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인권교육가, 자기 점검의 돛을 내리지 말라

인권교육은 인권에 대한 교육이자 인권을 통한 교육이다. 그리고 인권을 ‘위한’교육이어야 한다. 들에서 펴낸 <인권교육 새로고침> ‘인권을 위한 교육’편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변화를 꿈꾸는 인권교육이라면 그 자체로 인권활동이 될 수밖에 없다. 인권교육은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인권을 만나게 함으로써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가장자리를 넓혀 나가는 활동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교육가는 곧 인권교육활동가”라고. 인권교육을 이루는 삼박자에서 인권교육가는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요구받는다. 그래서 인권교육을 사회 변화를 위한 하나의 실천으로 생각하는 인권교육가라면 교육을 준비함에 있어 인권의 시각에서 보고 변화의 필요성과 연결하려 애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 잘하고 있나? 준비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나?’ 늘 되짚으며 애쓰며 준비하지만, 인권교육가도 때론 놓치는 것들이 있고, 문제를 일으킨다. 그럴 때 자신이 자초한 문제적 상황이라면 누구를 탓하기 힘들다. 단지 지속적인 자기 점검을 해나가야 할 따름이다.

최근 했던 교육은 준비과정부터 이토록 많이 자기 점검을 했던 적이 있었나 싶은 경험했다. 소수자와 참여자가 직접 만나는 자리를 통해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로써 소수자의 삶과 차별의 일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생생토크라는 형식의 교육을 종종 준비한다. 이번 교육에서도 생생토크를 준비했는데 농인 성소수자 활동가를 초대하며 인권교육가로서 얼마나 농인사회에 대해 무지한가를 마주하게 되었다. 모른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거나 반성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는데도 어쩌면 이 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는 길을 막아 와서 접촉하기 힘들었다는 조건을 이유로 무지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방기 하진 않았던가, 경험을 통해서면 배우는 것이 아님에도 그대로 무지의 영역으로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반성하게 되었다.

“그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일이 없고, 우리의 감수성과 부딪치거나 우리가 하는 사색의 주제가 될 일도 없다”는 우치다 다쓰루의 말을 교육에서 인용하는 적이 종종 있는데, 이번 교육을 준비하며 무지함으로 좌충우돌한 내게 깊이 들여 줘야 하는 말이 아닐까.

삐걱삐걱, 예산 준비단계의 미흡함

생생토크에 누구를 초대할까. 이번엔 농인 성소수자를 초대하기로 했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 생각한 것은 수어통역사를 초대하는 일, 이를 위한 예산을 준비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이 교육은 주최측과 미리 예산 신청을 하면서 여유가 있게 준비되어서 수어통역사를 초대할 예산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섭외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준비한 예산이 우리 머릿속의 예산이었다. 초대받은 쪽이 책정하고 있는 통역비를 파악하기보다는 인권단체에서 하는 행사인데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던 우리의 잣대만 있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농인커뮤니티에서 요청하신 금액은 사실상 우리 같은 작고 열악한 인권단체에겐 현실의 벽이 높긴 했다. 하지만 문제는 금액자체보다 그것을 정하는데 먼저 그쪽의 비용을 묻고, 우리의 사정을 이해받으며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 이야기를 길게 적는 것은 이게 단순히 예산의 문제라기보다는 수어통역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준비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이 정도면’이라는 잣대를 우리가 설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를 가늠하는 과정에 사실상 이것을 농인들의 소통을 위한 필수적인 권리로 인식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이런 것까지 준비하는 우리의 세심함에 더 방점을 찍었기에 놓쳐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 등짝이 서늘해졌다.

삑~ 오류입니다 : 섭외, 그리고 소통

누구를 초대할 지 섭외를 하려면 연락이 필요하다. 마침 그 단체 수어통역사의 연락처를 받았고, 그분께 이 교육의 취지와 함께 농인당사자를 섭외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몇 차례의 연락이 오가며 당일에 초대손님, 그리고 같이 오게 될 수어통역사가 정해졌다. 여기에서 오류를 발견해본다면? 어떤 문제가 발견되었을까.photo_2021-05-17_09-06-32

우리가 이번에 초대한 이야기손님은 한국농인LGBT에서 온 분이다. 이분을 초대하는 다른 과정을 한번 그려보자.

