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려는 사람들
중앙대학교 인권센터 인권나래 교육 후기

중앙대학교는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학내 구성원의 기본적 인권옹호와 평등문화 조성을 목적으로 인권센터를 개설했다. 이는 기존의 성평등 상담소를 개편한 것으로 성희롱, 성폭력 등의 예방교육 및 상담에서 나아가 학내의 각종 차별 및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교육 및 홍보, 각종차별 및 인권침해의 상담, 신고 및 처리 등의 업무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2012년 6월 총장직속기구로 인권센터를 열고 학내 구성원의 인권감수성 및 반차별 감수성 향상을 위한 교육활동을 기획하면서 들의 문을 두드리셨다. 소수의 학생들을 모집하여 인권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며, 이후 인권센터와 지속적인 연계를 갖든 안 갖든 인권활동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육시간은 2시간씩 3회, 너무 짧았다. 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참여자들을 모집하는 만큼 처음부터 인권활동가 양성이라는 것은 과한 목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인권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을 키우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후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이나 네트워크 등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강력한 사회적 이미지에 울고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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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활동가 양성을 위한 대학생 인권나래’라는 이름으로 7명의 참여자들과 만났다.(가끔 교육을 진행하다보면 궁금해진다. 도대체 남성들은 다 어디 있을까?ㅋ) 앞으로 학내에서의 인권옹호자로서 함께 활동을 해야 하는 만큼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면서 어색함을 녹였다. A4를 3등분 다음 각각 ‘남들이 보는 나’, ‘내가 생각하는 나’, ‘되고 싶은 나’를 키워드나 이미지를 통해 표현해 보도록 하였다. 모두 개성 있는 이미지들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해주었다. ‘남들은 내 외모를 보고 굉장히 강할 거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전 의외로 소심하구요. 상처 잘 받아요…’, ‘사법고시공부를 오래 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전형적인 고시생 이미지인거 같고, 스스로도 주눅 들고 우울증도 생기는 것 같아서 인권나래를 신청하게 됐어요. 인권과 법이 굉장히 밀접하기도 하고 인권이나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자존감도 키우고 싶고…’. 참여자들은 자신의 외모, 총여학생회 회장이나 고시생처럼 현재 하고 있는 일이나 상황이 만드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걷어내고 자신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외모에 대한 편견이 억울하다고 하는 가운데 불행히도 참여자들은 ‘그럴 것 같다’는 데 동의하게 되기도 했다. 뿔테안경 고시생, 꼴페미 같은 강력한 사회적 이미지에 더 공감하는 우리의 모습에 그저 웃음만… 참여자 중 한 명은 어떤 키워드나 이미지를 쓰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소개하면서 빈 종이의 삼면을 돌려가면서 소개하는 기지를 발휘해 모두에게 큰 웃음과 함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대학, 차별종합세트

참여자들의 긴장이 풀리고 자연스럽게 말문이 열리면서 ‘우리의 인권은 안녕한가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도록 했다.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어쨌든 우리사회는 대학가면 할 수 있다고 하니^^‘;) 충분히 존중받고 있나, 나는 충분히 자유로운가. 아니면 그때와는 또다른 어떤 것들이 나의 인권을 옥죄고 있나. ‘캠퍼스 인권지도’를 구석구석 그리면서 각각의 공간에서의 차별경험이나 인권침해라고 여겨지는 상황들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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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약자는 범접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학교의 높은 경사와 수많은 계단. 친구가 사고로 한 달 간 목발을 사용했는데 다닐 수가 없어서 내내 택시타고 강의실까지 이동했어요. 또 도서관 열람실이 5층인데 이 친구가 엘리베이터를 사용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니까 엘리베이터는 자료운송용이라 안된다고 해서 이 기간 동안 도서관 이용을 못 했어요.’
‘교수님의 권위적인 자세나 수업시간 중의 인격 모독적 발언들’
‘1학점짜리 과목으로 만들어진 청룡봉사단, 하는 일도 뚜렷하지 않은데다 학교 환경미화활동을 시켜서 이건 손쉬운 무급노동착취라고 생각해요.’
‘팀 프로젝트 시 학생들 간 중국인 유학생 배제’
‘미팅엔 미니스커트, 있는 그대로 나가면 안 될까, (학교라면 꼭 있는 학내 호수에)뚱뚱한 여자애는 빠트리고 예쁜 여자는 예외?’ 등의 여성으로서 여전히 들어야 하는 차별의 경험들이 쏟아졌다. 이런 이야기 속에 한 참여자는 시간강사의 어떤 접근행위와 지속적인 연락 등에 시달린 경험을 떠올렸다. ‘그건 진짜 완벽한 성희롱이잖아’라며 다른 참여자들은 흥분했고, 당사자는 당시의 어쩔 수 없었던 상황에 쓴 미소를 지었다. 캠퍼스 인권지도에 써넣은 내용도 있지만 서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미처 쓰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런 적 있는데’라는 경험들이 이어졌다. 대자보 내용이 정치적이라 게재할 수 없다고 하여 부착이 불허된 일 등이 신문기사에 나왔다고 살짝 물꼬를 트니 동아리 활동에 대한 간섭이나 학생자치권의 축소, 의사표현의 자유의 후퇴, 외부 학원의 광고지가 학내를 도배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대자보를 붙이거나 플랭카드 걸기는 왜 이리 어려운지 구성원들보다는 자본의 자유가 널리 보장되고 있었다. 너무 일상적인 풍경이기에 스쳐 지났던 일들을 다른 눈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

