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폭력을 어떻게 성찰할 것인가
폭력예방강사들과 함께 폭력의 속살 속으로

폭력예방교육은 인권교육인가? 폭력예방교육 강사들과 (학생)인권교육 강사들은 같은 가치를 지향하고 있을까?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 대통령과 국무총리까지 나서 학교폭력 근절을 근엄하게 외치고 있는 요즘, 제도화된 폭력예방교육을 바라보는 인권교육가의 마음은 복잡하다. 폭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폭력예방교육은 진짜 중요한 폭력을 가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폭력예방이 설파하는 ‘폭력은 안 된다’라는 중요한 가치가 위선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강제되고 있는 비폭력 서약식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볼 때도 학생인권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를 때마다 학교폭력 사건이 연거푸 터지면서, 인권교육이 들어설 자리에 대신 폭력예방교육과 인성교육이 들어서곤 했다. (학생)인권교육이 학생을 구조적 피해자이면서 인권의 능동적 주체로 불러온다면, 폭력예방교육은 학생을 잠재적 가해자 또는 무기력한 피해자라는 이분법으로 불러오는 경향이 있었다. 무서운 가해자에게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위험해보이고 무기력한 피해자에게는 인권보다 보호가 필요하다고 역설되는 경향도 강하다. 그렇다면 폭력예방교육은 인권교육과 긴장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날개달기 – 폭력예방교육의 기본을 흔들다

학교폭력, 성폭력, 가정폭력 등을 주제로 폭력예방교육을 학교현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강사단 분들로부터 인권교육을 요청받았다. 교육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그분들이 주로 해왔던 교육안을 살펴보았다. 어떤 게 폭력인지, 폭력이 왜 나쁜지, 차이에 대한 인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보장된 권리라는 사실까지 중요한 내용을 고루 담고 있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가정폭력을 제외하곤 학교폭력과 성폭력에서 학생들은 모두 잠재적 가해자로 가정되어 있는 경향이 있었다. 학교폭력이란 이름으로 다루는 폭력의 양상도 학생 간 폭력에 한정되어 있었다. 폭력예방교육과 인권교육의 만남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학교폭력을 학생 간 폭력만으로 규정하는 것은 공정한가? 학생 간 폭력은 학교의 구조화된 폭력과 어떤 연관성이 있나? 차별은 어떻게 폭력의 숙주 노릇을 하게 되는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보는 교육안을 준비했다.

더불어 날갯짓 – 폭력의 속살을 들여다보다

폭력의 다층성을 고루 살펴볼 수 있는 사례를 유형별로 정리해 제시한 뒤, 모둠별로 원하는 사례를 골라 논의를 해보도록 했다. 논의결과를 발표하는 방식으로는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 상황극 형식을 택했다. 진행자는 주로 사건의 주인공과 사건 해결을 위해 열린 모임의 사회자 역할을 맡고, 참여자들은 그 모임에 참석해 의견을 내는 역할을 맡도록 했다.

<사례1> 교사에게 대들다 징계를 받게 된 재민씨
오늘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모레 학교에서 우리 재민이 선도위원회가 열린대요. 얼마 전 체육대회 날 본관 출입을 금지한다고 방송을 했었는데, 재민이가 화장실 가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본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생활지도부장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보시고는 몰래 담배를 피러 온 줄 아셨나 봐요. 우리 재민이가 흡연으로 몇 차례 걸려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퇴를 했다 올해 복학을 했거든요.
생활지도부장 선생님이 재민이한테 “너 양 손 옆으로 벌리고 이리로 와!”라고 하셨대요. 근데 이 녀석이 개겼나 봐요. 선생님이 재차 요구를 하니까 이 녀석이 ‘에이 씨발~’ 하면서 그냥 교실로 가버렸대요.
생활지도부에서는 교사의 지도에 불응했고 교사를 모욕했다며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라고 해요. 선도위원회가 바로 모레 열린다고 하시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 선도위원회에 참여하게 될 우리들이 내놓을 의견은?

<사례2> 발달장애학생을 통제하다 항의를 받게 된 미현씨
저는 초등학교 교사 미현이라고 합니다. 올해 처음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우리반에 배정이 됐는데 보통 골치거리가 아니에요.
이 녀석이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하고 돌아다니는 건 예사고요. 화를 주체하지 못해 반 아이들을 때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학기초에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는데도 수업시간에 계속 돌아다니면서 수업을 방해하고 친구들을 못살게 굴길래 사탕을 줘봤어요. 그랬더니 조용해 지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그 방법도 안 통하더라고요. 계속 말썽을 피우길래 의자에 강제로 앉히고는 등을 몇 번 때렸어요. 그제서야 아이가 말을 듣더군요.
그런데 얼마 후 아이 엄마가 찾아와 폭력이네, 차별이네 하면서 막 항의를 하시는 거예요. 저 때문에 반 아이들까지 자기 자식을 함부로 대한다나 뭐래나. 아니, 솔직히 일반학교에서 감당하기 힘든 아이를 보냈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나 다른 아이들이 입는 피해는 털끝만큼도 생각을 안 하고 어떻게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지… 저도 화가 나서 몇 마디 했더니 장애인 차별이라면서 국가인권위에 저를 고발하더군요. 일이 커져버려 난감하긴 한데 ….
-> 차별 중재위원회에 참여하게 될 우리들이 내놓을 의견은?

