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짓는사람+들] “느낌 따라 선택해 왔는데 그리 틀리진 않았더라고요.”
부러운 촉의 내장자, 활동회원 훈희 인터뷰

2016년 12월, 지금은 상임활동가가 된 지나와 함께 ‘들’의 문을 처음 두드린 활동회원 훈희님을 만났어요. 노원 청소년노동인권교육 모임 ‘꼼지락’을 통해 훈희님은 들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요. 지난해와 올해,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을 함께하면서 이 사람이 좀 더 궁금해졌습니다. 엄청 신중하고 생각이 많을 것 같은 훈희님이 의외로 ‘행동파’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개굴: 최근에 학교로 다녀온 인권교육이 엄청 재미있었다면서요?

훈희: 성동청소년센터에서 지역에 홍보에서 이런 인권 수업이 있는데 하고 싶은 학교가 있는지 알아보셨나봐요. 그랬더니 몇 군데에서 연락을 해줬고. 그래서 수업 진행할 팀을 모아서 이화외고 1, 2학년 전 학급, 학급당 6시간씩 교육을 나갔어요.

개굴: 와! 엄청 좋은 기회였네요. 하루 6시간이라니!

훈희: 그러니까요. 7명이 모여서 올초부터 교육을 준비했는데, 저희도 6시간 교육은 처음이라 어떻게 소화할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봉사시간 주는 수업이라니까 자야겠다, 숙제나 하자 그런 마음으로 참여한 학생들도 있었는데. 직접 참여하는 활동이 많다 보니까 학생들이 그럴 틈이 없었죠. 다들 너무 재미있다고. 청소년 인권 이야기도 하고, 마지막에 피켓도 함께 만들고 그랬거든요.

마음을 듣는 시간, 인권교육

개굴: 어떤 이야기가 피켓에 담겼어요? 궁금하다

훈희: ‘친구와 비교당하기 싫다, 우리가 소냐? 등급을 매기게?’ 이런 이야기도 있었고. 두 학교가 함께 쓰던 도서관을 갑자기 못 쓰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설명도 안해주더라, 도서관 같이 사용하게 해달라 이런 것도 있었고. 여기가 멀리서 등하교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기숙사 만들어달라. 벌써 두 명이 일주일 단위로 전학 간 친구도 있을 정도로 인천이나 먼 데서 오는 학생들은 많이 힘든가 봐요. 학생들이 기숙사 만들어 달라고 하면서 전학 간 2명까지 해서 23명을 기숙사 안에 하나하나 다 그려 넣었더라고요. 짠하더라고요.

학생들이 그린 인권 피켓

인권수업에서 학생들이 직접 그린 피켓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오늘 교육 어땠는지 느낌을 이야기했는데, 다들 너무 좋다고, 그동안 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항상 성적에 들어가는 거였는데 그런 것과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우리 권리가 뭔지 알아보고 해보는 수업이어서 너무 좋다고, 뭘 잘했고 잘못했고를 평가하지 않는 수업이어서 너무 좋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우리 인권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시간이었다고도 하고. 학생들도 좋아하고 우리들도 뿌듯했던 시간이었죠.

개굴: 공들여 함께 준비해서 간 교육에 반응도 좋으면 정말 좋죠, 좋아. 코로나 시기에 6시간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니 정말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네요.

청소년 주거권이 나랑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구나

개굴: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아래 청주넷) 활동을 지난해부터 저랑 지나랑 함께 하고 있는데요. 요즘 청주넷 활동 하는 건 어때요?

훈희: 처음에 같이 한다고 했을 때 ‘아마 품이 많이 드는 활동일 거예요’라고 개굴이 얘기했었잖아요? ‘나는 품을 낼 준비가 되어 있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우리 집에도 청소년이 있지만, 조금 다른 위치에 있는 청소년들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작년에는 정말 얼떨떨했죠. 주거정책이 뭔지도 잘 모르겠기도 하고, 탈가정 청소년들이 어떤 상황인지도 잘 모르겠기도 하고. 그 이야기랑 나랑은 교집합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내가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기억이나 청소년 시기의 이야기가 다 과거 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지금의 나랑은 상관없다, 다 지나간 일이야. 그러니까 약간 벽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올해 탈가정 청소년들과 세 차례 내부 수다회를 하면서 청소년들 이야기도 듣고, 청주넷 다른 활동가들의 이야기도 듣고 내 이야기도 꺼내놓다 보니 ‘완전히 나랑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구나. 다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도 여전히 ~ing 중인 이야기들과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소년 주거권 보장 기자회견

올 4월, 청소년 주거권 정책 발표 기자회견장에서 찍은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람이 훈희님

