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 VS 교권 다시 보기’
교사인권연수-학생인권 탐구생활

인권 연수를 신청한 후, 내 속에 인권이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내 마음의 GPS를 돌려보았다. 이전에 이것저것 조금씩 기웃거려 보지 않은 것은 아닌데, 또 그것들이 인권과 연결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인권은 내 안에서 안착하지 못하고 두둥실 방황하고만 있었다. 사실 내가 인권의 언어로 생각해보거나 체화된 인권의 눈으로 무엇을 바라 본적이 있기는 했었던가. 지난 3일간의 연수를 돌아보면 인권이라는 경계 없는 언어의 위력을 체감하기도 했고, 녹음된 내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나조차도 낯선 내 안의 저항을 마주하기도 했고, 머리가 쭈뼛해지는 신선한 자극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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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수에 참여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연수의 남다름은 그날그날의 연수를 여는 방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등 뒤의 소수자” 게임이 인상적이었는데, 각자 등 뒤에 학교에 있을 법한 소수자들의 유형을 붙이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들음직한 말들을 들으면서, 자기가 어떤 소수자인지를 맞히는 게임이다. 유쾌하면서도 학교라는 공간의 배제성과 차별적인 언어들을 경험하는 활동이었는데, 버전을 달리하여 학교에서 다양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연수의 프로그램은 첫째 날 □ 소수성을 톺아보기 □ 체벌금지 조치와 학생 인권 조례가 현장에 일으킨 영향 생각해 보기 □ 복장 / 두발 규제에 대한 토론 □ 강제야자 / 보충수업에 대한 반대 근거 만들기였다. 둘째 날에는 □ 청소년의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는 논리 반박하기 □ 학교 운영에 참여하기 위한 방안을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생각해 보기 □ 반성문을 포함한 서약이나 선서가 사상 / 양심의 자유를 어떻게 제약해 왔는지 돌아보면서 온전한 사상 / 양심의 자유를 어떻게 지켜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 등을 하였다. 셋째 날에는 □ 교권과 학생인권이 정말 충돌하는지, 우리가 생각하는 교권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교사와 학생의 인권 신장이 불러올 새로운 질서를 상상해 보기, □ 여러 패널들과 함께 인권 조례 제정이후 엎치락뒤치락 변하고 있는 현실을 되짚어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를 모색해 보는 토론 등을 하였다. 아래는 내가 이 과정에서 여러 활동가들과 선생님, 학생들로부터 한 교사로서의 내가 배운 것들을 두서없이 나열해 본 것이다.

정치적인 공간인 학교는 우리 각자가 본래 무엇이었는지, 자신을 추동하는 생기와 활력을 통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망각하게 한다. 학교라는 공간의 의미와 교사다움 / 학생다움을 규정하는 학교의 권력이 근엄한 손가락질로 우리의 자리를 배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교육적인 조치라는 미명은 때로 이런 질서를 정당화하면서 억압과 배제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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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권력의 질서가 부여한 교사의 자리에 머무르는 것은 또 얼마나 편리한가?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내가 수업하고 있는 반의 복도에서 다른 반 아이가 서성이고 있었다. 몇 번의 눈짓으로 내가 신호를 보냈지만, 복도 벽을 넘나들며 수업하고 있는 아이와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마침 지나가다 이 풍경을 발견한 생활 지도 부장이 단박에 그 아이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었다. 체벌금지 이전에는 체벌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교사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었던 것처럼, 권력의 우산 속에서 피를 안 묻히는(?) 교사들은 그 속에서 자기만의 안식을 즐긴다. 그래서 학교의 권력과 자신을 분리하고 어디에도 흡수되지 않을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랬을 때 학교의 폭력적인 구조를 재생산하지 않고서 다음을 이야기 할 공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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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교사로서 첫 방학을 통과하고 있다. 교사로서의 첫 학기에 나의 관심은 언제나 수업이었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나의 머리속은 ‘내일 수업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로 가득 차 있었고, 매일 매일 수업 준비만으로 쫓기듯 지냈다. 아마도 내가 생각한 수업은 이런 게 아니라는 자책과 ‘오버(over)’를 경계하는 늪 같은 학교의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나름의 발버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가 가진 수업의 상은 수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함께 가야한다는 것, 단 하나라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수업을 고안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전제는 수업의 상 역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수업을 장악하려는 교사의 욕구가 (휴대폰의 사용을 규제하는 등)학생의 수업권을 침해할 수 있다. / 전체가 이해할 수 없는 수업이라면 필요한 학생이 듣고 있으면 최선이다. /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교육 내용을 하고 싶은 교사의 욕구, 입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의 욕구, 다른 교육을 받고 싶은 학생의 욕구 이런 욕구가 타협을 이룬 장면이 수업이라고 생각하고…… 때로는 시끄럽고 수업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풍경이 되는데, 그게 본래 교육의 모습이 아닌가?

이런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억지스러운 욕심이 향하는 곳이 어디였던가? 실력 있는 교사의 그 실력은 어떤 것이었나?’를 생각하면 뜨악해진다. 인권의 질서로 학교가 재편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누구도 모든 책임을 떠맡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 교사든 학생이든 각 개인의 몫으로 자유와 책임을 온전히 돌려주고 각자의 길을 가게 하는 것, 그 속에서 서로의 접점을 모색해 나가는 것.

권력의 우산에서 벗어나 3일 동안 인권 샤워를 하기는 했는데, 개학 후에 친구들과 어떻게 만나서 숨통을 튈 수 있을지 고민이다.
덧) 나는 네 명 이상만 있는 자리에서도 호흡 곤란을 일으키고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편이다. 이런 내가 덜 쭈뼛거릴 수 있었던 건 연수에 참가한 여러 사람들 덕분이었다. 고민하고 움직이는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경험이 많은 힘이 될 것 같다.

 

 

글쓴이 : 남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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