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보육(자라도록 돕는 것, 지지하는 것)”을 꿈꾸다
00 보육원 교육 스케치

* 한낱, 개굴의 소감을 받아 루트가 작성

걱정이 앞선다. 언제나 맛깔나게 교육을 진행하는 낱이 오늘 00보육원에 고등학생 교육을 가는 내게 어제 그곳에서 이미 진행한 교육을 전하며 깊은 한숨을 품어낸다. 그이의 말에 따르면 어제는 완전 교육 불가능 상태였단다. 물론 초등생이니 산만하게 진행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 정도에 한낱이 그런 말을 했을 리는 없다. 애초 전날 있던 우리의 인권교육은 이미 오래전에 예정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교육 뒤에 8시-10시까지 예절 교육이 하나 더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듣는데 그간 보육원측과 조율에 조율을 거쳐 어렵게 잡은 날에 무리하게 교육을 두 개나 배치하여 마치 무슨 전시행정의 한 장면처럼 되어버린 느낌이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씁쓸했다. 그러니 아이들 입장에서 기계적인 프로그램의 배치로 자신의 욕구와는 상관없이 교육을 들어야 하는 조건에 불만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교육을 진행하러 간 한낱 조차도 공감되는 불만이었다고! 그러다보니 교육을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단다. 그런데 교육 시작부터 보육교사가 들어와서 사진부터 찍기 시작했단다. 학생들이 있는데도 서슴없이 “지원받는 게 쉽지 않아서요. 증빙 자료가 필요해요”라고 하며 학생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무 말이 없다. 익숙한 이 분위기. 이 해프닝은 내 교육이 있던 날에도 똑같이 연출되었다.

아동/청소년 : 인권지도 위에 너희들의 맘을 열어볼까??

보육원 아동/청소년 교육은 초․중․고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평소에 우리가 아동/청소년을 만날 때 많이 하는 ‘인권 지도 그리기’ 프로그램을 변형해서 각 공간마다 불만이나 힘들었던 일을 적어달라는 요청을 했다. 한낱이 맡았던 초등생들로부터 나오는 건 정말 ‘욕’ 밖에 없었다고. 포스트 잇 한 장에 욕만 빼곡하게 적어준 친구들도 많았단다. “이렇게 하니까 속은 시원해져요?” 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더 이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몇 마디 대화만 나누고 헤어졌단다. 중등은 그래도 분위기가 조금 나았다는데 깊이 있는 이야기로 들어가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초등생 교육을 진행한 한낱이 “제가 이곳을 뭐라고 부르면 되나요? 집? 보육원?” 이라고 묻자, 아이들은 “고아원이라고 불러요. 고아원”, “고아원이라고 부르면 되는 거예요?” 라고 하자, “고아원이래! 차별한다~” 라고 하며 자조적인 비틀기가 이어졌단다. 차별이 단순히 ‘언어’나 ‘단어’의 문제가 아님을 뼛속깊이 각인하게 된 순간이었다고. “쟤는 쌩고아에요”라고 말하는 몇몇 친구들. “쌩고아가 뭐에요?” 라고 묻자, “엄마 아빠한테 다 버려진 게 쌩고아에요”라고 말해주며 본인들끼리 키득거리며, 서로를 놀리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차별적인 세상의 기준이 옴팡 자신의 기준으로 내면화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가벼운 장난’인 것처럼 넘겨버리는 모습들. 나이에 따른 명확한 서열관계와 그 결을 따라 이루어지는 언어적, 신체적 폭력들이 교육 중간 중간에서도 드러나는 상황. 좁디 좁은 공간 안에서, 별다른 자유 없이, 여러 명의 아동/청소년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이런 방식의 ‘주거 복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보육원을 나섰다고.

