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여덟 살 구역] 아이들은 믿지 않는다.

[시작하기에 앞서]

“책 읽어주는 언니”는 여덟살 이상 아동과의 인문학 강좌가 가능한지를 모색하는 일종의 실험으로써 시작되었다. 작년에 첫 발을 뗀 이래로 ‘책언니’의 지향에 공감하는 지역 모임, 도서관,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8세~10세 사이의 다양한 아이들을 꾸준히 만나고 있다. 20대 초반의 두 언니들이 선생보다는 친구 같은 관계로 아이들을 만나고, 그림책을 매개로 한 인문학 강좌를 통해 아이들이 원래부터 가진 질문과 상상의 가능성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여기까지가 애초의 기획 취지였는데, 실상은 그냥 애들 만나서 지지고 볶고, 싸우고, 많이 놀고, 세상에 대한 얘기도 아주 조금 나누고,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다.

 

매주 화요일이면 빨간색 광역버스를 타고 강화도에 간다. 오늘자 수업 매뉴얼을 몇 번 읽다보면 멀미를 동반한 어지럼이 비구름처럼 삽시간에 몰려온다. 그럼 잽싸게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눈을 떠보면 종점이다. 버스에서 내리면 온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늘어진다. 아이고야. 벌써부터 수업 할 엄두가 안 난다. 한 팀도 아니고, 무려 두 팀이다. 2시에 2학년 애들을 만나 수업을 하나 한 뒤 연달아 1학년 애들을 만난다. 애들이랑 온종일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며 노는 게 체력소모가 장난이 아니다 보니 두 수업을 모두 끝내고 나면 말할 기운도 없을 만큼 진이 쪽 빠진다. 따스한 햇볕. 서울 보다 훨씬 산뜻한 강화도 바람. 날도 좋은데 수업이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산으로 바다로 확 튀어버릴까 싶은 맘을 훠이훠이 물리치며 한 번 더 동네 버스를 탄다. 수업 하는 공간에 도착한다. 아직 아무도 없다. 이대로 아무도 안 왔으면 좋겠다. 음. 농담이다.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고, 오늘 읽어줄 그림책을 꺼내놓기가 무섭게 멀리서 2학년 애들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흐어어억~ 애들이 몰려온다~ 아무도 모르게 내 맘 속에만 울려 퍼지는 작은 비명과 함께 오늘도 책언니는 시작된다.

흔한 책언니의 일상

지금의 2학년 애들을 만난 지는 일 년이 조금 넘었다. 작년 봄, 쩡열이랑 내가 책언니를 시작하고 한참 어리버리 헤매고 있을 무렵 처음 만나 유일하게 지금까지 지속 되고 있는 수업이다. 이 친구들은 우리랑 제일 오랫동안 지지고 볶고 했던 말하자면 원로 멤버(?)들이다. 여자애 셋, 남자애 셋으로 여섯 명으로 이뤄져있는 모둠인데, 그 중 여자애 두 명은 초기 멤버는 아니고 나중에 새로 들어왔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두 명의 책언니들에게 관심도 많고, 호기심도 많다. 반면에 나머지 넷은 오래 만났다고 초반의 약발이 떨어진 건지 요즘 부쩍 우리한테 무관심 해졌다. 공간 도착하면 구 멤버 네 명은 흘깃 우리를 쳐다본 뒤, 유유히 자기들끼리 어디론 가로 사라진다. 그나마 신 멤버 둘은 공간에 도착하자마자 달려와서 개구리처럼 덥석 매달려 안기거나, 옆에 앉아 조잘 조잘 말을 건다. 가끔은 우리 손목을 붙잡고 구석으로 끌고 가서 ‘이건 비밀인데….’ 로 시작하는 일급비밀을 일러줄 때도 있다. 구 멤버 중에서도 홍일점인 유림이 역시 흥미만 닿으면 얘기 하는 걸 좋아해서 다른 여자 애들처럼 자주 곁에 있어주는 편인데, 남자애 셋은 사정이 좀 다르다. 이 셋은 배 깔고 누워서 만화책을 읽거나 내 가방을 몰래 뒤져서 스마트폰을 들고튀거나 둘 중 하나다. 도통 우리 옆에 올 생각을 안 한다. 기본적으로 책언니는 같이 그림책을 읽고, 얘기하는 시간이 많은 활동이라 상대적으로 남자애들보다는 여자애들이 참여도가 더 높다. 물론 성별만으로 이렇게 나눌 수는 없고, 애들마다 성향이 다르긴 하지만 어디로 수업 가든 남자애들은 대체로 5분 앉아 있다가 없어지고, 다시 돌아와 5분 앉아 있다가 옆 사람 때리고 도망가기를 반복한다. (분명 혼자 놀기 심심하니까, 같이 놀 친구 찾으러 돌아온 거다.) 처음엔 같이 하자고 붙잡으려도 가봤는데, 그럼 더 즐거워하면서 도망 다닌다는 걸 알고 난 후로는 안 쫓아다니게 됐다.

