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축축했던 여름, 청소년들과의 만남으로 뜨겁게 보내다
개웅중학교 도서관 캠프, 부천 여성의 전화 NGO 체험, 구리 YMCA 청소년 인권교육

인권교육가마다 ‘편애하는’ 또는 ‘편해하는’ 교육이 있다. 인권교육가도 사람이니만큼 자신의 스타일, 혹은 관심 영역에 따라 가고 싶은 교육과 부담되는 교육이 자연스레 갈리게 마련. 교육도 궁합이 맞아야 한다고 누구와 만나 무슨 내용을 나누고 왔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나 오늘 병원장들(시설장들) 모아놓은 교육에 갔었는데, 어찌나 자기 권위를 내세우려고 하는지. 스트레스 팍팍 받았어.” “역시 언니들이 좋아. ○○ 여성회 교육 다녀왔는데, 별다른 말없이도 공감 백배! 완전 잘 통했어.” 등등- 일주일에 평균 두세 번 정도 인권교육을 하는 상임활동가들의 경우 그날 교육이 어땠는지에 따라 한 주의 컨디션이 달라지기도 한다ㅋㅋㅋ

나는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좋아한다. 그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몸과 마음을 맡기면 어느새 땀이 주르륵, 다리가 후둘 거리지만 그렇게 한 판 굿을 뛰듯 교육을 하고나면 한풀이를 한 것 마냥 속이 시원하다. 정교하고 세련된 언어로 포장하지 않은 날 것의 감수성에 가슴이 뛴다. 때로 학교생활이나 세상살이에 대해 예리한 성찰을 뿜어낼 때면 (그이들은 그저 툭 한마디 뱉은 것일 수 있지만;;)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릿찌릿 전기가 통할 때도 있다. 물론 모든 교육이 이렇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확률로 따지자면,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두 배는 많은 것 같다. 부모가 보내서, 교사가 시켜서 온 청소년들은 얼굴에 딱 ‘관심 없음, 빨리 끝났으면 좋겠음’이라고 쓰여 있다. 그 냉소적이고 똥 씹는 듯한 표정에 인권교육가들의 마음은 한없이 작아진다. 괜시리 학생들을 괴롭히는데 일조하는 것 같아 교육하는 내내 안절부절. 집에 돌아오는 길이 한없이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청소년 인권교육은 직접 가서 참여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복불복 게임이라고나 할까;;

여름방학은 청소년 인권교육의 성수기, 가히 ‘시즌’이라 부를 만하다. 꾸물꾸물했던 올 여름, 세 번에 걸쳐 청소년 인권교육을 진행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으로 즐거웠던 기억들. 학생인권조례나 체벌금지 정책이 징검다리를 놓아준 덕분일까. 학생들과 나 사이에 접점이 조금 더 많아졌다. 조례 이후 학교의 풍경을 조근 조근 이야기 해주는 친구도 있었고, 크게 변하지 않는 학교 현실을 개탄하는 친구도 있었다. 학생 인권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인권 이슈에 관심이 많은 중학생 친구의 한마디 한마디는 교육을 진행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깊은 인상을 남긴 세 번의 교육들을 짤막하게 소개해 보려고 한다. 교육별로 정리하기 보다는, 나의 깨달음을 기준으로ㅋㅋ 자유기술 할 것이다.

 

▮참고▮

▩ 개웅중학교 도서관 캠프 (7월 18일)
[프로그램] 동화 다시 읽기 + 책으로 만나는 세상, 세상을 바꾼 저항 (상황극)

여름방학을 맞이해 도서관에서 캠프를 진행. 그 중 두 꼭지를 인권교육으로 진행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음. 여학생이 거의 대부분이고, 중1-중3 학생 30명. 본인이 신청해서 모인 친구들.