개굴: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기억도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잖아요. 그리고 지난 시간 속의 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 안에 여전히 있는 존재잖아요. 그래서 나의 청소년 시기와 주거 역사에 대한 이야기와 지금 탈가정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주거권 이야기랑 연결해 보는 시간이 청소년 주거권 이야기를 더 내 문제로 가깝게 여기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훈희: 제가 어렸을 때 갑자기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방으로 이사 왔던 이야기 했었잖아요. 그때도 얘기했지만 나한테 의견도 묻지 않고 덜컥 일어난 일이었거든요. 내 방이 갑자기 없어졌던 거니까. 내 마음을 이야기하면 어른들이 잘 들어주지 않고, 말을 못 하니까 또 입을 다물게 되고. 그러면서 생각을 묶어놨던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에 와서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살려니 생각은 너무 많은데 깊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깊이 차곡차곡 들어가면 좋은데 고민이 옆으로 퍼진다는 느낌? 그래서 생각들이 좀 깊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라죠.

사회복지 공부를 다시 시작한 사연

개굴: 아까 ‘생각을 묶어놨다’는 표현을 썼잖아요. 생각을 깊이 붙들고 있는 게 괴롭기도 하고 그래서 어떤 생존 방식처럼 습관으로 연결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인 거죠?

훈희: 그렇죠.

개굴: 그게 조금은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과도 혹시 연결되는 걸까요?

훈희: 내가 늦은 나이인지 몰랐고

개굴: 앗, 미안해요. 멋대로 늦은 나이라고 해서^^;;

훈희: (웃음) 제가 26살 때 방송대를 졸업했어요. 제가 상고를 나왔는데 졸업을 해보니 대학 공부가 너무 필요한 거야. 친구들이 ‘너도 다녀야 해’ 그러면서 내 입학 원서를 내가지고 방송대를 다니게 됐어요. 그 졸업장이 있어서 재능교육에도 입사했고, 거기서 남편도 만났고. 대학 전공을 써볼 일은 없었지만. 제가 하루 공부량을 정해놓고 꾸준히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인권 공부를 하다 보니,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너무 부족하다고 느낀 거예요. 사람들은 이미 깔고 가는 건데 나는 그걸 모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럼 공부를 해야겠다’. 청주넷 활동을 하면서도 사회복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사회복지 공부를 올해 다시 방송대에서 시작했어요. 1학기에 들었던 과목들은 다 너무 좋았어요.

개굴: 활동도 하면서 공부까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너무 대단해~

훈희: 정말 말도 안 되는 리포트를 냈는데 그래도 성적을 주더라고요. 아, 코로나 덕분이다! 했죠.

개굴: 그 사이에 훈희한테 내공이 생긴 거 아닐까요?

훈희: 아녜요. 그냥 정말 형식만 갖추고 진짜. 신랑이 보여달라고 해도 눈 버린다고, 안 된다고 안 보여줬어요(웃음). 사회복지 기초가 다 인권과 연결되어 있는 거니까. 인권이라는 것을 다 바닥에 깔고서 복지정책이나 이런 게 만들어지고 하는 거니까. 인권이라는 걸 그냥 좋은 말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 교수들은 굉장히 센 발언들을 막 해요. 그럴 때 너무 좋고. 특히 유범상 교수 강의가 너무 좋아요.

개굴: 그분이 청소년 복지 쪽에도 발언하는 스피커가 돼주면 정말 좋겠네요.

10년의 육아를 끝내고 다시 발을 내딛다

개굴: ‘꼼지락’ 활동이 첫 사회활동의 시작이었나요?

훈희: 제가 아이 셋을 키우면서 우리 동네에 다문화도서관이 생긴 거예요. 너무 좋아서 거기를 매일매일 갔어요. 큰 애 유치원 보내놓고 작은 애를 데리고 거기 문이 열리면 갔다가 끝날 때까지 있는 거예요. 결혼을 하면서 나는 딱 육아만 하겠다고 했어요. 신랑 회사에서도 외벌이는 우리뿐이었어요. 한 10년 정도 육아만 했어요. 딱 10년 하니까 더 못하겠는 거야 이제. 멀미 나겠다. 거기 다문화도서관에서 강사 양성 과정을 한다길래 거기 가게 됐어요. 그게 첫발이었어요. 되게 긴 강의였는데, 마지막 그 과정에서 뭘 느꼈는지 이야기하라고 해서 전날 밤에 내가 얘기할 걸 써놓고 잠이 들었어요. 내가 이걸 하면서 얼마나 기뻐하고 만족했었는지 그런 것들을 쓴 거야. 다음날 읽으려고 꺼내보니까, 신랑이 제 글을 보고 밤에 저한테 편지를 써두었더라고요. ‘훈희씨가 그런 마음이었구나. 훈희씨가 행복해하니 옆에서 보는 나도 너무 좋다’ 하면서 응원이 담겨있더라고요. 그러다 지역에서 노동인권 강사 양성한다는데 가보자 해서 꼼지락을 시작하게 됐죠. 그때 (상임활동가인) 지나도 같이 배우러 갔죠. 우리가 살던 삶하고 너무 너무 다른 얘기가 많아서 맨날 듣고 오면서 둘이 ‘정말 저게 맞아?’ 하면서 얘기하고.

