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인(in)걸] 납량특집 -공포영화
그 영화가 무서웠던 더 무서운 이유

이번 페인 걸은 무더위를 식히기 위한 납량특집, 공포영화 속의 여성청소년들이다. 생각해보면 다른 장르에 비해 공포물은 유독 ‘학교’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10년 째 장수중인 <여고괴담>시리즈, 최근에 속편이 개봉한 <고사>시리즈 등이 모두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입시위주로 모든 학생들을 경쟁자·적으로 만드는 ‘학교’라는 공간은 이제 한국에서 공포영화의 단골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포 영화가 이런 학교의 현실을 고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상업 영화의 메커니즘 안에 있는 장르 영화의 하나인 공포영화는 대부분의 경우 사회 비판이라는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상황 혹은 공간이 가지는 폭력성은 어떤 인물의 부도덕함이나 싸이코틱함으로 대치되어버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공포 영화 속에 여성 청소년이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성 청소년들을 사회적인 약자로서 묘사한다고 한들, 이것이 어떤 현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단지 영화적인 재미를 돋우기 위해서 사용되는 장치인 경우가 다반사다.

지못미 소녀들

영화 <아랑> 포스터

영화 <아랑> 포스터

그렇다면 여성청소년들은 공포영화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살펴보자. 여성 청소년들은 보호해야 할 존재로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아랑>이란 영화에선 남자 주인공이 짝사랑했던 소녀를 지키지 못해 그녀를 강간하고 죽인 범인들을 연쇄 살인하는 내용이 나온다. 여성 청소년들은 성폭행이나 죽임을 당하여 남은 사람들에게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겨주는 역할을 한다. <러블리 본즈>, <살인의 추억>, <마더> 등등 말이다. 이런 경우 여성 청소년들은 사회적 약자의 대표격인 셈이다. 물론 이런 설정 자체가 여성 청소년을 무기력한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더 아니꼬운 것은 영화가 의도하는 것이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과 영화 밖의 관객들의 ‘순결한 소녀’의 보호에 대한 합의란 것이다. 이 사회에서 순결한 소녀는 당연히 보호받아야할 대상들일 뿐이다. 때문에 이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되었을 때, 관객들은 이들의 사건을 수사하거나 이들의 복수를 하는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주로 남성들)에게 더 쉽게 몰입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설정을 가진 영화로 <추격자>를 들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보호의 대상으로 순결한 소녀가 아닌 순결하지 않은 성매매 여성이 등장하는데, 영화는 이 여성을 보호해야한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그녀가 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임을 강조한다.

공포와 에로 사이

이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여성 청소년은 다른 한편으론 에로틱한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한다. 공포영화는 애초에 비명을 지르고 칼에 찔리는 여성들의 이미지로,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했었다. 여기에 소녀·여고생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면 그 시너지 효과가 엄청나다. 여성 청소년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는 소녀나 여고생의 순결한 몸을 파괴하는 쾌감을 주는 것이다.

<여고괴담4> 중, 끔찍하게 살해당한 여고생의 몸

<여고괴담4> 중, 끔찍하게 살해당한 여고생의 몸

<여고괴담>시리즈를 보라. 3편부터 5편까지는 본격적으로 난도질당하는 여고생의 몸이 등장한다. <고사>는 좀 더 자극적으로 수조 안에서 죽어가는 여고생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공포 영화들이 재수 없는 것은 이렇게 보여줄 건 다 보여주면서도 남성들에게 가해자의 편에 서지 않은 것 같은 안정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고괴담>시리즈에서 여고생들의 몸이 난도질당하고 관절이 꺾이는 것은 외모나 성적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여성들 본인의 탓이고, <고사>의 경우 관객은 문제를 풀어서 수조안에서 여고생을 구출하는 입장이다. 앞서 말했듯이 공포 영화는 어떤 사회적인 문제를 재미로 차용하는 것일 뿐 결코 약자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에로 코드의 또 다른 형태로, 성적인 금기를 범하는 여성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주로 임신, 동성애나 사제 간의 사랑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성적인 금기를 어기는 소녀는 성인여성보다 더 도발적인 법이다. 예로 <여고괴담>시리즈의 모든 작품에 등장한 동성애 코드, <여고괴담4>에서 다룬 사제 간의 사랑, <여고괴담5>에서 다룬 임신 등이 있다. 이 영화들은 금기를 어긴 여성 청소년들이 좋지 않은 결말을 맞게 된다고 말한다.

