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풍경
장애청소년과 만나 인권교육을 한다는 것

‘아… 잘해낼 수 있을까?’

지적장애청소년들 교육을 수락하고 나서 내내 떠나지 않는 게 바로 자신 없음이었습니다. 장애인권교육을 여러 차례 해봤지만, 지적장애를 가진 청소년을 직접 만나 인권교육을 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지요. 내가 하는 말이 그이들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 그이들의 몸짓, 표정, 말 등 온몸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정말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적장애청소년들을 직접 만나본 건 지난해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진행하는 연극놀이수업에 따라가 본 게 전부였어요. 당시 연극놀이 수업은 지적장애청소년들이 표현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고등학교까지 다닐 정도면 비교적 지적 제한 정도가 크지 않은 경우였어요. 그때 그이들과 재미나게 연극놀이를 하면서 처음 가졌던 만남에 대한 부담은 상당히 떨쳐버릴 수 있었지요.

안개 속을 거니는 기분으로 춘천을 가다

그런데 7월말 춘천장애인복지관에서 의뢰한 지적장애청소년 인권교육은 상황이 매우 달랐어요. 지적 제한 정도가 제각각이고 정도가 심한 청소년들도 여럿 섞여 있는 상황인데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포함돼 있었거든요. 그이들과 ‘인권’을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어요. 그래서 특별히 장애인부모연대 윤경 님과 함께 교육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안개 속을 거니는 기분으로 춘천을 찾아갔습니다.

단 한 번의 교육이라 ‘자기결정’의 중요성, 그리고 ‘내 몸의 반응을 신뢰하자’는 메시지를 나누는 것을 주요 목표를 잡았습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한 청소년이 부모에 의해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장면, 그리고 지적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한 지적장애 청소년이 반장선거 후보에 나갈 기회조차 빼앗긴 장면 등을 보여주면서 친구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았지요. 또 그 친구들을 대신해서 부모나 교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직접 해보는 기회도 가졌어요. 수업이 무르익어 가면서 몇몇 친구들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경험, 교사에게 무시당했던 경험을 조금씩 꺼내놓기 시작했어요. 특히 힘센 친구에게 속칭 ‘빵셔틀’이라고 불리는 괴롭힘을 당했던 속상했던 경험을 꺼내자, 다수 친구들이 공감을 표해 주었어요.

아주 아주 천천히, 반복적으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당해서는 안 된다고, 상처를 입은 사람의 몸에는 반응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 반응을 알아채고 당당하게 내 몸이 말해주는 진실을 있는 대로 표현하자는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우리가 준비해 간 이야기가 얼마나 참여한 친구들의 마음에 가 닿았는지, 그이들의 삶에서 얼마나 오래 기억될지는 알 수 없었어요. 그래도 마음 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준 경험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아쉽지만 교육의 문을 닫았습니다.

은평기쁨의집을 다시 찾다

다시 지적장애청소년을 만난 건 8월초 서울에서였어요. 은평구에 위치한 ‘은평기쁨의집’은 지적장애청소녀들만 생활하는 시설이었는데요, 상반기에 시설 종사자 교육을 2번 했더랬어요. 이번에 거주민 교육이 진행된 것이었는데요, 지적 제한 정도가 비교적 가벼운 편이어서 부담은 적었지만 초등 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섞여 있어 또 다른 어려움이 있는 교육이었어요.

첫날은 ‘소중한 나’를 주제로 자기가 소중한 이유, 소중한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 등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리고 우리 몸을 그려서 신체의 각 부위랑 슬플 때와 기쁠 때를 연결시켜 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인권의 실루엣>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교나 거리, 시설 등에서 친구들이 겪는 문제나 행복해하는 일상의 순간들이 자연스레 포착되었지요.

이튿날에는 ‘차별에 대항하기’를 주제로 일상에서 경험하는 구체적 차별 사례를 꼽아보고, 직접 차별 장면에 대항하는 연습을 해보았습니다. 먼저 차별 사례 찾기에서는 학교나 교회에서 ‘장애아’라고 놀렸던 친구 이야기, 시설 주변에서 폭력적인 시선으로 접근했던 아저씨 이야기 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지요. 이어서 지적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반장선거 후보에 나가지도 못한 장면, 친구에게 괴롭힘당하는 장면, 시설에서 종교를 강요당하는 장면 등을 차례로 무대에 올려 직접 대항하는 연습을 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본다는 기분으로 흥미로만 접근하던 친구들이 어느새 차곡차곡 조리 있게 문제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인권은 힘이 세다?

지적장애청소년들과 만나면서 “인권은 힘이 세다!”라고 함께 여러 번 외쳐 보았는데요. 인권이 힘이 센 이유는 다름 아니라 주인인 우리가 인권을 잘 알고 주장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지적장애청소년들이 자기가 소중한 사람이고 권리의 주인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주장할 수 있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어요. 특히 지적장애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왜 이 사람들은 이리도 착할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지시자’, ‘명령자’의 말을 잘 듣고 따라야 예쁨까지는 아니라도 수용이라도 된다는 메시지를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받은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들면서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주위에 마음에 공감해주고 함께 나서주는 사람이 많아야 자기가 소중하다는 걸 몸으로 알 수 있을 텐데, 과연 주위에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문도 들었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머리와 논리 중심으로 전하는 인권 이야기가 통하기 힘든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진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들과는 어떻게 인권을 나눠야 할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다른 사람이 함부로 대하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죠?”
“네.”
“다른 사람이 무시하면 기분이 좋아요?”
“네.”

한 청소년이 이렇게 대답하는 순간을 경험하면서, 아… 이이들과는 정말 ‘기존의 언어’로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폭력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너 번 지적장애청소년을 만나본 것만으로 제게는 아무런 할 말도, 해답도 없습니다. 다만 엄청난 질문만 쌓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질문을 가질 수 있는 순간을 경험한 것만으로 이제 제대로 출발선에 선 것이겠지요?

– 경내(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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