▩ 부천 여성의 전화 NGO 체험 (7월 21일)
[프로그램] 학생인권 지도 그리기 + 세상을 바꾼 저항(상황극) + 청소년활동가와의 만남

학생들의 단체 방문 봉사 활동(주로 청소나 업무 보조)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틀을 바꿔보고 싶다고 활동가 분들이 ‘들’에 방문하심. 아쉽게도 이번 교육도 봉사 시간을 제공하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지만, 내용은 새롭게! NGO 활동을 소개하는 시간에 이어 학생인권교육 진행. 10-15명 남짓한 친구들 모임.

▩ 구리 YMCA 청소년 모임 (8월 4일)
[프로그램] 학생인권 지도 그리기 +차별에 맞서는 연습(가해자 소환) + 정리 강연

 

YMCA에서 평소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들과의 인권교육. 10명 남짓한 친구들. 주로 고등학생. 자발적 모임의 구성원들인 만큼 인권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음.
역시 ‘계몽’을 의도한 방식은 실패하기 쉬워~
개웅중 교육의 경우 도서관 캠프니 만큼,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이 모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 소모임 <어린이 책 공룡트림>의 마로에게 구원요청을 해 책을 활용한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짰다. 우리의 의도는 이러했다. 어렸을 때 읽는 ‘교훈 동화’들이 ‘애들은 이렇게 자라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자연스레 몸에 배게 한다. 그러니 익숙한 동화들을 낯설게 볼 수 있는 대안적인 동화를 제시해 교훈 동화들을 비판하는 작업을 수행하자. 예를 들어, 말 안 듣는 어린이에게 잔인하게 형벌을 가하는 ‘더벅머리 페터’와 어린이 입장에서 볼 때 말도 안 되는 어른들의 훈계와 양육 방식을 비꼬는 ‘어른들은 왜 그래’를 비교 분석해보자는 것. 대안적 동화의 주인공이 교훈 동화의 주인공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보는 활동으로 마무리 하면 되겠구나, 라고 프로그램 기획까지 완료. 학생들을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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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가 시대에 따라 동화들의 다양한 판본이 있었고,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도 달랐다는 예를 생생하게 전달하자 학생들이 흥미롭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짤막한 강연을 끝내고, 모둠별로 두 가지 작품을 나눠주며 비교 분석하는 미션을 제시하는데… 학생들이 활동을 잘 이해하지 못 한다;;; 몇 번 질문이 오고갔지만, 여전히 오리무중. 결과적으로 강사들이 모둠을 돌아다니며 어쩔 수 없이 힌트를 빙자한 ‘정답’을 제시해주는 상황이 벌어졌다. 모둠마다 학년이 섞여 있기도 하고, 아직 친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일단 어색했던 것. 시간 부족도 한 몫을 했다. 하지만 이런 외부적인 조건보다도, 학생들을 가장 난감하게 하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애들은 어른 말을 잘 들어야지,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여자들은 약하니 남자들이 지켜줘야지’와 같은 관점을 뒤집어서 다르게 보려면 이러한 가치들이 실제로 자신의 삶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 오히려 숨통을 조이기 쉽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닫고, 말하고, 공감하는 일이 꾸준히 선행되어야 한다. 나와 마로가 지닌 소위 인권적인, 대안적인 관점도 이런 과정들을 통해 형성된 것이리라. 이 과정들이 삭제된 채 바로 분석을 하고, 비판을 하라고 하니 학생들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마로와 내가 구리다고 판단해서 내놓은 동화들이 왜 문제가 있는 작품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겨울에 굶어야 한다는 것, 애들은 어른들의 보호를 받고 사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 바로 학생들 자신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아차 싶은 느낌. 의식과 존재의 불일치(기업이 잘 돌아가야 노동자도 잘 살 수 있다, 는 관점을 노동자 스스로 지닌 것처럼)는 언제나 씁쓸함을 유발하지만;; 이걸 잊으면 아주 기계적인 방식으로 교육을 하게 된다. 진행하는 사람의 가치와 관점을 주입하려드는 교육은 사실 우리가 비판해 마지않는 바로 그 ‘나쁜 교육’의 동전의 이면에 불과하다. 사람을 쉽게 ‘계몽’하려 들면 큰 코 다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던 시간.

