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녀들, 무엇으로 손잡을 수 있을까?
가사간병돌봄서비스 노동자를 만나다

3-4년간 해온 인권교육을 돌이켜볼 때, 내가 가장 많이 만나본 이들은 교사/학생/활동가였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청소년인권운동의 연장선 상에서 청소년인권이나 인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았다. 지난 4월에 만난 가사간병돌봄서비스 노동자(이하 돌봄 노동자) 분들은 여러모로 ‘익숙하지 않은’ 교육 참여자들이었는데, 그 분들의 위치가 가진 이중적 의미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복지시설에서 일하고 계신 사회복지사나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 분들의 경우, 이들 스스로의 인권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루지만 사실 인권옹호자로서 가져야할 인권적인 마인드에 더 초점을 맞춰서 교육한다. 돌봄 노동자들도 이들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존재들이 장애인, 노인, 한부모 가정의 청소년이라는 점에서 인권옹호자로서의 역할을 기대 받는다. 그러나 국가가 요양보호사라는 그럴 듯한 이름만 쥐어주고는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현실, 그렇기에 근로기준법 적용도 못 받는 등의 열악한 노동조건, 종종 ‘고객님’으로 부터 성적인 모욕이나 희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분들 인권문제를 전면에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우리가 요청받은 교육의 이름은 ‘학대예방교육’이었지만, 나는 그저 ‘인권교육’으로 이 분들과 보낼 시간들을 기획했다.

그녀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일까

일단은 내가 돌봄 노동자 분들의 구체적인 처지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는 진실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들’ 활동회원이자 서부비정규노동센터에서 일하는 양미 씨와 함께 교육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양미 씨의 경우, 돌봄 노동자 분들을 만나 성희롱예방교육을 진행했던 경험이 빼곡한 분~ 더불어 교육을 의뢰한 중앙가사간병교육센터 담당자 분께 노동자 분들이 일할 때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문의를 드리기도 했다.

[임금이나 처우에 대한 불만이 높지만 그것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사일과 간병일로 구분해 서비스를 요청받지만 이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식사나 이동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 ‘아줌마’라고 불리거나 ‘파출부’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업무 이외의 잡일(개똥 치우는 일 등)을 의뢰받는 경우가 많다/ 언어폭력, 성폭력 등이 벌어질 때 일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일하는 내내 긴장을 느끼고, 방어 자세를 취하게 된다] 등등의 이야기를 양미 씨와 담당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교육 시간은 2시간. 이 분들에게 인권교육이 딱딱하고, 일할 때 조심하라는 투의 ‘서비스 교육’으로 느껴질 우려가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 인권이 나의 문제임을 느낄 수 있는 사례들을 모아 여는 강연을 일단 진행하기로 했다. 더불어 이분들이 만나게 되는 존재들의 인권이 여성이자 돌봄 노동을 하는 자신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소수성과 차별의 문제를 살짝 건드리기로 했다. (1시간) 이어서는 ‘집’이라는 장소가 돌봄 노동자들에게는 일터이지만, 서비스 이용자들에게는 사생활의 영역이자 쉬는 곳이라 점, 그렇기에 발생할 수 있는 서로 간의 폭력들을 짚어보고 폭력적인 상황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권리들을 자신의 신체 부위와 연결 지어 생각해보는 인권의 실루엣을 진행하기로 했다. (1시간) 교육 참여자 분들의 연령대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여 쓰기 보다는 말하기 활동을 중심으로 배치하고, 많은 내용을 담기 보다는 핵심 내용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봇물 같이 쏟아지는 말, 말, 말들

6 (1)

7

여는 강연에서는 아래와 같은 주제의식을 사례를 통해 풀어냈다.

– 우리가 화나고 열 받지만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어떤 때인지
– 인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감춰지고, 가려진 뭔가를 읽어내는 힘이라는 것
– 일하는 손을 부끄러운 손으로 만드는 교육의 문제
– 성희롱, 성폭력이 오히려 여성들의 조심성 문제로 이야기 되는 맥락
– 모욕감도 차별이다
– 목소리를 높이는 것, 줄 세우기를 멈추는 것, 인권을 외치기 위해 뭉치는 것의 중요성

참여자 분들의 속내를 건드릴 수 있는 사례들을 가져가자 노곤하고, 지쳐보였던 얼굴이 펴지더니 사진 슬라이드를 보며 연상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신다. 교육을 시작할 때는 빨리 끝내달라는 요구를 서슴없이(!) 하시던 분들이 쉬는 시간에도 강사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 오신다. 여는 강연을 통해 마음의 벽이 살짝 허물어지자 본격적으로 이어진 토론 시간에 적극적으로 화제꺼리를 던져 주셨다. 몸으로 하는 폭력(자신의 의사와 반하는 신체접촉의 폭력성, ‘만만하다’는 느낌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눈으로 하는 폭력 (사소하다고 느껴지는 것 넘겨버리지 않기)/ 말로 하는 폭력 (욕설과 모욕적인 대우)/ 기타 상대방을 무시하고 모멸감을 주는 행위(사람을 믿지 못하고 계속 의심하는 것 등) 등으로 구분해 이야기를 나눴다. 돌봄 노동자와 서비스 이용자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들에 대한 토론 역시 이루어졌다.

– “간병인이 치매노인이 있는 방의 문을 잠그고 일을 했다.” 이것은 폭력일까?
– 노동자 입장에서 일할 때 그런 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끝내야 하니까.
– 가족들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하는 편이다.
– 그냥 뒀다가 부상을 당하면 어쩌나? 발작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경우 다른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
– 신체를 묶거나, 방 안에 감금하는 것은 누구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나?
– 노동자, 이용자, 가족(보호자), 기관이 함께 결정한다.
– 그런데 보통은 노동자, 가족, 기관 끼리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 이용자는 판단력이 없다? 판단력의 기준은 무엇인가?
– 그러다가 다치면? 사고에 대한 책임이자 생명에 대한 책임이다.
– 우리의 판단이 우리끼리 편하자고 하는 행동인지, 이용자들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한 판단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편견에 따라서 쉬운 결정을 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청소나 제대로 해라’, ‘이런 일하면서 무슨 교육을 그렇게 자주 받으러 다니냐’ 는 등 나를 무시하는 말을 들을 때 속으로 ‘저 노인네 힘도 없으면서… 몸도 성치 않은 주제에…’ 이런 생각을 솔직히 하게 된다고 말씀해주신 분이 있었다. 예전 같으면, 여성들이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집안에서 자연스레 하던 돌봄 노동이 서비스화 되는 것을 보면 이중적인 감정이 든다. 어떤 여성들은 이 끝나지 않을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에서 해방되기도 하겠지만, 어떤 여성들은 집 안의 ‘고객’과 집 밖의 ‘고객님’을 동시에 모셔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 여성들이 자신의 화를, 제대로 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마음속으로 (이용자 욕을) 되뇔 뿐, 입 밖으로 저런 말을 꺼내 본 적은 없다고 허허 웃으며 말하는 그녀들을 보며 쉽사리 풀리지 않은 숙제를 가슴 한 편에 남기고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 한낱 (상임활동가)

텔레그램 채널구독

인권교육센터 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들의 최신 소식을 가장 빠르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