함께 책읽기(책언니)를  시작하다

어른 같지 않은 어른, 친구 같은 어른

처음 만나는 아이들은 백이면 백 우리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날고 기는 2학년 애들도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첫 수업 때는 제법 얌전했었다. 1학년 수업은 지금까지 준비한 걸로는 3차(1차는 6회, 2차는 8회, 3차는 10회)까지 마련되어 있는데, 다들 1차 때까지만 해도 여섯 번 내내 앉아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꾸역꾸역 자리를 지켰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애들이 우리를 선생님으로 여기고 어렵게 보는 것 같을 때마다 우리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선생님 말고, 너희랑 친구가 되고 싶어.” 책언니에서는 서로를 선생님 취급, 학생 취급하지 않는다. 반말은 기본이다. 우리가 생각한 친구 같은 관계는 여덟 살 사람들을 말 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존중하고, 그 무엇도 우리 편의대로 강제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가 애들을 대하는 태도는 꽤나 서툴고, 조심스러웠다. 애들이 지루해하면서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고 할 때면 눈에 띄게 당황하고, 미안해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혼나진 않겠구나 싶었는지 애들이 슬슬 우리 눈치 안 보고 기를 펴기 시작했다. 2차 때부터는 책 읽기 끝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3차 때부터는 그림책 읽는 단 5분마저 거부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반도 못 하고 돌아오는 멘붕의 역사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어느 날 하루는 그 날 가져간 책과 관련해서 “어른들 말을 꼭 잘 들어야 해?” 하고 물어봤다. 그러자 애들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당연하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매주 애들에게 뜨거운 무시를 받고, 영혼이 탈탈 털려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우리로써는 기가 차는 대답이었다. “헐. 우리도 어른인데, 너네 우리 말은 안 듣잖아.” 그랬더니 애들이 코웃음 치며 대꾸하길, “엠건이랑 쩡열은 그냥 어른이 아니잖아.” 애들은 책언니라는 만만한 어른들을 친구 같은 어른,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이 기뻤다. 그래도 친구 같다고 느낀다니 신이 났다. 맨날 수업은 잘 안 되도 애들이 우리 좋아해 주잖아. 다음에 다시 오라고 말해주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그렇게 속 편하게 생각했었다. 애들이 해준 말에 담긴 또 다른 뜻에 대해 고민하게 된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마

작년 겨울 무렵이었을까. 한참 남자애들끼리 싸우는 일이 잦을 때였다. 남자 셋 중에 한 명은 기훈이라는 앤데 살짝 통통하다. 그 때쯤 다른 남자애 두 명이 간식 먹는 것만 봐도 돼지가 어쩌고 하며 그 애를 엄청 놀려댔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얄밉게 놀려대던 남자애 두 명은 밖으로 나가버리고, 기훈이는 씩씩 대며 화를 추스르고 있었다. 유림와 책언니 두 사람이 기훈이 화를 풀어주려고 옆을 지키고 있던 참이었다. 너희가 자꾸 싸우는 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싸울 때는 어때? 어른들이 끼어들면 싫지? 무조건 화해하라고 그러면 좀 그렇잖아. 쩡열이 두서없이 말을 하고 있던 때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유림이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지금 네가 끼고 있잖아.” 그 순간 쩡열도, 옆에서 흩어진 책을 정리하고 있던 나도 얼어붙었다. 유림이는 한 번 더 확인사살을 했다. “우리 일이야. 간섭하지 마.”