일단은 듣고, 맞장구 치고, 라포를 형성해야~

그래서 중요한 것이 학생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것이다. 사실 인권감수성은 약자들이 일상에서 느낀 불만, 분노, 짜증을 개인적 감정이 아닌 사회적, 집단적 감정으로 읽어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꿈틀꿈틀 약동하지 않던가. 시험 문제 많이 틀렸다고 반 학생들 앞에서 “이런 것도 모르냐. 앞으로 뭐가 되려고 그러냐.”는 말을 교사로부터 들었을 때, 학생들은 분노와 짜증, 모욕감을 느낀다. 참으로 건강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꾸준히 들을수록, 자신의 분노와 짜증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수록 “제가 공부를 못해서 혼난 건데요 뭐.”라고 체념하게 된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부족함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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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인권교육을 할 때 단골 프로그램으로 가져가는 <학생인권 지도 그리기>는 학생들이 일상에서 그냥 지나쳤던, 그럼에도 가슴 한 편에 남아있는 사건들을 마음껏 쏟아내는 시간이다. 전지에 그린 학교 공간 지도를 붙여놓고, 학생들에게 포스트 잇을 나눠준다. 각 장소마다 나를 화나게, 침울하게 했던 일들을 쭉 적어내는 것이다. 처음 만난 외부인(강사)에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쉽지 않을 수 있으니 당장 발표를 요청하기보다 익명을 보장해 종이에 적어 제출하는 활동으로 진행한다. 어느새 전지엔 포스트 잇이 빼곡하게 들어찬다. 학생들의 이야기는 밀도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일맥상통한다. 포스트 잇에 적힌 것들을 그대로 읽고, 그 상처에 나 역시 공감하고 맞장구친다.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목격한 친구들이 목청을 높여 더 ‘극악한’ 사례를 제시한다. 그렇게 함께 말하고, 떠들고, 화내고, 털어내는 시간 동안 어느새 우리 모두의 공통분모가 발견된다. 학교생활이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 열 받는 일이 있어도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 참 서글프다는 것. 시나브로 참여자, 진행자 분리할 것이 없이 모종의 공감대가 형성된다.

구체적 사건 속으로 몰입하니, 또 다른 세계가~

논리만을 주고받는 인권교육은 너무 차갑다. 아니, 논리는 힘 있는 자들의 편인 경우가 많다. 근사하게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법과 도덕은 얼마나 세련되고 견고한지. 약자들의 시선과 입장에서 대안적 논리를 구성하는 것도 인권교육의 한 부분이지만, 말을 뱉기보다 듣는 위치에 주로 서게 되는 존재들에게 ‘말빨’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라는 건 가혹하다. 경직된 이성의 명령을 깨고, 나와 타인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에서부터 다른 서사가 시작되는 건 아닐까. 세상이 이렇게 굴러가면 안 되다고 외칠 수 있는 용기는 논리로 가득 찬 머리가 아닌 불의를 겪고 모욕을 느낀 내 가슴에서 나오는 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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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학생들과 ‘뜨겁게’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역사의 한 장면 속으로 학생들을 초대하는 상황극을 준비했다. 학생들이 감정이입하기 쉽도록 비슷한 연령대인 청소년의 저항 사례를 가져갔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촉발시킨 클로데트 콜빈을 먼저 소개했다. 그녀가 바로 백인에게 좌석 양보를 거부함으로써 조용한 버스에서 ‘소란’을 일으킨 주인공이었다고. 결국 버스 기사와 경찰에게 매를 맞고 쫓겨나 재판까지 받았었다고. 그 다음 콜빈을 분노하게 했던 몽고메리 주의 버스 이용 안내를 보여주었다.

강의실 앞쪽에 미리 준비해 놓은 무대에서 즉흥 연기를 시작했다. 버스 기사와 경찰은 진행자(+보조교사)가 담당하고, 콜빈을 비롯한 흑인 승객과 나머지 백인 승객은 즉석에서 학생들의 자원을 받아 무대로 모신다. 대사를 미리 주는 것이 아니다. 상황 속에 들어와 자신들이 하고 싶은 행동과 말을 하면 된다. 상황극을 진행하고 나서 진행자는 참여한 학생들에게 인터뷰를 진행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의 입장에서 인터뷰에 응한다.