훈희

개굴: 재능교육에서 일할 때 나의 노동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려나요?

훈희: 제가 재능을 29살에 들어가서 학습지 교사를 했어요. 재능교육에서 파업 나갔던 사람들이 복귀하는 시점에 제가 들어간 거예요. 조합 간부들이 와서 막 얘기하고 국장이랑 싸우고. 근데 나는 노동조합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거예요. 그래서 또 내 호기심에 막 찾아보고 홈페이지에 내 이름 딱 쓰고 ‘노동조합은 뭐 하는 곳인가요?’ 이렇게 남긴 거예요. 그랬더니 조합에서 옳다구나 하고서 날 찾으러 온 거야. 그래서 노동조합을 알게 되고 지역 간부가 되고. 사람들이랑 처음 나갔던 집회가 대우자동차가 한참 파업할 때라 연대하러 간 집회였는데, 전경들이 막 사람들 끌고 가고 우리는 막 다 울면서 잡아당기고. 이거 진짜 전쟁이구나, 며칠 울었던 것 같아. 그동안 내가 봐왔던 세상은 가짜였구나! 노조활동 계속했죠. 그래서 지국장들이 날 되게 싫어했지. ‘유훈희 선생님, 그런 식으로 하시면 안됩니다.’ 계속 그러고. 오늘 컴플레인 들어왔다고 반성문 쓰라고 해서 내가 왜 반성문을 써야 되냐고 따지고. 내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 회사는 좋아했죠. 그런 얘기할 사람이 사라지는 거니까.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꼼지락 와서 노동인권을 배우는데 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처음에는 약간의 혼란이 있었거든요. 노조활동 할 때는 하종강 선생님이랑 김진숙 지도위원 모셔서 강의를 하려고 해도 지국장들이랑 본사에서 나와서 막고, 간신히 선생님들이 안으로 들어와도 지국장들 눈치 보느라 교사들이 강의 들으러 들어가지도 못해요.

개굴: 그때는 강의도 제대로 못 여는 시대였네요.

훈희: 그런데 하종강 선생님이 우리 동네 중학교 도서관에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노동인권 수업을 했어요. ‘야, 내가 10년 동안 애 키우는 동안 세상이 이렇게 변한 거야? 이걸 학교에서 한다고?’ 그랬죠. 근데 막상 노동인권 수업을 하고 활동을 하다 보니 노동인권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똑같구나, 많이 바뀐 건 없구나 했죠.

개굴: 꼼지락 활동을 하다가 그래도 우리 ‘들’과도 인연을 맺게 됐어요. 들에 가보자, 생각하게 된 계기 같은 게 있었어요?

훈희: 강의 들으면서 다 너무 좋다, 특히 들에서 오는 강의가 너무 좋다 그랬는데, 지나가 자기 먼저 회원 등록하고 ‘언니 빨리 등록해, 등록해.’ 그래서 들어왔죠. 처음 들 총회에 참석하고 그림책 읽는 ‘공룡트림’ 활동부터 시작했어요. 지나랑 나한테는 정말 정말 도움이 많이 됐던 시간이었어요.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그런 이야기였구나. 말도 안돼, 말도 안돼. 그러면서 첫 시작을 되게 좋게 한 것 같아요. 저는 항상 먼저 몸이 먼저 하고 나서 생각을 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언제나 느낌 따라, 직관적으로 뭔가를 선택해 왔는데, 그 느낌들이 거의 다 맞았던 것 같아요.

개굴: 의외로 행동파였군요! 훈희한텐 도대체 어떤 촉이 내장돼 있는 거예요?(웃음) 그 촉이 자기 삶의 방향을 잘 잡아주었고 ‘들’과의 인연도 맺어주었으니 고맙고 부러운 촉이네요.

더 나빠지지 말라고 찾아온 시간을 보내며

요즘 훈희님은 첫째 아들이 선택한 ‘어떤 이별’로 복잡한 마음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인터뷰의 후반부는 그 이야기들로 빼곡했는데 훈희님이 해석한 아들의 이야기라 활자로 옮기지는 않기로 했어요. 훈희님은 힘겨운 일이 생길 때면 ‘이 일은 더 나빠지지 말라고 여기서 이렇게 멈추라고 찾아온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고 하네요.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훈희님에게는 딸이고 딸에게는 훈희님인 관계가 큰 힘이 된다고 해요. 자녀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거리 두기’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계속 궁리하고 있는 훈희님의 이 시간들은 비슷한 결의 고민을 가진 분들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간혹 ‘들’에서 오가며 훈희님의 흔들리는 마음을 접할 때, 그 이야기를 우리 함께 잘 들어주어요.

* 인터뷰 정리: 개굴_경내(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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