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렇게 취급당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성매매 경험 여성들과 저항을 연습하다

공교롭게도(?) 그녀들과 만나기로 한 때는 10년 전 김구라가 했다던 막말이 알려져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즈음이었다. 김구라가 일본군위안부(오랫동안 정신대로 불렸다가 진실을 가린다는 이유로 종군위안부가 되었다가, 따라간 게 아니라 끌려간 것이라는 이유로 다시 일본군위안부로 불리게 된) 할머니들을 ‘창녀’에 빗댔다는 것이 대다수 시민들이 분노했던 이유였다. 결국 김구라는 단 며칠 만에 방송 출연 중단 결정까지 내렸다. 도대체 뭐라고 했기에 이리도 난리가 났을까 궁금해져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김구라가 했던 말의 요지는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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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월 천호동에 있던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경찰의 폭력적 단속에 분노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 진정을 넣고 침묵시위를 벌인 사건을 보고 김구라가 뱉은 독설이었다. 이 말을 꼼꼼 들여다보면 일본군위안부를 ‘창녀’에 빗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매매 여성들을 철저하게 비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누리꾼들의 비판은 ‘창녀’ 비유에만 집중되었고, 김구라가 방송 잠정 은퇴까지 결정하면서 사죄했던 대상도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과 국민 여러분이었다. 결국 이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대상화되었던 이들은 바로 ‘창녀’로, ‘윤락여성’으로 호명됐던 성매매 여성들이었다. 경찰의 폭력 단속에 맞서 용기를 내어 자신들의 존엄성을 주장하고 나섰던 성매매 여성들은 그렇게 또 한 번 모욕당했다.

담배 한 대로 마음을 얻다

모욕이 일상화된 존재들, 지금은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들과의담배 한 대로 마음을 얻다 인권교육은 어떤 과정이 되어야 할까? 1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이루어진 10여 명의 여성들과 딱 한번 만나 인권교육을 하는 것인데 어떻게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약간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교육 시작을 기다리면서 ‘여기 담배는 어디서 펴요? 이따가 쉬는 시간에 담배 필 때 데리고 가줘요.’라고 말을 붙였다. “어머, 선생님도 담배 피세요? 여기 온 선생님들 중에 담배 피는 사람 처음이에요. 이따 같이 가요~” 그렇게 먼저 나를 열어 보이니 그녀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녀들과 첫 번째 교육을 맡았던 묘랑은 그녀들이 받았던 차별 경험을 끄집어내는 데 주로 마음을 기울였다고 한다. 묘랑은 경찰서, 병원, 쉼터, 동네 등 다양한 공간에서 그녀들에게 힘을 주었던 말, 차별이라 느꼈던 말들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해보면서 인권의 의미와 차별과 연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버스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저항을 생각하다

내가 맡은 두 번째 인권교육 시간에는 그녀들의 경험과 여성으로서의 인권을 고민해볼 수 있는 사례들을 뽑아가 차별에 저항하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차별에 저항한 사람들의 사례를 먼저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하여 자리 양보를 거부했던 열여섯 살 클로데트 콜빈의 이야기를 상황극 형태로 경험해 본 다음, 콜빈의 뒤를 이어 버스 보이콧 운동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지키고 싶었던 마음을 함께 나누었다. 곧이어 ‘버스’를 둘러싼 차별에 저항한 한국의 최근 사례를 소개해주었다. 버스카드를 찍을 때 났던 ‘학생입니다’라는 말이 사라지게 된 사례, 학생만 할인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비학생 청소년들에게도 할인제도가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했던 청소년 사례, 장애인들이 저상버스 도입을 위해 ‘버스를 타자’ 캠페인을 진행했던 사례들을 소개해 주었다. 버스라는 일상적 공간을 매개로, 그리고 청소년과 장애인이 차별에 맞서 용기 있게 나섰던 저항 사례를 소개해 주니 ‘인권과 저항’이라는 어려운 이야기가 좀 더 편히 다가갔나 보다.

