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어린이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 보이는 것들
초등학생과 함께 한 반폭력 감수성 교육

최근 <모범택시>, <빈센조>, <악마판사>와 같은 소위 다크히어로물을 연이어 보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주인공은 착하고, 없이 살아도 밝고 정의를 쫓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다크히어로물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스스로 악당임을 자처합니다. 그러면서 선악의 경계는 이익을 내세운 논리 속에서 모호해지고 폭력에 대한 감각도 흐릿해집니다. 다크히어로가 다른 악과 대적할 때 상대 악들이 해왔던 바로 그것, 법을 넘나드는 혹은 법을 활용한 폭력을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폭력인 줄 알면서도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들이 행하는 폭력이 마치 불가피한 선택 혹은 정의구현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악은 악으로 처단(빈센조 중)’할 수 밖에 없는 폭력적인 구조가 있는 한은 더욱.

반폭력을 주제로 한 교육경험을 나누려다 보니 다크히어로물이 떠올랐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드러나는 가치가 우리 사회의 폭력에 대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구조 자체가 차별적이고 폭력적일 때 누군가가 경험하는 폭력은 잘 드러나지 않고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기 마련입니다. 교육, 훈육을 이유로 한 일상적인 통제와 감시, 모욕과 비하, 비교와 비난에 놓인 어린이, 청소년의 상황이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에 법이나 제도가 내 권리를 회복해줄 거라는 기대마저 할 수 없을 때 다크히어로가 그나마 희망이 되는게 아닐까요. 그래서 인권은 개별적인 폭력상황만이 아니라 폭력이 발생하고 작동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더 깊이 있게 살피려 하는 것 같습니다.

폭력을 어린이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초등학생들과 함께 반폭력을 주제로 교육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에서 폭력을 어떻게 나누면 좋을지 늘 조심스러움이 있습니다. 교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특별한 문제적 상황과 특정 인물의 문제로 다룰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권교육에서는 개인이 아닌 구조적 분석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접근하려 합니다. 법을 중심으로 처벌을 강조하기 보다는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관점의 전환과 비판적 분석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사례는 사건을 대상화하면서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낮출 우려가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신체적이고 물리적으로 큰 손해가 발생한 상황만을 폭력으로 인식한다면 일상 속에 숨어있는 폭력들에는 둔감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우선 일반적이고 통념적인 ‘폭력’이 아닌 참여자들의 삶을 통해 폭력의 개념을 재구성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들어가는 질문으로 언제, 누구에게 “조용히 좀 해” 하는 말을 듣게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대등한 관계일 때 발언권은 자연스레 발현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종종 제지당하거나 아예 대화상대로 인정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은 상호존중을 위해 서로에게 요청할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들을 듣게 될까요?

“선생님이 수업시간에요.”
“엄마랑 이모랑 할머니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하니까, 엄마가 저한테 조용히 하라고 했어요.”
“제가 TV를 보고 있는데 아빠가 전화와서 받는데 저한테 갑자기 시끄럽다고 했어요.”

수업시간에 교사가 이야기를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학생들이 떠들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건데 교사의 입장에서 수업내용과 연관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질문이나 불필요한 의견이라고 느껴질 때, 시끄럽다거나 조용히 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소음이나 배경음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수업시간에 말할 수 있는 사람, 해도 되는 말이 정해져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애들은 몰라도 돼.’ 어렸을 때 비청소년들한테 꽤 들었던 말인 것 같습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대화의 장에서 소외되는 상황들을 나누며, 나이가 어리다고 몰라도 되는 게 있는지 물었습니다. 격한 동의를 표하는 참여자도 있었지만 당연했던 일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거나 호기심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체벌이나 욕설만이 아니라 이처럼 일상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관계, 상황이 폭력일 수 있다고 새로운 관점을 던지며 참여자들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공감과 위로를 통한 반폭력 감수성 키우기

