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여덟살 구역] 모순적인 몸

방 안 vs 방 밖

벚꽃 날리는 봄을 지나 수업공간을 옮기게 되었다. 지역아동센터의 방 한 칸에서 널찍한 강당으로 전격 이동! 네 친구(지환, 강준, 예진, 장우)들은 새로운 공간이 맘에 드는 눈치였다. 일단 날다람쥐 강준이가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꺅꺅 소리 지르며 날뛰어도 아무 탈 없을 만큼 공간이 널찍했다. 수업 공간 옮긴 첫날, 남자애들은 에너자이저 체력을 뽐내며 줄기차게 뛰어다녔다. 책 읽다말고 용수철처럼 앉은 자리에서 튕겨나가는 사랑스러운 망아지들을 잡으러 책언니들도 덩달아 달렸던 건 말할 것도 없다. 더 좋았던 건 센터와는 떨어져있는 별도의 공간이었기에 주변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아무리 센터에서 제일 큰 방을 차지하고, 문을 닫고 수업을 진행한다고 해도 학교 끝나고 온 다른 애들이 벌컥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려 하거나 창문을 통해 쟤들은 뭘 하나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지켜보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센터 건물 안에 함께 있는 다른 선생님들의 존재도 네 명의 신경을 건드리는 듯 했다. 방 안에서 본인들이 날뛰는 동안 친구들은 현관문 바로 앞 마루 바닥에서 엄한 표정의 선생님과 함께 정적 속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화장실 가러 잠깐 방문만 열어도 보이는 이 대조적인 풍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센터는 그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 치고는 전반적으로 조용했다. 공간 전반을 지배하는 정제된 분위기를 애들이라고 모를까. 자기들이 아무리 책언니 수업을 깽판 놓고, 멋대로 굴어도 알게 모르게 다들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느낌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자유분방하게 있는 것 같아도 실상은 그럴 수가 없다. 이 방 하나만 벗어나도 상황은 달라지는 걸 다들 은연중에 알고 있을 테니까. 온몸을 보이지 않는 밧줄로 칭칭 매어놓고 날뛰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언니와 어린이들이 바닥에서 책을 보고 있다.

새로운 책언니 수업공간, 강당에서의 한때

새로운 공간으로 떠나오게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물론 1차적으로는 우리 쪽에서 요청을 드렸다. 그 편이 애들도 우리도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센터 쪽에서도 같은 공간에 책언니 수업을 두는 일이 좀 난감할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센터의 다른 애들이 우리는 왜 저거(책언니) 안 하냐고 자꾸 물어봤던 모양이다. 사실상 우리가 했던 건 센터 바깥에서 줄넘기나 해대며 방종하게 노는 일이었으니, ‘우리는 왜 책언니 안 하냐’ 라는 말속에 숨겨진 다른 뜻은 ‘우리는 왜 쟤들처럼 맘대로 못 노냐’ 쪽에 가깝지 않았을까. 센터의 다른 애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네 명 친구들과의 관계 이상의 개입을 그 안에서 해볼 엄두는 차마 나지 않았다. 아무튼 서로의 불편함이 맞물려 우리는 그렇게 별도의 공간으로 자발적으로 격리조치(?) 되었다.

콜라와 규칙

이 그룹에는 서로 다른 지역아동센터의 애들이 섞여있었다. 지환이와 강준이가 A센터, 예진이와 장우가 B센터로 딱 2:2로 나뉘었고, 공간을 옮기기 전까지는 A센터에서 수업을 했다. 한 번은 예진이가 콜라를 한 캔 가져왔는데 강준이가 못마땅해 하면서 먹지 말라고 했다. 따로 군것질거리를 가져오지 않는 게 여기 규칙이니 먹으면 안 된다고, 가방에 얼른 넣으라고 성화였다. 예진이는 뭐라 대꾸는 잘 못하면서도 먹고 싶은 맘에 콜라를 놓지 않았고, 책언니들도 그 규칙 꼭 지켜야하냐고 반문하는 통에 강준이가 골이 났다. ‘규칙인데, 규칙인데’ 하면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니, 예진이 혼자만 콜라를 먹는 게 샘이 나서 그러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강준이가 의외로 규칙에 매여 사는구나 싶었다. 사실 강준이만 그럴 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비슷하게 규칙을 신봉했다. 예진이를 빼고 남자애들은 자기들끼리 장난으로 몸싸움을 벌일 때가 많았다. 처음에만 장난이지, 실수로 누군가 아프게 맞고 나면 특히 강준이 같은 다혈질은 수시로 화가 뻗친다. 그런 싸움이 잦아지면서 한번은 자기들도 지쳤는지 우리에게 이 수업 시간 안에서의 규칙을 만들자고 제안해왔다. 그래놓고 색종이에 연필로 삐뚤빼뚤 적은 내용들이 다음과 같았다. 1번 놀리지 않는다. 2번 때리지 않는다. 3번 밖에 나가지 않는다. 무슨 학급회의에서나 나올법한 선량한 안건들이 떡하니 거기 있었다. 1번, 2번까지는 일종의 자기 보호라고 하자. 3번은 대체 뭔데? 그 자리에서는 그냥 웃어 넘겼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입맛이 좀 썼다. 딱히 정해진 규칙이 없는 책언니 시간이 특히 이 나이 때 애들에게는 난감하고,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책언니가 뭘 하는 시간인지에 대한 정체성(수업인가, 놀이시간인가, 자유시간인가)이 확실히 자리 잡지 않은 상태였으니, 더욱이 이 무질서함에서 불만을 느꼈을 수도 있다. 때로는 잘 짜여진 체계가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이미 학교를 1년이고, 2년이고 다녔던 애들이다. 더욱이 이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자잘한 규칙이 일상적인 센터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몸에 익은 관성 때문에라도 규칙도 뭣도 없는 책언니들의 태도가 더 불편했을 수도 있다. ‘선생님보다는 친구’로 흔히 표현하는 우리 방식을 처음 만난 애들은 낯설어한다. 쉽게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반대로 거북해하고 불편해하는 친구들도 있다. 네 명은 그동안 선생님 소리를 끈질기게 고집했던 걸 보면 기본적으로 후자였던 것 같다. 그런 것치고는 그동안 만난 그 어떤 애들보다도 우리를 막 대하긴 했지만(머리로는 규칙 신봉자들인데, 몸은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 쩝.

