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교육”
- 공부방 친구들과 함께 한 2박 3일 여름 캠프

 

공부방에 다니는 여자 아이들 사이에 큰 싸움이 있었다. 지속적으로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왔던 아이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공부방에 경찰들이 출동했다. 아이들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었고, 부모들 또한 공부방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당신이 공부방 교사라면 어떻게 이 상황에 맞설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고, 누구도 섣불리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공부방은 일차적으로 가해자들에게 ‘공부방 출입 금지령’을 내리지 않을까. 아니, 이렇게까지 사건이 커지기 전에 진작 폭력 성향을 드러내는 청소년들을 퇴출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면, 피해 청소년이 폭행을 당하는 일도, 공부방의 잔잔한 일상이 깨지는 일도 없었을 텐데.

..정말 그럴까?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가해와 피해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왜 싸움을 벌이게 되었는가, 그 이유를 파고들어가기 시작하면 굵은 뿌리와 잔뿌리가 끝도 없이 뽑혀 나온다. 부모나 교사에게 매일같이 욕설과 매질을 당해온 청소년이 홧김에 학교 후배를 팼다면? 같은 반 남자 아이들에게 늘상 뚱보라고 놀림을 받아온 여학생이 전학 온 예쁘장한 여학생을 왕따 시킨다면? 엄중한 징계와 처벌은 잠시 동안의 평안을 선사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밀어 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 일뿐. 사건을 둘러싼 거대한 뿌리, 맥락을 캐내지 않는 이상 밀려나고, 배제된 그 어느 공간에서 폭력은 계속 되풀이된다. 그래도 어쨌든 아이들은 살아갈 것이다.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분열적인 상황을 온몸으로 견뎌내면서.

글의 시작에서 던졌던 사례는 실제 마들 창조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성 청소년들 사이에 지속적인 긴장이 있었고, 결국은 싸움으로 번졌고, 공부방에 경찰이 방문하는 일까지 생겼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여전히 답은 안 나온다. 아이들에게 질려 공부방을 그만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 초, 마들 창조학교 교사 분들을 만났다. 경찰이 찾아왔던 이후, 공부방은 어떤 의미에서 정체기였다. 한 학기 동안 새로 오는 학생들을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은 공부방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교사 분들도 매우 지쳐 보였다. 경찰이 왔던 건 결정적인 한 순간이었을 뿐, 한 해 동안 지속적으로 문제는 있었던 거고, 갈등을 조정해 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해결의 과정에 있다. 그 과정에 ‘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건네셨고,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교사 분들을 맞이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체기지만, 그 아래 꿈틀거리는 움직임은 필사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해 청소년과 피해 청소년의 동시적인 치유, 그리고 공동체의 복원’이라는 목표는 너무 거대하다. 일단은, 스스로의 상처를 바라보고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들’이 인권 교육을 하기 전, 먼저 연극 공간 <해>와 함께 치유 프로그램을 매주 진행하기로 했다. 공부방 청소년/교사/부모를 위한 프로그램이 각각 진행되었다. ‘들’은 여름 캠프 인권교육으로 청소년들을 만나기로 했고, 얼굴도 미리 익히고 캠프를 함께 기획하기 위해 2번에 걸쳐 청소년들과 선행 만남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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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만나기 전, 상당히 긴장했다. 나와 그 친구들이 얼마나 섞일 수 있을까. ‘들’을 뭐라고 소개할까. 우리를 꼰대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등등 여러 고민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공부방에 도착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는 몇몇 친구들과 마주쳤다. 인사를 먼저 건네 오는 친구도 있었고, 장난 섞인 표정으로 키득거리는 친구도 있었다. 휴, 다행이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는데, 마로와 나 개굴에게 본인들이 떠올리는 이미지에 맞춰 별명을 지어준다. 함께 원하면, 말을 놓기로 약속하고 편하게 캠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일상을 떠나 자신들에게 짧게나마 자유의 시간이 온다는 것만으로도 친구들은 기뻐했다. 친해지기, 행복했던 일 이야기하기, 수박 깨먹기, 물놀이, 이미지 게임, 사랑과 연애를 잘하는 방법, 진실게임, 자신의 꿈 말하기 등등 하고 싶은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것을 어떻게 2박 3일 동안 한 보따리로 묶어낼지 슬슬 걱정이 되면서도, 낯선 이들에게 경계를 풀고 다가와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워 나도 덩달아 들떴다. 교사 분들이 말했던 긴장, 갈등은 눈앞에 드러나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가, 싶을 정도로 유쾌한 아이들의 모습에 고개가 갸웃해지는 만남이었다.

2박 3일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친구들이 원했던 프로그램들을 최대한 담아 캠프 일정을 짰다. 각 프로그램들은 ‘들’의 3인이 분담해서 진행하기로 했다. 떠나기 전, 캠프의 목표는 단순한 만큼 절박했다. ‘2박 3일을 싸우지 않고 보낼 수 있다.’ 프로그램을 준비해 가되, 친구들의 참여 상황을 보며 유연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교육 프로그램 ‘안’에서 뭔가를 잔뜩 해결하려는 욕심을 버리자. 오히려 그 ‘밖’에서 친구들과 관계를 쌓고 벽을 허물어 보자. 마음을 다잡고 버스에 올랐다. 4시간의 이동 끝에 캠프 장소에 도착했고, 짐을 풀고 한 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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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시간이 생각보다 늦어져 실외 놀이는 아쉽게 포기했다. 숙소 안에서 가볍게 몸풀기 마음열기 놀이를 진행하고, 캠프 때 서로 불리고 싶은 이름을 이야기 했다. 더불어 캠프 때 얻어가고 싶은 것, 놓고 가고 싶은 것을 적어서 한쪽 벽에 붙여 두었다. 돌아가는 날, 서로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나 함께 확인해 보기로 했다.

