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인걸] 여성 청소년들의 팬덤시티를 말한다

요즘 아이돌 시장이 정말 뜨겁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만 봐도 빅뱅, 2PM, 샤이니, 소녀시대 등 한 번에 떠올리기가 쉽지 않고, 자고 일어나면 모르는 신인 아이돌이 TV 브라운관을 통해 인사를 한다. H.O.T와 젝스키스, 핑클 등이 처음 국내에 생기고 나서 아이돌 전성기라 했던 시기 이후, 이렇게 많은 아이돌이 활동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팬클럽 안의 실세는 여성 청소년들이었다. 여성 청소년들이 아이돌 팬덤(*) 문화의 흐름과 그 안에서 어떤 성역할을 하는 걸까?

기획사의 기획 작품 H.O.T.

대형 연예기획사에서 원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10대 여성들에게 설문조사해서 탄생한 H.O.T.는 기획사의 기획아래 멤버들을 모집하여 탄생한 첫 번째 아이돌이었다. H.O.T.는 음악 보다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아이돌 가수로서, 시장조사를 통해 하나의 상품으로서 출시되었다. 때문에 이들을 응원하는 팬들은 기획사에게 상품인 H.O.T.를 소비하는 ‘소비자’였다. 또 기획사가 직접 ‘공식’ 팬클럽을 모집하여 콘서트 때에는 버스를 대절해 주고, 정해진 응원 용품 등을 보급하기도 했다. 팬클럽에 대한 기획사의 시선은 다분히 ‘관리대상’에 머물렀다. 기획사의 관리(?) 덕분에 H.O.T.의 이미지나 캐릭터를 가져온 다양한 상품들은 출시되자마다 대부분 큰 매출을 올렸다.

당시 코카콜라의 판매량을 넘었던 틱톡 에쵸티 음료수

하지만 H.O.T.의 팬 문화가 단순히 아이돌을 소비하는 소비자나 기획사가 의도한대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입장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H.O.T.의 팬들은 팬픽, 팬코스 등의 팬덤 문화를 창조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가수들의 평소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인 팬픽, 팬들이 가수들과 같은 복장과 머리를 하고 춤을 추는 팬코스 같은 문화는 H.O.T. 팬클럽에서 처음 생겨나 젝스키스 등 당시의 다른 가수들로 또 다음 세대의 가수들로 전파되었다.

시간이 지나 이런 문화들은 팬클럽을 넘어서 하나의 여성 청소년들만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팬픽은 팬클럽 사이트의 게시판 하나를 차지하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팬픽만을 위한 카페들을 개설했다. H.O.T. 팬으로서 H.O.T.를 팬코스하던 이들은 H.O.T. 해체이후 신화, 동방신기 등 다른 가수를 팬코스 하기도 했다.

인터넷이 활성화 되면서, 비공식 팬클럽이라 할 수 있는 많은 팬 카페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웹 공간을 통해 스스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했다. 이들은 다양한 비공식 까페들을 통해 가수의 사진을 보정하고 사진에 글씨를 쓰거나 동영상의 일부를 움짤(**)로 만들었다. 또한 가수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만화, 동영상의 재편집을 통해 만들어진 그들만의 뮤직비디오 등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공유했다.

과연 이는 진실로 그대들의 목소리인가?

또한 요즘 팬클럽은 각종 봉사활동, 기부활동 등 팬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즉 10대 여성들에게 팬클럽이 팬 활동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팬클럽의 이름을 앞세운 기부활동과 봉사활동을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긍정할 수만은 없다. 과연 그것이 정말 그들이 원해서 한 일이라고 수긍할 수만은 없다. 팬클럽의 이름을 앞세운 활동에서 10대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름은 지워버린 채 연예인의 이름을 대신하는 것 같다는 듯 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부장제의 자기희생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어쩔 수 없이 겹쳐진다. 왜냐하면 10대 여성들이 아이돌 가수의 뒷바라지를 하는듯한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서포트? 내조!

팬클럽의 아이돌 뒷바라지 일부로 서포트(support)라는 말이 화제다. 서포트란 팬클럽에서 가수가 출연하는 프로그램 스텝에게 점심 도시락 등을 돌리며, 응원하는 가수를 잘 보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이것이 화제가 된 것은 최근이나 이런 일은 사실 서태지 팬클럽 시절부터 있었다. 한 서태지 여성 팬은 당시에 이러한 행위를 ‘내조’라고 말했다. ‘내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정신이 확 드는 느낌을 받는다. 서포트라는 말에 가려져 있었던 의미가 내조란 단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주로 남성 아이돌에게 여성 팬들이 베푸는 서포트 문화는 사실 연애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챙겨주는 여성-받는 남성’ 식의 남녀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도시락이라는 것 자체가 남성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여성과 먹는 남성의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가.