그렇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학교당국이 어느 날 잘못을 깨닫고 알아서 바꿔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시간은 첫째 시간에서 나온 수많은 인권 침해적이고 차별적인 상황들을 어떻게 바꿔낼지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더불어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은 누구인지, 그들과 나는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자가 적은 만큼 어떻게 진행할까 고민하다가 ‘2012 오르락내리락 인권교육 고개넘기(심화)’에서 나왔던 말판을 활용하기로 했다. 참여자들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면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뫼비우스의 띠 모양의 말판과 주사위 그리고 4가지 색깔의 종이를 준비했다. 각 색깔의 종이에는 ‘캠퍼스 인권지도 그리기’에서 나왔던 학내의 인권침해상황,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편견, 인권 친화적 공간을 만들기 위한 나의 제안, 일종의 찬스쿠폰을 각각 준비했다. 말판의 각 칸은 준비한 종이와 같은 색깔로 맞추고, 도달한 지점의 색깔과 동일한 색지를 뽑아 그 안의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나 대안을 이야기하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제 각자 자신의 소지품 중 하나를 말로 원하는 위치에서 출발~ 이는 말판이 출발과 종점이 있으면 종점에 도착하는 것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학내 이동권 문제나 교수님의 인격 모독적이나 성차별적 발언에 대해서는 문제라고는 생각하는데 어떤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모두가 교수님에게 나의 느낌을 전달하고 문제적 발언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 강의실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정말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자신 없어 했다. 만약 당신이 그런 상황이라면? 나 혼자가 아니라 강의실에 있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힘을 실어준다면 조금은 지금의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친구들에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나, 함께할 거라는 확신이 있나 하면서 다시금 주춤했다. 팀 프로젝트 시 중국인 유학생 배제는 잘못된 제도나 정책이 어떻게 차별을 만들어내는지 잘 보여주었다. 개인별로 점수를 줄 때는 유학생에 대한 최저 점수기준이 있지만 팀 프로젝트는 다르다. 여러 명이 한 팀이 되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유학생들은 언어의 문제뿐 아니라 교육배경이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려하지 않음으로서 모든 학생들은 유학생들과 한 팀이 되기를 꺼려한다. 유학생 몫의 일을 다른 구성원들이 분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저절로 구성원들은 중국인 유학생은 이것도 못하는 사람, 한 팀이 되어서는 안 되는 짐스런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에게 학점은 발등에 떨어진 불일 수밖에 없다. 상황이나 조건에 대한 고려, 시스템이 가진 근본적 문제는 너무 멀기만 하다.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로 두 번째 시간은 40분을 넘겨 지속되었고, 정답은 아니지만 조금씩 실천의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함께 모여 두런두런

마지막 시간은 사회권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20대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공동체 ‘두런두런’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여자들이 인권교육 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갈증이 많은 만큼 다른 모임의 활동에 대한 궁금증도 많았다. 두런두런은 처음 인권법률대학생 동아리로 출발했지만 그 대상을 대학생으로만 제한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 ‘20대 청년’으로 문을 넓혔다. 그리고 모 대학교 내 성소수자 차별발언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요구 활동, 청소년인권교육 프로그램 진행, 차별금지법제정운동, 사회복지법제정서명운동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니네 학교 일도 아니잖아’, ‘남의 일에 뭐하러 그렇게?’, ‘그런다고 무슨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냐’라는 질문은 정도나 결이 조금 다르지만 이 안에서도 나올 수밖에 없는 궁금증이었다. 두런두런의 활동가 뇽은 ‘누군가만의 문제라는 것은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모 학교의 성소수자 차별은 참여자들이 경험해 온 교수의, 선배의, 아르바이트 회사 사장님의 차별과 무엇이 다른가. ‘전국 네트워크면 몇 명이에요?’ 등 친구들은 두런두런의 규모와 운영상황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쏟아냈다. 참여자들의 이어지는 질문 속에 앞으로 ‘인권나래’로서의 자신들의 역할 찾기에 대한 고민이 묻어났다. ‘두런두런’도 시작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었다며 인권나래도 구성원 수에 너무 의미부여 말고 우선 시작하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일단 지금 만난 사람들끼리 두런두런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다보면 또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그 모임은 중앙대학교 인권센터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나래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그리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주변의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모임이기를 기대해본다.

– 묘랑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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