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차별을 금지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겠는데요?”

한 초등학교에서 다문화체험프로그램을 앞두고 인권교육을 요청하셨습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하여 학교로 들어가는 교육이 많지 않았고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교육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차별, 다양성으로 넘어서기]라는 제목으로 교육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차이, 다름, 인정, 기준, 다양성, 존중…  반차별을 향해 떠도는 무수히 많은 말들을 어린이들의 삶 가까이에서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회차 교육 중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먼저 차별을 만들어내는 ‘기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부분그림을 보고 동물맞추기 퀴즈를 하며 각 동물의 특징들을 살피다가 ‘토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려보았습니다. 대다수의 그림에서 긴귀, 분홍색, 동그란 꼬리를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토끼’하면 가장 먼저 긴 귀가 떠오르는데 귀가 짧아 속상해 하는 토끼가 있다며 그림책 <짧은 귀 토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짧은 귀를 길게 만들기 위해 빨랫집게로 귀를 집어 빨랫줄에 매달려보기도 하고, 귀에 물을 주어도 봤지만 귀가 자라지 않자 모자로 귀를 가리며 속상해 하는 ‘동동이’의 마음 상태를 떠올려보았습니다. ‘동동이’는 대체 왜 귀를 길게 자라게 하고 싶었을까요?

‘토기는 모두 귀가 길다’, ‘토끼는 귀가 긴 것이 좋다’ 그런 고정관념이나 편견들이 토끼가 사는 곳에 기준이 되어 동동이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동동이처럼 우리도 어떤 기준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는 공간 학교안의 기준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학교안 기준 돌아보기

“학교는 학생이 000할 때 좋아한다” BEST5!!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을까요?

 공부할 때 / 공부를 잘 할 때 / 열심히 할 때 / 노력할 때 /모두 100점 맞을 때 / 얌전할 때 / 규칙을 잘 지킬 때 / 조용 할 때 / 예의바를 때 / 학교는 학생이 말을 착하게 할 때  좋아한다 / 예쁘게 말할 때 / 선생님 말씀 잘 들을 때 /교가 부를때 / 학생 수가 많을 때 /친구랑 잘 어울려 놀 때 등  

학교안에서 이런 행동을 할 때 칭찬을 받기도 하고 우월한 생각이 들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는 차별을 받기도 하고 월등한 존재가 되어 속상했던 경험들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우리 사회에서도 어떤 행동이나 문화, 외모 등에 대해 ‘더 낫다’ 혹은 ‘나쁘다’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힘(권력,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정하게 되고, 기준이 정해지면 우리는 당연한 원칙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모두 따르려고 하며 그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기준은 결국 기준과 멀어진 사람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됩니다.

‘동동이’처럼 기준 때문에 속상했던 적이 있는지 묻자 어린이들은 “이마에 있는 점을 빼기 위해 10번이나 피부과에 갔었어요”, “축구가 너무 좋은데 축구팀에 남자애들밖에 없어서 못했어요”라는 이야기를 나눠주었습니다.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기준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린이들은 “간신히 복싱학원에 다니는 누나에게, 가족들이 여자는 복싱 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누나는 누나 뜻대로 당당하고 자신있게 해”, “키가 작아서 힘들어하는 나에게, 많이 힘들지? 하지만 너는 세상에서 가장 멋져”하며 응원의 메세지를 남겨 주었습니다.

[차별, 다양성으로 넘어서기] 두 번째 시간입니다.

차별적 기준은 우리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우리 사회에서 성별이 어떻게 길러진것인지 살펴보기 위해 어릴적 가장 많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에 성별에 따라 다른색 스티커를 붙여 보았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났는지, 나는 언제부터 미용놀이를, 블럭놀이를 좋아했던 것인지 묻자 한 어린이가 “여자아이들은 미용놀이를, 남자아이들은 블럭놀이를 좋아할 거라는 ‘편견’때문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소꿉놀이를 하고 싶어도 어른들이 ‘너는 남자애가 무슨’이라고 말하거나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싶어도 ‘너는 여자애가 무슨’이라는 말을 듣던  것을  떠올리며 미용학과나 건축학과에도 성별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 성별도 역할도 사회적으로 길러지고 있는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어릴적 많이 보던 애니매이션에도 대부분의 주인공은 남성이고 그들의 성격도 비슷합니다. 지난주 힘(권력,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기준에 따라 남성 중심 사회가 될 때 배제되는 여성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어린이들이 많이 접할 수 있었던 바비 인형들의 그림을 보고 공통점이나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지 묻자 어린이들은 아래의 이야기들을 찾아냈습니다.

