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맞서는 다문화 “인권” 교육이 되기 위해

“다문화가 대체 뭐지?”

이제는 다문화 사회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뭔가 미심쩍은 질문들이 고개를 든다. 많이 듣고, 익숙한 단어일수록 의심해봐야 한다는 나의 지론에 비추어 볼 때, ‘다문화’는 다분히 문제적 개념이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다문화 가정 지원 및 다문화 교육을 늘리고 있다고 하는데 그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이주 노동자들을 표적단속하고, 심지어 10년 넘게 한국에 살며 여러 활동을 해온 미누 씨를 일주일 만에 강제출국 시킨 나라에서 어떻게 다문화 사회를 논할 수 있는 걸까? 다문화 교육을 받아야 할 건, 이주민이 아니라 소위 ‘한국인’이 아닐까? 국내의 다양한 집단들의 문화적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는 억압하면서 국가 간의 섞임만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뭘까? 인종차별과 인종주의를 이야기하지 않고 다문화만을 말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나? 다른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고, 옷을 입어보는 것이 다문화 교육이 될 수 있나?

질문에 대한 답이 쉽사리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물음표를 던질수록 다문화라는 말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적어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는 다문화는 경제적 문화적 우월감이 벤 단어이다. 우리가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백인 노동자를 상상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더불어 다문화 사회를 만드는 조건으로 한국인의 관용과 배려를 강조하는 건 도움 받아야 할 존재로 이주민을 고정시킴으로써 그이들을 더욱 약자의 위치에 서게 한다. 그이들에게 필요한 건 한국인의 따뜻한 시선이 아니라, 국적과 관계없이 이 땅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라는 점에서 지금의 다문화는 98% 부족한 개념이다.

이런 의문들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국가인권위로부터 <다문화 인권 교육 강사 양성 과정>에 강사로 참여해 줄 수 있냐는 제의를 받았다. 솔직한 ‘들’은 우리가 다문화 인권 교육을 진행하기에는 턱없이 고민이 부족하니, 과정에 참여하는 건 힘들 것 같다고 고백했다. 급한 국가인권위는 인권교육의 원칙과 방법론을 강의해 줄 공간이 ‘들’ 밖에 없다며 그동안 해왔던 내용으로라도 교육을 수락해주길 부탁했다. 어쩌지…회의 끝에 강사 양성 과정에 참여하기로 했다. 대신, 그동안 다문화 교육을 몇 차례 해왔던 묘랑 활동가와 교육 경험을 나눈 후 다문화 인권교육의 원칙을 구상해 보기로 했다.

“다문화 인권 교육?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 반차별 교육만 제대로 되어도…”

우리의 빛! 으로 생각하고 찾아갔던 묘랑의 첫마디였다. 묘랑의 이야기로 우리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긴 했지만, 풀리지 않는 고민의 실체와 직면할 수 있었다. 결국, 교육의 상당부분을 반차별의 원칙을 공유하는 시간에 할애하기로 결정했다. 차이를 인정하면 차별은 멈추는 걸까? 사회적 약자/소수자가 만들어지는 구조를 살피지 않고 ‘다름’의 인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차별의 원인이 어쨌든 소수자의 ‘다름’에 있다는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여성, 장애인, 인종적 정체성 등 소수자를 가름하는 그 기준들은 과연 고정된 실체일까? 오히려 권력에 의해 선택되고 꼬리표 붙여진 범주는 아닐까? 라는 질문을 참여자들에게 던져보기로 했다.

“헐, 세계적으로 혼종이 지배하는 시대라니…”

‘들’이 담당한 꼭지는 1박 2일 교육일정 중, 둘째 날 아침에 배치되어 있었다. 국가인권위에서 진행하고 있는 <다문화 인권교육 강사 양성 과정>을 전반적으로 모니터링 할 겸 첫 날 부터 일정에 합류했다. 자료집을 훑어보고, 다른 강사가 진행하는 교육을 듣고 있는데 민망한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교육 대상자는 결혼 이주민/이주 노동자/일반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혼종이 지배하는 시대다.”, “세계의 모든 영역에서 탑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적 인물들이 혼혈 가정 출신이다.”, “오바마, 사르코지, 요요마, 타이거 우즈가 모두 그렇다. 이들을 롤 모델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강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2시간 중 1시간 45분 동안 자신의 설익은 철학을 참여자들에게 전달했다.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참여자들의 질문을 받는데,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활동하고 있는 참여자들의 농도 짙은 고민을 읽어내지 못한 채 자신의 철학만을 계속 주장했다. 강사가 하는 말들을 받아 적으며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나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할 무렵, 강의는 끝이 났다. 나는 좋아라하는 뒷풀이도 마다한 채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숙소로 돌아가 아침에 있을 교육을 준비했다. 준비해간 프로그램을 하기 이전에, 제자리로 돌려 놓아야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이 여행의 주인은 연필을 쥐고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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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눈을 감은 채로 연필을 쥐고, 나머지 한 사람은 길을 안내하는 “길 따라 삼천리” 프로그램부터 시작했다. 골뱅이 길을 여행하는 당사자는 연필을 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 역시 닫아 버린다. 본인의 여행인데도, 길을 안내하는 사람의 말에만 의지해 자신의 연필을 움직인다. 길을 안내하는 사람 역시 친절함의 차이는 있지만 연필을 쥔 사람에게 “이렇게 가는 것이 편안한가요?”라고 묻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이 이야기할 뿐이다.