순간 오만가지 기분이 다 들었다. 억울하고, 화나고, 야속하고, 기운 빠지고…. 개인적으로 책언니 하면서 그렇게 속이 상했던 순간이 없었다. 그동안 우리가 만난 시간은 다 뭐였나. 친해졌다고, 마음 열어준 것 같다고, 그리 느꼈던 건 다 착각이었을까. 그동안 계속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 땐 속상한 맘에 유림이가 조금 밉기도 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 와서 이 일을 돌이켜 보면 차라리 그렇게 말해줘서 다행이었지 싶다. 그 날 유림이가 확실하게 선을 그은 덕에 우리가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돌아볼 수 있었다.

아무리 어른 같지 않다고 해도 여전히 어른이었다. 친구 같은 어른이라 부르는 순간에도 애들은 여전히 우리를 경계했다. 책언니는 아이들이 정한 ‘자기들만의 영역’ 속에 들어갈 수 없는 바깥사람들이었다. 유림이는 자존심이 세고 눈치가 빨랐다. 남자애들한테도 지는 법이 없었다. 또래들 사이에서도 그런 면에서 인정받았다. 가끔 다른 애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민감한 일들을 말해줄라치면 그거 말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켰던 것도 유림이었다. 책언니 하면서 만난 여덟 살 사람들은 해도 되는 이야기와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학교나 어른들과 관련된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눈을 피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1학년 때 번번이 수업 진행이 잘 안 됐던 이유는 뻔했다. 똑같은 어른 앞에서 다른 어른들 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했을 거다. 너희를 못 믿겠다며 뻔히 보내는 그 신호들을 눈치 채지 못 했다. 매번의 수업이 잘 되고, 망하고 하는 결과들에 일희일비하느라 정작 애들이 어떤지를 못 봤다. 침묵. 불신. 혼날만한 건 말하지 않기. 그건 주변 어른들과 8년을 부대끼고 살면서 이 애들이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어의 수단이었다. 우리 앞에서도 똑같이 자기들을 지키고 있었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이 글 쓰다 보니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책언니의 예정된 회차가 모두 끝나면 엄마들과 간담회를 한다. 다 같이 밥 먹으면서 앞으로의 진행 여부 등등을 논의하는 자리다. 당연히 애들도 온다. 그 간담회 때마다 유림이는 밥 먹다 말고 번번이 배가 아프다고, 체했다고, 엄마더러 빨리 집에 가자고 보챘다. 그땐 그냥 유림이 엄마의 설명대로 애가 예민한 체질이라 잘 체하는 줄로만 알았다. 우리 때문에 아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 글 쓰면서 오늘 처음 했다. 책언니 수업하면서 보고 들었던 자기들 나쁜 얘기 할까 봐 신경이 쓰였겠지. 얼마나 불편하고 싫었을까. 속상하고, 미안하다.

아이들은 믿지 않는다

여기까지의 일들이 이 연재의 제목을 ‘여덟 살 구역’으로 정하게 된 이유다. 여덟 살 구역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 번째, 우리가 그 입구 앞에서 거절당한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아이들은 믿지 않는다. 자기들 편이 아닌 다른 구역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유림이는 올해 들어서야 조금씩 자기 얘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여덟 살 구역 안으로 일보 전진, 했을지도 모르고 아닐 지도 모르는 뒷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마저 풀어보도록 하자.

● 본 글에 등장하는 8살(9살)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쓰고 있어요~

 

* 글쓴이: 엠건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
* 출    처: 인권오름 제 398 호2014년 07월 03일 10: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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