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청소년=쯧쯧쯧?] 돈 때문이야~ 돈 때문이야~ 빈곤은 ‘돈’ 때문이야?(1)

‘돈’ 세상 – ‘빈곤 가정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

지역아동센터와 공부방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이 그렇다. 가난한 가정환경,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소외를 경험하게 되는 아이들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공부방이고, 지역아동센터기 때문이다.

무어든 돈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빈곤 가정 청소년들은 ‘그들의 부모가 돈이 없으므로’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들을 겪게 된다. 이를테면, 먹고 싶고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을 애써 참거나 아니면 욕구 자체를 별로 가지지 않는 듯도 하고, 때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쩔쩔매고, 돈 쓰는 상황이 생길까 신경을 곤두세우며, 간혹 돈이나 물건을 훔치거나 뺏거나 달라 하기도 한다. 돈 벌러 간 아버지와 몇 년 동안 떨어져 살기도 하고, 먹고살기 힘들어 다툼이 잦은 부모의 갈등 속에 함께 놓여 있고, 용돈을 벌기 위해 학교가 끝나고 밤늦게까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하면, 대학에 가겠다는 작정을 차마 하지 못한 채 취업을 위해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 결국 이 청소년들에게 돈이란, 간절한 소망이거나 다른 한편 좌절과 체념의 대상이기도 하고, 아니면 특별히 바라는 것 없이 주어진 조건 속에 묵묵히 살아가도록 하는 꿈꾸지 못할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다.

필요한 물적 지원, 잘 주고 잘 받고 있나?

이러한 형편의 청소년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물적 지원을 하는 것은 최소한의 정의로서 필요하고, 당연한 일이다. 공부방이나 지역아동센터도 그러한 물적 지원 또는 지원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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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부방이나 센터에서 청소년이나 부모들을 만나다 보면, 이러한 지원과 관련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종종 자신을 ‘수혜자’의 자리에 놓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다. 센터와 자신의 관계를 으레 일방적으로 주고받는 관계로 설정한 듯, 늘 받기를 바라고, 더 주는 곳으로 찾아가기도 한다. 자기 것을 당당하게 누린다기보다는, 받는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나머지 자기 삶을 다른 이들에게 기대어 맡기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또 어느 센터의 한 교사는, 무언가 지원을 받기 위해 자신의 없는 형편을 애써 드러내고 강조하며, 자꾸 아쉬운 소리를 하는 학부모를 대하며 불편함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원할 수 있는 여건이나 기준들에 대해 이야기해도 그것과 상관없이 자기를 낮추는 방식으로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무얼 얻기 위해 그런 설명(내지는 증명) 방식으로 요청하기를 요구당해 왔기 때문일 것 같다는 얘기다.

그런데 또한 이러한 모습들은 청소년이나 부모들뿐 아니라 센터들, 교사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운영비 대부분이 국가지원금이나 후원금으로 구성되고, 기업들의 물품후원 들을 받아 꾸려가는 센터들이라면 ‘받는 자리’에 있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 센터 교사들은 ‘한 가지 지원이라도 더 끌어오기 위해’, ‘우리 센터가 더 받기 위해’ 애쓰는 것 같다. 또 지원의 기회나 지원하는 방식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할 때 더 챙겨두려 하기도 한다. 이 같은 노력은 물론 모두 아이들을 위한 것이겠지만 ‘모든’ 아이들을 위한 것은 아닐뿐더러, ‘잘 받기’ 위한 원칙이나 기준 같은 것도 마땅히 없는 것 같으니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그렇다. 빈곤한 형편의 청소년들을 만나는 교사들은 아마도 누구든 이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애정 어린 마음으로 돕고자 한다. 그래서 먹을거리든 물품이든 그밖의 자원이든 많이 끌어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한 주려고 애쓰기도 하는 것이겠다. 그렇게 그들을 지지하고자 하는 것이겠다.

하지만 받는 것도 그러하듯, 많이 주는 것과 ‘잘 주는 것’은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필요에 알맞지 않게 넘치는 물품들과 자원 연계는 모자라느니만 못할 수 있다. 무조건적으로 받고, 있으니까 쓰고, 많으면 좋다는 생각으로 주는 센터의 운영방식은 센터 안의 청소년들을 ‘받는 자리’에만 머물러 있도록 위치 짓기 쉬우며, 이들 또한 물질 중심의 소비적 삶을 살게 할 뿐이다. 이들에게 그 물건들이나 자원들은 그다지 소중하지도, 의미 있지도 않을 수 있다. 고맙게 못 쓰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이들의 탓만 할 수 있을까. 의존적이고 수동적으로 느껴지는 책임을 이들에게만 지울 수 있을까.

건강한 삶을 위한 – 지원과 복지 또는 ‘다르게 살기’

지역아동센터와 청소년, 국가와 사회가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맺을 때, 무엇을 어떻게 줄 것이며 받을 것이냐를 고민하고 바람직한 방식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은 정당한 욕구와 필요가 있는 곳에 그 필요한 것이 충분히 채워질 수 있어야 하고, 여기엔 누구나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생각, 사람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많이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않아야 한다. 눈치 보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떳떳이 필요를 말하고 받을 수 있는 여건과 제도가 마련되어, 건강한 방식으로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우리 사회가 최근 관심을 높이고 있는 보편복지의 내용들이 그런 역할을 얼마만큼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소비적 삶의 방식, 경제 성장 이데올로기 아래 아직도 물질 중심의 가치가 팽배한 우리 사회가 과연 이대로 가도 좋겠는지 진지하게 돌아보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모순된 사회의 구멍을 메우며 주류사회를 뒷받침하는 복지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빈곤의 문제를 돈-지원과 복지 등-의 문제로, 없는 것을 채워야 한다는 관점으로 풀어가는 대신 ‘다른 삶’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일 테니까.

(이어지는 글에서는 공부방이라는 우리 삶의 자리에서부터 어떻게 대안적 삶의 길을 열어갈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글쓴이: 미나리(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출    처: 인권오름 제2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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