이어서 최근 일어났던 ‘버스 무릎녀’ 사건을 살펴보면서 ‘나이 어린 여성’이라는 소수성이 어떻게 쉽게 모욕의 대상이 되기 쉬운지를 이야기 나눴다.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던 사례였는지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어서 <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라는 다큐 영화에 등장하는 성폭력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성폭력 생존자들이 왜 얼굴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 앞에서 성폭력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선택을 했을까 물어보니 기대했던 답이 돌아온다. “피해자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요.” 성폭력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몇 사람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이 정도 반응이면 좋은 출발이다. 이제 본격적인 사례 속으로 들어가 봐도 되겠다 싶었다.

저항을 연습하다

준비해 간 사례는 세 가지였다.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씨와 동행하던 중 한국인 남성으로부터 모욕과 폭행을 당한 지선씨 사례, 편의점에서 일하다 최저임금도 못받고 고객으로부터 성희롱까지 겪은 정인씨 사례, 그리고 유흥업소에서 일하다 검진을 받으러 갔던 병원에서도 무시당하고 경찰로부터도 성행위까지 자세히 묘사하기를 강요당하기도 하고 ‘몸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식의 모욕을 당한 민선씨 사례. 모둠별로 하나씩 사례를 분석해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밟으면 좋을지, 누구의 도움을 요청하면 좋을지 찾아보도록 했다.

그리고 각 사례에서 문제가 되는 인물의 역할을 내가 맡고 그녀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해보도록 했다. 준비해 간 사례들이 그녀들이 삶에서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었기 때문인지 아주 열정적으로 참여해 주었다. “내가 남자였으면 아저씨가 그렇게 했겠어요?” “최저임금을 왜 주라고 정해놓은 줄 아세요?” “성폭력 방조가 얼마나 큰 죄인 줄 아세요?” “경찰이라고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돼요?” “아저씨 딸이 그런 취급 당하면 좋겠어요?” 그녀들과 상황극을 진행하면서 그녀들이 사건의 핵심을 정확하게 꿰뚫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법이 우리에게 힘이 되어 줄까?

상황극이 끝나고 각 사례별로 어떤 해결 과정을 밟으면 좋을지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대부분 그녀들은 법률 관련 지식을 총동원해서 무슨 법 위반이니까 경찰에 신고한다, 노동청에 신고한다와 같은 법적 해결책을 주로 꺼내 놓았다. 법에 의해 강제 검진의 대상이 되었고 법을 집행하는 경찰에 의해 모욕당한 경험도 있으면서 법을 너무 과신하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던져보았다. “여러분이 가서 경찰서에 가서 고소를 하면 문제가 잘 해결될까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경청해줄까요?” 모두들 아니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증언이 좀 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 그래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단체를 활용하는 방법,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증언의 힘을 키우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힘을 믿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주었다. 중간 중간에 성매매 여성들과 여성단체들이 선불제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사례, 성매매 여성들의 일상 이야기를 드러내고자 했던 공모전 사례, 정부에 대고 탈성매매 지원을 촉구했던 사례, 여성들이 ‘몸에 대한 결정권 선언’을 발표했던 사례들을 소개해주면서 목소리를 내고 힘을 모은다는 것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제 마무리 시간. 일본정부는 물론 한국정부로부터도 외면당했던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라는 다큐에 등장하는 일본군위안부 송신도 할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싸운 일본인 이야기, 그리고 김구라 막말에서도, 이후 사회 반응에서도 여전히 모욕당하고 있는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면서 ‘인권은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편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그 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교육을 시작할 즈음 경계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던 그녀, 밤새 잠을 못 잤다며 귀찮아했던 그녀까지 눈을 반짝이며 박수를 보내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들의 존엄과 삶을 지지하는 내 마음이 전달된 것 같아 내 마음도 꽉차 오르는 시간이었다.

– 개굴(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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