일단 단체에 메일을 보낸다 => 그리고 여차저차 교육의 취지와 농인당사자 섭외를 부탁한다 => 단체 차원에서 초대손님과 같이 짝을 이루어 올 수어통역사를 정한다 => 우리에게 알려준다 => 농인당사자의 핸드폰이나 메일로 소통을 하면서 교육을 준비한다 => 당일에 두 사람이 같이 와서 수어통역사가 농인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런데 내가 택한 섭외의 방식은 이름이 알려진 수어통역사에게 연락을 했고, 그 분이 단체와 논의해서 정작 본인은 아닌 다른 분과 농인당사자가 온다고 정해서 알려주었다. 사실상 나도 처음엔 잘 모르고 지나쳤다. 당일에 초대손님인 농인당사자분의 말을 듣고 ‘아뿔싸’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그날 초대손님인 농인당사자의 이야기이다.

“수어통역사는 우리에게 농인과 청인 사이 언어의 다리 역할을 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농인 중 유명한 분, 알려진 분을 보신 적이 있나요? 수어통역사는 얼굴이 드러나고 해서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청인들은 행사에 수어통역을 부르고 싶다고 하는 경우에도 자연스럽게 수어통어사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수어통역사는 사실 농사회에서 자라온 사람이 아닌데, 나중에 배워서 전달하는 사람인데, 사실 수어를 가장 잘 보는 적합한 사람들은 누군가하면 농인인거죠. 그런데 수어통역사만 요청해서 가는 거예요. 그래서 농인에겐 묻지도 않고 수어통역사가 알아서 가는 거죠. 이런 형태가 되는데. 농인에겐 묻지도 않고, 간접으로 거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수어통역사에게만 묻으니까… 수어통역사는 사실 농인의 대리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데, 이런 일을 겪다보니 농인들은 청인은 안 될 것 같아, 농인만 모여야 해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하물며 수어통역만 필요한 경우라고 해도, 수어통역사만 요청해서 가는 것은 문제라고 한다. 왜냐하면 수어통역사의 통역이 있어야 청인과 농인 사이의 소통의 다리가 놓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농인들의 입장에서 청인사회의 수어통역사와 농인사회의 농인의 수어는 다르다고 한다. 그렇기에 농인이 직접 이해를 하는데, 농인 당사자의 수어통역이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다른 나라들에서는 뉴스에서 수어통역을 할 경우에 청인 수어통역사가 직접 TV에 나와서 하지 않고, 청인 수어통역사가 수어통역을 해주면 그것을 농인이 농인한테 맞게 다시 통역하는 것을 방송에 송출한다고 한다. 수어통역사는 전달하는 역할인데, 농인이 농인과 직접 소통하면 제일 잘 알아들을 수 있는 통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통의 문제도 그렇지만 수어통역사는 청인사회를 살아온 사람인데, 이 사람에게 농인에 대해 질문하고 어떤 경우엔 수어통역사가 직접 대답하고 끝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론 교육과정에서 우리는 당사자에게 질문하고 당사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들었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핸드폰 문자나 메일로 섭외를 요청했어도 되는 것을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수어통역사에게 부탁하는 손쉬운 방식을 택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에게 오는 교육요청도 메일로 오는데, 전화로 반드시 했어야 할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런 손쉬운 방식을 택했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래전 국제연대 단체에서 활동했던 내 경험과 오버랩이 되었다. 당시에 나는 영어 못하는 국제연대 활동가로 국제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메인 발제는 내가 했고, 우리 단체 활동가가 나의 통역으로 같이 가게 되었다. 물론 나와 그 친구는 같은 단체에서 일하고 같은 문제의식을 나눠왔기에 발제한 내용에 대한 견해차이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쉬는 시간과 토론회가 끝난 후 사람들은 그 친구에게 와서 질문을 이어갔고, 옆에 내가 있었지만 둘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전제를 했던 것이겠지만 동료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바로바로 자신이 답을 해버렸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존재, 아니 아예 없는 존재가 되어 회의장 밖으로 밀려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다. 나의 한 번의 경험이 누군가에겐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자, 바로 내가 그렇게 일을 처리했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러웠다.

부끄러워만 해선 무엇하겠나. 인권교육가가 경계해야할 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무감함’임을 다시한번 깨닫는 것일테니. 이번 생생토크는 내게 큰 배움의 자리가 되었다. 그 자리를 걸어 나오며 나도, 그날의 참여자들도 모두 한뼘씩 자랐기를 기대해본다.

생생토크 소감
*글쓴이 – 정주연(루트, 상임활동가)

PS. 생생토크의 농인당사자 이야기 속에 배운 농인사회, 수어의 세계 등을 다음편 살짝쿵에서 이어서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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