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인걸] 고객님? 됐거든!!!
1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기업의 마케팅 전략 뒤집어보기

어서 오세요 공주님~

에뛰드 하우스 매장
에뛰드 하우스라는, 그곳에 들어가는 모든 여성들을 공주님으로 만들어 주는 화장품 가게가 있다. 어떤 광고에서는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를 외치며 잡티 없이 매끈한 피부를 자랑하고 또 어떤 광고에서는 깨끗함이 다르다며 무릎을 안고 앉아있는 모습을 내세운다. 그 모든 것의 공통점은 10대 여성을 노린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공주님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추켜올리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내세우며 소녀의 순수함을 강조한다. ‘소녀’들의 소비를 조장하는 것이다.

10대와 여성은 언제나 소수자였다. 그러니 10대 여성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소수자에게 어떠한 지위가 생기는 한 순간이 있다. 그들이 소비자가 되는 순간이다. 소수자들이 소비를 할 수 있다고 자본가들이 깨달을 때 그들에게는 소비의 주체라는 지위가 생긴다. 그들에게서 돈을 뽑아낼 여지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 소수자는 “고객님”이 된다. 10대 여성들은 에뛰드 하우스에 있는 순간만큼은 공주님이 될 수 있고, 옷을 사러 돌아다니는 때 만큼은 “어서 오세요, 손님”의 손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10대 여성들은 소비에 집착하고, 판매자들은 10대 여성들을 더욱 대접한다. 또 하나의, 어둡고 질척질척한 소비의 굴레가 생기는 순간이다.

사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도 충분히 넘치게 많이 존재하고 있고, 그 소비의 굴레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 10대뿐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10대, 특히 1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10대들이 스스로 경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그 지점에서 청소년 노동권에 대한 얘기와 최저시급에 대한 이야기, 노동권의 맥락에서 사회경제적 지위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상황을 봤을 때 직접 돈을 벌고 그 돈을 관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청소년들에게 무차별적인 마케팅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은 결국 자본가들이 청소년을 보고 있는 시선 – 그들의 부모님의 지갑을 가장 쉽게, 효과적으로 열 수 있는 통로 – 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성인, 그 중에서도 돈을 버는 성인에 경우에는 어쨌든 자신의 소득과 그 안에서의 지출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그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그걸 찾지 못하는 성인들이 ‘꽤나’ 많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10대들의 경우 소득의 대부분이 용돈으로 채워지는 상황에서, 화장품 살 돈이 모자랄 때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동은 용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시급 4천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10대들은 용돈을 모아, 혹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 돈으로 화장품을 사고, 옷을 사고, 핸드폰을 바꿔가면서 일상적인 빈곤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그 책임의 거의 모두는 10대 본인이 아닌 10대 대상의 마케팅에 있다. “너희가 돈 관리를 잘해야지!”로 끝날 문제는 아닌 것이다.

10대를 판다고?

그러나 자본가들이 소수자들’로’ 돈을 버는 방법은 그들을 소비자로 만드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걸그룹 열풍이 그러했고 게이코드가 그러했듯이 그들 자체가 어떠한 트렌드가 되는 순간, 역시 대중은 소수자를 추앙한다. 섹스 앤 더 시티를 본 여성들은 스탠포드 같은 게이친구가 가지고 싶다고 지식인에 글을 올렸고, 왕의 남자와 브로큰백 마운틴, 앤티크와 같은 동성애 코드가 가미된 영화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면서 게이(절대 다른 성소수자를 포함하진 않는다. only 게이)에게 어떠한 지위 – 그들은 모두 여성만큼 예쁘고, 패션에 관심이 많으며 여자’친구’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 가 부여된다. 그들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소녀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촛불소녀의 소녀, 걸 그룹의 소녀, 이 사회가 바라는 소녀의 이미지는 하나의 지위가 되어 소녀들에게 다가간다. 그 지위에 매달려 “쉬는 시간마다 비비크림을 열심히 찍어 바르고”, 서클 렌즈를 껴서 “크고 촉촉한 눈”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지위는 결국 에뛰드 하우스에서의 ‘공주님’지위와 마찬가지이다. ‘공주님’은 그들’이’ 사게 하기 위한 지위라고 한다면, 소녀 이미지는 그들’을’ 사게 하기 위한 지위이다. 오로지 자본가들에게서,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부여된 지위는 그만큼 사라지는 것도 빠르다.(사라지더라도 소수자인 그들에겐 또 다른, 이용해먹기 쉬운 지위가 부여되곤 하지만)