<사례3> 괴롭힘을 당하다 폭력을 휘두른 지훈씨
고등학교에서 생활지도부 일을 맡고 있는 교사입니다. 지훈이라는 남학생이 여학생을 때린 사건이 접수됐어요. ‘까불면 네가 걸레라고 학교에 소문낸다’, ‘죽여버린다’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얼굴을 몇 대 때렸대요. 그 여학생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상태고요.
그런데 지훈이란 녀석은 자기가 오히려 피해자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난해부터 자기를 호모라고 놀리며 괴롭혀온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도 포함돼 있었다는 겁니다. 사건이 있었던 날도 하루 종일 시달리다 하굣길에 그 여학생을 우연히 보고는 욱 하는 마음에 겁만 주려다 손찌검까지 하게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를 괴롭혀온 아이들 이름을 대는데, 글쎄 우리 학교에서 일진으로 소문난 녀석들, 반에서 1~2등 하는 녀석들까지 있더군요.
사실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지훈이란 아이가 여성스러운 말투에다 행동거지가 그래서 동성연애자가 아닌가 수군거려 왔거든요. 그런데 애들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놀려온 줄은 몰랐어요. 아무튼 서둘러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어야 하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참여하게 될 우리들이 내놓을 의견은?

<사례4> 선도부 역할에 의문을 가진 정현씨
중학교 2학년 정현이라고 합니다. 전 1학년 때부터 왕따 신세였어요. 그런 저를 돌봐주신 선생님이 한 분 계신데요. 학생회 안에 학교미화부가 있거든요? 거기에 저를 선생님이 넣어주셨어요. 청소를 하고 나면 칭찬도 해주시고 그러니까 정말 열심히 했어요.
2학년이 되자 그 선생님이 생활지도부장을 맡게 되시면서 저한테 선도부 자리를 맡기셨어요. 남들보다 더 일찍 학교에 나와서 교문지도도 하고 실내화 단속도 하고 그러면서 학교 일을 도왔어요. 그런데 애들과의 관계는 갈수록 나빠졌어요. 심지어 1학년 후배들까지 저를 함부로 대하고 얼마 전에는 2층에서 저한테 침을 뱉는 애까지 있었어요. 하도 열이 나서 ‘너네 다 죽여버릴 거야.’라고 소리쳤더니, ‘우~’ 하는 소리가 들리대요ㅠㅠ
애들이 나한테 왜 저러나 너무 속상해요.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선도부 일이 이상한 것도 같아요. 쌤들은 그냥 신발 신고 다니면서 왜 애들만 실내화 신으라고 그러나 싶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니 더 고민이 되더라고요.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 이 사건을 의뢰받은 우리들이 내놓을 의견은?

<사례5> 학생에게 희롱을 당한 수민씨
저는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수민이라고 합니다. 여선생님 한 분이 출산휴가를 가시는 바람에 제가 기간제로 채용이 됐어요. 임용고사에 합격하고 발령을 기다리던 중에 일이 생기니 참 좋았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다루는 게 쉽지 않았어요. 수업 들어가는 반 중에 거친 애들이 유독 많은 반이 하나 있는데, 어느 날 남학생 몇몇이 작당을 하고 저를 희롱하더군요. ‘누나, 남자랑 자봤어요? 어땠어요?’, ‘저랑 사귈래요?’ 하면서 난감한 질문을 계속 하더군요. 그만하라고 화를 내봤지만 계속 키득거리길래 ‘너네 계속 그러면 맞는다.’라고 했더니 ‘그럼 교육청에 신고할 건데요?’ 이러는 거예요. 하도 기가 막혀서 수업을 중단하고 나와버렸어요. 생활지도부에 얘기를 할까 하다가 기간제인데다 애들도 잘 못 다루는 무능한 교사 취급을 당할까봐 포기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그 반 애들이 더 절 깔보는 것 같아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생활지도부에 얘기할 생각인데요. 남자 샘들이 혼쭐을 내 줄테니까요. 괜찮을까요?
-> 수민씨의 상담을 받게 된 우리들이 내놓을 의견은?

<사례 1>에서는 학생이 교사에게 욕을 한 ‘가시적 폭력’이 교사가 학생에게 가한 ‘비가시적 폭력’과 어떻게 맥락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지도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욕은 폭력으로 정의되지 않는 반면, 그 모욕에 대한 인간적 거부 반응은 폭력이나 문제행동으로 정의되곤 한다. 선도위원회가 학생을 중징계하는 방식으로 흘러가자, 참여자들은 “교사가 학생을 함부로 의심하고 범죄자 취급한 게 더 문제 아닌가요?”, “학생이 느낀 모욕감을 먼저 인정해줘야지, ‘에이 씨발~’이라고 욕한 것만 문제 삼으면 안되지요.”라는 말로 학교현장에서 폭력이 규정되고 처벌되는 과정 안에 숨어 있는 불공정성을 정확히 짚어냈다.