이렇게 남성 아이돌 가수와 여성 팬들의 관계는 ‘주는 여성과 받는 남성의 관계’로 두드러지는데 반해, 여성 아이돌과 남성 팬들의 관계에서는 ‘능동적인 남성과 수동적인 여성의 관계’로 나타난다. 남성 팬들이라고 해서 서포트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시락 보다는 멤버들의 생일 선물 등을 보내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남성 팬과 여성 아이돌의 관계는 여성 아이돌이 시장에 어떤 식으로 자신을 어필하고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방신기의 팬 서포트

동방신기의 팬 서포트

최근 여성 아이돌 그룹의 컨셉은 점점 자신의 의사 없이 ‘남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성’으로 흐르고 있다. 특히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나 노래가사, 안무 등은 남성 팬들을 이입시키고자 하는 직접적인 시도들이 엿보인다. 예를 들면 ‘소원을 말해봐’ 뮤직비디오는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남성의 1인칭 시점인데다가 “소원을 말해봐, 다 들어줄 테니.” 하는 식이어서 많은 여성들을 불편하게 했다.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뮤직비디오 중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뮤직비디오 중

‘처음처럼’을 부르는 티아라는 신음소리 같은 창법을 사용한다. 가사는 노골적으로 성관계의 처녀성을 강조한다. 반대로 남성 아이돌의 경우, 자신의 좌절된 사랑, 혹은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는 등 주로 노래에서 주인공 남성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최근 들어서 남성 아이돌들은 유행처럼 마초성을 어필하고 있다. 2PM은 ‘HEART BEAT’ 무대에서 얼음을 깨고 쇠사슬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고, 샤이니의 ‘링딩동’은 ‘넌 너무 착하고 약해 빠졌으니까 내가 널 좀 곁에 둬야겠다.’는 가사를 노래한다. 유행이었던 유키스의 ‘강한 남자’ 춤은 보는 사람을 위축 시킬 만큼 위협적이다. 즉, 남성 아이돌이 만든 콘텐츠의 주인공은 남성 자신인데 반해, 여성 아이돌의 경우 콘텐츠의 주인공이 본인들이 아닌 남성 팬들이다.

그녀들은 진정 빠순이?

10대 여성 팬들 하면 ‘빠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쉽다. 아마 대다수 기성세대들이 10대 여성 팬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럴 것이다. 빠순이가 뜻하는 것이 무언가? 오직 맹목적으로 오빠만을 외치는 철없는 여성 청소년이 아닌가?

그러나 10대 여성들은 사실 처음부터 ‘빠순이’가 아니었다. ‘원조 빠순이’라고 할 수 있는 서태지 팬덤은 전부터 단지 오빠를 향해 열광하는 빠순이가 아닌 서태지의 음악을 사랑하고 뮤지션 서태지를 지지하는 ‘태지 매니아’ 임을 강조했다. 후에 나타난 H.O.T.나 젝스키스의 팬클럽은 맹목적인 열광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단순히 가수들에 대한 애정만이 아닌, 당시 아이돌의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전사’의 이미지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들을 빠순이라 명명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서태지와 아이돌이 부르는 노랫말에 섬뜩함을 느끼고 H.O.T.의 형형색색 머리카락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들을 추종하는 여성 청소년들을 맹목적으로 오빠만을 외치는 철없는 것들이라 규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성이 위협받았을 이들이 아닐는지.

* 팬덤(fandom)이란 영어 ‘fan’과 ‘dom’의 합성어이다. ‘fanatic’의 줄임말인 팬(fan)의 본래 뜻은 교회에 속해 있는 헌신적인 봉사자나 열성가를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팬덤은 특정 스타나 장르를 선호하는 팬들의 자발적인 모임을 형태를 의미한다.
** 움짤은 움직이는 짤림방지(게시판에 글쓰고 마지막에 붙이는 사진 같은 것)라는 뜻이다.

*글쓴이: 발새(청소년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

텔레그램 채널구독

인권교육센터 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들의 최신 소식을 가장 빠르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