나를 팔아서 나를 산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팔아서 나를 사는’ 과정이다. 10대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팔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아 한 통에 몇 만원 씩 하는 비비크림과 파우더를 사고, 예쁜 옷들을 찾아 헤매며 작은 액세서리들을 모은다. 하지만 말했듯이 이런 모든 과정들은 결국 10대 여성으로써의 자신을 팔기 위한 과정이다. “깨끗하고 맑고 자신 있는” 피부도, “촉촉하고 커다란 눈망울”도 모두 남성들이, 어쩌면 어른들이, 또 어쩌면 사회가 원하고 요구하는 ‘소녀’에 맞추기 위한 허물들일지도 모른다.

결국 근대사회에서 모든 소수자들이 어떠한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소비의 공간뿐인 것이다. 그 공간 안에서 그들은 소비의 주체로만 주체화할 수 있고, 팔리는 존재로서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자신을 상품화하며 다른 상품들을 소비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소비해주기를 기다리며. 훌륭한 소비문화의 일원으로써 ‘고객님’과 ‘상품’의 지위를 동시에 획득하는 영광스런 순간이다.

하지만 누가 그녀들을 욕할 수 있을까

화장하는 10대 여성에게 어른들은 발랑 까졌다고 말한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옷을 사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철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어른이 그녀들을 욕할 수 있을까. 결국 그녀들을 그런 길로 몰아넣은 것은 어른들인데.

그녀들은 결국 사회에서 자신의, 어쩌면 유일한 메리트를 좀 더 빨리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그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을 수행하고 있는 그녀들을 어떻게 욕할 것인가.

“고객님~”, 됐거든!

난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밖에 나갈 때마다, 살아 갈 때마다 매 순간 느낀다. 돈이 없으면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라고. 밥을 먹으려고 해도 돈이 필요하고 카페에 앉아 얘기를 하고 싶어도 돈이 필요하다. 노래방에 가려고 해도, 보드게임 방에 가려고 해도, 쇼핑은 말할 것도 없이 돈이 필요하다. 돈이 없으면 놀 수 없는 사회. 놀기 위해선 돈이 필수인 사회. 돈이 없으면 가장 먼저 친구들 사이에서 도태되는 사회. 그렇기에 다시 다 함께 소비를 하고, ‘소비자’라는 권력에 매달린다. 소비의 악순환이다.

그런 소비를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을까. 공주님이기를, 고객님이기를 거부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아직 자신이 없다. 이 사회에서 18년간 살면서 쌓여온 때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너무 핑계만 대는 것 같으려나. 그럼에도 나는 무분별한 10대 대상 마케팅을,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반짝반짝한 광고들을, 구준표와 투애니원이 선전하는 옷과 핸드폰을 거부하고 싶다. 내가 그들에게서 고객님이라고 불리는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을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에. 텔레비전에서 아무리 나를 기다린다고 말해도 그들이 기다리는 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 조금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는 나를 보며 내 주머니를 응시하는 모든 것들에 대고 외치고 싶다.

“고객님? 됐거든!!!”

*글쓴이: 어쓰(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
*출    처: 인권오름 제 194 호 [기사입력] 2010년 03월 16일 23:03:07

텔레그램 채널구독

인권교육센터 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들의 최신 소식을 가장 빠르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