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표준교안, 가공과 변신을 준비하고 있는 원석일 뿐

들의 교육지향 가운데 ‘N개의 교육’이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는 인권교육은 기성품이 아니라는 우리의 지향입니다. 인권교육가는 누구를 만나는가, 어떤 주제를 주로 다루는가, 몇 회의 만남인가에 따라 각기 다른 교육이 필요함을 상기하면서, 각 교육에서 만나는 참여자들의 삶과 언어를 고려한 교육을 연구, 개발, 실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처음 인권교육을 접하는 참여자들과 ‘인권감수성’을 주제로 만날 때 인권의 의미와 원칙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유지하더라도 참여자들이 누구인지에 따라 인권을 설명하는 사례나 질문은 달리 구성됩니다. 그렇다보니 인권교육에서 표준교안 혹은 공통교안은 그 자체로 완성품이라기보다 무수한 가공과 변신을 준비하고 있는 원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표준교안은 완성이 아닌 준비과정

사회복지, 공무원, 학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권교육이 제도화되면서 다양한 단위에서 인권교육가 양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권교육가 양성과정을 운영하는 기관은 교육에서 견지해야 할 최소한 가이드라인으로서 해당분야의 표준교안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고, 함께 과정을 이수한 교육가들이 모여 교육에서 꼭 담아야 하는 내용들을 합의하여 공통교안을 만들기도 합니다. 함께 출발선을 맞췄다는 안도감도 잠시, 실제 교육에서 이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습니다. 지난 달 ‘기업과 인권’을 주제로 교육을 진행하는 교육가들과 함께 준비된 표준교안을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한 일종의 워크숍 겸 교육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기업과 인권’을 주제로 하는 교육은 기업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현대 사회에서 기업활동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합니다.

“인권경영이란 국제적으로 정립된 인권규범을 이행하는 것이 기업의 책임이며, 기업 활동에 국제인권법의 규범력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경영정신”

이를 반영하여 표준교안의 주요 내용은 ▸인권경영이란 무엇인가 ▸주요 국제규범 및 가이드라인 ▸공공기관 인권경영 매뉴얼과 단계별 사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인권에 대한 일반적 이해에서 출발, 70년대 다국적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을 계기로 1976년 제정된 국제개별협력기구(OECD)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부터 2011년 UN의 기업과 인권의 이행지침 ‘보호, 존중, 구제 프레임워크’까지의 여러 국제규범 소개,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난 2018년 공공기관의 인권경영을 지원하기 위해 제작한 <공공기관 인권경영 매뉴얼>에 대한 안내로 이어집니다. 인권경영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그 의미와 필요성부터 어떻게 인권경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지 실행방법까지를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으로 인권경영을 고민하는 기관에는 필수적인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략 1회성, 1~2시간으로 요청되는 교육시간을 고려할 때 한 번에 모두 다룰 수 없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의 관심을 북돋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는 비단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참여자들 또한 직면한 문제이도 했습니다.

우선 참여자들에게 ‘기업에서 알아야 할 인권 경영 교육, 내가 참여자 입장이라고 가정할 때 듣고 나니 어떤 마음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내가 직원이라면 이런 내용까지 꼭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교육을 갔던 곳에서 한 번 들었는데 같은 내용인 것 같다고 하는데 고민이다.’
‘국제규범이 중요하긴 한데 내가 그 내용까지 다 알아야 하는건가.’
‘이런 건 윗사람들한테 알려줘야지 내 업무랑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 거 같다.’

인권교육가들은 실제 교육현장의 참여자들로부터 들은 피드백이기도 하다면서 이와 같은 의견들을 남겨주었습니다. 참여자들의 이런 반응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이었을까요? 누군가는 인권헌장을 만들고 이를 실행할 구체적인 기업 내부의 규범을 제작하고, 담당부서 배치 등 인권경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해당 기관이 관리자급의 몫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직원들은 인권경영을 몰라도 되는 것일까요? 누군가는 내가 기업가도 아닌데 하면서, 기업의 책임에 대한 국제적 흐름이나 규범들을 무관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인권경영은 일반 직원 혹은 다른 시민의 삶과는 무관할까요? 인권교육이 어떻게 다가서야 닫힌 마음을 열고, 끊어진 고리를 이을 수 있을까요?

표준교안 활용을 위한 질문 나누기

‘참여자에 따라 교육이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닐까?’하는 인권교육가들이 이미 품고 있던 질문을 포함하여, 어떻게 교안을 활용할 수 있을지 몇 가지 질문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1. 교육 참여자에 따라 교육 내용을 어떻게 구성, 변화시키면 좋을까요?
  2. 인권 경영과 관련한 국제기준의 변화, 참여자들이 변화의 의미를 이해하고 관심을 갖도록 하려면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3. 인권 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특히 공공기관의 인권 경영 책임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4. <인권경영 매뉴얼>의 인권영향평가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떤 내용으로 구성, 운영되어야 할까요? 구체적인 국내 사례를 통해 설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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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가들과 함께 하는 자리인만큼 구체적으로 표준교안을 재배치해보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실어 교안도 부분적으로 수정, 보안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막막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교육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함께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참여자에 따른 교육기획의 필요성을 확인하면서 ▸인권경영이 인권경영 시스템을 운영하는 담당자에게는 궁금할 수 있으나 일반 직원의 경우 자신의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인권영향평가가 기업의 근무 환경이나 여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언급하면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겠다. ▸기업인권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이야기, 직원들은 인권적인 측면에서 최소한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를 안내해야 한다. ▸인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인권경영교육이 어려운만큼 인권경영에 앞서 인권감수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발견하였습니다.

공공기관 운영자나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인권경영이 기관평가와 연관되는 만큼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을 것입니다. 일반 직원들의 경우 인권경영이 어떤 부서의 업무가 아니라 나의 노동환경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발견할 때 교육에 대한 관심도 생겨날 것입니다. 또한 인권경영이 전체 기관의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담당자만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의 관심과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기관에서 실시하는 인권영향 평가일 것입니다. 인권영향평가가 힘을 발휘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권교육가들은 ▸평가내용을 외부에 공개 ▸공시제도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 ▸인권정책기본법의 확립 등을 짚어주었습니다. 필요한 조치이지만 우리가 인권교육을 통해서 나누기는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히려 참여자들과 인권영향평가가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할지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인권영향평가가 내 삶과 노동의 질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보다 자연스럽게 평가항목에 담겨야 할 내용이나 그 운영에도 관심을 표하게 되리라 짐작됩니다.

100명이 모이면 100개의 사연이 있다는 말처럼 교육 참여자는 그 수만큼 다른 동기와 관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하나의 표준교안으로 다양한 참여자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표준교안은 우리가 해당 교육에서 꼭 담아내야 하는 가치와 원칙들이 담긴 원석일 뿐입니다. 우리가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에 따라 그 원석은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글쓴이: 묘랑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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