 모두 여성이다 / 드레스 입었다 / 구두를 신고 있다 / 손을 모으고 있다 / 모두 웃고 있다 

모두 공주이다 / 안경 쓴 사람이 없다  / 모두 얼굴이 하얗다 / 모두 서양인이다 / 동양인은 없다

장난감

이 장면에서 배제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으니 바지를 좋아하는 여성, 달리기를 잘하거나 목소리가 크거나 활동적인 여성, 공주하는 신분이 아닌 사람, 드레스나 구두를 살 수 없는 사람, 피부가 검은 사람등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가 있는 사람은 떠올리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차별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할 때 ‘사람은 모두 같다’거나 ‘다름을 인정하자’라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 다르고,이 다름은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요? 미국 텍사스 주에 살고 있는 10살 엠마 베넷이 가족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장면을 영상으로 가져갔습니다. 선물을 받은 엠마는 인형의 다리가 자신과 똑같은 의족을 한 모습을 한 것을 발견하고  눈물을 터트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어린이들은 ‘어떻게…’하고 짧은 외마디로 배제되고 있던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혀봅니다.

차별에 맞서는 힘 기르기

함께 살아가는 이 공간안에서 ‘누군가의 불편함을 알아차리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 차별을 막아내고 다양함을 존중하는 실천적 행동입니다.  그러한 차별에 맞서는 힘을 길러보기 위해 백인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인종차별 사례와 장애인이 버스를 타기 어려운 이유 역시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버스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차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좀 해달라고 하니 참여자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 놓았습니다.

해주고싶은말444

그러다 한 어린이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차별을 막을 수 있는 ‘법’은 없나요?”  앗뿔사, 어린이들에게 <차별금지법>을 안내해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차별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기준을 이해하고 우리 모두 그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준비한 무대와 극본을 뛰어넘어 새로운 ‘창조’와 ‘배움’을 이어나가는 순간입니다. 서둘러 <차별금지법>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국민동의청원을 받고 있는데 동의하는 시민들이 10만명이 되면 더 빨리 법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오! 빨리 동의 해야겠네요”라며 참여자들의 뜻이 모아졌습니다.

내친김에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 연대가 뭘까요?” 하고 묻자, “몇년 몇년 하는거요” “연세? 나이를 말할 때 쓰는말이요 ” “연세대학교의 줄인말?” 어린이들에게 ‘연대’가 이리 낯선 이야기인가 봅니다. 어릴적 가지고 놀았던 블록을 무너뜨리지 않고 높이 쌓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홈에 잘 맞춰서 끼워야 한다 / 지지를 세우면 좋다 / 아래를 더 넓게 쌓자(피라미드처럼)

빈틈을 매워야 한다 / 블록과 블록 사이를 교차로 끼우면 더 튼튼하다

어린이들이 찾은 방법들을 연대의 장면으로 설명해보았습니다. 차별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맞잡을 손이 필요하다’, ‘지지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힘이 약할수록 뭉쳐야 한다’, ‘차별을 모르는 척하는 빈틈을 매우자’ 등 함께 하여 힘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떠올리며 삼삼오오 모여 손을 잡아 보았습니다. 어떤 모둠은 손목과 손목을 잡아 연결하기도 하고 어떤 모둠은 손을 교차하여 여럿이 손을 잡아 보며 연대의 손을 표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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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만들어 내는 수많은 기준들 속에서 차별하지 않거나 차별받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차별인지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무뎌졌습니다.  법과 제도 역시 기준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철저하게 배제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결하여 맞잡은 어린이들의 손에서 어쩐지 나는 오늘, 차별에 맞서고  연대가 가능한 새로운 세상을 본 듯 합니다.

*글쓴이 : 지나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