고교생들은 ‘욕’만 써내던 초등생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예정된 인원은 13명이었으나 실제 참여한 사람은 8명 가량. 그나마도 나중에 2명이 더 오고 6명이 오붓(?)하게 시작한 교육. 왁자지껄한 분위기는커녕 너무나 예의바른 모습이었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외부인’의 출입에 너무도 익숙한 청소년들. 뭔가 기계적이면서도, 공손한 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 오는데 교육을 간 우리들 모두의 마음이 씁쓸하게 했던 그 모습이 고스란히 교실로 옮겨진 느낌이었다. 여는 질문으로 “보육원은 00이다”라는 것을 채울 수 있는 형용사와 동사들을 주었는데 나오는 것은 기계적인 공손함처럼이나 모범답안 같은 것들이었다. “보육원은 따뜻하다. 왜냐하면 우리를 보호해주니까”, “보육원은 고맙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잘 곳도 주고 키워주니까”, “보육원은 편안하다…..”그런데 표정엔 마음이 담긴 느낌이 아니다. 그냥 답안지를 읽는 듯한…. 이때 두 명이 더 오고 계속 이어졌지만 낱말카드에 있는 부정적인 단어는 이용되지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 친구 한 명이 “보육원은 지긋지긋하다. 왜냐하면 너무 오래 살아서”라고 말한다. 그러자 학생들은 그 친구에게 눈짓을 준다. 무언가 확 짐작 간다. ‘왜 그런 말을 해.. 저 사람을 뭘 믿고.’라는 표정이 읽힌다. 서둘러 옆에 친구는 “그래도 보육원은 좋은 곳이죠!”라고 다시 덧붙인다. 이 친구들의 마음을 어떻게 열수 있을까?? 우선 우리의 생각이 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아서 인권지도부터 하려던 것을 틀어서 일단 ppt로 준비해간 ‘인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나누었다. 당연한 것으로 여긴 것을 비틀어본다는 것, 청소년을 보는 혹은 청소년에게 요구하는 것이 과연 청소년에게 행복한 것이냐는 질문을 해보며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엿보였다. 그리곤 아까 형용사로 풀어내기가 끝났음에도 다시 이어한다. “갑갑하다. 무겁다. 우둘하다” 말투도 사뭇 다르다. 무심하게 내뱉던 아까와 달리,, 초등생들처럼 소리치며 외친다.

이제 인권지도 그리기. 그리기에 앞서 이곳에 적은 어떠한 것도 우리들끼리만 아는 비밀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면서 “이 교실에 CCTV 없지요? 그런 거 설치하는 곳도 있던데 왕 짜증이예요.. 있으면 우리 그것부터 가리고 할까요?”라고 말하자… 남아있던 의심의 찌꺼기가 확 날아가는 듯 보인다. 그리곤 각자 여러 장의 포스트 잇에 자신의 느낌을 그림으로 그리고 뒷장에 각각의 공간에서 불만이나 힘들었던 것, 혹은 좋았던 것을 써서 붙이게 했다. PC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 특히 학교, 보육원, 학원에 대해서는 찡그린 얼굴, 화난 얼굴, 우는 얼굴 모습 등을 그려 붙여진다. 그 뒤에는 빼곡히 쓰여진 불만과 불만들…..!
“PC방은 좋아요” “왜요?” “우리가 하고 싶은 거 하니까요, 아무도 간섭 안해요….” 끝도 없는 예찬이 쏟아진다. “보육원은?” “간섭이 심해요” “맨날 하기 싫은 거 해야 해요”. 한 친구가 “이번에 또 캐리비안 베이 간대, 들었어?” “앗, 정말?? 아 정말 짱나.. 가기 싫은대. 너무 자주 가는 거 아냐”. 놀러간다? 캐리비안 베이에 가서 이 더위를 식히는 일이 왜 아이들은 싫을까? 물어보니..“가기 싫어도 맨날 가야해요. 왜냐하면 요즘 보육원 사정이 좋지 않은데 협찬 하시는 분들이 고맙잖아요.” “고맙긴 뭐.. 그런 건 그래도 가기 싫어. 하지만 어쩔 수 없죠”란다. 이 친구들에겐 이곳이 집일 텐데. 복지라는 이유로 봉사라는 이유로 관에서 혹은 봉사하는 곳에서 요구하거나 베풀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봉사든 교육이든 몰려드는 방문객들을 늘상 맞이해야 하는 이들에게 ‘쉼’은 언제쯤 찾아올 수 있을까. 전시품처럼 널려진 이 친구들의 일상이 그려져 가슴이 서늘하다.

보육교사 : 복지는 거래성 대가가 아니라 권리라구요!!

개굴은 이곳의 보육교사들에 대한 교육을 담당했다. 주말 밤 근무를 한 뒤 퇴근을 앞둔 10명의 보육교사가 교육에 참여했다는데 전반적인 분위기는 동기가 없는 상태. 서로 친밀함도 보이지 않았고, 마주보고 박수 치기를 시켜 보았을 때도 눈도 제대로 안 마주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일정조정을 담당했던 내게 이곳 담당자는 계속 “교사들이 오전에 퇴근해야하니 9시에 교육을 해달라”는 무리한(?) 요청을 계속했었는데 개굴을 말을 듣고보니 왜 그랬는지 짐작이 갔다. 퇴근도 퇴근이지만 하기 싫은 의무교육에 시간까지 늦어지니… 다음날 내가 고교생 교육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은 이곳에 최근에 많은 이모, 삼촌(이들은 보육교사를 이렇게 부른다)들이 바뀌어서 분위기가 예전같이 않고 친밀감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들에 대해 알지도 못하거니와 알려하기보다 권위적이라는 불만이 가득했다.

