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 울력으로 삽니더”
밀양구술프로젝트 지음,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아버지에게 ‘이놈의 가시나’라는 말을 한 번도 안 듣고 자랐다고 말하던 분의 얘기를 읽다가, 어떤 말을 듣고 사는가에 따라 우리의 자존감은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머문다. 예를 들어 ‘인건비 절감’이라는 말은 저임금과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노동을 착취하겠다는 자본의 의지라고 읽혀야 마땅하지만, 많은 이에게 참으로 합리적이고 매력적인 말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의 언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온통 신문과 방송에서 ‘국가 경쟁력 강화’니, ‘깨끗하고 안전한 원자력’이니, ‘나라를 먹여 살리는 삼성’이니 하는 말을 떠들고 있는 까닭에, 이 ‘말’들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가 많은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흐른다. 그만큼 언어의 힘이 세다. 아마도 그래서, 그 강한 말의 힘에 대항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밀양에 대한 ‘편파적인 기록’이라는 이 책에 끌렸다.
밀양 할매들의 싸움을 님비 현상쯤으로 격하시키고, 보상금이나 더 따내려고 억지나 부리는 이들로 여겨 비난하며,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불순한 외부세력으로 몰아세우기만 한 언론들은 그들에게 한 번도 왜 이렇게 싸우는지, 이 싸움이 도대체 뭔지 묻지 않았다.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하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누구도 듣지 않았던 대답을 정성껏 듣고 기록한 <밀양을 살다>.

다양한 필자들이 모인 밀양구술프로젝트가 만난 열일곱 명 가운데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 이가 대부분이지만, 10년 못 되게 한전과 전쟁을 치러오며 이들의 몸이 저절로 알아챈 것은 공부 좀 했노라는 지식인들에 꿀리지 않는다. 송전탑 싸움은 ‘힘 있는 사람들과 힘 없는 사람들의 전쟁’이며, 백성을 보살펴야 할 나라님이 우리를 죽으라고 내모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밀양의 이 싸움은 밀양만의 일이 아니라, ‘전국의 뜻있는 시민들과 같이 하는 싸움’이 되고 말리라는 것, 탈핵과 연대라는, 국가의 폭력이라는 평생 써보지도 않았을 말을 몸으로 배운 이들. 말의 힘이 센 것처럼 몸으로 깨달은 감각들도 쉬 잊히지는 않는다.

인터넷과 책 안에 갇혀 흘러넘치는 지식이 아니라, 산을 오르고, 경찰 벽에 부딪히며 탈핵, 연대, 생명의 가치들을 몸으로 터득한 그들은 ‘세상은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일함, 또는 그런 힘)으로 사는’ 거라고 한다. 그저 이 산과 이 땅이 아주 고맙고, 지금, 여기 농성 움막에 함께 있는 이들이 무척 소중하다고 한다.

‘여성’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할매들의 이야기

시부모만 생각하고 시댁 귀신이 돼야 한다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듣고 자라, 정말 그렇게 살아온 이, 청와대 드나드는 이들만 신사인 줄 알다가 땅 부치고 사는 농부가 진짜 신사였음을 깨달았으며,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고 고마워하던 이, 당신 살아온 삶은 기막혀도 그저 자식들이 쉬어갈 집이나마 남겼다고 뿌듯해 하던 이들. 그들이 ‘내가 죽으면 이 싸움이 끝날까’ 하는 마음으로, 무서울 것 없다는 듯이 살며 싸우고 있는 땅, 밀양.

인터뷰에 응한 열 몇 명의 여성들 앞에 놓였던 엇비슷한 환경들이 내 앞에 떨어졌다면, 아마 꾸역꾸역 살기는 했으되, 늘 괴롭고 힘들었을 것만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여성’의 삶에 울컥거리고, 그걸 버티고 살아온 그들이 존경스럽다가도 너무 고분고분 착하게 살아온 그 사람들의 삶이, 반항도 없이 감내하며 죽자고 일만 해온 그 인생들이 무척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대부분 그렇듯, 밀양의 그 어른들도 그랬다. 그렇게 사는 줄 알고 군말 않고 살아남은 그분들을 ‘생존자’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식민지배와 전쟁, 그리고 고단한 가난의 시기를 버텨온 착해빠진 여성들이, 타령하듯 읊어대는 그 살아온 얘기는 하는 이도 울고, 듣는 이도 우는 구슬픈 얘기다.

