈 환자는 죽음만 기다리는 사람인 줄 알았어.”
청소년으로서 HIV/AIDS 인권주간 캠페인에 참여하고 나서

11월28일 토요일.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다.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에이즈 인권주간 행사 중 하나인 거리 캠페인이 2시부터 있는 날이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서울에 오랜만에 올라온 아는 형과 함께 캠페인이 열리는 장소인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으로 향하였다.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하자 반겨준 건 수많은 비둘기들뿐. 아무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아 우리가 일찍 도착해서 그런 건가?’ 하며 동성애자 인권연대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말과 함께 캠페인 준비를 하고 있는 장소로 오라고 하였다.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캠페인에 사용할 피켓을 만들고 홍보물을 열심히 접고 있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에 우리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캠페인 준비에 동참했다. (물론, 절대로 억지로 시킨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게 바쁜 사람들 곁에서 우리도 뭔가 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홍보물을 적고, 오는 길을 표시하는 안내판도 만들고 캠페인에 사용할 게임도 준비했다. 2시30분이 돼서야 캠페인 준비가 겨우 끝났다. 10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은 캠페인 물품들을 들고 마로니에 공원으로 향하였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많이 당황했다. 그러나 그렇게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이에 사람들이 하나하나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데, ‘나는 저 분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된 캠페인 <사진 출처: 동성애자인권연대>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된 캠페인 <사진 출처: 동성애자인권연대>


하고 나면 쉬운 HIV/AIDS 감염인 인권옹호 활동

내가 캠페인에서 담당한 일은 HIV/AIDS 인권에 관한 게임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퀴즈를 내서 문제를 맞히면 룰렛을 돌려서 나오는 상품을 가져가는 게임이었다. 캔디, 핫팩, 버튼(뱃지), 그리고 콘돔이 상품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캠페인 부스를 차려놓자마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캠페인 내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캠페인 내용이 적힌 판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고 무엇을 하는 있는지 직접 물어보는 시민들도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에 나는 캠페인 진행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서명을 해주시는 시민들이 늘어갈 때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흰머리가 그 고단한 생을 말해주는 할머니도 있었고, 콘돔을 원해서 온 고등학교 학생들도 있었고, “콘돔이 뭐예요?”라고 순진하게 묻는 유치원생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나와 같은 청소년들과 아이들 상품으로 콘돔이 선택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 했었는데 2~3시간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니 농담까지 할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이 생겼다. HIV/AIDS 감염인 지원예산 축소에 항의하는 서명에는 약 200명가량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우리가 준비한 홍보물도 다 나눠주었다. 막상 끝났다고 하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서로 격려했을 때는 ‘더 열심히 할걸’ 이라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처음으로 참여한 HIV/AIDS 인권 캠페인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활동도 하고 그 활동에 대한 자긍심도 가질 수 있었으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으로써 지지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사실상 에이즈라고 하면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야’, ‘에이즈? 그거 동성애자가 주로 걸리는 병 아닌가?’ 하며 무시하고 거부감이 들기 마련인데 (사실 이러한 현실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어쩔 수 없는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내세요!”, “언제나 우리는 당신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라며 서명을 해주니 어찌나도 기분이 좋던지……. 이러한 지지와 격려 덕분에 더더욱 앞으로의 활동에 열의를 다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관심이 바로 인권운동의 첫발이 아닐까

청소년으로서, 인권단체에서 청소년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HIV/AIDS 감염인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캠페인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예전에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HIV/AIDS에 크게 관심이 있지 않았다. ‘에이즈? 아, 그런 병이 있구나’ 하며 그냥 쉽게 넘겨버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내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 관심 없던 내가 에이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윤 가브리엘(에이즈 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형을 만나고부터였다. 가브리엘 형은 참으로 좋은 사람이다. 함께 웃고 농담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 단 하나 우리와 차이가 있다면 가브리엘 형은 HIV/AIDS 환자다. 아무것도 제대로 모르고 있던 내가 에이즈 환자라고 했을 때에는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그 이후로 에이즈에 더더욱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가장 뜨거운 포옹 <사진 출처: 동성애자인권연대 홈페이지>

가장 뜨거운 포옹 <사진 출처: 동성애자인권연대 홈페이지>

에이즈의 감염 경로(에이즈는 다른 질병과 달리 감염 경로가 명확하다고 한다), HIV/AIDS의 환자로서 겪고 있는 인권 문제 등등 내가 알고 관심 가져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이번 캠페인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에이즈 환자는 더 늘어나고 있는데, 보건복지부와 같은 정부에서는 이런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지원을 줄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타미플루를 만드는 다국적 제약회사인 로슈가 자신들의 한국이 책정한 약값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에이즈 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팔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HIV/AIDS 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외치고 있다. 약이 있는데 그 약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지 않는 부당한 현실에 맞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인권을 침해 받고 있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청소년이라는 틀 안에서만, 동성애자라는 틀 안에서만 열심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끄덕끄덕 맞장구]

올해로 4회째를 맞는 HIV/AIDS 인권주간은 12월1일 세계 에이즈날이 정부주도의 1회성 행사로 의미 없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감염인 당사자와 지지자들이 함께 ‘인권’과 ‘연대’의 의미를 되찾아보자고 만들어진 행사야. 올해는 HIV/AIDS 감염인/환자들과 보건의료단체, 성소수자단체, 진보정당,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준비했어. 예년과 다르게 올해 행사에는 평인과 같은 청소년들의 참여가 높았던 거 같아. 특히 캠페인 전에 있던 인권문화제에는 10명 가까운 청소년들이 참여했지. 앞으로도 더 많은 청소년들이 평인처럼 HIV/AIDS 감염인들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함께 웃고 떠들며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

학교에서는 잘 하지도 않는 성교육 시간에 뼈만 앙상히 남은 에이즈 환자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동성애를 하면 에이즈 걸린다고 하면서 학생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하잖아.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콘돔, 안전한 성관계에 대한 교육도 잘 하지 않고. 그러다보니 청소년들도 HIV/AIDS에 대해 막연히 무서워하거나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 것 같아.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는데 말이야. 다행히 이번 캠페인에 대학로 연극 공연을 보러 온 청소년들이 게임과 서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모습은 좋았던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귀 기울여 듣기보다 나와 상관없는 문제쯤으로 여기잖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자살이나 우울, 학교부적응, 가족과의 갈등, 불화를 겪고 있지. 아무도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고 그냥 주변으로 몰아세운다면 굉장히 서운하고 힘들 거야. 자존감도 사라지고 그냥 숨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교사, 상담원, 이성애자 친구들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HIV/AIDS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HIV/AIDS 감염인들이 더 이상 숨어있지 않고 우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거야.

2010년 에이즈 예산 중에 간병과 복지에 쓰일 감염인 지원예산이 17% 정도 삭감되었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지. 2009년에는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한 감염인들을 돌볼 간병비 예산이 이미 떨어졌대. 정말 많이 아픈 감염인들이 요양해야 할 대구쉼터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책정되었어. 심지어 그 예산마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약이 있어도 먹지 못하고, 아픈 환자들에게 쓰일 비용도 줄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정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4대강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나봐. 에이즈 예방은 감염인들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거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든다.

답답하지만 평인이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들에게서 희망을 찾은 것처럼,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보자.

– 정욜(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글쓴이: 평인(평범한 인간)(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자긍심팀에서 활동하고 있고 중학교 3학년 청소년)
*출    처: 인권오름 제 182 호 [기사입력] 2009년 12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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