개굴은 ppt장면을 짚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가져간 사례 가운데, 시혜적 차원에서 아동복지에 접근하는 교사의 사례가 있었는데, 그 사례에서 비판적 지점을 찾아내기보다 많은 교사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하는 고민과 완전 똑같다면서 동감을 표했다고 한다. 교육 내내 종사자들은 전반적으로 ‘감사하며 살라’는 보육원 전반의 억압적 메시지를 내면화하고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학생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학생들은 교사들의 강압적 통제 방식을 동반한 권위주의, 베풀어주니 고마워하라는 암묵적 분위기에 전반적으로 억눌려 있었다. 이유없는 통제, 소지품 검사 등에 대한 불만이 거세었으며 무엇보다 베푸는 것에 감사하라는 가시적 비가시적 표현들에 매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납득이 되지 않는 처사들.. 일테면 어떤 친구가 드라이기를 쓸 땐 두다가 이모가 싫어하는 아이가 쓰면 전기 든다고 뺏고, 학교에서 급식비 등을 내라고 해 돈이 필요해서 찾아달라고(각자의 지원금이 저축된 통장이 있는 것 같았다)하면 며칠이 지나도 안들어준단다. 그래서 다시 요청하면 네가 지급표(은행 통장에서 돈 찾는 명세서)에 싸인을 안해서 못했다고 하는데 본인들은 그 전에 싸인을 다 해준 상황임에도 뻔한 거짓말을 한다고.
비록 이런 행위가 나쁜 것이나 이모, 삼촌들이라 불리는 교사들의 행동이 일하며 생기는 스트레스와 지지 받지 못한 자신의 권리를 삐뚤어지게 풀어내는 방식일 수 있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다. 물론 교사만을 탓할 수는 없다. 제도적으로 마련된 ‘시설’이라는 공간이 사람 중심이 아니라 일처리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건 너무도 익숙한 관행이기에. 우리들은 단지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느낌이었다.

개굴의 교육이 아동/청소년 교육 앞에 배치된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아이들의 생생한 감정을 보여주며 교사교육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일회성 교육의 한계는 있다고 해도 만일 복지를 권리로 접근하지 않으면 그 복지는 거래성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되거나 낙인감을 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인권에 기반한 사회복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지가 권리로 사고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 복지의 과정에 이용자의 주체적 참여와 자기결정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짚어주는 것이 선행했다면! 이러한 인권 감수성을 바탕에 깔고 아동의 존엄에 관한 것, 그리고 보육원 거주 아동들이 살아가면서 당면하게 될 많은 문제들이 있을 텐데 삶의 자활력을 갖기 위해서 복지사들이 옹호자로서 그들의 선택과 실험, 인권의식을 지지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자신들이 날마다 만나는 아이들의 살아있는 감정과 분노를 눈치챘더라면 전체적으로 빨리 끝냈으면 하는 느낌, 왔다갔다하는 부산함이 조금 가셨을까?… 큰 기대는 안되어도 그래도.. 라는 아쉬움은 계속 남는다.

한낱은 이 교육의 소감에서 이렇게 적었다. “학교 안 인권의 문제에 집중해서 고민하게 되는 요즘, 내가 혹은 우리가 놓치고 있거나 아직 돌아보지 못한 인권의 현장이 많음을 다시금 자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삶은 그렇게 계속 되고 있고, 그 안에서 상처는 계속 발생하고, 뚜렷한 해결책이 무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은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발걸음이 무거워진 채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으로 보육원을 빠져나왔다”고. 나중엔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느낌과 생각을 열어놓고, 청소년 인권에 대한 PPT를 가지고 정리강연을 할 때는 몇 번이나 동감의 고갯짓을 아끼지 않던 고교생 교육이 끝났어도 나의 마음도 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일회성의 이런 교육이 그 친구들에게 무슨 힘이 될까 하는 자조감도 들고…. 다녀와서 우리가 느낀 것들을 정리해 보육원에 전달할까도 생각했지만, 고쳐지기보다는 보복성의 화풀이가 학생들에게 전가될 듯 하여 아무 액션도 취하지 못하고 우리는 다만 다음에 이와 같이 종사자와 시설아동들의 교육이 동시에 들어오면 반드시 종사자 교육을 뒤로 배치하여 그곳 아동들의 생각을 우회적으로 전달하고 생각해보도록 하는 정도는 꼭 하자고 결의를 다지는데 그쳤다.
‘시설’ 같은 집단생활을 넘어선 ‘주거 복지’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었다.

– 루트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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