세상 만만한 곳 아니야

처음 애들이 쓴 규칙 종이를 봤을 때는 무심코 ‘애들이 어른들 목소리를 대신 내네’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전에도 체벌은 필요하다고, 적당한 통제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청소년들을 만날 일은 많았다. 내 입장에서 유리한 것이 아니라 상식으로 통용되는 지배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나를 통제하는 사람의 편에서 그 자신마저 바라보게 되는 것. 흔한 일이었다. 한때는 앵무새처럼 선생들의 말을 따라 하는 애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누구를 그렇게 쉽게 바보 취급했던 내가 더 바보 같다. 세상 만만한 곳 아니야. 어른들이 훈수 둘 때 하는 이 뻔한 말을 나는 우리가 얼마나 이 세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지, 철저하게 얽매여 사는지 실감할 때 자주 떠올리곤 한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권력의 망에서 개인이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정말로 있을까.

아이들의 몸은 모순적이다. 어른들에 대한 반발과 어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공존한다. 애들에게 쩔쩔매는 만만한 선생보다는 차라리 애들을 꼼짝 못 하게 휘어잡는 무서운 선생님에게 더 매력을 느끼는 것처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지환이와 강준이는 책언니 수업이 끝나자마자 센터 정규프로그램인 독서토론에 들어가야 했다. ‘이게 있으니, 책언니 때라도 그렇게 기를 쓰고 놀려고 하지’ 하고 혀를 끌끌 차면서 창밖으로 애들 모습을 관찰했다. 두 사람은 우리랑 수업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정자세로 앉아 얌전히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리 놀랍진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저기서 책언니할 때처럼 굴었다가는 장난 아니게 혼날 테니까. 어떤 공간인가, 누구를 만나는가, 어떤 힘 관계가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한 명의 아이라도 시시때때로 몸의 반응은 달라진다. ‘순종적인 아이’, ‘반항적인 아이’ 같은 양 극단의 평가는 고정될 수 없다. 그것들은 하나의 몸 안에 공존한다. 가끔씩 애들이 밍숭맹숭한 책언니들을 이상하게 여기면서 자기들이 나서서 우리에게 어른으로서의 권위나 힘을 요구할 때가 있다. 예진이는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만해도 종종 우리더러 자기보고 돼지(예진이가 몸집이 좀 있다.)라고 놀리는 강준이나 지환이를 가리켜 ‘쟤 좀 혼내주세요’ 하고는 했었다. 나대신 혼쭐 좀 내줘. 네 힘(권위)을 빌려줘. 예진이 안에 있는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예진이는 어른들에게 착한 아이로 보이고 싶어하는 아이였고, 그런 만큼 우리가 하자는 대로 그럭저럭 따라와주는 편이었다. 예진이를 만난 지 반년이 지나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진 지금은 그 애가 가끔씩 다른 눈빛을 보인다. 반들반들 빛나는 눈. 가끔 먹을 거 사달라고 조를 때, 원하는 걸 갖고 싶을 때 보이는 예진이 특유의 눈빛이 있다. 그동안 예진이와 둘이서 급식실에서 물 떠오는 일을 사이좋게 했었다. 지지난 주였나. 그날은 대뜸 강당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보며 목이 마르니 물을 떠오라고 했다. 거의 시키려드는 폼새였다. 말 잘 듣는 아이도 약한 어른 앞에서는 그 권력관계를 뒤집고 싶어 한다. 이겨라. 이겨라. 더 위에 서라. 쟤보다 더 센 사람이 되어라. 안 그럼 네가 먹혀. 거미줄은 언제나 속삭이고 있다. 어린 애들이라고 이 거미줄 위에서 홀로 순수하고 다정하기만 할리는 없지 않나. 이 작은 몸들 안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담겨있다. 세상은, 아이들은 정말이지 만만치 않다.

 

*글쓴이: 엠건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
*출    처: 인권오름 제 410 호 2014년 10월 08일 23: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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