<사례 2>에서는 시스템의 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교사가 장애학생을 폭력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을 택하게 되는 과정과 ‘우리 반에 없었으면 하는’ 교사의 암묵적 태도가 다른 학생들의 차별적 태도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피진정인 신분으로 출석한 참여자들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버티는, 학부모가 염치도 없이 자기 아이 생각만 한다고 몰아치는 교사를 향해 교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점들을 지적해주었다.
“사탕을 줘보다 안 되니까 체벌까지 한 것으로 볼 때 발달장애에 대해 교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 수 있어요.”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 아닌가요?”
“발달장애학생을 맡게 되었을 때 교사가 통합교육보조원 배치 등 다양한 지원방법을 알아보고 학교나 교육청의 지원을 요구할 수도 있었지 않나요? 아무런 지원책을 마련해주지 않은 학교도 문제지만 그 상황에 안주한 교사에게도 개인적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교사가 장애학생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다른 학생들도 그 학생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요?”
참여자들은 또한 시스템의 지원이 전무한 상태로 교실 안에서 준비 안 된 교사와 장애학생이 대리전을 치르게 만드는 현실에도 눈을 돌렸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일명 장애인교육지원법)에 따라 장애학생이 입학했을 때 학교에서는 장애학생의 통합과 맞춤형 교육 지원을 위해 개별화교육지원팀을 구성해야 할 책임을 있으며, 특수교육지원센터를 활용할 수도 있다는 정보를 소개해주면서 다음 사례로 넘어갔다.

<사례 3>은 ‘호모’라는 놀림을 받던 남학생이 자기가 ‘호모가 아니라 남성’임을 증명하기 위해 여학생을 강간한 사례로서, 차별이 어떻게 폭력의 숙주 노릇을 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참여자들은 “놀림을 주도했던 학생들 중에 제일 약한 여학생을 골라 보복을 한 거군요.”, “동성애자라고 해서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방식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니 끔찍하군요.”라면서 차별과 폭력의 연관성을 짚어냈다. 참여자들의 비판은 차별적 분위기를 방관하거나 일조한 학교의 책임으로 옮겨갔다. “동성애자가 아니라 동성연애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분위기를 묵인하고 방관하다 보니 이렇게 상황이 악화된 것 아닌가요?” 그러면서 흔히 학교에서 겉으로 드러난 폭력 사건만을 축소해서 다루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의 뿌리를 건드릴 때 폭력에 제대로 맞설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사례 4>에서는 무력한 피해자라는 고정관념을 흔드는 한편, 교사가 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선택한 방식이 오히려 폭력을 심화시킬 수 있는 역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사례 4>에 등장하는 중학생은 교사가 소개한 봉사활동이나 선도활동을 하면서 존재감을 느끼지만 오히려 그 활동으로 인해 주변 학생들로부터 더 고립되기에 이른다. 다행히도 이 학생에게는 상황이 왜 악화되었는지를 성찰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다. 참여자들은 폭력 피해 학생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일방적 보호 방식을 제공하기보다 학생이 갖고 있는 문제해결의 힘을 북돋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목했다.

마지막 <사례 5>에서는 흔히 교권침해로 이야기되는 사례로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과 학생에 대한 교사의 폭력(체벌), 그리고 기간제 교사라는 약자성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무서운 남교사에게만 자꾸 의존하고 학생을 통제하려고만 들면 여교사들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는 것 아닌가요?” “여성에 대한 존중이 핵심이지 교권이 핵심이 아니죠.” “남자랑 자봤냐, 사귀자 같은 얘기를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요? ‘너는 내 타입 아니다.’ 정도로 가볍게 되받아쳐도 되지 않나요?” 참여자들은 매를 든 무서운 남교사에게 의존해온 교권의 개념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맞대어 – 눈에 띄지 않는 폭력들

 

nal_6슬라보예 지젝이 쓴 <폭력이란 무엇인가>는 다음과 같은 일화로 시작한다. 물건을 훔친다는 의심을 받던 일꾼의 손수레를 아무리 뒤져도 훔친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꾼이 훔친 것은 손수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상적이고 평온한 상태를 뒤흔드는 듯이 보이는 폭력은 쉽게 눈에 띈다. 교사에게 ‘에이 씨발~’이라는 욕설을 내뱉은 학생, 장애학생의 등짝을 때린 교사, 여교사를 희롱한 남학생 등은 폭력의 가해자로 쉽게 지목된다. 반면 그 ‘정상적 상태’에 내재해 있는 구조적 폭력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바로 그 구조적 폭력을 가시화시켜낼 때 문제의 뿌리를 건드릴 수 있다. ‘폭력’이라 정의돼 왔던 행동이 다시 정의되기도 한다.
폭력이 없는 사회는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폭력을 일상적으로 성찰하는 문화가 폭력의 발생을 줄일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갖가지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는 폭력예방교육들이 폭력의 이면을 파헤칠 수 있다면 인권교육의 동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글쓴이 배경내
인권오름 제298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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