▶ 진행자: 평소 때도 이렇게 버스에서 자리 양보하는 걸 거부 했었나요?
▷ 콜빈: 아니오. 오늘은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었고, 특별히 피곤했어요. 나도 다리가 아픈데 왜 자리를 양보해 줘야하는지 모르겠고, 화가 났어요.
▶ 진행자: 버스 기사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 콜빈: 조금 무섭긴 했지만, 오늘은 정말 일어서고 싶지 않았어요.
▷ 백인승객: 짜증났죠. 저 애 때문에 제 시간을 뺏기는 거니까요. 흑인 주제에 건방지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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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인승객: 빨리 그냥 뒷자리로 오길 바랐어요. 일이 더 커지지 않기를 바라니까요.
▷ 흑인승객: 이런 식으로 해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뭐가 바뀌겠어요.
▶ 진행자: 경찰이 콜빈을 때릴 때 콜빈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요?
▷ 흑인승객:…….저도 맞을까봐 두려웠어요….
▶ 진행자: (콜빈을 도왔던 흑인, 백인 승객에게) 왜 콜빈을 도와주셨죠?
▷ 흑인승객: 어린 아이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거죠, 저도.
▷ 백인승객: 흑인이라고 해서 이렇게 무시당해서는 안 되는 거죠. 경찰과 버스기사가 잘못된 행동을 한 거예요.

이런 식으로 20분 정도 인터뷰가 이어진다. 상황극 무대에 올랐던 학생들 뿐 아니라 극을 관람했던 참여자들도 어느새 극 속으로 빠져든다. 학생들과 대화하는 동안 사람이 무기력을 넘어 움직이게 되는 이유, 인종차별이 이루어지는 맥락, 인종차별이 단순히 흑인VS백인의 편 가르기 싸움이 아니라는 것까지… 번뜩이는 성찰이 오고갔다.

상황극을 마치자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콜빈의 사례를 자기 문제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콜빈의 저항 이후 몽고메리 주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나누는 동안에도, 최근 학칙 개정을 요구하며 학생들이 운동장 침묵시위를 벌인 사진을 보는 동안에도 학생들은 내내 진지했다.

스스로 참여한 교육일 때 열정도 뒤따른다~

구리 YMCA 청소년들과의 만남은 참 놀라웠다. 휴대전화 압수, 간접체벌, 반성문 강요, 벌점제 등 다양한 학생인권 이슈들에 대해 살아있고, 개념 찬 언어로 자박자박 학생인권 옹호 논리를 펼친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예정된 교육시간을 30분 넘겼는데도 가져온 정리 강연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가란다. 재밌고, 궁금하다고. 가해자 소환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어찌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지, 진행자가 연기를 마치려고 해도 아직 할 말이 더 있다며 마치면 안 된단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을 훌쩍 넘어 친구들과 대화했다. 자발적인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달은 시간.

이 친구들이 참 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을 소개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 진행자(학생부장 역할): 썩은 사과 이론 알지? 하나의 썩은 사과가 같은 상자에 있는 다른 사과도 썩게 만드는 거야. 안 되는 애들은 애초에 잘라내야 다른 애들이 피해를 안보는 거지. 줄줄이 벌점 받은 애들 학교에서 잘라내는 건 다 선량한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 학생: 선생님이 오히려 썩은 사과 같은데요.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뭡니까?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이 사는 방법 배우려고 다니는 거잖아요. … 같이 살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코끝이 찡했다. 경기 일부 지역에서 벌점으로 인한 무더기 강제 전학, 강제 자퇴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음이 알려지던 때여서 더더욱 마음이 시큰했다. <아수나로>의 한 활동가는 이를 ‘문제아 홀로코스트’라 칭하기도 했다. 같이 살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라는 그 단촐한 한마디에 사실 모든 진실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 한낱(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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