일단 참여자 각자의 경험과 마음을 촘촘히 살피기 위해 그림일기를 활용하였습니다. “친구들, 가족, 선생님에게 들었던 나를 아프게 하는 말, 행동, 장면이 있다면?” 해당하는 말/행동/장면을 제목란에 그 때의 마음이나 상황을 그림과 글로 각각 표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혹시 당시에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 함께 써 달라는 요청도 덧붙였습니다. 종종 자신은 속상했던 적이 없다는 참여자도 있어 반대로 어떤 말/행동들이 나를 힘나고 즐겁게 만드는지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폭력이 관계를 끊고 망친다면 그 이면의 말들은 관계를 보다 튼튼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으니 함께 나눠봄직하다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한 참여자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 꾸러미를 풀어놓았는데요, ‘잘 할 수 있어.’ ‘힘내’, ‘너는 너야.’,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처럼 응원과 감사의 말에서부터 ‘이것 좀 도와줘.’, ‘넌 최고의 친구야’, ‘노래방 갈래?’, ‘놀래?’, ‘기분 나빠져도 놀면 괜찮아져’처럼 관계 속에서 서로에 대한 인정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들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살짝쿵]응원
참여자들이 상처받았다고 들려준 말들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주변 사람 아무나 툭 던지는 키나 몸무게 같은 외모평가, 비교를 통한 비난이나 통제와 금지의 명령들, 친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감정싸움에서 손절까지, 부모님이나 보호자들이 던지는 너를 위해, 네 장래를 위해, 더 좋아지라고 하는 말들까지. 내가 들은 것이 아니어도 TV에서나 주변에서 들었던 말과 행동들, 일상이 폭력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꿈은 운동쪽으로 가면 안돼.”
“오빠랑 너랑 성격이 반씩만 섞였으면 좋겠다.”
“이건 다 널 위한거야.”
“그냥 조용히 하고 들어.”
“그거 너가 못하는 거야!”
“너 내 딸이 맞긴 하니? 어휴, 어디서 이런 애가 나왔는지 몰라.”
“넌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도라에몽을 좋아해?!”
“너 바보야? 이것도 못해?” / “너 바보야? 왜 말을 못해!”

반 수업이었기 때문에 모든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몇몇 참여자를 초대하여 경험을 나누어달라 부탁하였습니다. 함께 상황을 공유하면서 우리가 어떤 말이나 행동들에 상처입고 있는지, 그런 말들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가면서, 폭력에 대한 감수성도 조금씩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종이를 옆 줄의 사람에게 전달,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보고 공감이나 위로 혹은 문제 상황에서 해 볼 법한 말이나 행동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공감하는 과정을 밟으면서, 우리가 관계에서 상호 지켜야 할 윤리에 대한 감각들을 익혀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갤러리 워크 방식으로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었습니다. 미술작품 전시회처럼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적정한 거리와 간격을 두고 전시해 두고 모든 참여자들이 모든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교실이라는 공간이 생각보다 훨씬 작기도 했고 코로나19로 인해 참여자들 간 거리도 염려되어 가능한 수준에서 진행하게 되었는데, 충분히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살짝쿵]상처

한편 이런 작업을 할 때 피드백이 없거나 부적절하다면 오히려 당사자에게 상처로 남을 수도 있어 참여자들에게 세심한 안내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미 참여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어떤 상황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한 참여자도 있었는데, 짝꿍들은 ‘넌 슬픈 일이 없었구나. 대단하다.’라거나 ‘걍, 힘내’라며 빈 종이에도 응답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에도 의미가 더해지고, 누구도 교육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종종 ‘키는 조금 있으면 더 클거니까 걱정하지마’, ‘너보다 뚱뚱한 사람 많아, 괜찮아.’, ‘…지적의 강도가 세다면 네 행동을 돌아보면 어때?’처럼 교훈적(?)인 댓글도 있었습니다. 이후에라도 이런 응원을 보내게 된 배경, 이 말들이 당사자에게 어떻게 들릴지 나눠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매년 학생들에게 폭력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위 학교폭력의 유형, 처벌규정들에 대한 안내를 통한 금지의 언어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이 놓여있는 폭력적인 상황이나 환경, 구조를 뺀 폭력예방교육이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들리까요? 폭력예방은 규정이나 처벌이 아니라 이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글쓴이: 묘랑(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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