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청소년=쯧쯧쯧?] 병 주고 약 안주는 학교, 그럼 지역아동센터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학교란 어떤 의미일까?

아이들은 자신의 집이 버틸만한 곳이 아닐 때, 그 무엇이라도 자신을 버티게 하는 힘을 줄 장소를 찾게 된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학교가 자기 삶의 비중 있는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또 다른 아이들에게는 학교는 그냥 막연히 가야 하는 곳으로 생각되기도 한다(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학교에는 어느 정도 학교의 규칙에 대충 따라주면서 지내는 아이도 있고, 대충 따르지 않으면서 지내는 아이들도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생인권조례에 사실 별 관심 없다. 제일 관심 있는 것은 두발, 복장 정도이지 그 외의 것은 관심 없고 귀찮아한다. 당장 핸드폰 뺏는 것에는 민감해하면서도 “체벌이 없어져서 더 귀찮다. 벌점 규정이 더 많아졌어” 등의 얘기들을 툭 하고 내뱉는다. 지역아동센터 교사가 이런 순간을 포착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면, 아이들은 “또 무슨 잔소리 하려고 하지?”하고 귀신같이 알아챈다. 그래서 교사는 머뭇거리게 되고, 가려서 얘기하게 된다. 어떤 아이들은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 자신의 의견을 묻는 것조차 귀찮아하기도 한다.

여전히 청소년 자신들로부터 시작되지 않는 학교의 수많은 규칙들이 있다. 학교보다는 수위가 낮더라도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여러 규칙과 규정들을 지켜야 한다. 자기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아니라 소모품, 들러리로 느껴지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지역아동센터는 내가 왜 학교에 가기 싫은지 재해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줄 수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학교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인 공간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마냥 아이들에게 맞장구를 칠 수도, 마냥 참고 살라고 할 수도 없다. 어떤 부분이, 어떤 의미에서 부정적인 것인지 함께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학교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21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에서 ‘버티는 것’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는 더욱 중요할 수 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 아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아직까지 너무 황무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의 억압성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나오는 것과 흔히 말하는 ‘사고(?)’를 치고 그만두게 되는 것은 너무 다르다. 왜냐하면 학교를 바꿀 수 없어서 그만두는 것은 패배지만, 바꿀 수 없는 또한 바뀌지 않는(?) 학교를 거부하고 탈학교 청소년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아동센터, 제2의 학교?

교사와 아이들 간에 인식의 차이,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들에게 학교-집-지역아동센터는 자기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다. 우리들은 일상적으로 아이들의 삶이 연속되어 있음을 생각하지 못한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만 연결고리로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아이의 기분, 몸 상태 등은 학교에서의 시간과 연결된다. 학교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역아동센터 안에서만, 그 시간만 잘 있는다고 끝이 아니다. 학교에서 보낸 시간,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과 그로 인한 감정이 센터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학교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가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여전히 소외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재확인하게 되는 곳이 지역아동센터라면?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어떤 것부터 준비해야 할까? 아이들의 도움 요청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며 다가가는 것과 교사의 생각대로 그냥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 다르다. 준비과정에서부터 아이들에게 묻고 함께 고민하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필요하다. 주변에 나를 인정해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자신감과 열정이 솟아올라 더욱 힘을 내고 앞을 향해 나가게 되지 않는가? 아이들의 말에 귀기울여보자. 공감을 하고, 열심히 맞장구도 치고, 그러다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모르겠으면 질문을 해보자. 물론 교사와 가치관이 다르거나 의견이 부딪히는 아이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란 생각보다 힘들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다른 만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인정하며, 청소년들의 생각과 문화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유연함을 가져보자. 그러다보면 그들의 ‘다름’을 ‘못함’이 아닌 ‘자연스러움’, ‘흥미로움’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학교와 지역아동센터의 관계, 그 연결고리 찾기

학교와 지역아동센터의 관계를 어떻게 볼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된 바도, 관련된 정보도 거의 없다. 지역아동센터는 분명 학교도 아니고 가정도 아니다. 그런데 지역아동센터 교사는 학교 교사의 역할과 부모의 역할을 모두 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들의 삶은 학교, 집, 지역아동센터로 분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선에서 이어진다. 그렇기에 지역아동센터는 교복, 화장, 두발, 일기장, 성적표 검사 등 학생 인권 이슈들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부 지역아동센터는 학교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아이들이 성적을 올려서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이를 위해 온 힘을 기울이기도 한다. 학교를 잘 지지하는 것이 지역아동센터의 역할인가? 학교가 바뀌는 것이 지역아동센터와는 무슨 관계가 있으며, 제2의 공간인 지역아동센터가 바뀌는 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예를 들어 폭력사건이나 물건을 훔친 경우, 학교 교사-부모-지역아동센터 교사가 함께 모이는 만남이나 회의가 가능할까? 담임교사와 관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초등학교보다 중⋅고등학교는 좀 더 폐쇄적인 느낌이다.

지난해 가을 빈곤과 청소년팀 워크숍에서 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학교는 대단히 견고하고 단단한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물렁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개입해야한다., 우리가 만나는 청소년이 매우 변화무쌍한 아이들이라 이 단단한 조직과 부딪힐 수밖에 없고 한편 그래서 우리는 수세적인 것 같다. 저는 이 단단함이 무너지고 있고, 여기서 학생인권조례, 그리고 4,000개나 되는 센터가 멤버십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야단맞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아이를 어떻게 같이 키울 수 있는지 센터가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별적으로 좋은 교사들을 만나서 좋게 푸는 경우도 있지만 집단적으로 센터가 학교와의 관계를 다르게 고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단 하나의 지역아동센터가 학교와 관계 맺는 일이 쉽지는 않다. 지역 차원에서 연대하여 함께 모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연결고리를 찾을 때 그 견고하고 단단한 문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지금 바로 옆 지역아동센터의 문부터 두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글쓴이: 밝음혜영(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출    처: 인권오름 제 2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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