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정치, 밀어서 잠금해제 : 청소년과 정치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은?
청소년 정치리더십 캠프 후기

지난 2월말 국가인권위원회가 오랜 만에 괜찮은 일 하나를 했더라고요. 국회의장에게 선거권 연령을 낮추기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이지요. 의견서에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 가능 연령과 교육감 선거 가능 연령, 주민발의 참여 가능 연령 등을 다르게 정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 보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육감 선거 때 등장했던 ‘기호0번 청소년 후보’, 지난 대선 때 등장했던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 내놔라 운동본부’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이번 국가인권위의 의견 표명이 사뭇 반갑게 들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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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만 명 이상의 정치적 권리가 압살되고 있다

사실 국가인권위의 의견 표명은 그동안 선거연령 인하를 포함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 요구 흐름이 꾸준히 있어왔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현행 19세에서 18세로 한 살만 선거연령이 낮아져도 무려 80만 명에 가까운 청소년 유권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17세, 16세, 15세로 낮아지면 또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게 될까요? 지금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의 지위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요? 이렇게 보면, 지금의 선거 연령 제도는 아무리 작게 잡아도 80만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무참히 짓밟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러나 여전히도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이 무슨 정치냐’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는 듯합니다. 청소년들과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많지 않고요. 청소년인권을 주제로 한 교육에서도 정치적 권리는 좀체 다루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평화와 자치를 열어가는 부천연대’(아래 부천연대)에서 주최한 청소년 정치 리더십 캠프 자리가 반갑기 이를 데 없는 교육 자리였습니다. 부천연대에서는 정치적으로 삶을 해석하기,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살펴보기, 실제 청소년들의 정치 실천 사례 만나기를 주제로 연속 강좌를 기획하셨는데요. 그 가운데 두 번째 교육 자리에 저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청소년 정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교육 전반부에는 준비해간 질문들을 바탕으로 청소년과 정치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먼저 풀어보았습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보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청소년의 연관 검색어를 떠올려보라고 하였더니 질풍노도, 폭력, 자살, 비행, 중독, 대학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나 대학, 나라의 기둥 등 의무와 관련된 단어들만 쏟아져 나오더군요. 청소년은 미숙하다 vs. 그렇지 않다, 판단력이 부족하다 vs. 그렇지 않다의 논쟁은 끝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꼬마 혁명가 가브로쉬처럼, 프랑스의 어린이의회 사례처럼 청소년이 정치의 무대에 적극 등장하고 있는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지금 우리의 사고가 사회 제도와 한정된 경험에 속박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먼저 건드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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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멋진 꼬마 혁명가, 가브로쉬

이어서는 청소년들이 정치적 권리를 제한당하고 있기에 벌어지는 불공평한 사례, 그럼에도 이 불공평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청소년들 스스로 정치적 주체로 나선 사례들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에게 정치가 위험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폭력적인가, 청소년들이 모이고 외칠 권리도 없는데 선거권이 주어질 수나 있을까에 대한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갸웃갸웃, 그럼에도 남는 질문들 속으로

후반부에는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질문들에 대해 집중 토론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만든 명작, <인권 교문을 넘다>를 보면 ‘중립이라는 감옥, 정치적 미성숙의 감옥’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답니다. 이 책을 지을 때 뽑았던 질문들을 참고해서 5가지 질문을 뽑아가서 모둠별로 하나씩 토론해보고 토론 결과를 함께 나누면서 추가 토론을 벌여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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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이 3개여서 ▲학생의 본분은 공부니까 정치는 대학 가서 해도 늦지 않다 ▲무개념, 무관심 친구들을 보면 그들에게도 정치적 권리를 주는 건 위험하다 ▲교사나 정치인들에게 선동당할 위험이 있으니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세 가지 주제에 대해서만 짚어보았습니다.

먼저 “학생의 본분은 공부니까 정치는 대학 가서 해도 늦지 않다”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학교 공부만 공부가 아니다 ▲‘학생의 본분은 축구’라고 얘기하는 게 이상한 것처럼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만 강요하는 것도 문제다. 공부는 여러 재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지금 교육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청소년에게 정치적 권리가 필요하다 ▲대학이 모든 청소년의 당연한 미래는 아니다 ▲대학 가서 하면 늦다. 대학을 가도 정치에 관심 안 갖는 사람들 많다. 어려서부터 정치에 대해 알 수 있어야 정치에 대한 무관심도 줄어든다. ▲정치를 투표나 국회에만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생활을 정치적으로 봐야 한다와 같은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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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개념, 무관심 친구들을 보면 그들에게도 정치적 권리를 주는 건 위험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누구나 처음에 실수를 하거나 잘못 판단할 수 있다. 그걸 두려워해서 정치적 권리를 빼앗는 건 안 된다 ▲권리가 없으니까 무관심해진다 ▲투표에 참여할 의사를 밝히는 청소년들에게 먼저 기회를 부여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무개념, 무관심 어른들도 많다 ▲교육 자체가 편향적이다. 그걸 바로 잡기 위해서도 더 일찍 정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등과 같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보증인이 있으면 청소년의 투표를 허용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도 있다.’고 소개해 주었더니 모두들 놀라워 하더군요.

마지막으로 “교사나 정치인들에게 선동당할 위험이 있으니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영향을 받는 것과 선동을 당하는 것은 다르다 ▲교사에게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기회가 없는 게 문제다 등과 같은 답을 찾아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사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으니까 교사의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낸 청소년도 있었어요. 그래서 ‘교사와 부모 중 여러분의 정치적 의견에 더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더니 대다수가 부모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그렇다면 ‘부모도 자녀에게 정치적 발언을 못하게 금지시켜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모두가 그건 아니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청소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접근법이 아니라 청소년이 ‘생각하는 힘’, ‘정치적 판단력’을 갖도록 지원하는 접근법으로 바꿔보자는 제안을 던져보았습니다. ‘정치적 중립의 반대말은 편향이 아니라 정치적 미성숙’이니까요.

정치적 권리만을 주제로 하여 청소년들과 교육을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살짝 설레기까지 했던 교육 자리였는데, 청소년들이 놀라운 토론을 벌여주어서 더 많이 배우고 온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 청소년 정치리더십 캠프는 ‘토론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건강한 트집쟁이들’을 만들어내는 자리였다고 하는데요. 정말 ‘토론하며 스스로 성장해가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역 사회 곳곳에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토론이 더 활짝 꽃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정리 | 개굴(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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