참,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이 나라에서 힘없는 자, ‘소수자/약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일은 그래서 눈물겹다. 그런 삶의 끝자락에 송전탑 싸움이 들어앉았다. 그들은 하나둘 세워지는 송전탑 앞에서 경찰과 용역들에게 모욕당하며 나날이 무력감을 느낀다. 송전탑 때문에 악으로 버티며 붙들고 늘어진 한 줄기 희망이 다 사라질 처지에 처한 것이다.
송전탑 52기 중 하나라도 안 서면 선은 못 걸 테니, 마지막 한 개라도 꼭 막고 싶다고, 이 싸움도 언젠가는 끝나지 않겠느냐는 이들. 고향의 품, 자연의 품에서 느릿느릿 살고 싶던 이들은 이 전쟁통을 겪으며 이웃과 척지고 사는 게 가장 마음이 아픈 것 같았다. 그 마음 아픔은 한전의 보상을 받은 이들에 대한 분노와 미움으로 표현되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할 도리를 지키고 같이 살던 마을인데, 나라와 한전이 마을의 정을 깨고 이간질하여, 이제는 더 그러지 못하리라는 안타까움이 더 크게 보였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이들에게, 심지어 자신들을 모욕하는 용역 청년들에게도 먹을 것을 해 먹이던 이들에게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온 얘기가 쌓이고 쌓여 비슷한 언덕을 쌓고 그 언덕에 기대어 서로를 보듬으며 사는 그들의 단단한 모습을 보았으니, 밀양구술프로젝트 참가자들도 ‘우리는 이미 스스로 희망인 사람들을 만났다’고 확신했을 테다.

누구나 살면서 부끄러운 때가 있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때, 아니 너무 고단하고 상처가 크기에 심지어 기억해내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의 그 어리숙하고 바보스러운 일들마저, 내 삶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 어눌한 부분들 덕분에 나 아닌 다른 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키워가는지도 모르겠다. 또 어지간한 어려움은 버텨낼 수 있는 배짱도 생기는 것 같다.
나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그랬다. 진짜 관심은 세상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기 전까지 그냥 상처만 받았다고 여기고 애써 세상을 바라보는 길을 피해 다녔다. 물론 끝까지 세상일을 모른 체하고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가 용산참사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 사람이 들고 나도 저 세상은 그냥 거기 있구나,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다른 이들에게 ‘안녕하신가?’ 하고 묻고 싶어지고, 그들이 옳게 존중받는지, 안전하고 평화로운지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한동안 외면했던 거리만큼 더 절실하게 세상의 얘기를 듣기 위해 애를 쓰는데도 밀양 송전탑 얘기는 한참 뒤에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2012년, 옷가지를 벗어 던지고 경찰과 싸우는 할매들의 영상을 보면서, ‘아…’ 하고 한숨을 토하던 기억. 그 후로는 도저히 할매들이 나온다는 영상은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번의 대한문 문화제, 올겨울 희망버스에 함께 참여했다. 그저 하룻밤 묵고 매일 싸우는 할매들 곁을 잠시 지키다 가는 것인데도 대접이 융숭했다. 이런 환대를 받아도 되는 걸까 하는 송구스러움을 잊지 못하겠다.

흔히 우리는 나 하나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고마운 노동이 깃들어 있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살기 마련이다. 몸으로 많은 것을 느리게 깨달아온 이 농부들은 ‘사람이 아무리 부자라도 남의 도움 없이는 못’ 산다는 걸 알고 있다. 나, 너, 우리 모두 같이 살자면 같이 도우며 살아가는 거라고, 당신들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사람이 다 울력으로 삽니더, 울력으로예.’

지난 22일, 세월호 참사로 전국에 슬퍼할 권리만 남은 것 같던 와중에, 정부는 주민들의 집단 반발이 있다면 송전탑 건설 관련 공청회를 안 해도 된다는 취지의 전기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심의, 의결했다. 더는 밀양을 외롭게 두지 말자. 전기도 많이 필요 없는 밀양 말고, 차라리 서울 한가운데 송전탑을 세우자.

 

*글쓴이: 림보(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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