우리가 준비했던 프로그램을 아주아주 간단히 소개하면, <내 삶의 인권지도 그리기>는 학교, 가족, 공부방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역할극으로 담아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쬐끔 야한 이야기>는 자신의 삶이 자신의 몸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끼고, 자신의 몸을 긍정한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 <사랑의 달인 되기>는 상대방을 대상화는 ‘작업’과 사랑이 같지 않음을, 사랑도 인권감수성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자칫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자기를 풍요롭게 만들고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무릎팍 도사’ 형식으로 풀어본 시간. <그림자 도둑>은 나 자신이 생각하는 ‘나’, 누군가가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가 서로 어떻게 같으면서도 다른지 비교해보며 내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찾아보는 시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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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이 프로그램들이 우리가 준비했던 본연의 모습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친구들은 집중이 안 되면 숙소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기도 했고,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순간순간 관심 가는 것이 있을 때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왔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었고,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흘러가듯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며, 살짝 씩 친구들이 자신의 속내를 비출 때, 그것을 놓치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려 노력했고, 이야기에 반영하려 애썼다.

우리에게 이번 캠프 교육은 ‘터’이자 ‘그릇’이었다. 캠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다 같이 공을 들여 ‘터’이자 ‘그릇’을 만들어 냈다. ‘들’의 진행자들은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공부방의 교사들은 교사가 아닌 동등한 참여자로서 든든하게 ‘터’를 받쳐 주었다. 세심한 몇몇 청소년들은 꾸준히, 진득하게 프로그램에 빠져들어 교육의 모양새를 만들어주었고, 몇 번이나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청소년들 또한 관심 가는 것에는 눈을 반짝 거리며 자신의 생각을 나눠주었다. 인권의 가치는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을 무조건 쏟아 붓는다고 해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이야기할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인권교육이지, 사람이 마련한 자리에 터줏대감 마냥 들어앉아 버리는 것이 인권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꽤나 많은 교육을 했지만, 이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교육을 주도하지 못하면 불안했고, 거창한 말을 남기지 못하면 실패한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러웠다. 그러나 말 그대로 벅찬 깨달음을 얻었다.

마지막 날 밤, <진실 게임>을 하기로 했다. 친구들 사이에 날선 질문들이 오간다. 긴장과 갈등이 끝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하하 호호, 웃었던 시간이 이들에게 ‘낮’이라면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의 흔적이 드러나는 이 순간은 ‘밤’이다. 부모로 부터 받은, 학교로 부터 받은, 친구들로 받은 수많은 상처들. 살기 위해 그 상처를 자신의 의지로 망각한 친구도, 다시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을 닫은 친구도, 어떻게든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친구도 있었다. 마음이 쓰렸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폭력으로 푼다.’ 친구들은 학교, 가정, 사회를 10여 년 조금 더 살아내며 이러한 삶의 원칙을 터득했다. ‘약해 보여서는 안 된다. 밟히지 않으려면 약한 자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약육강식의 원리든, ‘예쁜 짓을 많이 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인정투쟁의 원리든 친구들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그 힘은 잔인하면서도 슬펐다. 누군가 저 바깥 어딘가에서 우리를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도저히 착하게 살 수 없는 조건에 있는 사람에게 ‘착하게 살기’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착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학교와 사회에 대항해 차라리 나는 ‘못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부방 친구들이 욕을 빼고는 문장조차 구성하지 못하는 것, 욕 없이 자기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이들의 삶의 조건이 낳은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나는 욕이라도 하면서 자기 안에 쌓이는 부정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 다행스럽다. 끊임없이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 이렇게 살게 된 건 다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할까 겁이 난다.

이번 캠프가 어떤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그건 분명하다. 여전히 친구들의 삶의 조건은 거의 그대로이고,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이런 고민 자체가 너무 오지랖 넓은 짓일까. 캠프는 끝났고, 여기까지가 우리의 인연일 수도 있다. 그치만, 내 자신이 친구들과 더 관계를 맺고 싶었다. 나도 친구들에게 더 많이 배우고 싶고, 내가 가진 깜냥 중에 그이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인권의 문제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능력 없는 자신을 반성하며 명품 인간이 되려고 시도하는 순간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짓눌려 분열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외부’에서 들여다보고, 그것에 담담하고 치열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아니, 기르고 싶다. 나 또한 ‘인권 왕국’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나 또한 나의 모순과 부딪히며, 솔직하게 관계를 맺어나가고 싶다. 이렇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충분히 우리는 매력적인 존재라는 걸, 내가 받은 상처가 나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지금과는 다른 관계 맺음을 시도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걸 함께 느끼고 싶다. 그 속에서 친구들은 자기가 한 행동의 무게를 깨닫고,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누구의 시킴이 아닌, 스스로 원함에 의해서.

쓰다 보니 글이 거창하게 써졌다. 내가 뭔가 공부방을 위해 큰일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런 마음은 아니고, 일단은 소박하게 두 번째 단추를 채워 보려고 한다. 오는 9월 말에 타로를 가지고 공부방에 방문할 예정이다. 캠프 가기 전처럼 마음이 들뜬다. 다만, 그 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은 다르다. 어느새 정든 친구들을 오래간만에 만나러 가는 느낌도 들고, 그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설렌다. 이 만남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 수 있을지, 어떤 모양새를 띠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얼마 전 개굴과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서로가 서로를 부탁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기를.’

힘들고 억울한 세상, 이대로 무너지면 아쉽지 않겠는가.

– 한낱(상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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