“지금 경험하신 과정은 소통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교육의 과정입니다. 교육이라는 여행의 주인은 연필을 쥐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권 교육가는 그 여행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연필을 쥐고 있는 사람이, 교육 참여자가 인권교육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든든한 판을 마련하고 동등한 주체로 초대하는 것이 인권교육의 핵심입니다. 이런 원칙 속에서 다양한 기획과 방법론이 의미를 갖게 됩니다. 강사 혼자 말을 하고 끝내는 교육은 멋진 연설일 수는 있어도, 인권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자들의 반짝이는 공감을 이어받아, 공익광고 협의회에서 제작한 광고를 본 후 느껴지는 불편함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다문화 사회는 사랑하는 마음도 더 많아지는 사회입니다.’로 마무리되는 이 광고에서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발견했다.

“도와주는 사람은 한국인이고, 일방적으로 도움 받는 사람은 이주 여성이네요.”
“아이가 엄마에게 알림장을 읽어 드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너무 인위적이에요.”
“이주여성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한국 여성을 부를 때,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평소에도 이상했어요.”

이전 교육에서 잔뜩 얼어붙어 있던 참여자들의 입이 트이기 시작했다.

“다문화 인권교육은 충분히 위험한 교육이어야 합니다.”

교육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잡혀 있어서 모둠 활동 보다는 ppt 화면을 보며 참여자들 모두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한 때는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계화와 다문화는 어떻게 구분되는 걸까요? 글로벌 스탠다드를 정하는 것은 누구인가요? 우리가 세계화를 말할 때, 모든 이질성을 동등하게 사고합니까?”
“왜 이주여성들은 동화정책의 대상이 되고, 이주 노동자들은 철저한 배제의 대상이 되는 걸까요?”
“미누 씨는 강제 추방 전에 국적 취득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하고 강제 추방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강요되는 척도(기준)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을 한계 짓는 척도를 폭로한 것이지요. 국적이 없어도 최소한 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미누 씨는 ‘소수자 되기’를 실천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척도를 폭로하는 것, 경계를 확장하는 것은 불편함을 동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문화 인권교육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위험한 교육이어야 합니다.”

“외국인 범죄 늘어나는 건 생각 안하고, 인종차별 금지 법안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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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노짓 후세인/한가람 씨의 사례를 가지고 가해자 소환 방식의 교육을 진행했다. 보노짓 후세인 씨와 한가람 씨에게 폭언 및 폭행을 저지른 가해자 역할을 진행자가 맡고, 참여자들은 진상 조사단이 되어 대화를 나눴다. (가해자 소환 방식의 교육은 인권오름 178호 ‘인권교육 날다’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에이, 그냥 떠들어서 뭐라고 좀 한 거지. 인종 차별을 한 건 아니야~”
“그 때 하셨던 말들 그대로 이 자리에서 해보시죠.”
“그냥 어쩌다 보니 욕이 나온 거지..”
“왜 이 자리에서 못하는 말들이 그 날 버스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나왔던 거죠?”
“…아니, 그래서 내가 미안해서 사과도 했는데 합의도 안 해주고.”
“사과했다고 다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외국인 범죄도 늘어나고 있는데, 인종차별 금지 법안 같은 거 만들어져서 외국인들 더 많이 들어오면 치안은 누가 책임져?”
“…..”

참여자들은 극에 몰입해 가해자에게 질문 공세를 하다가도, 몇 가지 논리에 대해서는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국인 범죄가 외국인 범죄보다 그 비율이 월등히 높고, 외국인 범죄의 대다수가 주한 미군과 같은 백인에 의해 이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몇몇 개별 소수자들의 범죄를 소수자 집단 전체의 일탈로 보는 경향이 크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색안경을 벗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차별의 관계망은 광범위하면서도 촘촘하다.

“불법인 인간은 없다.”

지난 11월 3일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된 출입국 관리법 개정안을 보면 차별의 근거가 생물학적 근거(핏줄, 피부색)에서 법적/합리적 근거(국적 유무)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적을 기준으로 하는 ‘한국인’의 범주에 쉽게 들어올 수 있는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를 구분하는 것, ‘우수한 인력’과 ‘불법 외국인’ 사이의 그 엄청난 간극을 만들어내는 것부터가 우리가 넘어서야 할 차별의 지점이다. 얼마나 이 사회에 ‘기여’ 했는지 입증해야만 인간답게 살 권리가 보장된다면, 거기서 부터 인권은 특권으로 전환된다. ‘불법인 인간은 없다’는 많은 사람들의 외침을 다문화 인권교육이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교묘하게 차별을 재생산하는 반인권 교육이 될 수 있다. 다문화 인권교육에 대한 나의 고민은 이제 시작의 단계에 있지만, 이 교육을 통해 다시금 인권교육의 원칙들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이 글에서 모두 담아내지 못했지만, <다문화 인권교육 강사 양정 과정>을 모니터링한 후 작성한 의견서를 국가인권위에 전달했다. 다시는 얼굴 붉어질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 한낱(상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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