소녀들은 불완전한 존재?

또 하나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청소년의 이미지는 불완전성이다. 여성 청소년은 사회적으로 불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존재인 여성과 청소년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캐릭터의 극대화를 노리는 공포영화에서 이런 이미지가 얼마나 반갑겠는가.

공포 학원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 청소년들이 외모나 성적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캐릭터는 주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초자연적인 무엇과 결탁하거나, 죽어서도 계속 특정한 공간에 머물거나 하는 등의 형태로 공포를 만들어낸다. 드물게 공포영화에서 이성적이고 침착한 역할을 하는 여성 청소년이 등장하더라도 다른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로 <4교시 추리 영역>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은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대신 폐쇄적인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남자 주인공이 출중한 외모, 명석한 두뇌 그리고 리더쉽까지 갖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또 이런 불완전함의 이미지는 여성 청소년들을 우정과 사랑을 혼동하는 모습으로 묘사하여, 여성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대부분의 공포영화에 동성애 코드를 남발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주체적인 귀신들

반대로 공포 영화에서 여성 청소년들은 앞서 말한 것과는 다르게 주체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고괴담>시리즈의 1,2편, <분신사바>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여성 청소년들이 복수를 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귀신과 거래를 하거나, 직접 죽어서 귀신이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여성청소년들이 제 모습을 온전히 가지고선 누구를 죽이거나 괴롭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공포영화는 굳이 사회적으로 형성된 여성 청소년의 이미지를 깨뜨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고괴담> 중 한 맺힌 여고생 귀신

<여고괴담> 중 한 맺힌 여고생 귀신

그 영화가 무서웠던 이유

공포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관객들을 불편하지 않으면서 무섭게 만드는 일이다. <여고괴담>에서 친구들한테 괴롭힘 당하다 죽은 여고생이 귀신이 되어 학교를 떠돈다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여고괴담>의 줄거리가 주인공 여고생이 살아서 자신을 괴롭히고 배신한 친구들을 한 명씩 살해하는 것이라면 과연 이 영화를 편히 볼 관객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또 반대로 만약 <추격자>의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성적인 무능함을 무시한 여성들에게 귀신이 되어 복수하는 내용이라면 누가 이 영화를 재밌게 보겠는가. 이렇듯 공포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관객이 어떻게 여성과 남성을 인식하는가에 따라 좌우된다.

공포물은 상황이나 공간의 폭력성을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장르보다 사회의 병리 현상을 다룰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은 장르라고 생각한다. 여태 그런 공포영화가 잘 없었을 뿐이다, 좋은 예로 <샤이닝>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어느 평범한 아버지-남편이 한순간에 폭력적인 살인마가 되는 내용인데 우리가 순간순간 느끼지만 덮어두었던 아버지-남편의 폭력적인 모습을 잘 포착하여 뛰어난 공포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처럼 공포영화는 반드시 이미 구성된 세계관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나는 더 이상 공포영화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녀들을 보고 싶지 않다. 그녀들의 캐릭터도 역할도 너무 뻔하다. 그렇다고 신개념 싸이코패스 살인마로 여성 청소년이 등장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여성 청소년들은 청소년으로서 학교 안에서 한 인간으로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상황이고, 여성으로서 가부장사회의 약자란 위치에 있다. 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포착하여 훌륭한 공포영화로 탄생시킬 수는 없는가?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가? 바로 영화 속 등장인물이라는 타인의 감정을, 내 것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훌륭한 매체가 아닌가. 한 명의 영화팬으로서 공포영화에 여성 청소년이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어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지못미: 인터넷 용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줄임말.

*글쓴이: 발새 (청소년 인권 활동가 네트워크 활동가)
*출    처: 인권오름 제 214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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